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역사
본문
20세기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조제프 토인비는 40여 년에 걸친 그의 역작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는 신의 창조가 진전되는 모습"이라면서 문명의 발생, 성장, 소멸과정을 "도전과 응전(應戰)"이라는 구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막에서 꽃 핀 이집트의 문명을 이 이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빙하지대가 축소함에 따라 아프라시아(북아프리카와 남아시아)지역은 건조화가 진 행됐다. 그때까지 수렵생활을 하던 주민들에게 열려진 길은 3개였다. 익숙해진 기후대를 따 라 북으로 이동하거나, 그 지역에 남아 수렵생활을 하며 근근히 살아남거나 역시 그 지역에 남기는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맞는 유목과 농경을 새로 개척해 나가냐였다. 거주지도 생활 양식도 바꾸지 않았던 무리는 건조화라는 도전에 응하지 않았던 셈으로 전멸이라는 벌을 받 았다. 생활양식을 바꾸어 수렵자로부터 양치기로 변신한 무리는 아프라시아 스텝의 유목민 이 되었다.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고 거주지를 변경한 무리들은 새로운 환경의 도전을 받아 이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또 다른 응전을 불러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건조화라는 도 전에 대해 거주지와 생활양식을 모두 변경하며 응전한 집단이 있었다. 이 보기 드문 이중의 반응이야말로 소멸돼 가는 아프라시아 초원지대의 몇 개 미개 사회에서 이집트 문명과 수매 르 문명을 창조한 역동적인 행위였다. "
토인비는 이러한 이론으로 이집트문명 뿐만 아니라 마야문명. 미노스문명. 중국문명 등의 발생과 성장, 쇠퇴, 해체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은 그 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되고 비판도 받았지만 인종설이나 환경설에서 벗어나 역사를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 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역사학 연구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또한 문명의 대 부분이 이미 사멸(死滅)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모든 문명 앞에 죽음의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는결론을 내렸습니다.
끊임없는 세상의 도전에 대해 교회는 끊을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응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였으며 영원히 쇠퇴하지 않는 진정한 기독교 문명을 창조해 왔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미 교회가 심하게 핍박을 당하던 시대였습니다. 트리야누스 황 제 시대에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는 사람들이 크리스챤인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하 여 심문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가 황제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초대 교회 전성시대에 도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핍박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 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도전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사수로 응전한 사람들 에 의해 꽃이 피고 그 열매를 맺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 권력과 유대 교권(敎權) 세력이 합세하여 예수님과 그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것 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소위 정통파()로 자처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예 (例)"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울(후에 사도가 된 바울의 이전 이름)이 예수의 이름을 말 살하고 교회를 근절시키려고 하고 있었을 때 사울 만큼 진정으로 그것이 신을 섬기는 일이 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행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행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 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행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 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행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 다. " 적어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행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 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 박하는 예수라. " 이와 같은 일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16: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교회의 비극은 자기들만이, 자기 교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와 은총을 독점하고 매수(買受)하 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만이 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참 교회라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생각이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단(異端)을 교회에서 용납해서 는 안됩니다.
얼마 전 17세된 고교생 아들과 22세의 숙성한 처녀 딸을 공기총으로 쏘아 아들은 죽고 딸 은 예측불허의 중태에 빠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녀를 이 꼴로 만든 비정의 아버 지 장판권씨는 서늘한 수갑을 찬 채 철창에 매달려 절규합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있는 것입 니까' 살인범의 외침으로는 너무나 생경스러운 소리이겠지만 사이비 이단 종파들에게 아내 와 자녀들을 빼앗겼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어쩌면 이해가 가는 절규입니다. 그 자신 조실 부모하고 외롭고 어려운 소년, 청년 시절을 보냈기에 남달리 가정에 애착을 갖고 살아온 착 실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습니다. 세상에 한 눈 팔지 않고 가정에 대해 성실했던 그였지만 그의 아내가 안상홍 이단 집단에 유혹되어 결국 자녀들까지 그 이단 집단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이비 이단 집단이 한 가정을 파탄시키고 또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 으며 두 젊은이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이비 이단 집단들은 더욱 더 경계하여야 합니다.
박태선의 전도관 운동이 한참 발흥할 때의 일입니다. 인천 제2장로 교회를 담임하던 이승 길목사(1887-1965, 독립운동가)가 전도관 때문에 걱정하던 목회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 습니다. "허참, 모를 일이지. 부산의 18금과 인천의 18금이 다르다니 말이야. "목회자들은 어 리둥절해서 무슨 말인지 물었습니다. "분명히 18금이라면, 거짓 없는 금이라면 부산엘 가나 인천엘 가나 항상 금이 아니겠소.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그건 가짜겠지요. 진짜 금은 변치 않는 색을 유지하며 반짝입니다. 그런데 가짜 금은 처음에는 순금보다 더 유난히 반짝이다 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색하여 흉하게 됩니다. 전도관이 이와 같습니다. 오래 가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우리가 빛을 잃지 않는 순금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 무장은 성서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
"(고후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 하는 자들이니라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 장하나니 (고후11: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단순히 축적하는데 그쳤을 뿐 그 지식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 의 뜻을 분별하고, 그 분별된 진리를 생활 속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 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죽은 지식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외형적인 죽은 지식의 소유자들이 진리의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은 생명 없는 지식을 소유한 자의 무지한 열심히 빚어 낸 결과인 것입 니다. 또한 좋은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사이비 이단 종파는 한 때 그 잎사 귀가 무성하여 흥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그 진위가 성령의 열매를 통해 밝혀지는 것입니 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 를 따겠느냐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 매를 맺나니 (마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예수께서 조만간에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것만을 생각하고 당황하여 비탄에 빠져 근심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요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 음이니라 (요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 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 다. "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가면 성령 즉 보혜사(保惠師)가 오시리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계시는 동안에는 사람들은 어느 곳이든지 예수와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셨을 때에는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정신과 마음 과 양심 속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고 계시는 동안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靈)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사람이 어느 곳에 가든지 성령은 그와 함께 있습니다. 성령은 온 세상을 통하여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의 마음과 정신, 영혼에 호 소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는 약속의 성취입니다. 예수를 믿는 데 박해와 핍박이 뒤따르기 때 문에, 그리고 많은 사이비 이단의 무리들이 날뛰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는데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도전에 대한 성도들의 응전하는 방법은 바로 성령의 역사(役事)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먼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 말하면 대부분 고전12:4-11 에 나타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들 즉 방언, 예언, 신유 등등을 생각하거나 마음이 뜨겁고 눈물이 나고 하는 것들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는 사람 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를 짓게 하여 망하게 하나 성령은 죄를 깨닫아 회개하여 구원(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갈릴레오가 이전의 학설을 뒤엎는 실험을 피사의 사탑에서 했습니다. '무거운 물건일수록 먼저 떨어진다. ' 갈릴레오가 이 학설을 부정하는 증명을 하기 위하여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서 가벼운 물건과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동시에 떨어진다는 것을 증 명함으로써 중력은 무게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갈릴레오가 그런 실 험을 한다고 하니까 장안에 있는 모든 호사가들이 다 모였습니다. 무거운 돼지와 가벼운 학 을 동시에 떨어뜨렸는데 동시에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니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앞으로 과학을 전개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근거가 되며, 그 다음에 쌓아야 하는 모든 판단과 분별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그렇 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중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은 가장 중요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때 자기들이 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예 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십자가에 너희가 죽인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 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8) 베드로 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
2000년 전 팔레스틴에서 범죄자로써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어떻게 여러 세기를 통하여 그 리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꿰뚫어 죄를 깨우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 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이 그 마음속에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시인하는 것은 성령 의 역사입니다. 내 죄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성령의 역 사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의(義)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요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라는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범죄자로 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는 심문을 당하고 유죄가 되어 유대인들에게는 사악한 이 단자가 되었으며 로마인에게는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가 극악무도한 죄인이 받 아야 할 형벌을 받고 흉악범과 여호와 하나님의 적이라고 하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 이 생각되었던 것이 바뀌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았던 백부장과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 이 십자가의 예수 모습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 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 성령의 안목에서 볼 때,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죄가 전혀 없으신 즉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은 의 로우신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 번째 역사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세상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장차 심판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하 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확신을 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빌 라도가 의인이신 예수를 심판했을지라도 성령의 눈으로 볼 때 심판을 받은 것은 바로 빌라 도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의 임금들을 심판하시고 역사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들을 어떻게 심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인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 리스도의 의를 확신하고, 다가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믿는 신앙 때문에 박해와 핍박을 받 든, 환란이나 역경을 당한다해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 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같은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토인비는 이러한 이론으로 이집트문명 뿐만 아니라 마야문명. 미노스문명. 중국문명 등의 발생과 성장, 쇠퇴, 해체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은 그 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되고 비판도 받았지만 인종설이나 환경설에서 벗어나 역사를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 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역사학 연구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또한 문명의 대 부분이 이미 사멸(死滅)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모든 문명 앞에 죽음의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는결론을 내렸습니다.
끊임없는 세상의 도전에 대해 교회는 끊을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응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였으며 영원히 쇠퇴하지 않는 진정한 기독교 문명을 창조해 왔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미 교회가 심하게 핍박을 당하던 시대였습니다. 트리야누스 황 제 시대에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는 사람들이 크리스챤인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하 여 심문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가 황제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초대 교회 전성시대에 도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핍박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 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도전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사수로 응전한 사람들 에 의해 꽃이 피고 그 열매를 맺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 권력과 유대 교권(敎權) 세력이 합세하여 예수님과 그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것 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소위 정통파()로 자처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예 (例)"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울(후에 사도가 된 바울의 이전 이름)이 예수의 이름을 말 살하고 교회를 근절시키려고 하고 있었을 때 사울 만큼 진정으로 그것이 신을 섬기는 일이 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행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행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 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행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 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행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 다. " 적어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행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 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 박하는 예수라. " 이와 같은 일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16: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교회의 비극은 자기들만이, 자기 교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와 은총을 독점하고 매수(買受)하 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만이 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참 교회라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생각이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단(異端)을 교회에서 용납해서 는 안됩니다.
얼마 전 17세된 고교생 아들과 22세의 숙성한 처녀 딸을 공기총으로 쏘아 아들은 죽고 딸 은 예측불허의 중태에 빠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녀를 이 꼴로 만든 비정의 아버 지 장판권씨는 서늘한 수갑을 찬 채 철창에 매달려 절규합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있는 것입 니까' 살인범의 외침으로는 너무나 생경스러운 소리이겠지만 사이비 이단 종파들에게 아내 와 자녀들을 빼앗겼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어쩌면 이해가 가는 절규입니다. 그 자신 조실 부모하고 외롭고 어려운 소년, 청년 시절을 보냈기에 남달리 가정에 애착을 갖고 살아온 착 실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습니다. 세상에 한 눈 팔지 않고 가정에 대해 성실했던 그였지만 그의 아내가 안상홍 이단 집단에 유혹되어 결국 자녀들까지 그 이단 집단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이비 이단 집단이 한 가정을 파탄시키고 또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 으며 두 젊은이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이비 이단 집단들은 더욱 더 경계하여야 합니다.
박태선의 전도관 운동이 한참 발흥할 때의 일입니다. 인천 제2장로 교회를 담임하던 이승 길목사(1887-1965, 독립운동가)가 전도관 때문에 걱정하던 목회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 습니다. "허참, 모를 일이지. 부산의 18금과 인천의 18금이 다르다니 말이야. "목회자들은 어 리둥절해서 무슨 말인지 물었습니다. "분명히 18금이라면, 거짓 없는 금이라면 부산엘 가나 인천엘 가나 항상 금이 아니겠소.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그건 가짜겠지요. 진짜 금은 변치 않는 색을 유지하며 반짝입니다. 그런데 가짜 금은 처음에는 순금보다 더 유난히 반짝이다 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색하여 흉하게 됩니다. 전도관이 이와 같습니다. 오래 가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우리가 빛을 잃지 않는 순금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 무장은 성서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
"(고후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 하는 자들이니라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 장하나니 (고후11: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단순히 축적하는데 그쳤을 뿐 그 지식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 의 뜻을 분별하고, 그 분별된 진리를 생활 속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 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죽은 지식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외형적인 죽은 지식의 소유자들이 진리의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은 생명 없는 지식을 소유한 자의 무지한 열심히 빚어 낸 결과인 것입 니다. 또한 좋은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사이비 이단 종파는 한 때 그 잎사 귀가 무성하여 흥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그 진위가 성령의 열매를 통해 밝혀지는 것입니 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 를 따겠느냐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 매를 맺나니 (마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예수께서 조만간에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것만을 생각하고 당황하여 비탄에 빠져 근심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요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 음이니라 (요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 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 다. "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가면 성령 즉 보혜사(保惠師)가 오시리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계시는 동안에는 사람들은 어느 곳이든지 예수와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셨을 때에는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정신과 마음 과 양심 속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고 계시는 동안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靈)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사람이 어느 곳에 가든지 성령은 그와 함께 있습니다. 성령은 온 세상을 통하여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의 마음과 정신, 영혼에 호 소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는 약속의 성취입니다. 예수를 믿는 데 박해와 핍박이 뒤따르기 때 문에, 그리고 많은 사이비 이단의 무리들이 날뛰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는데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도전에 대한 성도들의 응전하는 방법은 바로 성령의 역사(役事)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먼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 말하면 대부분 고전12:4-11 에 나타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들 즉 방언, 예언, 신유 등등을 생각하거나 마음이 뜨겁고 눈물이 나고 하는 것들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는 사람 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를 짓게 하여 망하게 하나 성령은 죄를 깨닫아 회개하여 구원(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갈릴레오가 이전의 학설을 뒤엎는 실험을 피사의 사탑에서 했습니다. '무거운 물건일수록 먼저 떨어진다. ' 갈릴레오가 이 학설을 부정하는 증명을 하기 위하여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서 가벼운 물건과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동시에 떨어진다는 것을 증 명함으로써 중력은 무게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갈릴레오가 그런 실 험을 한다고 하니까 장안에 있는 모든 호사가들이 다 모였습니다. 무거운 돼지와 가벼운 학 을 동시에 떨어뜨렸는데 동시에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니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앞으로 과학을 전개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근거가 되며, 그 다음에 쌓아야 하는 모든 판단과 분별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그렇 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중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은 가장 중요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때 자기들이 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예 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십자가에 너희가 죽인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 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8) 베드로 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
2000년 전 팔레스틴에서 범죄자로써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어떻게 여러 세기를 통하여 그 리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꿰뚫어 죄를 깨우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 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이 그 마음속에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시인하는 것은 성령 의 역사입니다. 내 죄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성령의 역 사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의(義)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요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라는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범죄자로 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는 심문을 당하고 유죄가 되어 유대인들에게는 사악한 이 단자가 되었으며 로마인에게는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가 극악무도한 죄인이 받 아야 할 형벌을 받고 흉악범과 여호와 하나님의 적이라고 하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 이 생각되었던 것이 바뀌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았던 백부장과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 이 십자가의 예수 모습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 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 성령의 안목에서 볼 때,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죄가 전혀 없으신 즉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은 의 로우신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 번째 역사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세상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장차 심판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하 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확신을 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빌 라도가 의인이신 예수를 심판했을지라도 성령의 눈으로 볼 때 심판을 받은 것은 바로 빌라 도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의 임금들을 심판하시고 역사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들을 어떻게 심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인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 리스도의 의를 확신하고, 다가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믿는 신앙 때문에 박해와 핍박을 받 든, 환란이나 역경을 당한다해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 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같은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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