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언

TOP
DOWN

세례,성찬

본문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하나가 되는 깊은 영적 신비의 상징이다. 이해되고 믿어진 바와 같이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연합과 점점 그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보증인 것이다. -Andrew Murray

할례와 세례는 모두, 신앙인과 그리스도와의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연합을 통해서, 썩어질 일들로부터 또는 옛 성품의 멸망과 타락으로부터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는 표시이다. 전자의 경우에 그 연합은 육신으로 오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후자의 경우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캔들리쉬

세례는 내적 신앙의 외적 표현이다. 내가 내 마음 가운데 진실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다가 그와 함께 부활하였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나는 세례를 요청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함으로서 내가 은밀히 믿고 있는 바를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세례는 유형의 믿음이다. -Watchmann Nee

세례는 우리들 속에 있는 옛 아담이 날마다 슬픔과 회개에 의하여 모든 죄와 악한 정욕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다가 다시 새 사람으로 날마다 살아나서 영원히 의롭고 깨끗하신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George W. Forell

처음으로 구원에 참여케 하는 세례는 개인적인 죄를 사해 줄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암흑의 세력에서, 죄의 옥살이에서 구출해 준다. - Piet Schoonenberg

세례는 교회라는 공동체에 부름을 받는 수단이며 또한 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을 쳐주는 행위이다. 세례는 성령이 교회를 창조하시는 행위이다.

세례는 하나이다. 물 세례와 성령 세례는 이름은 둘이지만 실은 하나이다. 전자는 후자를 말미암아 완성된다.

세례는 거듭난 말씀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온 교회가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P. T. Forsyth
우리가 세례를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빛 진자들이다. 이는 세례를 통하여서도 용서되지 않는 어떤 것이 남아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매일 용서를 필요로 하는 것에 계속해서 우 리가 걸려들기 때문이다. - 어거스틴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 된다. 세례는 양 자됨의 표시이다. - J. 칼빈 -

평범한 물에 말씀을 보태어보라. 그러면 그것은 성례가 된다. 물이 몸에 닿을 때 마음이 깨끗해지는 물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말씀이 단순히 말로서 끝나는 것 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질 때이다. - 어거스틴 -

세례는 단순히 물에 적시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그의 말씀에 연관된 물의 성례를 의미한 것이다. - 마틴 루터 -

세례는 인간이 경험하는 일 중 가장 숭고한 것이요, 가장 가치 있는 의례이다.
- 오틀런드 -

물세례만으로는 순결과 구원을 얻기가 부족하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 야 한다. - S. 싱그 -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취적이고 위대한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 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예수와 더불어 만족스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다. - 챔프스 -

성령 세례는 인간이 경험하는 일 중 가장 가치 있고 숭고한 것이다. - 오틀런드 -

성령은 우리들의 심령에 거하시는 동반자이시다. - C. E. 카우먼 -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내주하면 그는 세계에 대한 안목이 달라진다. - 챔프스 -

성령의 세례에 휩싸이기 위해서는 열망과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 윌 스비 -

어째서 예수님은 “너희가 세례에 의하여 깨끗해지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왜냐 하면 물을 통하여 깨끗하게 하는 것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제거해 보다. 그러면 물이 무슨 소용인가 물에 말씀을 보태어 보라. 그러면 그것은 성례가 돈다. 물이 몸에 닿은 때 마음이 깨끗해지는 물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말씀이 단순히 말 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어질 때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많은 이단자들이 세례의 성례는 받았으나 구원의 열매도 맘의 평안도 소유하지 목하고 지 낸다. 이는 바울이 말씀하였듯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기 때문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 된다. 세례는 우
 리 양자됨의 표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면서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한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수 없다. - 칼빈 -

우리가 세례를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빚진 자들이다. 이는 세례를 통하여서도 용서되지 않은 어떤 것이 남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매일 용서를 필요로 하는 것에 계 속해서 우리가 걸려들기 때문이다. - 아우구스티투스 -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하나가 되는 깊은 영적 신비의 상징이다. 이해되 고 믿어진 바와 같이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연합과 점점 그의 형상으로 닮아가 는 보증인 것이다. - 앤드류 머레이 -

할례와 세례는 모두 신아인과 그리스도와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연합을 통해서, 썩어질 일 들로부터 또는 옛 성품의 멸망과 타락으로부터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는 표시이다. 전자의 경우에 그 연합은 육신으로 오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후자의 경우에는 이미 오신 그 리스도의 연합이다. - 캔들리쉬 -

세례는 내적 신앙의 외적 표현이다. 내가 내 마음 가운데 진실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 되었다가 그와 함께 부활하였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나는 세례를 요청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은밀히 믿고 있는 바를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세례는 유형의 믿음이다. - 위치만 니 -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성찬에 참예 할 때 성도는 그리스도의 경건하고 선한 기질을 얻게 될 것이다. - 휴 블레어 -

성찬은 예수 자신이 재정하셨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게 명하셔서 모든 백성이 참예케 하신 것이다. - 마틴 루터 -

성찬에 참예하는 우리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그 성찬은 헛 된 의식이 될 것이다. - 토마스 아담스 -

취침이 육체를 새롭게 하듯 성찬은 영혼을 새롭게 한다. - 카봇 -

같이 떼어먹는 한 덩어리 떡은 불사(不死)의 약이고, 돌려가며 마시는 포도주는 우리로 하여금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케 하는 해독제인 것이다. - 익나티우스 -

당신은 포도나무, 이것은 당신의 사랑의 전리품, 잔인스런 죄악으로 눌리시어서 쓰라린 고통을 당하시고 나에겐 사랑의 기념탑이 되었도다. - 죤 뉴턴 -
옛날에는 목제 성찬배와 황금 같은 성직자가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목제 성직자와 황금 성 찬배가 있다. - J. 주얼 주교 -

교회가 없는 것은 위험하다. 보답은 멀고, 믿음과 희망으로써만 활기 있게 되는 종교는 형식적 성찬에 의하여 정기적 예배 참석과 실례의 건전한 영향에 의하여 고무되고 재감동 되지 안으면, 점점 마음 밖으로 빠져 나갈 것이다. - S. 존슨 -

기독교는 세 가지 모습을 가진다. 하나는 모든 신앙에 수반하는 기쁨이다. 신앙의 창조적 요소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지상 존재가 영원한 삶의 포도주와 빵이 될 수 있다는 전능 에의 신앙으로서의 중개적 역할이다. 마지막 하나는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성 자들의 신앙이다. 자 어느 것이든 원하는 것을 택하라. - 노발리스 -

나의 위대한 종교는 피와 살 쪽이 지성보다도 현명하다고 하는 신앙이다. - D. 로렌스 -

성례전의 영적 힘은 빛과 같다. 그것이 불순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도 그것은 오염되지 않는다. - 어거스틴 -

성례전이 없다면 그리스도교는 좋게 말하면 철학이요, 나쁘게 말하면 이데올로기가 될 것 이다. - 가브리엘 바하니안 -

성례전 없이는 구원이란 없다. 성례전은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프로테스탄트 의 경우처럼 단순히 믿음을 돋구는 힘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폴 틸리히 -

성례전이란 우리들이 죄가 정복되듯이 은총 속에서 우리들이 완전해지는 약속의 표인 것 이다. - 수산나 웨슬리 -

믿음으로 와서 진정으로 빵과 포도주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확신을 새롭게 받는다. - M. 패터슨 -

주님의 만찬은 떠나가신 주님에 대한 기념이며,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예언이고, 현재 계시는 주님에 대한 비유이다. - D. L. 무디 -

주님의 만찬은 주 예수님에 의하여 제정된 것으로 떡과 잔을 성스럽게 사용하는데, 그렇 게 함으로써 우리는 주 예수님을 기억하고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한다.
- 로이톰슨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02 건 - 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