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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살아내는 세 가지 방법

최고관리자
2020.05.11 03:15 1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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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교회의 예배와 모임이 줄어들고 여러 만남들도 취소되고 있습니다. 모처럼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하늘이 이어짐에도 왠지 중세적 우울함이 가득한 대기 속에 갇혀 있는 느낌입니다. 

어떤 마음의 준비도 필요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순절을 맞이했습니다. 어쩌면 사순절 기간 동안 죄악과 생명들의 신음에 탄식하고 있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 원래 이러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잘못된 신앙으로 초래된 이 죄악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함께 애통해하고 함께 애원하며 치열하게 사순절을 보내야겠습니다. 그리고 곧 임하실 부활의 새 생명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가운데 그 생명이 우리의 모든 죄악과 바이러스와 잘못된 믿음을 깨끗이 씻겨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구해야겠습니다. 

공적 모임과 외부 활동이 줄어든 만큼 그 시간을 사순절답게 보내는 것도 이 시기를 살아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도를 할 때도 어떤 구구절절한 기도나 외침의 기도 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시소서!”라고 되뇌는 ‘예수기도’가 더 깊은 기도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이 땅을 가득 메우고 있는 피조물들의 탄식소리와 연결이 되어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성경 말씀이 평소보다 더 깊이 와 닿는 것도 사순절에 주시는 위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 베네딕트는 “고대 히브리인들은 글에는 신성한 능력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단어와 문자가 그들 자신의 환경 너머에 있는 어떤 것과 연결해 주는 도구라고 생각했다.”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사순절에 십자가의 그늘 아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말씀 한 구절 한 구절, 한 단어 한 단어가 평소 보다 묵직한 무게의 당목(撞木)이 되어 우리의 영을 울리며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는 경험을 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순절에는 모든 음악이 절제 되는 교회전통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금했다기보다는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만큼 진중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참 신기하게도 사순절 기간에는 마치 아플 때 입맛이 싹 사라지듯 다른 음악에는 흥미가 뚝 끊겨버립니다. 대신 바흐의 수난곡과 그의 교회 음악을 주로 듣습니다. 

사순절이 시작한 이번 주에는 바흐의 칸타타 한 곡이 계속 마음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바흐칸타타 21번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Ich hatte viel Bekümmernis’는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라는 시편 94편 19절 말씀을 토대로 작곡된 바흐의 바이마르 시절 작품입니다. 

첫 곡에는 상당히 긴 전주가 있습니다. 작은 편성의 신포니아가 표현하고 있는 중세적 우울함이 가득한 희뿌연 대기 속에서 ‘근심/Bekümmernis’을 상징하는 오보에의 선율과 그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어루만지는 바이올린 솔로가 너무나 애처롭게 울려 퍼집니다. 드디어 전주가 멈추고 첫 번째 가사가 울려 퍼집니다. 

“Ich, Ich, Ich".... 성경말씀과 달리 바흐는 ‘나는’이라는 표현을 세 번 반복하면서 화자의 근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Ich hatte viel Bekümmernis/내 속에 근심이 많습니다.’라는 가사의 합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근심의 또아리처럼 이 파트에서 저 파트로 계속 반복되어집니다. 

그러다가 ‘aber/그러나’라는 단어에서 음악이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빠른 템포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시편 94편 19절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독일어 성경에서는 접속사가 사용되어 두 문장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주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근심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주시는 위로가 나의 영혼에 생기를 부어 주십니다.’ 작은 차이 같아 보이지만 독일어의 표현이 훨씬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짧음을 미덕으로 하는 칼럼이기에 30분이 넘는 전곡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6번 곡(영상에서 20분35초) 만큼은 꼭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신천지의 마수에 근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곡의 가사는 시편 42편 11절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Was betrübst du dich, meine Seele, 
und bist so unruhig in mir? 
Harre auf Gott; 
denn ich werde ihm noch danken, 
daß er meines Angesichtes Hilfe 
und mein Gott ist. 

6번 곡의 처음 가사는 나의 영혼에게 나 스스로가 말을 걸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 불안해 하는가’ 위험이 닥쳤을 때 우리는 상황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을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눈을 들어 상황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일어 가사이기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디 중간 부분에서 느린 템포로 ‘Harre auf Gott!’라고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부분(영상에서 22분15초)을 들으셨길 바랍니다. 뒤이어 오보에 솔로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가사가 바로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입니다. 

이번 주 어느 날, 사무실에서 홀로 이 부분을 들었을 때 꾹꾹 눌러 두었던 마음이 풀리고 녹아버려서 그저 하나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칸타타의 전주에서 오보에 소리가 상징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근심’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그 근심의 신음소리가 찬송의 소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30:11 

이 어려운 시기가 사순절과 겹치게 된 것은 상황만을 바라보며 피하거나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대신, 자신의 영혼에게 말을 걸고(Du! meine Seele!)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Harre auf Gott!) 회개의 마음과 믿음으로 상황을 대면하고,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이겨내고, 녹여내라는 초청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도와 말씀 그리고 바흐의 음악을 통하여 사순절을 살아 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살아남아야 합니다.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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