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의 여수침투: 지역개발인가, 지상천국 건설인가?
본문
1. 통일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상천국건설
문선명은 “공자, 석가, 예수까지도 나의 부하”(1976.3.15), “본인은 재림주요 구세주”(1992.7.6), “본인과 본인의 아내는 인류의 참부모, 구세주, 재림주, 메시아”(2002.8.24)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해오고 있다. 이는 아래의 《원리강론》 주장을 구체화한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복귀하시어, 복귀된 전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그 나라의 왕이 되셔야 할 것이었다(이사야 9장 6절, 누가복음 1장 31~33절). 그러나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므로, 장차 재림하셔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따라서 그가 재림하시어서도 초림 때의 사명이었던 지상천국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또 왕이 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1)
이와 같은 문선명 자신의 재림주 선언과 위의 《원리강론》 내용을 종합해보면 동방의 나라 한국에 나타난 재림주가 바로 문선명이라는 것이 논리적인 귀결이다.
《원리강론》의 이러한 가르침은 결코 수정된 적이 없다. 통일교의 공식적인 명칭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1954),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1994) 등으로 변경되었고, 그 활동도 셀 수 없이 많은 외각조직들을 통하여 다양화되어 왔지만, 이것은 단지 외형적인 변화일 뿐, ‘문선명이 재림주가 되는 지상천국의 건설’이라는 통일교의 궁극적인 종교적 목적은 결코 변경된 적이 없었다.
2. 지상천국건설을 위한 성지(聖地)의 개발
문선명이 재림주가 되는 지상천국을 건설해 나아가는 과정이 곧 성지(Holy Ground)의 조성이다. 문선명은 1965년의 세계순회강연회를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에 소위 통일교 성지들을 지정하고, 지속적으로 이들의 매입과 개발을 추진해오고 있다. 통일교는 이러한 성지개발의 교리적 근거와 그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히 밝히고 있다.
모든 땅은 하늘아버지(Heavenly Father)께 속해있으며 그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1960년 아버지(Father)의 거룩한 결혼(Holy Marriage 1960년 3월 16일 문선명과 한학자의 결혼) 후에, 하나님이 성지(Holy Ground)들을 통해 땅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그 땅들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성지들을 개발하거나 개발을 지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두 번째 축복은 세 번째 축복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아담도 예수도 지상천국을 개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는 단지 영적왕국만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든 민족과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가 성지가 되도록 기도해야한다.2)
각 나라의 모든 도시에는 그 도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장소에 최소한 한 개의 성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지를 개발 담당하는 사람은 가장 중심이 되는 장소를 택해야 한다. 눈에 띄는 바위나 나무 또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만한 장소가 성지로 적합한 장소다. 이 성지를 택할 때 유념해야할 것은 이곳이 통일교인들을 위한 기도의 장소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지를 택할 때에는 언덕 위나 아름다운 전경을 가지고 있는 곳을 택하여야만 한다.... 성지로 택해진 장소는 최선을 다해 매입해야 하며, 절대로 되팔아서는 안 된다.3)
세계 도처의 미개발지역에서 막대한 자금력과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통일교의 부동산 매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순수한 지역개발이 아닌 문선명이 재림주로 선포되는 지상천국의 건설을 위한 성지조성의 과정인 것이다.
3. 지역개발을 앞세운 성지개발
통일교는 전 세계 곳곳의 성지개발을 통해 축척된 많은 경험들이 있다. 문선명에 의해 선택된 성지는, 일본에 8개, 미국에 55개, 한국에 15개 그리고 기타 국가에 42개 등 모두 120여개이며, 통일교는 이 성지들의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오고 있다. 통일교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들 중 하나는 부산의 범냇골성지이다. 통일교는 이곳을 본성지(本聖地)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문선명이 피난 와서 살면서 통일교의 기초를 놓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1959년부터 미국 포교를 시작한 문선명은 미국의 성지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1976년 6월 1일 미국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리 집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문목사가 왜 미국에 온지 아십니까?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 온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가 선택한 나라가 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 온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지금은 하나님을 배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 나라를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4)
하지만 문선명은 1980년대 초 미국에서의 탈세로 인한 재판과 투옥과정을 거친 후, 그 관심을 남미로 돌리고 있는 듯 하다. 그 중의 하나가 남미대륙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는 브라질 자딤(Jardim)지역에서의 <새희망농장(New Hope Farm)> 건설이다. 동시에 북한 문선명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에는 <정주평화공원>을 그리고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에는 <천주청평수련원>을 건설하고 있다. 통일교가 여수에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4. 성지개발 사례
통일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신흥종교운동들도 그들만의 성지를 개발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오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종교학부(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의 The Center for the Study of Religion)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신흥종교운동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교주(prophet)” “교리(promise)” “계획(plan)” “가능성(possibility)” “장소(place)”의 다섯 가지의 연구영역을 설정한다. 즉, 모든 종교운동의 시작은 교주(prophet)를 필요로 하며, 이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교리(promise)와 이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plan)을 제시하며, 이 종교운동의 성패의 가능성(possibility)은 주변의 사회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이 종교운동은 그들의 교리를 자유롭게 실천할 수 있는 장소(place)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5)
이러한 분석틀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한국신흥종교운동 연구의 선구자인 전북대학교 철학과 교수였던 고(故) 이강오 교수 역시, “구세주의 출현” “종래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교리” “이상세계의 개벽” “사회적 상황” “신도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일정한 근거지로서의 집단신앙체”를 한국 신흥종교단체의 공통점으로 들고 있다.6) 통일교가 자신들의 성지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도 이러한 특징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통일교는 아래와 같은 성지들을 개발해 오고 있다.
4-1. 부산 범냇골 <본성지>
통일교는 부산 범냇골의 성지를 본성지(本聖地)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피난 온 문선명이 살면서 통일교의 기초를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통일회관건물, 통일교가정교회, 범냇골기념관 등과 함께 문선명이 그 당시 살면서 활동했던 장소들을 성역화해 놓았다. 예를 들면, “눈물의 바위”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문선명이 피난지 부산을 내려다보며 눈물로 기도했다는 장소를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범냇골 산 정상에는 태극기와 통일교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고, 세계 각지의 통일교신도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이곳 본성지를 찾아오고 있다.7)
4-2. 브라질 <새희망농장>
통일교는 남미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브라질의 자딤(Jardim)지역에 성지를 조성해 놓았다. 원래는 새희망농장(New Hope Farm)으로 명명되었으나, 현재는 새희망에덴동산(New Hope Eden Garden)으로 불리고 있다. 문선명은 1995년 4월 3일 “새희망농장선언(New Hope Farm Declaration)”에서 다음과 같이 그 설립목적이 종교적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참부모님의 전통을 따라 세상의 모든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상적인 민족의 모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새희망농장은 이를 위한 훈련의 장소입니다.8)
통일교는 부지의 매입을 위해 3천만 달러를 들였다. 1999년 12월 7일자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통일교가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여수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통일교는 부지를 매입하고 정착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에게 무료식사 제공, 지역축제 및 행사 개최, 사회봉사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지상천국의 건설이라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통일교는 이곳에 합동결혼식을 위한 대학교 혹은 축구경기장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여수의 경우처럼, 새희망농장의 건설과 관련하여 지역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한쪽은 이는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고, 다른 한쪽은 통일교의 침투를 우려하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자딤(Jardim) 지역의 경찰서장이었던 Araujo는 “많은 지역주민들은 문선명을 통해 경제발전을 꿈꾸는 기회주의자들입니다. 통일교는 분명히 이 지역에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라고 경고하였다.9)
4-3. <정주평화공원>10)
지난 해 필자는 개성공단을 방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육로를 통해 들어가 개성공단을 견학하고 게다가 개성시내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남북한의 검문소를 지나고, 북한군인들의 입국심사를 받으며, 그리고 개성 땅을 자유롭게 걸으며 느낀 것은 통일이 성큼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남북한이 하나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그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의 통일교 이해’뿐만 아니라 ‘통일교의 북한이해’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북한의 통일교 이해의 변화는 통일교의 적극적인 북한 수뇌부 접촉과 북한으로의 진출로 인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접촉과 진출은 김일성과 문선명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급진전하게 되는데, 문선명은 1987년 5월 15일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란 단체를 결성하고, 1991년 11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만나고 남북교류협회합의서에 서명한 후, 적극적으로 북한에 진출해오고 있다. 이때 김일성은 문선명의 생가를 잘 보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는 통일교의 성지인 정주평화공원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고(故) 탁명환 소장은 다음과 같이 그들의 만남을 평가한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던 역대 군사정권에 편승하여 승공을 주장한 문 교주는 승공교육을 빙자하여 각계각층에 막힘이 없이 접근, 통일교 교리를 선전해왔다. 그 조직으로 국제승공연합은 1백33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고 국내에는 말단행정기구인 리․동 단위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유사시 총동원령을 내릴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접어들어 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남북한관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재빨리 변신하여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란 조직을 결성하여 통일운동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정부보다 앞장서는 것처럼 맹렬하게 활동한 결과가 이번 문 교주의 평양 방문인 것이다.11)
이러한 관계는 그 이후로 점점 깊어지게 되는데, 문선명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당시 세계일보 박보희 회장을 보내 조문을 하게하여 소위 “조문파동”을 일으킨다. 이후 박보희는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일정기간 동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데, 이러한 혐의사실은 박보희가 북한에 보낸 아래와 같은 조문 내용 때문이었다.
40여년 간의 식민지 억압을 끝장내시고 그렇듯 강력하고 기백 있는 국가를 창건하시고 공화국을 이끌어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생각하니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진정 현대역사의 위인은 떠나가셨으나 우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 한 김일성주석의 필생의 노력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수령님의 위업을 굳건히 이어나가리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각하께서는 조국통일을 실현할 운명을 타고나신 분으로 7000만 조선인민의 이 같은 숙망을 실현하실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12)
박보희는 문선명의 지난 80회 생일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는 선물을 전달함으로써 그 밀월관계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객관적인 조건들의 변화 속에서 통일교는 1990년대 이후로 북한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오고 있다. 현재 남북경제협력의 단계를 고려할 때, 이미 통일교의 북한 진출은 그 규모와 내용면에서 남한의 그 어떤 단체들보다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통일교의 경제적 진출과 정치적 협력이 상당히 깊게 진행되어 있다. 통일교의 북한으로의 경제적 진출을 남한 기업들의 개성 등의 제한된 지역에서의 활동과 비교해볼 때, 한국정부와 기업의 진출은 상대적으로 ‘고비용 저효율’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교의 북한진출의 예를 보면,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는 평화자동차총회사 종합공장이 세워져 이탈리아 피아트(Fiat)사 제품의 자동차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통일교 산하기업인 평화자동차사가 70%의 지분을 갖고 북한의 조선연봉총회사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통일교는 또한 남북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던 문민정부 시절에 이미 평양시내 중심에 보통강호텔을 세웠다. 이곳을 김일성이 손수 아홉 차례나 현지 지도를 하였으며 현재 흑자운영 중에 있다. 무엇보다도 문선명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는 정주평화공원이 세워져 이미 전 세계 통일교도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지고 있고, 평양에는 통일교의 평양가정교회가 세워져 있다.
문선명은 통일교의 북한진출과 관련하여, “이미 북한 사람들은 전 국민이 다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소화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사랑의 사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13) 문선명은, 그가 한때 “가인의 후예” “사탄의 세력”이라고 가르치던 김일성과의 만남과 통일교의 적극적인 북한진출에 대해, “문제는 남한 사람이 남한을 사랑하는 이상 북한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또한 북한 사람이 북한을 사랑하는 이상 남한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면 됩니다. 그것밖에는 모색방안, 해결방안이 없습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14)
문선명은 또한, “삼팔선 이북을 넘어가서 이북 5도의 시군을 중심삼고 우리의 기지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하면서, 통일교인들에게, “‘나는 저 소련과 만주 접경의 한 지방에 가서 공산당과 이마를 맞대고 아침저녁 총소리를 들으면서 국경지대의 파수 역할을 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하겠다. 나라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생명을 엇바꾸더라도 그 나라를 사랑하는 충절의 마음은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15)
하지만, 이러한 북한과의 관계변화에도 불구하고, 문선명은 《원리강론》에서 그가 주장했던 것처럼 분단은 “가인의 세력”과 “아벨의 세력”이 만나고, “악의 세력”과 “선의 세력”이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다. 문선명은, “삼팔선을 통일할 뿐만이 아니라 소비에트와 중공을 몰아내자는 거예요. 선생님의 사고방식은 그렇다구요. 내가 김일성이를 때려잡고 북한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세계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해서예요.”라는 그의 오래전 주장을 아직도 변함없이 가르치고 있다.16) 이는 현재의 통일교의 북한진출이 통일교의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이며, ‘포교형식의 변화’이지 결코 ‘교리내용의 변화’가 아닌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통일교는 여수의 위락단지 조성과 관련한 기독교계와의 갈등에서 다소 수동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만, 이미 충분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한국교회의 북한선교나 반(反)통일교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오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전망할 수 있다. 북한에는 문선명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통일교의 세력들이 이미 자리 잡고 한국교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남북 간의 화해와 교류가 진전되는 현 상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문선명을 메시아로 북녘 땅과 세계에 선포하려는 적그리스도 통일교의 세력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뜨거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던 그 땅위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선포하고자하는 한국교회 간의 피할 수 없는 일전(一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임박한 가능성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철저한 영적무장과 지혜로운 대처를 해 나아가야 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사실은 현재 어느 정도 북한진출의 성과를 이룬 통일교가 남한으로의 전면적인 재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4-4. <천주청평수련원>
한학자는 2005년 9월 4일 “메시아이신 참부모님은 영계와 육계를 모두 왕래하실 수 있는 영원한 분이세요. 다음에 참부모님께서 육신을 벗고 영계에 가신다 하더라도 참부모님께서는 지상에 와 계세요. 그렇다면 지상에도 메시아이신 참부모님의 본궁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였다.17)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사리에는 통일교의 성지가 조성되고 있다. 2001년 7월의 기공식 이후 이곳에는 문선명 부부가 사후에 머물게 된다는 대지 12000평 연건평 9200평 위에 지상 4층 지하 2층의 본관과 지상 2층 지하 2층의 별관으로 구성된 천정궁을 비롯하여, 천주청평수련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심신학대학원, 청심유치원, 청심병원, 청소년 수련원인 청아캠프, 실버타운인 청심빌리지, 직원숙사인 청아빌라 등이 들어서 있다. <신동아>에는 다음과 보도하고 있다.
청평성지 시설 중 종교적 색채가 가장 뚜렷한 곳은 천주청평수련원이다. 매 주말 열리는 1박2일 집회를 비롯해 21일, 40일 수련회 등이 수시로 열리는 이곳에는 천성왕림궁전, 정심원, 친화관, 청수탕(목욕탕), 청심탑 등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3층의 천성왕림궁전. 대지 8600평, 연건평이 5700여 평에 이른다. ‘복귀한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이 곳엔 한번에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전과 1600명이 한 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대형식당이 있다. 수련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기다란 원통형의 청심탑(33m) 외부는 문 총재의 일대기를 9단계로 조명한 부조(浮彫)로 치장돼 있다. 첫 장면은 탄생 모습이고, 마지막 장면은 인류의 왕으로 즉위하는 모습니다. 탑 내부에는 ‘천성왕림궁전 건축 헌금자’ 명단이 벽면을 빙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상당수는 한국인 이름이지만 영어권과 일본인 이름도 꽤 눈에 띈다. 헌금자는 합동결혼식 가정과 기성 가정(결혼한 후 입교해 다시 결혼축복을 받은 가정), 독신축복 가정으로 구분돼 있는데, 기업체 및 단체 이름도 표기되어 있다.18)
통일교는 설악면 송산리의 땅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인 청평면 고성리 일대에도 상당한 임야를 가지고 있다. 2006년 5월 29일자 <주간조선>은 “‘통일교 왕국’ 들어선다”라는 제하의 특집기사를 게재하였는데, 이 취재기사를 보면 전 세계 곳곳에서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성지를 개발을 해 나아가는 통일교의 일반적인 전략을 찾아볼 수 있다.
주변이 ‘통일교 왕국’으로 변해가는 데 대해 송산리 주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15년간 살았다는 한 주민은 “다 통일교 땅인데 자기 땅에서 뭘 하든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어버이날에는 통일교가 노인들에게 잔치도 베풀어줬다”고 말했다. 과거 송산리에는 100여가구가 살았지만 통일교가 땅을 매입하면서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 현재는 10가구 정도만 남아있다.... 설악면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2009년 완공될 서울~춘천 고속도로 때문에 이 일대 땅에 외지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평당 30만원을 호가하고 펜션을 지울 수 있는 곳은 50만원까지 가지만 송산리 인근은 대부분 통일교 송유 땅이어서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19)
4-5. 여수와 기타 지역
2005년 2월 7일자 <주간조선>은 “통일교 돈 3조원이 몰려온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통일교가 막대한 외자(外資)를 앞세워 새로운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통일교는 용인 에버랜드 면적의 10배에 이르는 가칭 ‘국제 해양관광레저단지’를 여수시 화양면에 건설 중이며,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1조6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통일교 여수 진출은 그 초기부터 문선명이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의 화양지구개발사업은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일대 약 300만 평 부지위에 해양관광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골프장, 호텔, 콘도, 카지노, 세계민속촌, 마리나시설 등이 세워질 계획이며, 특히 여수시 소호동 산99번지 3만여 평에는 여수 오션 리조트 특구의 건설을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통일교와 여수시가 공동주최하는 여수엑스포국제마라톤대회 등의 스포츠 문화 행사들이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여의도 22번지의 1만 4000여평의 부지에는 120층 규모의 통일교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종합쇼핑센터의 건설을 추진하면서 최대 10억 달러를 투자할 전망이라고 동 잡지가 보도하였는데, 실제로 2006년 파크원이라는 이름의 70층 규모의 건축이 허가되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또한 경기도 김포 일대에 총 5만평 규모의 헬기공장의 건설을 추진하면서 약 3억 달러의 투자를 할 예정이고, 동계올림픽 개최지 후보로 경합 중인 평창에 있는 용평리조트(통일교 지분 91.5%)에 호텔 증축을 문선명이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는 이러한 통일교의 진출이 결코 ”종교적인 이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20)
5. 맺음말
통일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며 바로 문선명이 그 재림주라고 믿고 있다.21) 통일교의 교리에 따르면 창조의 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지만,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이 목적이 상실되었고, 타락된 인류를 회복하기 위해 참부모(True Parents)에 의한 축복결혼(Blessed Marriage)으로 이루어지는 참가정(True Family)을 통해서 바로 한국 땅에 지상천국이 건설될 것으로 믿고 있다.22)
이를 위해 세계 곳곳에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소위 그들만의 성지(聖地)를 조성해 온 88세의 문선명은, 이제 더 늦기 전에 《원리강론》의 마지막 예언인 한국 땅의 지상천국 건설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그가 “메시아”인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한반도 곳곳에 적극적인 성지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혹자는 통일교의 문선명이 사망할 경우 통일교는 쇠퇴하리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통일교는 ‘종교조직’일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경제조직’이다. 종교조직은 교주의 존재유무에 따라 그 존폐가 논의될 수 있으나, 경제조직은 대체적으로 그 창업자가 사망할 경우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후계구도가 구축되고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의 통일교 활동을 보면, 지속적으로 체계적인 후계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통일교와 한국교회의 관계가 적대적(敵對的)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통일교는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고 대신 문선명을 “메시아” “재림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천년의 교회역사는 단 한차례도 이단이 없었던 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또 다른 사실 하나는 이러한 이단들이 단 한차례도 주님의 순결한 교회를 이긴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통일교의 모습을 보며, 성서에 예언대로 이단의 발흥은 주님 다시오실 마지막 때의 예언임을 믿고, 최후의 승리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참된 신앙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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