[625] 6.25와 한국교회(엡 4:3)
본문
6.25에 관한 통계 같은 것은 뛰어넘어서 41년 전 하나님께서 6.25의 붉은 난리를 통하여 한국교회와 민족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점을 찾아보기로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로, 6.25의 붉은 난리는 한국교회를 포함한 남한 전역에 퍼져 있는 죄악(罪惡)을 응징(膺懲)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섭(干涉)이라고 봅니다.
내 자신 여러 번 끌려가서 심문(尋問)을 받을 때 그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해방된 지는 6년째였고, 정부수립은 3년째인데 비해볼 때, 해방의 은총도, 통일이 유보된 사실도 아랑곳없이 개인적인 치부(致富)레 혈안(血眼)이었고, 정신이 풀려 향락에 빠져 소돔, 고모라를 방불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속담에 ‘미운 자식은 떡 한 개 더 주고,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매 한 대를 더 때린다.’고 했듯이,
비록 붉은 군대를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하늘에 사무친 남한의 죄악을 응징(膺懲)을 하셨지마는, 그 몽둥이 속에는 사랑하는 아들의 잘못을 매로 다스리시는 부모의 사랑이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민(選民) 유대나라도 하나님께 등을 돌릴 때, 하나님을 모르는 바벨론 군대를 몽둥이로 이용해서 70년간 포로생활을 시키신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로, 6.25의 응징(膺懲)은 무조건 항복(降服)을 강요하신 것입니다.
사실 6.25후 세대들은 뚱딴지같은 말을 하기도 하나, 그때 붉은 난리를 몸소 겪은 사람치고 신불신간(信不信間) 항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6.25 다음 날 종로의 C.L.S.회의실로 몰려온 교계지도자들은 결국 ‘이번만은 교회를 사수(死守)하자’고 했으며, 1.4후퇴 때 부산중앙교회당에 대거 몰려온 교계지도자들은, ‘교회사수(敎會死守)’가 아니라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싸우지 않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만 충성하겠습니다.’했습니다.
6.25가 터지니까 살판났다고 깡패두목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권총으로 과시(誇示)하면서 위협까지 하더니, 9.28이 되자 다시 나를 찾아와서 꿇어 엎드려 용서를 빌고, 이번에 기도를 많이 했다면서 예수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항복(降服)을 했다는 말입니다.
제 자신도 강단(講壇) 밑 참호(塹壕)에서 B29의 폭탄투하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고 먼지가 일 때면, 땅바닥에 엎드려 불충(不忠)을 회개(悔改)하고 충성을 거듭 다짐했습니다.
이리하여 6.25를 겪음으로써 하나님이 내미신 항복문서에 사인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셋째로, 6.25후에 한국교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해방 전(前)해에 김치선 목사는 3천만 인구 중의 1/10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면서 300만 부흥전도운동을 폈지만 10년 후 깃발을 내리기까지 이루지 못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20년이 지난 1975년도에는 1/10이 아니라, 390만이 되었으며, 오늘은 인구가 40%이상 늘었는데도 1/10은 옛 말이오, 1/4을 넘었으니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로 성취된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역시(亦是) 묵은 땅을 갈아엎으니 곡식이 자라지 못하게 하던 모든 잡초들이 밑거름이 되어, 놀랍게 성장한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구미(歐美)교회들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만 뽐내다가, 쇠퇴일로(衰退一路)에서 고민하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는 단점이 많지마는 수난(受難)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수입(輸入)할 수 있는, 유일한 자본인 기도(祈禱)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호응을 잘한 것입니다.
바울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한 대로, 한국교회 성도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인 하나님의 능력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한국교회의 기적적인 오늘의 양적 부흥상이란 말씀입니다.
넷째로, 이렇게 축복해주신 까닭은, 한국교회의 두 어깨 위에 특별한 사명을 지우시려는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있다고 믿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본래 하나님은 선민(選民)을 통해서 인류구원의 경륜을 펴셨지마는 그들의 교만(驕慢)한 믿음이 자기 땅에 오신 메시아까지 죽이기에 이르자, 하나님은 그 뜻을 바꾸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를 거부하고, 안식일을 고집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유대인을 핍박하는 한 편, 그때나 지금이나 피를 많이 흘리는 민족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그처럼 짓고 싶어 하는 성전(聖殿)인데도, 피를 많이 흘렸다는 점 때문에,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2의 선민(選民)을 두루두루 찾으신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교만(驕慢)을 증오(憎惡)하시기 때문에, 잘나고 콧대 높은 신부감이 많지만 다 딱지를 놓으시고,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숨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을 택하신 것 같습니다. 동방(東方)의 작은 나라, 허리가 잘린 반도(半島)에 살면서, 집안끼리 다투기는 해도 남을 해치는 일이 없었던, 남달리 평화를 애호(愛護)하는 배달민족(民族)을 보시사 첫눈에 드신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1세기 동안 신부수업을 시켜놓고 보시니, 이제는 지구촌 도처(到處)에 자녀교회(子女敎會)를 대량생산할 만큼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인정하신 줄 압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중에, 제 성깔은 죽고 겸손히 주님만 믿고 의지하는 순종(順從)하는 신부교회(新婦敎會)로 잘 길들여진 모습을 보시고, 이만하면 쓸 만하구나 하시고, 크게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섭리해 주셨다는 말씀이올시다.
다섯째로, 이제 한국교회는 전투력(戰鬪力) 강화를 위하여 무조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6.25 다음날 종로에 모여든 교계지도자들이 ‘교회사수(敎會死守)’를 굳게 다짐했고, 중공군의 가세(加勢)로 밀려 1.4후퇴하여 물꼬에 몰려 오글오글 하는 올챙이 떼처럼, 부산중앙교회에 모여서 “살려만 주시면 싸우지 않고 하나가 되겠습니다.”해놓고, 9.28수복이 되고나니 하나같이 빠르게도 도루목이 다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 한 세대를 지나 100주년을 전후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설교와 기도와 글과 대화가 무더기로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공염불(空念佛)에 그치고 만 것을 개탄(慨嘆)합니다.
그것은 장로교만 해도, 해방 당시에는 6,7개 정도였으나 지금은 59개 교단으로 늘었고, 약 10년 동안에 20개 교단 정도가 우리 장로교파(長老敎派)가 분열을 반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보다 개인의 감투욕에 노예가 된 소수 지도자들의 죄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장로교의 주류 5개 교단이 협의회를 구성한지도 벌써 10년 세월이 흘러갔으며, 또 우리 교단과 통합(統合)측은 합동하기로 결의하고, 각각 연구위원회까지 만들어 놓고도, 해마다 형식적인 보고에 그칠 뿐, 아무런 진도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산제일 교회와, 도원동 교회가 ‘하나’로 합동하기로 작정해 놓고도, 교단 간의 ‘하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재작년(1989.6.13.)에 각 교단 중진들이 모여 한국 그리스도교 총연합회 현판식을 가졌는데, ‘하나의 교회’를 향한 세계교회의 흐름에 호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세계교회의 추세(趨勢)를 보나, 한국교회 100주년을 전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나, 더욱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진전과정은 물론, 제2의 선민(選民)으로 수행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생각할 때, 한국교회 전체가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서 명실공히 ‘하나의 한국교회’로, 다시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줄 압니다.
오죽 했으면 사람의 탈을 쓴 악마 앞잡이를 응징(膺懲)의 도구로 쓰셨겠습니까? 그때 부산 앞, 깊은 바다 속에 몽땅 수장(水葬)해 버려도 할 말이 없는 민족인데도, 인류구원의 최종주자로 땅 끝까지 뛰게 하시려고 수장(水葬)을 일단 유보하신 은총을 안다면, ‘하나가 되라’시는 지상명령을 따르는데 무엇이 장애가 되겠으며, 주저(躊躇)할 이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장에 간판 이름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당장에 어렵다면, 그날이 올 때까지 한 부모 밑의 한 형제들처럼, 사랑의 공동체답게 친밀한 유대(紐帶)관계를 원활하게 잘 유지발전 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첫째는 우리 주님의 소원이기 때문이오,
둘째는 6.25때 거듭거듭 맹세(盟誓)를 했기 때문이오,
셋째는 제2의 6.25를 막는 길이기 때문이오,
넷째는 서로 믿지 못해서 헐뜯기만 하는 현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화해와 통합과 사랑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함이오,
다섯째로 모국교회(母國敎會)를 닮아서 분쟁과 분열을 일삼는 해외(海外) 교포교회(僑胞敎會)들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요,
여섯째로 이미 세계선교의 불길이 활활 타고 있는 한국교회가 지구촌 방방곡곡에 자녀교회를 보다 효과적으로 대량생산하기 위함이오,
일곱째는 미구(未久)에 반세기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북한을 성령의 뜨거운 불길로 녹여서, 사랑의 복음을 꽃피우고 열매 맺기 위해서 서둘러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鐵)의 장막(帳幕)이나 죽(竹)의 장막(帳幕)을 무너뜨리신 하나님께서 38장벽(障壁)을 밀어붙이시고, 동토(凍土)의 북한 땅을 십자가의 δυναμίς로 갈아엎으신 후에 ’αγαπη 사랑의 꽃을 피우실 날이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동구(東歐)와 중동(中東)지역의 독재자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 사담후세인의 실세를 꺾으신 하나님께서 김일성장군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자와 반세기 동안 쌓은 죄악을 엄히 응징(膺懲)하시고, 종지부를 찍으실 때가 된 줄 압니다.
1956년 자유를 갈구하는 부다페스트 시민들로부터 시작된 헝가리 혁명에, 소련은 스탈린주의에 반대하여 소련의 침공을 저항했던 너지 임레(Imre Nagy)를 총리로 세우고, 무자비한 소련군이 자신들이 세운 총리 너지 임레(Imre Nagy)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죽여, 죽은 개처럼 버려졌던 헝가리의 전 총리 너지가 처참한 죽임을 당한지 31년이 지난, 재작년(1989년 6월 16일)에 반혁명분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민중봉기(民衆蜂起)의 위대한 영웅으로 재평가되어, 무려 다섯 시간 동안 부다페스트시 영웅광장에서 전 국민의 추모 속에 역사상 최대장례식을 거행(擧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으로 통일이 되는 날,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 한 복판에서, 민족의 큰 별 조만식(曺晩植)장로를 필두로 공산주의의 이단자에게 억울(抑鬱)한 죽음을 강요당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애국지사들의 한을 풀어주는 거대한 장례식을 전 국민의 추모 속에 거행(擧行)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흡혈인간이 북한 땅에 꾸며놓은 사상궁전(砂上宮殿)도 그 종말을 예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소련의 최대연방인 러시아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7월 10일 취임식과 동시에 대통령 명령 제1호로 러시아공화국 영토 안에서는 KGB를 포함한 모든 공산당 활동의 금지령을 내릴 것이라는 믿을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국교회와 함께 8.15의 감격과 6.25의 심판의 쓴 잔을 고스란히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 6.25 41주년을 즈음해서 앞에서 열거한 많은 과제들을 앞에 놓고, 민족(民族)을 대표한 제사장(祭司長)의 자격으로 한 목소리로 결사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응답을 받아내야겠습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이 일만은 해낼 수 있는 한국교회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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