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기독교 리더십을 말한다
본문
‘혁신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글로벌시대, 인류는 자본과 효율을 좇아 살아간다.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한 분야의 지도자가 주도하는 시대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중심을 형성할 수 있는 지도자 부재, 지도자 공백의 시대이기도 하다. 또한 21세기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가 깨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호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연구기관 ‘경제평화연구소(IEP)는 2014년 폭력과 테러 등의 요인이 전 세계 총생산(GDP)의 11.3%에 해당하는 손실을 가져왔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군비 증강 및 일부 국가의 내부 분쟁 빈도의 증가 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와 극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 우크라이나, 중동 민주화 아랍의 봄 이후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이집트, 아프리카 지역은 폭력과 불안이 가중되어 세계 평화지수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 사회 또한 잇따른 인명 사고와 정치적 갈등,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갈등사회의 위기를 고스란히 겪고 있다. 사회화합과 선진화, 통일과제 앞에서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한국 교회 또한 교세가 하향곡선을 긋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도 또한 크게 떨어지고 있다. 본지 부활호 대담에서는 한국 교회 존경받는 지도자 손인웅 목사와 박종화 목사를 모시고 우리시대의 기독교 리더십을 주제로 한 대담을 가졌다. _ 편집자 주
최재분_ 기독교리더십의 핵심은 평화를 중심으로 한 섬김과 소통,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평화는 남과 북의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이미 깨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평화는 하나의 환상이고 언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정이나 교회, 사회와 국가 어디나 할 것 없이 평화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없으며, 세대 간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갈등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직시할 때 우리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요.
손인웅_ 어떤 면에서는 리더십의 부재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정부상태처럼 혼돈의 시대, 사사시대처럼 제 뜻대로 자기마음대로 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처럼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을 바랄 수 없는 시대입니다. 민주화와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해야 합니다. 민주적 리더십은 모든 사람들의 뜻을 잘 읽어서 그것을 집약하고 합의하여 평화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은 자기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리더십,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나누는 리더십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르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리더십이 형성되기보다는 다 나름대로 리더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뜻과 생각을 펼쳐나가려고만 하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잘 겪어서 협의를 통한 공동의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문화가 정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한국사회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계에 필요한 과정입니다.
최재분_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요구만 선명해지는 시대, 자기가치와 자기인정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에서 리더십에 대한 순종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어떤 지도자가 서더라도 그 지도자의 영향력이 사회에 미치고 가치의 중심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를 세울 수밖에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종화_ 다양성이라는 것은 분명 과거와 다른 현상입니다. 다양성은 각자 자기가 상대적 자주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만을 강조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며, ‘나와 너’를 인정하는 것이 다양성인 것입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경험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사회 구성체가 바뀌었습니다. 획일적 단일 문화에서 수평적으로 흩어진 것이죠. 흩어진 곳에서는 위에서 누르는 리더십이 아니라 권위로 연결되어 있는 리더십을 따르게 됩니다. 바로 수평적 리더십인 것이죠. 다양성을 살리면서 합의를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메카니즘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저는 심포니적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악기 소리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을 하모니시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갑니다. 다양한 음을 조화롭게 하려면 각 악기의 성향을 잘 알아야 해요. 안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말입니다. 심포니적 리더십의 핵심은 다른 이에 대한 존중인 것이죠. 지휘자는 자신들이 정한 룰, 악보를 통해 음을 조절하며 악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통해 하모니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최재분_ 사회가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지 않고 악보와 관련 없는 단음으로 자기 소리만 내려고 하는 데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고 봅니다. 이때 지휘자는 룰의 라인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데 이런 지휘자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진리’라는 룰이 확실합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내는 힘뿐만 아니라 미래를 확보하는 힘인데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이 사회에 영향력을 미쳐야 함에도 부족함이 여실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손인웅_ 훌륭한 지휘자는 작곡가를 가장 잘 이해하고 해석하면 연주를 잘 해내는 지휘자입니다. 기독교로 치면 작곡가의 의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낼 수 있는 지도자, 그래서 그것을 잘 소화해서 연주자 홀로 내는 소리가 아닌 서로의 소리를 모아서 작곡자가 원하는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지휘자가 필요합니다. 리더십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단원을 장악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하지요. 사람들이 지휘자가 지휘하는 대로 따라줘야 하모니가 이루어지게 되니까요.
박종화_ 개성이 독특한 사람들은 많은데 그러면서도 공동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드문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성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모든 게 같이 사는 것이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에요. 가톨릭의 경우 지도자는 직책상 지도자인데 반해, 개신교의 지도자는 직책상 지도자가 아닙니다. 가톨릭은 하향식 권위로 대주교가 되면 권위를 위임받아 직책 자체에서 권위가 발생합니다. 개신교의 경우 직책의 권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 권위가 됩니다. 신학적 실력과 개인적인 도덕성이 없으면 지도자로 인정을 받기 어렵죠. 한국 기독교 리더십의 문제는 개인적인 도덕성의 결핍과 공동체성의 훼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실상은 사리사욕을 취하는 문제를 많이 보게 됩니다.
최재분_ 오케스트라가 전체적인 하모니를 이끌어 내는 것은 지휘자 한 명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각 악기의 연주자들이 음을 내기 위해 개별적으로 노력을 해야 작곡가의 의도에 맞는 전체적인 하모니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 지휘자의 리더십은 서로 맞물리지 못한 채 헛바퀴가 돌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리더십 부재 또한 이런 맥락에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종화_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지휘자의 리더십이에요. 지휘자는 앞서 손인웅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악보, 즉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읽어 내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지휘자는 누가 봐도 도덕적으로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단원들은 지휘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지휘를 따릅니다. 상호 간에 신뢰성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리더십의 문제는 사회는 수평화 되어 있는데 여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획일적 리더십으로 일관한다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도덕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죠. 또 하나는 정치꾼이 아니라 목회적 교회론적 신학적 성찰이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꾼이 지도자가 될 경우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됩니다. 그럼 점에 있어서 한국교회 지도자는 사리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공익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한국사회가 기독교 리더십을 인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 리더십을 교인들이 인정하느냐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최재분_ 최근 타계한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는 사후 자신의 집을 허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집 때문에 주변 개발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그의 실용과 청렴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사욕을 버린 깨끗한 도덕성이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는 밀 이삭을 드시면서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고, 바울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세상 가치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을 붙들고 진리를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를 배출하고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손인웅_ 교회사에 있어서 중세 가톨릭 시대에 잘못을 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힘의 남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교직자들의 ‘교권’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남용하여 교권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남용은 자기중심적으로 힘을 사용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은 물론 나라도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해 보면 모두가 물량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교인 수와 건물 등에 집착해 힘을 과시하는 데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잘못된 것이라 여기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는 데서 그 심각함이 큽니다.
최재분_ 힘이 있다면 다른 이를 위해 그 힘을 사용하는 것, 그러면서 자기를 비우고 겸허하게 살면 그것이 바로 리더십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손인웅_ 그게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을 하고 흉내를 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박종화_ 기독교 역사를 보면 악이 최고에 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벌을 내리셨습니다. 벌을 통해 타락한 한 시대를 멸망시키셨죠. 교회가 리더십으로 인해 본질이 흐려져 물량주의 등의 세속적 가치에 물들었는데, 하나님은 벌을 통해 가치관의 전도가 생기게 하며 회개를 하도록 우리를 고치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교세가 확 줄어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빨리 성장한 만큼 빨리 줄어들고 있어요.
최재분_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다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말씀에서 한국사회의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도 자기 평안과 자기 욕구에 취해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한국교회가 옷깃을 여미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물론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박종화_ 유대인들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은 나라를 잃는 어려움 속에서도 미국이라는 강국을 붙잡고 세계를 움직이며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는 한국교회의 어떤 말도 듣지 않습니다.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너네나 잘해라’라고 욕을 먹는 입장입니다. 이를 타개할 만한 해법이 없습니다. 대안이 없다면 두들겨 맞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방도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신앙의 힘을 발휘하며 정치 경제를 움직이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이런 영향력은 세속적 힘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최재분_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의 위기 앞에 있다는 말씀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한국교회에 이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요.
손인웅_ 사사 삼손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삼손이 힘을 남용하다가 머리카락이 깎이고, 눈이 빠지며, 쇠고랑을 차고 다곤신전에 묶여 방백들의 놀잇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영성이 깨어나기 시작해 하나님 찾았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16:28) 삼손은 기둥을 무너뜨려 그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스스로 깨닫고 변화가 일어나면 좋은데 그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면 물리적인 고통을 통해서 깨닫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거듭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를 예언자적인 눈으로 읽고, 이에 대해 ‘삼손처럼 죽겠습니다’ 하는 결단이 필요하며 그때 살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합니다.
최재분_ 눈앞에 보이는 위기들이 있습니다. IS는 이제 먼 나라 일이 아닌 ‘우리 일’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이슬람 기도처소를 늘리고 이슬람식 식당을 만드는 등의 이슬람 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시대에서 이는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종교갈등과 과격한 이슬람으로 인한 문제들에 더 가까이 노출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손인웅_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세계 평화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세계 곳곳에 침투해 있죠. 이는 우선 이스마엘을 학대한 죄, 가톨릭이 이슬람을 박해한 값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제국주의와 함께 개신교는 식민지의 많은 이들을 착취했습니다. 이 후손들 중 많은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 죄값입니다. 백인의 죄값이고, 유대인들의 죄값입니다. 고통 받은 이슬람은 한을 품었고, 이 한으로 조직화하여 테러 단체를 만든 것입니다. 한을 풀기 위해 자폭하고 불을 지르는데, 그 분노가 하늘에 사무칩니다. 그 분노를 풀고 평화를 가져올 방법을 기독교 정신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재분_ 더불어 타종교 배타주의가 종교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문명의 세계관과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실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박종화_ 단번에 고칠 수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고쳐야 할 것은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적대감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고사하고 까닭없이 미워하고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신문에서 본 것인데, ‘신앙은 각자, 일상생활은 함께’ 참 좋은 말입니다.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을 분리해 평화를 유지하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손인웅_ 우리 사회에는 연약한 이웃들이 참 많아요.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남한에서도 여전히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과 화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통일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문화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북한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와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 속에 있어요. 한국교회가 이 사람들부터 잘 섬긴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천적 삶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1운동을 할 때는 우리 선배들은 민족의 독립 앞에서 모든 종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하나가 되면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한 자세를 취한다면 다종교시대라 하더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최재분_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예전과 달리 기독교인들에 대한 신뢰가 형성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성숙된 기독교 리더십이 등장해 한국사회에 신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손인웅_ 최근 기독교 반성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은 공동체 운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스로 비우고 스스로 버리고 스스로 섬기는 문화를 실천하는 작은 공동체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속화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벗어나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모델입니다. 이런 움직임들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종화_ 제가 늘 설교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링컨이 남북전쟁에서 마지막으로 참모들을 불러놓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참모들이 우리가 남북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니까 링컨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편이 되냐,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렇게 해야 합니다. 다른 무엇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 바로 이 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최재분_ 여호수아가 가나안 전쟁에서 칼을 빼어 손에 든 한 사람과 마주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다’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계와 사회에서 존경받는 두 분 지도자를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