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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기도응답을 이루시는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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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박3일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인들끼리 어울려 놀면서 오라고 선발대가 타고 갔던 승합차는 제가 운전하고 왔어요. 본격적인 피서철이니 만큼 원래 다니던 길로 오면 몇 시간이나 와야 할 지 몰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골목 골목 누비면서 왔어요. 관광버스 기사님들이 길을 너무 잘 알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2대의 관광버스 사이에 끼어 앞차를 바짝 따라붙었죠. 방해를 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차가 끼어들어 방해가 되면 뒤쳐졌다가 150-160을 밟아서 또 따라붙곤 했어요. 앞차를 놓치면 전혀 모르는 길이니까 함께 교회까지 도착할 수가 없을테니까요. 그 분도 제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다음은 어느 방향으로 돌아갈 지 미리 사인을 해 주곤 했어요.
(2) 어제 그 상황에서 제가 가장 잘 받아야 할 응답은 무엇일까요 우리 지구촌교회 앞에까지 함께 잘 도착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 응답을 잘 받기 위해서는 앞의 차를 잘 좇아가야 하는 것이죠.
(3)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도록 위임하셨어요.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그때그때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붙여주세요.
2. 응답은 어떻게 받는가
(1) 여호와 하나님은 응답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는 거죠. 창고에 물건을 받으려면 문부터 열어야 돼요.
(2) 지난주간에 새벽기도회에서 읽었던 말씀에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고 했어요. 생명의 근원이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지키는 데 있다는 거예요. 마음을 어떻게 지키라고 하는가, 철통같이 걸어 잠그고 지키라는 것인가 하고 봤더니 정 반대의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고 품으라는 거예요(잠4:8).
(3) 다른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기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힘들어요. 보통은 내 경험에 비추어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는 기준을 가지고 살죠. 그러나 맞고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로 생각을 바꿔야 돼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 기준을 가지고 보면 날마다 전쟁을 해야 돼요.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마음대로 되는 것예요. 내 마음대로 기도제목을 정해놓고 그거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는 것은 어린아이 짓이죠.
(4) 뿐만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방법으로 편짜기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좌편이나 우편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죠(잠4:27). 지난주간에 미군의 양민학살이 밝혀지면서 반미감정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김대중 대통령께서 "반미가 아니라 비판"을 하라고 했어요. 그게 맞는 얘기 같아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겠어요 편짜기는 맞고 틀리는 것을 따지는 것보다 더 어린 아이 같은 짓이죠.
(5)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얼마든지 자기 부하들을 동원하여 죽일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세운 왕이 아니냐, 내 기준에는 틀리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일 것임을 인정했어요. 그렇게 생각했던 다윗왕을 여호와 하나님이 높이셨잖아요.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왕을 건국신화처럼 여기고 있잖아요.
(6) 요셉은 노예생활에서도, 감옥생활에서도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어요. '저 죄인들과 내가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는가 억울하다' 하면서 한탄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자기보다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들의 장점이 또 있었음을 인정했기에 그는 노예생활 속에서는 가정총무를 하면서 경제를 배웠고,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정치를 배웠어요. 그렇게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총리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7) 오늘 1부예배 시간에 읽었던 말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흉악한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해요. 그 때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지 개와 같은 이방인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사이의 높은 장벽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죠. 서로 열려있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이 존경하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고, 주님의 대답을 받아서 "개들도 자녀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었어요. 그 모습을 보신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던가요 "네 소원대로 되리라"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대로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원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방법은 간단해요. 내 소원과 여호와 하나님의 소원이 같으면 되는 거예요. 가나안 여자는 그야말로 부스러기가 되었어요. 얼마나 뭉개졌고 얼마나 부스러졌고 얼마나 깨졌고 얼마나 무너졌나요 나 같으면 아마 내 딸 안 나아도 되니까 말조심하라고 하면서 갔을 거예요. 그러나 그 누구도 가장 꺾기 어려운 자존심을 완전히 꺾었어요. 주님은 그것을 큰 믿음이라고 하신 것이죠.
3. 생명의 응답
(1)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편리해졌는데 사람들의 가슴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어요. 갈증을 느껴요. 소망이 없고 생명이 없어요. 이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어요.
(2) 엊그제 수련회에 가서 이번에는 물에 빠뜨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서로 물에 빠뜨리더라구요. 다들 물을 먹을까봐 빠지지 않으려고 난리예요. 그래서 난 물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한참 놀다가 나와서는 물을 찾는 거예요. 바다의 물은 그렇게 많은데 마시려고 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병에 든 물을 찾는 것일까요 바다의 물은 온갖 물질이 다 혼합된 것이고, 병에 든 물은 정결하게 걸러진 물이잖아요. 혼합된 물을 가지고서는 생명을 도울 수가 없어요. 정결하게 걸러진 물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부름 받았다면 우리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불평, 불만, 원망, 죄악을 다 떨쳐버리고 정결하게 걸러야 쓰임 받을 수 있어요.
(3) 제가 전도사 시절에 고등학생이었던 한 친구가 20년만에 연락이 되어 지난주간에 경상도에서 찾아왔어요. 아마 한참 방황하던 고등학생 때 저를 통해 자기가 잡혔던 모양이예요. 그 동안 고생을 많이 했더라구요. 몇 년간 수술을 하고 죽었다 살았다 하면서 기억이 많이 상실되었는데 유독 그 때 기억만 생생하게 남아있대요. 그는 운동선수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8미터 높이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다쳤대요.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였는데 절단하지 않으려고 2년간이나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는데 살이 썩지 말라고 줄칼로 매일 1시간씩 갈아내는 과정에서는 주님의 십자가도 생각되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4일만에 깨어났는데 그 전까지는 그렇게 우울하던 자신이 죽었다가 깨어난 뒤로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는 것이죠. 의사들이 어떤 기분이 본래 마음이냐고 묻더랍니다.
(4)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하지만 나으면 고통을 기억지 않는다"고 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정결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처럼 여기는 것을 꺾어버리실 때가 있어요. 그 친구도 그런 말을 해요. 자기가 운동선수였기에 자기 몸을 믿었대요. 그런데 그 경상도 친구 말이 이래요. "여호와 하나님이 다리를 뽀아뿌리니까 별 수 없어요" 지금은 그 저는 다리로 목사님이 필요하다면, 교회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면 어디든 운전기사처럼 충성한다는 거예요.
4. 최고의 응답
(1)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놓아도 내 가슴이 기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지난주간에 어느 집사님이 찾아왔어요. 친척 되시는 분께서 "목사님을 만나 기름부음을 받으라"고 했대요. 목사를 만나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늘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경쟁해야 되고 살아남아야 하고 비교 당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목사에게 오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되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굶어라. 계속 굶으면 죽어라. 뭐 이런 말씀이죠. 세상의 기준으로는 힘 빠지다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힘이 나게 되어 있어요.
(2) 여러분 가슴에 불이 희미하게 소멸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니까 불은 있지만 계속 말씀과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면 연료가 떨어져서 불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여러분! "성령이시여, 기름 부어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문제는 환경과 여건 때문이 아니예요. 여러분 가슴에 불이 붙지 않기 때문이죠. 자신을 불태울만한 열정이 없기 때문이예요.
(3)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함께 살다가 어느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이 의식되지 않게 되었어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먼저가 아니예요.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게 된 것이죠.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만큼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게 된 이후에 그에게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이 사라졌어요.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대신 사람을 의식하게 되었고 세상을 의식하게 되었어요. 그 결과는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두려움이었어요.
(4) 자기 자신이나 사람이나 세상을 의식하게 되면 두려워지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면 담대해지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힘은 아무리 봐도 신뢰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성령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싸움을 치르지 않아도 되도록 여러분 자신을 벗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게 하시며 여러분이 싸워야 할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는 것이죠.
(5) 양심의 응원을 받을 만큼 정결하게 살아가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상 성취가 늦을 수 있어요. 그래서 평안이 필요해요. 성경은 평안을 신발에 비유했어요(엡6:15). 성취가 늦는 동안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면서 제일 먼저 받아야 할 응답은 평안이고, 최고의 응답은 가슴에 불이 타오르는 거예요. 이번 주간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안에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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