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TOP
DOWN

소망의 사람, 아브라함(히11:8-10)

본문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소망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히 1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은 무엇을 바랍니까? 믿음의 사람은 로또 복권과 같이 허황한 복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소원을 비는 종교를 우리는 무속 종교 혹은 기복 종교라고 부릅니다. 그와 달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종교입니다.


물론 우리도 소원의 성취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우리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설령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뜻도 자연히 함께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처음부터 자신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유복한 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떠나온 하란 땅은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고 그곳에서 오래 살았더라면, 많은 자식과 가축을 거느리면서 남부럽지 않은 부자로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많은 자손을 거느리게 해달라고 이방 신에게 계속 빌어대는 기복 종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살던 곳도 바로 기복 종교와 미신이 성행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가 거기서 살다가 죽었다면, 작은 마을의 촌장이나 작은 부락의 지도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았을는지는 모르지만, 한 민족의 조상과 믿음의 조상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 풍요한 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산 결과로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 물론 그는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에 그녀를 묻을 땅조차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나그네, 떠돌이로 생활했습니다(창 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창 24:1)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평생 단 한 명의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 당시 자식을 많이 낳은 것은 복 중에서도 가장 큰 복이었음을 생각할 때, 달랑 한 명의 아들만을 낳았다는 것은 어쩌면 박복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도 비교적 작은 민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떨치는 민족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 유대인과 회교도와 기독교인의 수는 다른 어떤 종교인들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의 자손은 정말 하늘의 별(창15:5)처럼 셀 수 없이 많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도 복을 받았고, 그의 후손도 복을 받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바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실 줄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여러분은 이미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서, 어떤 경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소원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 때문에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이 부르셨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분명히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에 따라 주시는 부름의 상과 복은 우리가 구하는 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하고 영원한 복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기복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기독교는 인류에게 참되고 영원한 복을 약속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물론 이 땅에서도 여러모로 풍성한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복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물질적인 복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 오히려 불행하게 산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브라함도 분명히 물질적인 복을 많이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누리던 복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가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복은 근심이 없는 복입니다. 복권 당첨이나 땅 투기 등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사람은 대개 재산을 지키려고 노심초사하다가 병을 얻거나, 가족 사이에 불화가 생기거나, 방탕한 삶을 살다가 일찍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많은 재물을 쌓아놓고 도리어 근심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누가 복되다고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박복하게도 단 한 명의 아들 이삭만을 낳았지만, 그 아들은 정말 효도와 믿음의 자식이었습니다.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일에서조차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으며, 부모의 믿음을 물려받아 경건하고 신실하게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둔 사람을 다복하다고 했지만, 그 많은 자식들이 병들고 싸우고 방탕하게 산다면, 차라리 무자식이 상팔자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많은 자식을 부러워하실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자식이라고 둘 수 있기를 소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식을 둔 사람은 정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 Bacon)은 인간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는 함정을 만들어 놓고 남을 해쳐서 이득을 취하는 거미형 인간이고, 또 하나는 열심히 일하여 남의 것을 뺏지도 않고 남에게 주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것만을 열심히 챙기며 사는 개미형 인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열심히 일하여 자기가 필요한 것을 쓰되 남은 것은 남을 위해 내어놓는 유익한 꿀벌형 인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도 역시 세 가지 종류의 인간이 나옵니다. 하나는 남을 등쳐먹는 강도와 같은 인간이고, 또 하나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자신의 안전과 재물만을 염려하며 줄행랑을 친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인간이며, 다른 하나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도와준 사마리아인과 같은 인간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누가 좋은 이웃인가?"를 물으셨다면, 저는 "누가 복을 받은 사람인가?"라고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누릴 복은 당연히 나도 잘 되고 나 때문에 너도 잘 되는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가장 큰 복은 뭐니뭐니해도 그를 통해 후손과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일평생 농사를 짓다가 책을 써서 유명하게 된  전우익 씨라고 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데, 그분이 쓰신 책의 제목은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입니다. 저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고치고 싶습니다. "혼자 복 받으면, 무슨 복인겨."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복만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자신만 복을 받으면, 그게 무슨 복입니까? 대개 강도나 납치범은 돈이 많은 사람을 노립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원치 않게 불행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것은 강도가 악하기 때문이지만,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부자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부자집에 강도가 들거나 불이 나서 재산과 인명의 큰 피해를 당하자, 이를 본 한 거지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강도와 화재의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아버지를 잘 만날 줄 알아라." 이것도 복이라면 복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은 거지 생활과 같은 복이 아니라 범사에 기뻐할 수 있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복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이런 생활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참된 복입니다.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애 동안 꼭 복을 받으려고 안달합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조급하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건강을 잃거나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복이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간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큰 복을 받았더라도, 그 결과로 자손이 대대로 화를 당한다면, 그게 무슨 복입니까? 큰 성공을 한 것처럼 떵떵거리고 살던 사람도 말년이 되거나 후손을 보면 참으로 불행하게 된 사람이 많습니다. 그와 달리 자신이 생애 중에 불행을 많이 겪었어도, 말년이 되거나 그의 후손들이 복을 누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저도 제 평생에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제가 좀 고생을 하더라고 그 덕에 제 자손과 이웃이 오래 복을 받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생애 중에 뭔가를 기필코 성취해야 한다고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대한 성인이나 위인들을 보면, 그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조상들의 수많은 희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복을 받은 대가로 후손이 화를 자초하기보다는 부모의 은덕으로 자손들과 이웃들이 대대로 큰 복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바로 이런 복을 소망하면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 땅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복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여러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원하고 참된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엡 4:4). 그리고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보이는 소망이 참 소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가 보이는 소망을 바라겠습니까(롬 8:24)?


우리의 참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면서 함께 복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천국과 지옥을 보았는데, 먹고사는 형편은 똑같은데, 단지 지옥에나 천국에나 모두 긴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더랍니다. 그런데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만 먹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긴 숟가락을 입에 갖다대지 못해서 산해진미를 두고도 비쩍 말라 있다면,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긴 숟가락으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먹이다 보니, 나도 잘 먹고 너도 잘 먹어 다 같이 튼튼하더랍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이런 소망을 가졌으며, 이런 소망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었습니다. 여러분도 항상 이런 소망을 품으시고, 자손 대대로 이런 소망을 물려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