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기독교 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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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기독교 장막성전
한국기독교계 이단사상 가장 나이어린 교주를 꼽는다면 바로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의 유재열 교주를 들수 있을 것이다.그는 17세의 ‘어린 종’으로 등극하여 현재 장년이 되었다.
한때 말세 심판의 피난처로 알려졌더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천계산 저수지 윗 동리는 제2의 신앙촌이라고 불리울만큼 장막성전 신도들로 집단 취락을 형성했고 지가(地價)를 올려 놓았을 정도였다.
1960년 중반기 용산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주일아침이면 먼지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과천행 시외버스는 장막성전 신도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일곱천사, 25장로, 48집사, 72문도 등 각급 조직을 두고ㅗ 수천명의 교인들을 이끌던 유재열 교주의 장망성전의 전무를 살펴본다.
1. 연 혁
(1) 교조와 교주의 약력
(2) 교단 창립의 배경과 그 경위
1964년 서울 영등포구 상도동 사자암이라는 절 아래서 김종규가 이끄는 일단의 신비주의 집단인 호생기도원이 있었다.
신도들로부터 ‘주님’ 또는 ‘아버님’으로 불리우는 교주 김종규의 집단에 후일 장막성전의 교조와 교주가 된 유인구, 유재열 부자가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김씨는 말세비밀교리를 강조하며 많은 신도들을 이끌고 있었으며 여신도들과의 추문을 낳기되 했다.그는 신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고 방언, 계시의 은사를 강조했다.이에 따라 유재열 일가중 가장 먼저 믿기 시작한 유의 모친 신종순은 열성신도가 되어 방언의 은사 특히 중국어 방언을 했다고 한다.유재열은 당시 성남고 기계체조 선수로서 일본 원정을 하기로 되었던 바 그의 어머니와 같이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일본어 공부를 하지도 않고 쉽사리 익힐 것으로 생각되어 한 가닥의 희망과 호기심으로 호생기도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1965년 1월 어느날 유재열이 친구 몇 명과 함께 기도원을 행해 가는 도중 대방동에서 신림동 중간에 위치한 다리를 건너는 길로 가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두 무릎을 꿇자 자기 앞에 어둠 속에서 예수의 환상이 나타났다고 한다.예수의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일곱개의 별이 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어린양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이때 유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더듬거리면서 외치자 동행한 친구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반문하면서 어리둥절 했다.
그러자 또 유는 “흰 강아지를 사람이 안았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 나기를 “사랑하는 아들아 내 아들아..... ... 내가 네게 큰일을 맠기노라 했다”고 한다. 그 순간이 약 40분간 소요됐다고 하며 환상에서 깨어 났을 때는 땀이 온 몸에 물 흐르듯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유는 열심히 호생기도원을 다녔다
그때 학교를 중퇴하라는 계시에 따라 학교를 그만 두고 기도새로할에만 전념하여 방언, 강필(降筆), 통변, 계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며 한번은 만년ㄹ필을 입에 뭄ㄴ 두마리의 비둘기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중국어 헬라어 등의 강필을 자유자재로 받을수 있었다고 한다. ( 강필이란 신의 뜻과 지시에 따라 손이 움직여서 글씨를 받아 쓰는 것이다.이때 글씨는 자신도 모르는 각구어로 나오기도 한다.)
호생기도원 김종규가 상도동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저수지 윗 골짜기에 자리를 옮기자 유재열 일가는 다시 그곳까지 따라갔다.
한편 과천 삼거리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유인구 교조는 자기에게 환자가 찾아오면 병을 고칠 생각보다는 그 환자의 죄상만 환상으로 보였고 간판을 떼라는 계시(?)에 의해 병원을 65년 11월 경에는 아주 거둬 치워버렸다.
김종규의 제자인 유재열은 당시 만 16세의 성숙한 소년으로써 하루는 밤에 기도원의 경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앞에 새싸만 양장차림의 날씬한 여인이 핸드백을 들고 나타나기에 “당신이 누구냐?”고 소리치니까 아무 소리도 없이 김종규의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이에 너무도 이상하게 여긴 유재열 소년은 즉시 뒤따라 가서 갑자기 문을 열어 제키고 김종규가 두 처녀 신도를 양편에 누이고ㅗ 잠을 자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때부터 김종규의 여신도와의 추잡한 관계를 알고 실망했으며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여 소문에 소문은 꼬리를 달고 퍼져 나갔다.
김종규는 당시 약 60여명의 여신도들을 간음한 것으로 알려져 결국 유재열을 위시한 김창도 등 20여명은 이탈하기로 결심하고 떨어져 나왔다.
그런데 유재열은 김종규의 제자로 있으면서도 16세의 나이 어린 소년으로써 당시 대방동 소재 어느 꽃집 소녀와 관계를 가져 임신까지 시킨바 있다는 ‘앙팡.테러불’ 이었으며 성에 조숙했었다고 한다.
김종규 집단에서 이탈한 이들은 과천 삼거리 유인구의 집에서 모여 집회를 가졌다.
그러던 중 66년 3월1일 유재열이 운동을 한후 우물가에서 땀을 씻는데 태양빝이 강렬하게 유재열에게 비추이는 것을 27명의 신도 중에서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몸을 씻다말고 방안으로 들어서던 유재열의 뒤에는 태양빛이 따라 들어왔으며 이때 갑자기 쓰러져 버렸다고 한다.
이때 모인 회중은 유재열이 죽은 줄로 알았는데 그의 부친 유인구의 환상에 두루마리를 먹는 광경이 나타났으며 이 사실은 27명의 신도가 다 보았다고 중장하고 있다.
두루마리를 먹은 후 환상중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누운채로 종이 테프 같은 것을 자꾸 입속에서 끄집어 냈다고 한다. 이것이 한 권의 성서가 되었다고 한다.팩을 펼치더니 유재열은 눈물을 흘리고 울었고 또 한장을 넘기더니 이마를 찌프리면서 인상을 썼다.
그것은 심판의 광경을 본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에스겔 2:8 ~ 16, 계 10:9 ~11 을 펼쳐 보았다.
그 다음에 지구덩어리의 모형을 두 손 안에 넣고 돌리더니 이 를 갈면서 힘을 주어 부셔버리니 그 지구 모형에서 피가 주루루 흘렀다고 한다.
이 신비체험을 본 27명의 증인들은 막계기레 들어가 계시 받은 대로 천계산 계곡 속에서 증거장막을 짓고 6개월간 기도생활을 했으니 그때가 1966년 4월4일 이었다.
이것이 장막성전의 공식적인 시작이었다.
1966년 3월14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성탄절을 지키기로 했으며 도연ㄴ 6월1일에 성전 기공을 시작하여 24일에 마텼다.
증거장막에 4월4일에 들어갔다가 약 6개월의 기도를 마치고 9월24일 하산하여 본격적인 전도를 시작했다.
(3) 김종규의 추방
김종규의 추행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이탈한 이들이 장막성전을 건립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호생기도원과 대립하게 되었다.
유재열은 김종규 일파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성경 마태복음 24:15절을 들어 김을 가리켜 ‘멸망의 가증한 것’ 이라고 몰아 세웠다.
1966년 가을 김창도, 백만봉, 유재열, 정청래, 등 일파는 호생기도원의 김종규를 찾아가서 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고 그가 이지역에서 떠나가기를 명령한 바 김은 자신의 죄상이 있으므로 아무런 항거를 못한채 그곳을 떠났으니 때가 1966년 11월24일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데 일파를 거느리고 짐을 싸가지고 충북 증원군 산척면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이를 본 장막성전 유재열 일파는 성서듸 예언대로(학개서)되었다고 기뻐했다.
결국 여신도와의 추행으로 소문난 호생기도원 교주 김종규는 자신이 길러낸 제자들에게 쫓겨나게 되었고 장막성전은 호생기도원으로 말미암아 창설된 셈이며 장막성전의 모테는 호생기도원이라는 아이러니컬한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에 장성할대로 장성한 유재열은 아버지와 맞서 언쟁을 할 때도 있었고 이때는 할머니가 중간에서 말렸는데 한번은 말리다가 유재열에게 밀려서 마루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원장으로 불리우는 유인구 교조를 지지하는 파와 그의 아들 유재열 교조를 지지하는 파로 나우여서 결국 1967년 6월경 유인구 교조는 용산구 산첝동의 모회사 사장인 장로가 마련해준 집에서 약 1년간 집회를 했다. 이때 유인구는 저의 정신이상자가 되어 어두운 것을 좋아했으며 형광등을 켜면 형광등을 깨버리기 일수 였다고 한다.
그런데 부친이 이탈한데 대해서 유재열 교주는 이렇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의 계시와 아버지의 계시가 전에는 같았으니 그후 계시가 같지 않은 것을 보면
사탄의 계시를 아버지가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4) 교단의 발전과 내분
유재열교주의 부친 유인구 교조는 여전히 아들에게는 물론 7천사들이라고 하는 7명의 간부들에게도 엄격하였다.
유재ㄹ은 시내 기도처에 돌아다니면서 가정집회를 인도하고 들어오면서 꼭 통닭을 사서 들고 들어와 그의 부친 유인구에게 공양했다. 그러나 어쩌다가 안 사오는 날에는 야단을 치고 매까지 때린 적도 있다는 것이다.
유인구 교조는 7목자 8군왕을 해석하기를 7목자는 7천사이며(일곱천사란 장막성전 창설 7인을 가르킨다.) 8군왕은 7천사에다가 모세장로까지 합한 숫자라고 주장했다.(교주의 외삼촌 신종환을 모세장로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자간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자 장로들을 중심으로한 아버지파와 ‘어린종’파를 중심으로하는 아들파로 아누이게 되었다.
유인구는 두루마리를 먹은 것이 어린종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후 약 2년이 지나자 그의 부친 유인구는 다시 장막성전에 들어왔으나 계시나 환상도 보지 않고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는데 이때부터 유재열 교주는 자기의 부친과 자신이 성서에 기록된 두 증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67ㄴ녀 2월경북 청도 출신 이만희 씨는 장막성전에 들어가 재산을 다 털리고 사기를 당했다고 하면서 이탈하였으며 71년 9월7일에는 이만희씨에 의해 40여개 항목으로 고소를 당하고 유교주와 김창도(미카엘천사)는법정에 서기까지 했다.
이후 강화도 출신 이용길은 일곱 천사중의 하나인 미카엘 천사 김창도의 ‘종말이 가까왔으니 군대를 피하라’는 말을 듣고 훈련소에서 탈영하여 장막성전에 숨어 있다가 70년 12월에 자수하기도 했다.
또 평화시장의 장모씨는 700만원의 고액을 들여 교단의 발전을 꾀했으나 교주를 비롯한 간부들의 비행을 보고 그대로 탈퇴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역사하는 줄알았떠니 나중에 보니까 틀렸습니다. 내가 신평화시장 4층헤 서울집회소를 내고 어린종(교주)를 데려닥 집회를 하면서 숙소를 우리 집에 하겠다고 했더니 그건 내 마음대로 하겠으니 그리알라고 하더군요, 그래 돈 10만원을 주었더니 세종호텔 309호실에 자리 잡았어요. 무슨 일이있어 한번을 갔더니 방안에 양주병이며 양담배가 있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이모라고 하는 김모 여인이 같이 지내고 있고..... 그래서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번은 한국일보 뒷골목에 있는 고급 요정에 가자고 해서 갔더니 아주 단골이더군요. 교주와 김창도가 갔었지요, 여자들을 무릎위에 앉히고 술을 퍼 마시는데 술 실력이 굉장해요. 어디 그 뿐인가요. 경찰에서 조사를 했는데 세검정 만하장 호텔 단골은 김창도(미카엘천사)인데 숙박부를 조사해 보니 수많은 여인들을 데리고 와서 자고ㅗ 갔어요. 그래서 서울 집회소구 뭐구 다 때려 치우고 나와버렸어요”
70년 4월에는 장막성전의 실력자였던 예비역 대령 신모씨가 탈퇴를 했고 이어 7천사 중 하나인 백만봉(솔로몬)은 교주와의 삼각관계로 탈퇴했는데 그 내막은 백씨의 애인 선우영애(가명;서울)양을 백씨가 없는 사이에 교주가 범했다는 것이다.
또 7천사중 하나인 신광일(여호수아)도 신앙상 동조할 수 없다고 하여 70년 9월에 이탈해 버렸고 장막성전의 실권자이며 교주의 외삼촌인 제사장 모세장로(신종환)도 이탈해 버렸다.
이쯤되자 내부는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많은 신도들이 이탈했으며 더구나 69년 11월말세심판설이 공수표가 되자 이에 의혹을 품은 많은 신도들이 장막성전을 떠났다.
이렇게 되자 이탈하려던 신도 심재권씨는 미카엘 김창도에게 맞아 고막이 파열되었고 김옥선은 신경장애를 일으켰고 이영길을 안면에 상처를 입었다.
이때 김창도는 때리면서 “모세도 애굽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폭행을 합리화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장막성전이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것은 전도부장이었던 송모전도사의 이탈이었다.
70년 7월 송전도사의 이탈은 교주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를 따라 많은 신도들이 이탈했다.
1966년 3월1일 부터 1천2백60일이 지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되며 이 환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천의 장막성전으로 오라고 하였는데 그 마지막 때가 1969년 11월1일이였으니 그때가 전성기 였고 이후 신도들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내분은 계속고 있으며 72년 5월 ㅎ나 익명의 신도가 장막성전 교주와 간부들의 비행을 열거하여 내무부장관에게 진정서를 제출하여 경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수사를 담당한 한 수사관은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심증은 가나 구체적인 확증이 없어 애로점이 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범법을 들어 고발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 교리 및 주장.
(1) 장막성전의 강령
1)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옳바른 신앙을 갖자 (롬 12:1~2)
2)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도다.(롬 13:11)
(2) 주장
1) 우리는 오직 진리의 말씀을 원하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만을 전한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이고 곧 신령이시다. 또 말ㅆ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요한 14:6). 말씀은 지팡이요, 생수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능력이요, 생명이 되신다.(요 1:14)
또 말씀은 칼이다 (히 4:12)
2) ........ 를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을 그대로 옮겨 줄 뿐이다. (......은 복사내용이 좋지않아서 잘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3) 예수께서는 비사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오늘날 말세지말을 당해서는 신령한 것을 밝히 보여 주심으로 그대로 일러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므로 (벧후1:21) 이것을 마음대로 풀거나 억지로 풀 것이 아니고 오직 짝을 맞추어서 풀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책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사 34:16)
4) 마지막 때에 구원받을 성도에게 때를 따라(마 24:45) 나눠줄 말씀은 영계설, 예언설, 역사설로 군분하며 이사야서 이후의 예언서를 주로 상고한다.
5)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심령에게 주신 구원의 능력으로 받아 들일 것이며 그 이해도 나의 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사외 국가 인류에게로 뻗어 나아가는 것이다.
(3) 천사관
장막성전에는 다른 신흥종교 단체와는 특이하게 일곱천사가 있다.
그런데 이 일곱천사가 한국의 과천 장막성전에서 있어야 되는 이유와 근거를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경을 인용하고 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빝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대를 띄고 ....”(계 15: 5~9)
① 마지막 날에는 구원은 한 나라만 택하여 이룬다(겔 3:1~5)
② 그곳은 해 돋는 곳 동방에 있는 나라에서 이루어진다.(사 24:15, 59:19, 2:5, 41:25)
③ 물이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는 곳이다.-한국 - (슥 14:8)
--> 한국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가르킨다고 함
④ 그곳은 동서로 갈라진 산이 있는 곳이다. -청계산- (슥14:4~5)
⑤ 언약궤가 있는 곳이다. -막계리 저수지- (사 22:11)
⑥ 언약궤가 있는 곳이다. -장막성전- (계 11:19)
⑦ 일곱 금촛대요 일곱 별인 일곱 종이 있는 곳 -장막성전의 7천사- (계 1:20)
⑧ 여기에 어린양이 나타났다. -교주 어린종 유재열- (슥 2:8, 사 11:1~10)
⑨ 7천사의 어린종은 배꼽줄을 자르지 않고 버리운자 밑에서 났다. -김종규 교주 아래서 났다는 뜻 - (겔 16:4~5)
⑩ 어린종은 만국을 다스릴 칠장권세를 받을 자이다. -교주 유재역- (계 12:5)
또한 장막성전의 7천사는 마태 13:39~42절에 기록된 바 추수 때 즉 세상의 끝날 때에는 인자가 파수군 즉 천사들을 보내어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신도들을 미혹케 하고 스스로 선지자라고 하며 기사이적을 행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한을 행한 불법의 무리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일곱천사는 구원받을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아 장막성전으로 끌어 들인다고 한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천사들을 눈에 볼 수 없는 영체 영물 해석하고 있는데 이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성경적 근거로 창 19:1~2, 계21:7, 히 13:1 을 들고 있다.
성경은 신구약을 통해서 일곱 천사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의 구절을 제시한다.
① 슥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② 슥 4:2 “....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③ 계 5:6, 4:5 “일곱 등불 일곱 눈을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 이며 이 일곱영으로써 일곱천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받아 가지고 땅위에 일곱 재앙을 내리는 사명을 띄고 왔다고 한다.
④ 일곱 천사중의 하나인 교주 어린종은 이사야서 11:10에 있는바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한 싹으로써 만인의 기호로 설것이며 열방과 만민이 그에게로 복귀하며 그 가운데 있게 될 천사이며 그는 순이라 이름하는 자이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자이며 택함을 입은 천사이다.(슥 6:12)
또 어린 종은 예루살렘성 곧 교회 가운데 다니면서 불의와 불법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인치는 사명을 맡았으며(겔 9:3) 인 맞은 자만이 14만4천의 반열에 들어와 구원 받을수 있다.(계14:1)
또 그는 천사의 손에서 작은 택을 갖다 먹은 자로써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할 사명을 맡았다.(계10:10, 겔 3:1~3)고 한다.
(4) 말 세 관
세상 끈날에는 도처에 난리의 소문을 듣겠고 전쟁 기근 지진 등 재난이 있겠고 그렇게 되면 자칭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세상 사람들을 미혹케 하여(마 24:5) 모든 사람들은 이기주의자가 되고 교회는 사랑이 식어 냉냉하게 된다. 한편 복음이 이 지상 땅끝까지 다 전파되어 복음을 듣는 자가 많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말세에 결정적인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칭하고 입술로는 거룩한 말을 하면서도 행위는 음란한데 그것이 3년반 동안 계속 되리라.(단 12:11)
겔 16: 4~5에 기록된 바 그 멸망의 가증한 것-김종규를 가르킴-은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농부라 할것이며 무식자라 하고 나는 날때에 배꼽줄을 자르지 않았고 들에 버린 바 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로 호생기도원 교주 김종규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고 하며 이렇게 악한 자가 나타난 것은 사탄의 역사로써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의 속임수로 멸망할 자리에 이르러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살후 1:9,10), 그러므로 영이라고 모두 믿을 것이 아니며 그것이 진리의 영인가 미혹의 영인가(요 1:4~6)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기성교회의 목사는 자기의 의를 앞 세우고 믿음이 교만해져서 자멸할 수밖에 없고 이를 따르는 양떼들은 그들의 거짓된 인도로 멸망하게 된다.(요 16:11)
지금까지 몇가지 징조에 비추어 볼 때 말세의 끝인데 언제 주가 심판장으로 강림하실지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마24:36, 살전5:1~3)
주께서 자기가 재림하시기 전에 추수꾼으로써 천사들을 먼저 보내겠다고 약속했다.(마 13:39~49)
또 말세에 아마겟돈 전쟁의 환란을 피하기 위해 이미 청계산 계곡에 큰 밀실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사야 2:18~22), 그 암혈과 토굴속으로 장막성전 신도가 다 들어간 뒤에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그후 다시 나와서 신천지를 이루고 신도들은 왕들이 되어 각 고을을 다스린다고 한다.
(5) 장막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교주 유재열은 <우리 성전의 현황>이라는 책에 아래와 같이 썼다.
“인간의 지능과 노력으로 오늘날 과학의 힘은 신비에 쌓여 있는 수천년전의 잘의 베일을 벗겨 신에 대한 일반적 도전을 성공리에 마친것 같다. 그러나 이 두렵기까지 한 과학의 능력을 지어내는 인간은 과연 어느 분의 창조인가! 즉 우주의 그 어느것 하나라도 지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고 말하겠다.
시공간을초월한 존재를 말한 것이다.
즉 質과 量이 무한 변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지병을 만드는 토기장이로서의 위대함을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흙을 떠나서는 이룰 수 없다.이것이 곧 절대자(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는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렘 31:35)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고 사람안의 심령을 지으신자’ 수(12:1)를 떠나서는 모략과 경영이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있다면 흙을 떠난 오지병이며 뿌리 없는 나무로다.
이에 장막성전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흙이며 뿌리로다.
더 알기를 원한다면 흙이 뿌리에 덮히며 절대주가 물을 뿌리니 부패되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찌.. 구원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곧 인간들이 원하는 합목적인 우주관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6) 두 전도사가 받은 계시와 주장
(가) 김병억 전도사의 경우
이북 고향에서부터 16세 때 기독교 신자가 외었는데 왜정시 창씨 개명을 하지않아 요시탈인물이 되었으며 해방후 월남하여 사업에 실패하고 유도 사범노릇도 했다고 한다.
그가 남산제일교회의 전도부장으로 있을때 오관석 목사와 함께 1966년 11월24일 25일 양일간 충남 금산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24일 오전 4시 추수(심판)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
25일 새벽 또 계시로써 관천의 장막성전에 종들이 역사하는 토가집 3개 있는 집을 상징적으로 지시 받았다. 그후 67년 2월19일 오전 5시 30분 삼각산에서 기도하는데 지금 과천으로 가지않으면 죽는다는 계시를 받고 과천 장막성전으로 갔다.거기서 어린종(교주)이 계시록 12:1 이하를 풀이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는 ‘아멘장로’로 통할만큼 매사에 힘차게 “아멘”을 연발하는 습관이 있다.어린종은 보혜사의 영으로 역사한다. 말세에는 참 목자와 거짓목자를 갈라놓는데 이탈자들에 대해 성경을 인용하여 합리적화 시키고 있다.
송전도사의 이탈(1970년 7월)에 대해 김전도사는 69년 여름에 쫓겨났다고 하면서 에스겔 8:16절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등으로 향하여 동방태양에 경배하더라..” 고 하면서 송전도사와 같이 나간 24인의 신도들을 말한 것이라고 하는데 비하여 그 구절이야 말로 호생기도원에서 떨어져 나온 유재열 교주의 일파 27명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이탈파 송전도사 측은 반박하고 있다.
일곱 천사중 솔로몬(본명 백만봉)과 여호수아(본명 신광일)가 이탈하고 5명 남은 것은 바로 계2:10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라고 이미 예언해 놓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일곱 별의 비밀 (계1:20)
* 일곱 목자 즉 일곱 천사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죽정이를 골라낸다 (마 3:31) - 그 짝은 슥 3:9 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심판을 하루동안에 하리라” 라고 주장하고 있다.
*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마 13:39)
* 천사들을 보낸다. (마 24:31)
* 과천 장막성전이 청계산에 세워진 이유 (미가 4:1) -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 갈 것이다.”
* 여호수아, 모세, 솔로몬 3인은 마태복음 13:39-41에 기록된 천사들이다.
* 숫자 (14만 4천)와 심판은 극비에 속한다.
* 박태선전도관 신도들이 관천으로 대량 이주에 관한 구절 (이사야 11:12 이하)
* 싻은 어린종이며 가지는 동일한 사명자이다.
(나) 이초주 전도사의 경우
당시(인터뷰 시) 23세 보충역으로써 서울공고를 졸업하고 회사 경리사원 노릇도 하면서 입시공부를 하던중 67년 11월29일 장막성전에 들어갔다.원래 병약한 그는 산부인과만 빼놓고는 다 신세를 졌을정도로 병고에 늘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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