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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에 관한 성경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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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에 관한 성경적 연구

 

 모세 5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한 모세는 그가 쓴 글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 왔습니다. 특히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가 분분하며, 심지어 모 장로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정말 모세가 지옥에 갔는지 성경을 자세히 고찰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세의 성장과 배경

모세는 레위 족속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고,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웠으나(행 7:21), 애굽의 학대로 나일강에 버려진 후에, 하수에 나온 바로의 공주에게 보호받아 아들로 입양되었고, 또한 누이의 소개로 모친이 유모로 들어가 양육을 받으며 바로의 후계자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모세는 모친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문명의 모든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출 2장) 후에 이러한 교육과정이 모세 5경을 기록할 수 있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2. 모세의 교만과 훈련

모세는 나이 사십이 되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다가, 애굽인에게 압제받는 한 사람의 원통한 일을 자신의 힘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애굽인을 쳐죽이게 됩니다.(행 7:23-25)

이 일로 인하여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 하고, 오히려 형제들에게도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하는 반대를 당하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집에 거하며 그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고 40년간을 지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건을 놓고 히브리 기자는 장성한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늘의 상주심을 바라본 믿음의 행위였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히 11:23-27) 이는, 사단 마귀의 권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요, 모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3. 모세의 변명과 하나님의 확고한 언약

바로 이 모세를 광야 서편 하나님의 시내(호렙)산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시겠다는 언약을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구차한 변명과 핑계들을 늘어놓기에 바빴습니다.`내가 누구관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리이까'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참고: 출 3:11, 4:10,12, 5:22, 6:12,30)

이러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과의 언약대로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할 약속을 해 주심으로 모세의 믿음을 더하게 하셨으며, 또 모세에게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과, 손에 문둥병이 되는 이적과, 하수가 피가 되는 이적을 보여 주심으로 확신을 갖게 하셨으며, 마지막으로 입이 뻣뻣하고 둔한 자라고 변명하는 모세에게 아론을 대변자로 세워 주셔서, 결국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출 3-7장)


4. 모세와 바로의 대결

당시 전 세계를 통일하여 세계의 정치와 경제 문화를 장악하고 지배하던 애굽왕 바로의 권세는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의 존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 9:17-18)라고 기록되어진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애굽왕 바로를 세우신 것은 결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한 도구로 세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입니다. 또한 신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애굽왕 바로의 권세는 사단 마귀의 권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세 역시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지음을 받고(창 3:1, 사 45:7), 하나님의 장중 안에 붙잡혀 좌우되는 권세일 따름입니다.(욥 1:6, 계20:1-3)

바로와 모세는 장장 11번에 걸친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처음 도전에서 모세는 오히려 바로의 거절과 책망을 듣습니다. 이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실망하여 하나님께 원망도 하지만(출 5:22-23),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훨씬 높습니다.(사 55:8) 하나님께서는 낙심하여 불평하는 모세에게 다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심으로 위로해 주며, 격려하여 주십니다. (출 6:1-7:7) 이에 다시 힘을 얻은 모세는 10번에 걸쳐서 바로와의 결전을 계속 벌이게 됩니다.(참고: 벧전 1:7) 바로의 강퍅한 마음은 모세와 아론이 행했던 10가지 재앙으로도 굽힐 줄 모르고, 결국 최후의 결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다 죽인 후에야 비로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보내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각 가족의 수대로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름으로, 그 피가 표적이 되어 죽음의 재앙이 지나가게 되어 멸망을 받지 않게 됩니다.(출 12:13)

즉, 당시 세계를 통일하여 지배하던 애굽 왕 바로의 권세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결국 유월절 어린양의 표적 사건으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게 되고, 어린양의 권세가 최후의 영원한 승리를 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이 유월절 어린 양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고전 5:7, 요 1:29, 계 19:1-8)


5. 광야 생활의 연단

홍해 바다의 구원을 지나(출 14:13),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삼일 길을 지나자, `무엇을 마실까, 애굽의 고기 가마가 그립다'고 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정만 50만명, 남녀노소 다 합한다면 약 200여 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밤에는 몸서리쳐지는 추위에 견디며, 음식도 한 모금의 물도 없고 풀 한 포기도 나지 않는 삭막한 사막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왔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려 43년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반석에서 내어 주시는 물로 먹여 주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이 아니었다면, 일 주일 아니 단 하루라도 살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광야 생활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 생명의 양식

신명기 8: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인생의 참된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를 알게 하는 것에 광야 생활의 의미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만나의 참된 의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22-71절에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베푸시며, 광야의 만나는 그림자적인 사건이었으며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되심을 증거 하시고 계십니다. 즉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목마른 음식이 아니라,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참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내어 준 물은, 반석 되신 그리스도로부터(고전 10:4)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요 7:37-39)

 

나. 아들의 징계

신명기 8:5절에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을 마음에 생각하고'라고 기록된 것처럼, 광야 생활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에 대한 징계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과거 종살이하였던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를 건너게 하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고, 노예근성이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징계를 통하여 다 멸절시키셨으며, 거친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을 훈련시키시고 연단 시키셔서 결국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출 13:17-18, 신 2:14-15)

바로 이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중생한 성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갈등을 나타내는 `신앙의 성화 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갈 5:17)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신앙의 거친 연단 과정 속에서 과거 육신의 소욕은 점점 없어지게 하시고, 갓 태어난 성령의 소욕은 점점 자라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엡 4:13)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고전 1:8)

 

다. 언약 성취의 과정

신명기 9:5절에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요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결코 그들이 의롭지도, 마음의 정직함도 아니고, 또한 자신들의 능력으로서도 아니며, 오히려 백성들이 내내 불평하고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라. 모세의 기도와 수건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자,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세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대목이 있습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르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 32:13)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만을 붙드는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출 32:14) 그렇습니다. 성도의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라야 되는 것입니다.(눅 22:42) 한편 출애굽기 34:29-35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한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타나 백성들이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자,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의 얼굴을 못 보도록 수건으로 가리게 된 사건이 나옵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울은 모세의 얼굴의 광채가 없어짐으로, 백성이 그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었다고 증거 합니다.

또한 이 수건이 현재까지 구약을 읽는 마음에 덮어 있어, 구약에 숨겨진 메시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고 증거 합니다.(고후 3:13,15) 그러므로, 주의 영이 와서 진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여야, 비로소 신구약의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요 5:39, 14:17,26, 눅 24:27,45)


6. 율법의 선지자

가. 율법의 의미

홍해 바다를 건너 시내 광야로 나오자, 곧 도달한 곳이 시내 산입니다. 그 곳은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어 모세조차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습니다.(히 12:18-20)

이곳에서 모세는 율법, 곧 십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받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는 지 그 이유를 정리하여 봅니다.

먼저 은혜 언약과 율법과의 관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17절에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고 하여,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아브라함과의 은혜 언약을 헛되게 하지 못한다고 증거 합니다. 그렇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과 율법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율법을 왜 주셨을까요?

그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롬3:19) 율법이란 인간이 이 율법을 다 지키고 행하여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시조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된 자연인들이 율법이 없이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율법의 정죄를 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롬 3:20),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 아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24절에서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여 율법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만이 구원 얻을 수가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 모세의 죽음

120년의 세월을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생사 고락을 같이 했으며, 여호와를 대면하였으며,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했던 모세는, 평생 가 보기를 소원했던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땅이 바라보이는 요단강 동편의 아바림산(느보, 비스가)에서 운명하게 됩니다.

민수기 20:12절에서는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한 가지의 실수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보여줍니다.

혹자는 가나안 땅이 천국의 그림자이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가 지옥에 갔다고도 합니다.

만약 모세가 지옥에 갔다면, 지옥간 모세가 쓴 글 모세 5경을 성경에서 빼어야 할 것이며, 이 성경 말씀 대로라면, 성도가 일생 동안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한 가지 실수만 하면 다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 된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인데, 과연 하나님께서 한 가지의 실수도 용납치 아니하시는 분일까요?

이러한 성경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해석은 너무도 큰 오해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 66권의 전체적인 진리 체계를 세워 가지고 이 부분을 해석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율법의 선지자로서, 만약에 모세가 천국의 그림자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면, 율법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참고: 갈 2:21하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이름은 히브리어이며, 헬라어로는 `예수'로 불립니다. 율법의 선지자 모세는 광야 생활의 연단을 통하여 성화된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수아에게 인도하여 주고 자신의 소임을 다 마치게 되며, 백성들은 여호수아(예수)를 따라서 약속의 땅(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후에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변화될 때,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모세는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눅 9:29-30)

 

다. 모세의 유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큰 위엄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건만,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하여져서 하나님을 격노케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것을, 애타게 모세의 노래를 지어 유언의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신 26:8-9, 28:64,68, 31: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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