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JMS)-1
본문
이단 사이비 애천교 정명석
제 1 장 역사 및 교세
1. 교주의 약력 및 활동사항
교주 정명석은 1945년 2월 17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부친 정팔성 씨의 4남 3녀 중 세쩨 아들로 태어나 진산 국민학교를 나온 것이 그의학력의 전부이다. 정명석 씨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신비적인 현상에 관심이 커 당시 유년 주일 학교를 다니면서도 두 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어 춘향이 신을 부르는 장난을 종종 했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국민학교 졸업과 동시에 중학교 진학을포기하고 용문산 기도원에서 20여 년동안 속세를 등지고 주로 산에서 생활했는데 그는 이런 기도원 생활을 통해 특별한 은사와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77년 대둔산에서 인류를 구원하라는 계시를 받고 1978년 70일 간금식 했다고 한다. 이로써 정명석은 통일교의 문선명이 전역사 1954년에서78년까지의 재림주이고 자신은 1978년부터 재림주의 사명을 받은 자로서1999년 7월 14일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한다고 한다. 그의 손을 보면 손톱이엉망인데 그것은 추운 겨울에도 기도하다가 손이 얼어서 동상이 걸렸다고말하고 있다. 그후 산에서 내려와 그가 간 곳이 고향의 통일교이다. 그곳에서 그는 국제성공연합회 강사로 2년간 활동하다가 1980년부터 통일교에서나와 몇 사람의 추종자들(일명 신촌 5형제)과 함께 신촌에서 선교회를 만들어서 출발하게 된다. 주로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으며 교주 정명석의 영문 이름의 첫자를 따서 JMS써클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MS써클 즉, Morning Star(새벽별)모임이라고 즐겨 부른다. 낙성대 교회에 가보면 예수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사진 아래편에 JMS라고 써놓고 있다.즉, JMS라는 것은 Jesus Christ의 J와 Messia의 M자, Savior(구세주)의 S자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정명석 자신이 재림한 구세주라는 것이다. 또 JMS를 Jesus Morning Star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새벽별이라고 하나 실은 교주를 의미한다. 그는 과거 기도원 생활 중 성경을 1300독하여 훤히 통달했으며 한때 주일학교 교사도 했고 군에 있을때 월남에 파병되어 참전했고 제대후 신학교를 졸업하고(자칭) 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은 목사가아닌 선생이라고 말하고 애천교회에서 패도를 만들어 가르치고 있는 각종도표들은 산에서 기도중 특별히 받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2. 주요 3개 도시 활동사항과 교세
서울
신촌 5형제(정명석, 김기희, 안구현, 서인순, 김형만)에 의해 신촌에서 출발한 이들은 성북구 삼선동 중구 을지로 4가로 전전하다가 1982년 5월 강 남구 삼성동 130-1의 빌딩 5층을 빌어 대한 예수교 장로회 애천교회라는 간 판을 걸고 있다고 1983년 6월 다시 교회를 종로구 구기동 구기터널 입구로 옮겨 예수교 대한 감리회 애천교회로 개칭헀다. 여기서 박용식이라는 자칭 예감 감독이라는 자에게서 돈을 주고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로 행세하게 된 다. 그들은 또한 중구 을지로 4가 명보극장 건너편 골목의 출판사 태맨 건 물에 세들어 있는 등 몇 차례나 검회소를 옮겨 다니다 그후 강남구 잠원동 으로 옮겨 예감 낙성대 교회라고 하게 되어 결국 발족 9년만에 5번이나 교 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대학가에는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지방, 기타로 나누어 포교활동 중이나 처음에는 서울 시내를 4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 역에 책임자겸 강사요원으로 두어 동부는 한양대를 중심으로 서부를 연세대 를 중심으로 남부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북부는 고려대를 중심으로 활동케 했으나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조직을 확대하고 각 대학별로 학생 중에서 캠 퍼스 리더를 일인씩 임명하여 학교 별로 MS써클을 조직 운영토록 조직하고 있는데 수시로 입회되는 신입회원에 대한 교육과 기도회, 말씀 공부, 세미 나, 강연회 등을 자치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고려대에서는 써클룸을 확보 경희대 MS써클은 공식 인정도 받았고 이화여 대는 교회 설립을 위해 기금 마련 장사도 하는 등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하 는 움직임이 많음을 볼 수 있다. 구역 조직도 처음 4개 지역에서 13개 지역 으로 지금은 더욱 더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다.
대구
대구에도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애천 선교회 대구 지부가 혜성교회란 간판 을 달고 대학가에 침투했다. 현재 혜성교회 담임목사는 박연화라는 여인인 데 그녀는 서울에 애천교회 당시에 전도사로 있었음을 조직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녀 자신의 주장으로는 총신대학을 다니다가(총신대 측에서는 부인 한다)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애천을 위해 현재 독신으로 사역하고 있는데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혜성교회는 처음에는 봉덕동 구 효성 여대 뒷편에서 애천교회란 간판을 달고 얼마간 있었는데 다시 장소를 평리 동의 아파트 지역으로 옮겼다가 최근 대구 MBC방송국 뒷편으로 장소를 옮겨 신촌 감리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 요주의 인물로 배재용이라는 영어 대학 원을 졸업한 남자가 있는데 혜성교회의 개척 맴버이고 앞으로 애천교회 계 열의 전도사가 되려고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의 포교활동 역시 서울의 포교활동과 같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청년들 특히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을 전도하고 있다.
부산
서울에서 각 지방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대구와 같은 시기로 보 인다. 처음에는 부산진 삼성 예식장 건물에서 예수교 대한 감리회 초량제일 교회라는 이름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부산에 있는 거의 모 든 대학에 침투하였다. 교세는 날마다 확장되었으나 건물세를 다 내지 못하는 재정적 압박으로 장소를 위해 기도하던 그들은 부산시 동래구 거제1동 (교대에서 군부대 쪽 으로 버스로 한 정거장)에 부산교회라는 이름으로 기존 교회와 같이 활동하 고 있다가 다시 동래구 온천동 1가 189-14번지(온천극장 옆 시장길로 50미 터 가량) 에서 명패도 없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각 대학에는 부산대 새벽별 , 동의대 파토스 , 수산대 해송 , 부 여대 예원 , 부산외대 아르케 라는 명칭으로 써클 등록화 했으나 여러 대 학의 기독 동아리의 강력한 반대로 부딪혀 있는 상태이다. 부산대에서는 새벽별외에 프라비던스 , 신앙과 예술 이라는 이름으로 위장 등록하여 문제시 되기도 했다. 교세는 필자가 듣기로 지금은 대학생들 만 천 명이상으로 장소를 한 곳에서 모이지 못하고 이제는 구역별로 대학가 에 흩어져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상의 주요 3개 도시의 포교활동을 살펴 볼때에 1983년에 박용식목사에 의해 목사 안수를 받은 정명석, 박원휴, 반충환, 안구현, 박연화, 김현숙 등 6명 중에 정명석은 서울에서 그리고 안구현은 애천 선교회 회장으로 박 연화는 대구에서 김현숙은 부산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전국 도시에 분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는 비교신학연구 회, 문학연구회 등 위장 명칭으로 써클활동을 하고 있는데 공통점은 JMS를 상징 마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들은 주요 3개 도시에서 보았듯이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단으로 지목되고난 뒤 교세를 숨기려고 하는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구성원 대부분이 청년, 대학 그리고 중고등부로 볼때에 숫자 는 많으나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예배의식 및 모임
대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아주 활발히 이루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 에서 모임을 간단히 가진 후 주로 교회에서 30개론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데 저녁 늦게까지 실시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사람의 경우는 저녁에 밤늦게 집에 가는 것으로 인해 가출한 사례가 있다. 이런 경우가 잦아 문제가 심각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아침 Q.T.모임, 토요모임 등이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MS모임과 함께 직장모임, 포교소모임 등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직 장모임 역시 저녁 시간은 물론 토요일은 거의 모든 시간을 교리 공부에 투 자하는 열심을 볼 수있다. 예배의식이나 순서는 기존 교회와 다르다는 느씸 은 받을 수 없을 만큼 유사하다. 그러나 말씀의 내용은 역시 정명석 교주를 메시야로 말하는 내용이 많다. 직접적으로 정명석이 메시야라는 언급은 전 혀 볼 수 없고 단지 MS 또는 선생이라는 말로써 한 인물을 메시야화시키는 것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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