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TOP
DOWN

기드온의 신앙(삿 6:12-16)

본문

인생은 곧 전쟁이요,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니 식물로부터 시작하여 동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비단 무기로써 싸우는 전쟁만이 전쟁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생활이 곧 전쟁입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정의로운 전쟁이든, 추악한 전쟁이든, 인간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갈구하지만, 완전한 평화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껏 인류는 생존을 위해, 명예를 위해, 혹은 이념과 종교를 위해 줄곧 전쟁을 벌려왔습니다. 떠들썩한 전쟁이든 조용한 전쟁이든, 우리 주위에는 온갖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전쟁은 참으로 끔직한 것이지만, 사실 전쟁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에 전쟁이라는 용어를 붙이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질병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 무역전쟁, 입시전쟁, 출근전쟁... 등 전쟁이라는 용어가 안 들어가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평화를 약속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온통 전쟁을 얼룩져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는 수많은 전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성경에도 전쟁과 싸움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나옵니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싸우고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과 싸우며, 죄악과 싸우며, 육신의 정욕과 싸우며, 하늘의 정세와 권세와 싸웁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부름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정병입니다. 기왕 싸울 바에야 승리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져주어야 하는 전쟁도 있겠지만, 대개의 전쟁은 이기기 위한 전쟁입니다. 처음부터 지기 위해 싸우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육신적인 전쟁에 덧붙여 영적인 전쟁이라는 더 벅찬 싸움을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보다 더 많은 용기와 지혜, 무기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잘 아시는 '기드온' 용사를 통해 승리의 비결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는 마치 반복되는 듯이 하나의 일관된 법칙을 보여줍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외적의 침입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고난 중에 하나님에게 호소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탁월한 지도자를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지도자는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난국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듯이, 거듭되는 고난 중에서 '사사'라고 일컬어지는 지도자들이 출현합니다. 그 중에 유명한 사람으로서 기드온과 삼손과 같은 남자 사사들이 출현하지만, 희귀하지만 드보라와 같은 여자 사사도 출현합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서 이스라엘은 칠년 동안 외적의 침략과 수탈을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산으로 도피하여 굴과 산성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파종 때가 되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올라와 농작물과 가축을 싹 쓸어갔습니다. 외적과 약대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성경은 이를 보고 메뚜기 떼와 같았다고 기록합니다. 농사만을 짓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대로 된 무기가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들은 빠르게 이동하는 기마병과 첨단 무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삽시간에 짓밟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에게 부르짖었고, 이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은 '극히 약하고 자기 집에서 제일 작은 자'(6:15)이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또 하나님이 보여주신 여러 징조들을 보고서, 확신을 갖고서 군대를 조직하여 삼백 명에 불과한 적은 수의 군대로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은 외적들을 물리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사십 년 동안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기드온이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1) 기드온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우상을 제거한 사실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악을 행하였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가장 큰 악은 언제나 우상 숭배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6:10)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를 통해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지켜야 할 계명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계명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십계명 중에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바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제일 먼저 우상 제거를 명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이방인의 우상인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여신의 목상을 찍어 불태웠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서 밤에 몰래 이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우상 숭배가 얼마나 팽배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시는 일, 즉 가증스러운 일은 간음과 살인이 아니도, 강탈과 전쟁도 아니고,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고대의 우상은 대개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수많은 신들과 정령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이에 덧붙여 황제 숭배가 강요되었습니다. 중세기에는 교황도 우상이 되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민족과 인물 혹은 이념이 우상이 되었으며, 현대에서는 재물이 가장 막강한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으려면, 그리고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시급히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상을 계속 섬긴다면, 하나님은 단호히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어떻게 징계하십니까? 구약시대에는 주로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 재앙을 통해 징계하셨지만, 신약시대 이후로는 주로 버림을 통해 징계하시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1장 18-25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따끔한 징계는 차라리 완전한 버림보다 낫습니다. 징계도 사랑과 관심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림은 완전한 무관심의 표현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입니다. 징계는 사람을 깨우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림은 망할 때까지 방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실로 징계보다 더 무섭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따끔한 사랑의 징계는 받을지언정,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일은 제발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상숭배는 처음에는 온갖 달콤한 선물로 유혹하지만, 결국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우상숭배의 가장 가혹한 결과는 우상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고 더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상의 노예가 된 사람이 우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 계속적인 평안이 없다면, 그리고 계속적인 실패가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랑의 채찍을 내리치셨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죄악 속으로 내버려두신 것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 보시고, 여러분의 우상들을 당장 제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여러분도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실 수 있습니다. 기드온 시대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재물 우상을 섬기는 이 시대에 이를 물리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일용할 것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서, 재물 우상을 과감히 제거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기드온이 승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체험적인 신앙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약속하셨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표징을 보여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킨 대로 기드온은 염소 새끼와 무교 전병을 상수리나무 아래 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 전병에 대었더니, 반석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무교 전병을 살랐습니다(삿 6:16-23). 그래도 확신이 부족한 기드온은 또 다시 하나님께 표징을 보여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 일어나서 양털을 손에 쥐고 짜보았더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기드온은 또 다시 표징을 구하였습니다.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그랬더니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이슬이 적시도록 하셨습니다(삿 6:36-40). 이 밖에도 기드온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적진으로 굴러가서 장막을 쓰러뜨렸다"(7:13)는 한 병사의 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표징을 체험한 기드온은 드디어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오합지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삼백 명만을 골라서 정예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기드온은 피를 전혀 흘리지 않고, 하루 밤에 적군을 섬멸했습니다. 밤중에 적진을 둘러싸서 일제히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불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잠을 자다가 우뢰 같은 고함 소리와 화산 같은 불꽃에 놀라 혼비백산 도망가던 적들을 기드온 용사들은 끝까지 따라가며 섬멸했습니다. 기드온은 소수의 정예부대와 기발한 심리전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전에서도 심리전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양보다는 질이 훨씬 중요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도 우리보다 훨씬 힘이 셉니다. 더욱이 우리가 갖고 있는 무기는 초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막연한 꿈이나 공상이 아니라 체험적인 확신입니다. 믿음은 그저 머리로만 끄덕거리는 지적인 동의만도 아니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정적인 흥분만도 아닙니다. 믿음은 몸과 마음 전체를 던지는 모험이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내리는 사생결단입니다. 여러분은 기드온처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확신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기드온처럼 그런 확신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표징을 보이십니다.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자연 현상으로, 때로는 특이한 사건으로, 때로는 환상과 계시로, 때로는 성경말씀으로 여러분에게 표징을 보이십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요,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이요,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분을 꼭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확실히 만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에 근거한 것입니다. 오직 체험적인 믿음만이 끝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러므로 여러분은 비록 연약할지라도 궁극적인 승리가 여러분의 것임을 확신하면서, 확신에 찬 체험적인 믿음 속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