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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충만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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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교회에 맹집사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그교회의 임집사님이 갑자기 중풍으로 앓아 눕게 되어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집사와 가장 친했던 맹집사님은 그 집을 드나들면서 교회소식을 알려줍니다. 그때 임집사님은 자기소원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맹집사님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휠체어 한 대만 내려주시면 제가 평생 임집사님을 밀고 다니면서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맹집사님이 그 기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목사님이 예산을 세워서 휠체어를 사주었습니다. 맹집사도 기뻤고 임집사님도 기뻐했습니다. 이제 맹집사님은 휠체어를 끌고 임집사님을 모시고 교회에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맹집사님을 칭찬하고 박수를 쳐줍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았을 때 느꼈던 감격의 순간은 잠시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포장도로가 아닌 시골의 울퉁불퉁한 길에서 휠체어를 민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예배때마다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폭포같이 내려 길이 다 패였습니다. 그런데 임집사님이 수요예배를 드리러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날도 휠체어를 밀고 갑니다. 가면서 마음속으로 살인합니다. "좀 빨리 죽어버리지. 왜 죽지도 않고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나... " 물론 그날 밤에도 맹집사님은 교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주일 아침, 임집사님을 끌고 휠체어를 밀면서 교회로 갑니다. 교회입구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믿지 않는 동네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다가 맹집사님을 보면서 칭찬합니다. "저 사람은 천사여, 어떻게 자식도 못하는 일을 저렇게 할 수가 있냐말이여" 그소리를 듣는데 교회앞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다. 그날도 마음으로 임집사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제에, 내가 어떻게 저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내가 마음으로 살인을 했는데... " 맹집사는 감히 예배당안으로 들어가지 못한채 밖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과연 누가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의 신앙모습은 바로 이 맹집사처럼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신앙생활에 더 관심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음에도 없이 주를 위해 산다고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진정한 성령충만은 내면의 모습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성령충만한 삶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성령충만은 말씀으로 가득찬 삶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생각나도록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상담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십대를 거치면서 교회와 멀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한 번이라도 성경을 읽어본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싶다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읽어 보십시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의 말씀입니다. 읽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유창하게 기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밤을 새워서 철야기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찬양을 드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말씀을 생각하며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려면 그속에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내속이 말씀으로 채워져있지 아니할 때 성령께서 기억나게 할 말씀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마치 소프트웨어 없는 하드웨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드웨어인 컴퓨터는 좋은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이 그속에 들어 있어야 언제든지 불러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분명합니다. 분명치 못한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왜 세상이 어렵습니까 왜 세상이 혼란스럽습니까 우리 자신들이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분명한 주님의 말씀앞에 서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각자 마음의 손을 들어보십시오. 평생에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습니까 한 번이라도 성경을 읽지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나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소리쳐 기도한다할지라도 말씀이 그속에 들어있지 아니하면 성령충만한 사람이 될 수가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님의 영광만 드러내는 삶입니다
14절에서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은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때로 성령충만하다는 분들 가운데 주님의 자리보다 자기 자리를 더 위에 올려놓은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럴 때 그를 통하여 어떤 성령의 은사가 드러난다할지라도 그는 성령충만한 사람이라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진정 성령충만한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요, 성령의 열매는 인격이 변화될 때에만 맺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인격의 변화없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온유와 절제같은 성령의 열매들은 인격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인격이 변화된자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영광만을 드러냅니다. 결정적일 때 자기를 부인하고 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유럽에 가면 웅장한 성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웅장한 성당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위 그들이 성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상이 대부분입니다. 베드로 성당에 가보면 그 성당 제일 중앙의 가장 귀한 자리에는 소위 베드로의 시체가 있다고하는 관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양 옆으로는 베드로성당을 지었던 교황들의 관이 있습니다. 어떤 교황의 시체는 완전히 금으로 입혀져 있기도 합니다. 이 성당은 주님을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려져야 합니다. 나의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주님의 영광만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실 것이고 바로 그런 교회가 부흥될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 주님 때문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광을 돌린다면 주님외에 어느 누구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예수의 호흡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1-22절에 보면,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호흡인 숨을 '후'하고 내뱉어 주셨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호흡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상황변화에도 흔들림이 없는 깊은 예수의 호흡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흥분하면 호흡이 변합니다. 화를 내면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이미 자기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없는 자기의 몸에 망치질을 할 때 무어라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만약 그순간 감정에 휩싸이는 얕은 호흡을 가졌다면 결코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지가 찢기는 고통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깊은 영적호흡을 가지고 계셨기에 용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깊은 호흡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삶의 의미를 말합니다. 즉 내 삶의 의미를 그리스도안에서 분명히 찾을 때 깊은 호흡을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날때부터 곱추였던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17세가 되기까지 집밖에 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해서였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자기몸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든지 부모는 학교에 보낼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7세가 되던해에 친구의 권유에 의해 기도원에 올라가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강사님은 성령충만함에 대해 설교하셨습니다. "자 이제부터 시간을 10분정도 드릴테니까 다 나가십시오. 어디든지 나가서 지금 성령님께서 각자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들어오십시오" 곱추소녀도 나갔습니다. 사람만나기를 꺼려하는 이 소녀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다가 한적한 곳에 앉았습니다. 앉고보니 쓰레기통옆입니다. "아, 나는 어딜가나 쓰레기로구나" 소녀는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소년이 오더니 쓰레기통을 손으로 뒤지면서 무언가를 찾는 것입니다. 곱추소녀는 용기를 내어서 난생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어, 쓰레기통을 왜 뒤지는 거예요" "캔이나 종이를 찾고 있어요" "그걸 찾아서 뭐 하려구요" "이걸 가지고 가면 돈이 되거든요. 팔아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편찮으신데 약을 사 드리려구요" 그 순간 곱추소녀는 성령님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같은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저 쓰레기를 팔아서 노인들의 약값을 할 수있다면 나처럼 쓰레기같은 곱추도 병들어 누워있는 사람을 위하여 약이 될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이 소녀는 마음으로 큰 결단을 내린 뒤, 양로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소녀의 호흡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삶의 의미를 모르고 자기 삶의 사명감을 깨닫지 못했을 때,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 호흡이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그러나 성령님안에서 삶의 의미와 사명을 찾았을 때, 더 이상 곱추가 불편했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그의 호흡이 흔들리겠습니까
누가 성령충만한 사람입니까 자기 삶의 의미를 그리스도안에서 분명히 찾은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두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내게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찾은 사람입니다. 내 삶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는 다면 신체의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시계수리를 하는 이달수집사님도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도 예수안에서 자기의 사명을 찾은 사람입니다. 장애를 이기고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입니다. 예수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나이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의 최고령자인 80세의 이인자권사님은 예수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성령충만한 권사님이십니다. 여러분! 누가 성령충만한 자입니까 요란하게 떠들어대며 소리지르며 스스로 뜨겁다고 외치며 신앙생활하는 자들입니까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속에 말씀이 가득차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며 자기를 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사람, 바로 그들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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