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동과 “그리스도의 옷”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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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동과 “그리스도의 옷” 신비주의
송두용과 마찬가지로 류석동은 조선 무교회주의의 운동을 적극저으로 보급하던 무교회주의자이다. [성서주선]에 발표된 20편 가까운 그의 글 들은 조선 무교회주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에 매우 우호적인 영향을 끼쳤단. 그리고 그 자신은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을 비록한 기타 여러 무교회주의 동지들과 같이 무교회주의에 충성스럽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송두용식의 급진적인 무교회주의를 지양하고, 매우 온건한 신앙 주의를 표방하였으며, 몇군데의 무교회주의적 표현을 제외하면 그를 교 회주의자라고 불러도 별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신앙적이었 고, 성서적이었다. 그것은 그만이 무교회주의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영 생의 체험을 한 것이다. 그는 확실히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이며, 하나님 을 체험한 신앙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교회나, 성서나, 성례 등을 함부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할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적인 떨림 (nouminose)을 늘 갖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신앙체험을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다. 5월20일은 나에게 특별한 생각과 느낌을 준다. 이 날은 내가 육에서 죽고 영에 들어온 날이다. 과거 몇십년 동안의 자아의 생활에서 버서나 하나님 의 생활로 들어오게 된 날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게 된 날이다. 물론 나는 이 날에 세례를 받은 것이 안이고 또 벗들 앞에서 이상한 힘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홀로 방에 앉아 자기의 죄악에 이때까지 없는 고민을 깨달아 어찔할 줄을 몰라 보통 때와 같이 기도를 하다가 성서를 읽고 성서를 읽다가는 기도를 하고 있을 때 과연 꿈에도 생각지 아니한 일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고린도전서 제 1장 30절 후반의 한말 '예수는 하나님께서 세우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속죄함이 되셨으니...'가 번개같이 마음 속에 지내가며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뚜렷이 뵈였다....나의 가슴은 터지는듯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쏘다지며 말할 수없는 기쁨이 한없이 생기었다. 이 기쁨 이 생긴 다음 순간에는 이몸, 이 마음을 에수 그리스도에게 받히자는 각 오가 무럭무럭 일어나며 나를 당신 마음대로 써줍소서 하는 기도가 솟아나 왔다. 이때 나의 분열된 의지, 이지,감정은 통일되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이 한 뭉치가 되여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였다.
류석동은 전투적 언어로 교회주의를 공격하는 김교신, 함석헌,송두용 등 과 너무 대조적인 무교회주의자이다. 그는 김교신처럼 유일의 선생을 가진 자가 아니므로 선생으로부터 배움을 받은 자가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를 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는 살았고 지금 또한 살고있다." "나는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비로소 자유 스럽게 되고 충족함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성 서를 읽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외쳤다. "성서만이 생명의 양 식이다." "우리는 성서를 읽지 아니하면 살 수가 없다." "성서를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라. 천상천하에 이 책 밖에 생명을 전하여 주는 것이 없느니 라."고. 그의 중심 개념은 "무교회"가 아니고 "신앙"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편리하게 신앙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신앙주 의의 출발점은 신앙의 유형이나 현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고, 삶에서 역동 하는 신앙 자체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를 원했다. 이러한 소원이 그를 더욱 신앙주의로 이끌어 갔으 며, 그가 신앙주의에 더욱 깊이 몰입하면 할수록 그는 공리주의에 빠져든 신앙 절대주의를 부정하면서 그리스도 신비주의에 접근해가고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 그의 의와 성의 옷을 입고 하나 님 아버지 앞으로 나가겠나이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달하였나이다. 그의 "예수 그리스도의 옷" 사상은 신앙의 극치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천상천하에 이 옷밖에 우리가 입고서 하나님 앞으로 나갈 옷이 없나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의 표현으로서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히 본 류석동의 "그리스도의 옷" 이란 곧 그리스도와 합일의 경지에서 가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의 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이신 득구의 신앙사상이 그 이면에 깊이 깔려 있다. 그것은 신앙이며, 영생에 의 길이었다. 그는 다음의 말을 통해서 신앙을 규정하고 있다. 신앙이란 비애의 골짝에서 모순의 그물 속에서 일어나는 조화의 음악이다. 투쟁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노래이다. 불완전한 우주에서 들여오는 해조의 음률이고 불비한 인 간의 말 속에서 삼겨나는 성서의 통일이고 약산 인간의 육 속에서 일어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류석동의 신앙은 무엇에 대한 신앙인가를 그의 진술을 통해서 직접 찾아 보자, 그는 "십자가는 나의 신앙의 처음이고 끝이다"고 분명히 진술했다. 그의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인 십자가는 자기 실존의 전부였다. 그의 십자가 신앙은 "그리스도의 옷"사상이나 성서주의와 더 불어 그의 신앙주의를 새롭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는 인간의 실존이 십자가의 2중성, 즉 알파포인트(alpha-piont)와 오메가 포인트(omega-point) 사이에서 존재하는 양태임을 보여주고 있 다. 십자가의 알파점은 인간의 실존의 원초성이며, 십자가의 오메가점은 인간의 실존의 초극성을 의미한다. 다시말해서,류석동에게서 신앙의 처 음과 끝인 십자가는 신앙하는 인간 실조의 전체성이며, 통일, 실존 자 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류석동은 교회무용론은 역설하는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무교회 주의는 신앙의 형식화나 공리주의적 신앙절대주의를 부정하고, 철저히 성서주의적이며, 그리스도와 합일의 체험에서 표출된 그리스도 신비주의 의 한 양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의 신앙의 전체였으며, 그리 스도와의 접합, 즉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경지를 항상 최상의 희열로 흠모했다. 그는 기성 교회나 제도를 적대하며 비판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교리나 신조의 예민한 문제들을 일정한 표준없이 난 도질하거나 비판하는 만용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무교회주의 라기 보다는 십자가 신앙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마땅할 것 같다.
그가 조선 무교회주의 동지들과의 사상교류나 [성서조선]지에 논단 발표 를 1934년 3월 이후로 거의 단절해 버렸던 점은 그의 기독교 이해와 신 앙이 이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한 때 단테에 심취했었고, "한 때는 밀턴에 마음을 빼앗긴 때가 있었고 또 한 때는 사옹(세익스피어를 한자음 표기로 줄여서 일컫는 말 )에 몰두할 때가 있었고 또 한 때는 희랍철학에도 경도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의 오메가 포인트는 성서였다. 그는 성서를 "생명의 양 식"이며, "영원한 생명을 길러주는 살과 피"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문학과 철학에서 성서로 전향한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신앙은 성서주 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붙여질 성서주의란 미국의 보수 주의적 근본주의의 성서주의와는 크게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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