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님이 하시는 일
본문
우리는 지난 주에 보헤사 성령님을 사랑하자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참된 돕는 자, 참된 스승, 참된 위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골고다 언덕으로 인도하심과 동시에 마가의 다락방으로 인도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골고다 억덕의 십자가의 도와 마가의 다락방의 오순절의 사건을 잘 이해하고 믿으면 우리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수년 교회를 다녔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할지라도 아직도 패배와 좌절과 힘 없이 살아간다면 반드시 보혜사 성령님을 만나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7절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라는 말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하늘의 그 좋은 보좌 다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땅에 오셔서 33년을 사셨으나 자신을 위해서 하신 것은 하나도 없이 인간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그 흔한 연애, 취미, 학교, 여행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흔한 한체 머리 둘 곳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양부모를 토막살인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공부잘한 형과 차별대우 했다는 것 때문이였습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20년을 농아로 살아온 한 자매가 주님을 만난 다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을 못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이 참이 아닌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부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말 가운데 진실이 얼마정도입니까
진정으로 남을 위하여 믿음으로 사랑으로 하는 말이 얼마나 됩니까
말 잘하는 것이 도리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똑똑한 것이 더 무서운 세상입니다.
주님은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 이 세상의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왔고 살았고 또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었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다음 오실 성령님을 위하여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떠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번 오르면 내려 올줄 모르는데 있습니다.
정말 이웃을 위하고 형제의 눈을 뜨게할 수 있으면 유익이 되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웁시시오 그러면 평안할 것입니다.
그 유익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보헤사 성령님이 오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보혜사 성령님이 중요하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고 예정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동시에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오늘은 그 분이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말씀함으로 성령님을 보다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만나는데 도움이 되기를 성령님께 의탁합니다.
1, 깨닫게 하십니다.
8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책망한다는 말은 깨닫게 하여 바로 잡아 주신 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은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의 잘못을 바르게 꾸짖어 주신 일을 성령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가장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칭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나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충고가 필요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꾸짖어 주지 않고 나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신 분이 없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참 스승이 있다고 함은 나를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이 세상을 바르게 보게하는 분이 있다고 함은 그 사회의 희망인 것입니다.
허준이라는 연속극을 보면서 어쩌면 스승 유지태그의 아들인 유주부는 그 모양이고 천한 후손이였고 그의 몸종처럼 부리던 허준이는 그렇게 당당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유주부는 그의 어머니가 버려놓았다고 봅니다. 유지태가 키운사람은 허준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꾸짖으심에 민감했던 사람들이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령님의 권면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꾸지람은 절망하게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꾸지람은 격려이며 희망이며 용기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기만 하면 내가 도와 줄태니다시 시작해 보아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1) 죄에 대하여서라면 무슨 뜻입니까
죄를 성경에서는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화살을 쏘는 곳에는 반드시 과녁이 있습니다. 그 화살이 과녁을 맟춘 것이 아니라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과녁을 맟추기 못한 화살을 아무련 의미가 없습니다. 헛수고 할 뿐입니다.
화살을 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집중력이라고 합니다. 과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흩어지면 표적을 맞출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갖어야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표적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인생의 화살을 쏘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9절에는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신앙이 죄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의 마음이 주님을 겨냥하고 있지않는한 나의 삶은 무의미하며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야 한다.
2) 의라고 함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정직함으로 성실함으로 법과 율례를 지킴으로 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도 인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착하면 착한 것으로 죄인이며 나쁜 짓을 하면 그 하는 것으로 죄인 것입니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진리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비난했고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였습니다만 그러나 나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의의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3) 심판에 대하여라하면
이 세상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했다.
2, 인도자 이십니다.
13절이 주는 말씀은
1)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만남은 곧 진리와 생명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입산할 것도 없고 신학교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할 것도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만나면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감정의 영이 아니라 진리의 영이십니다. 흥분의 영이아니라 지극히 차분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인격의 영이십니다. 고상한 영이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 오시면 나의 생각을 사상을 마음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생각을 완전히 전환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듭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2) 자의로 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했습니다. 주님도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말만을 한다고 했습니다.
15절에 "그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도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듣는대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는대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것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것입니다. 자기것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 잘 들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태어날때부터 모태에 계셨던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40일 동안 금식할 때도 함께 했습니다. 주님의 전생을 통하여 함께 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잘알고 계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해야 합니다.
말에 진실성이 없는 거짓된 말은 도적질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자신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가 무섭게 후회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3)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인도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생각뿐만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과정까지도 실재적으로 간섭하고 인도하십니다
초대 교회의 모든 일을 성령님이 간섭하시다. 일곱집사 선택도, 아나니아 삽비라의 문제도 제비뽑지 않고 성령께서 직접 베드로에 말씀하신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보낼 때도 제비를 뽑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지시한 대로 했습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가는것도 성령님의 인도함이였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걸음마다 성령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여기 인도한다는 말은
"아고나이"라고 한다. 강제로 끌고 간다는 말입니다. 말 안들으면 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는 것이며 그래도 안들으면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4)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을 모릅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5분의 일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을 다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자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부탁한 말이 사랑도 믿음도 아니라 두려워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오늘이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 있어서 오늘을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을 가진 자만이 오늘을 가치 있게 살수 있습니다.
우리 월광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앞으로 10년을 내다 볼수 있도록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즐겁게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한 눈을 팔지 않습니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그냥 따라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신 일만을 하려고 합니다. 좀 고달프고 힘들어도 말입니다.
3,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14절에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중요한 임무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주님의 영광과 이름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이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모신 성도의 삶입니다.
성령님이 하신 일이 너무 많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오직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였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깊이 만큼 믿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살아왔는가가 오늘의 나를 판단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지라도 신앙의 어떤 변화가 없다면 그는 신앙의 깊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깊이를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내 인생의 영광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참된 돕는 자, 참된 스승, 참된 위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골고다 언덕으로 인도하심과 동시에 마가의 다락방으로 인도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골고다 억덕의 십자가의 도와 마가의 다락방의 오순절의 사건을 잘 이해하고 믿으면 우리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수년 교회를 다녔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할지라도 아직도 패배와 좌절과 힘 없이 살아간다면 반드시 보혜사 성령님을 만나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7절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라는 말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하늘의 그 좋은 보좌 다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땅에 오셔서 33년을 사셨으나 자신을 위해서 하신 것은 하나도 없이 인간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그 흔한 연애, 취미, 학교, 여행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흔한 한체 머리 둘 곳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양부모를 토막살인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공부잘한 형과 차별대우 했다는 것 때문이였습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20년을 농아로 살아온 한 자매가 주님을 만난 다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을 못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이 참이 아닌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부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말 가운데 진실이 얼마정도입니까
진정으로 남을 위하여 믿음으로 사랑으로 하는 말이 얼마나 됩니까
말 잘하는 것이 도리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똑똑한 것이 더 무서운 세상입니다.
주님은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 이 세상의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왔고 살았고 또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었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다음 오실 성령님을 위하여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떠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번 오르면 내려 올줄 모르는데 있습니다.
정말 이웃을 위하고 형제의 눈을 뜨게할 수 있으면 유익이 되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웁시시오 그러면 평안할 것입니다.
그 유익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보헤사 성령님이 오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보혜사 성령님이 중요하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고 예정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동시에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오늘은 그 분이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말씀함으로 성령님을 보다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만나는데 도움이 되기를 성령님께 의탁합니다.
1, 깨닫게 하십니다.
8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책망한다는 말은 깨닫게 하여 바로 잡아 주신 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은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의 잘못을 바르게 꾸짖어 주신 일을 성령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가장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칭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나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충고가 필요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꾸짖어 주지 않고 나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신 분이 없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참 스승이 있다고 함은 나를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이 세상을 바르게 보게하는 분이 있다고 함은 그 사회의 희망인 것입니다.
허준이라는 연속극을 보면서 어쩌면 스승 유지태그의 아들인 유주부는 그 모양이고 천한 후손이였고 그의 몸종처럼 부리던 허준이는 그렇게 당당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유주부는 그의 어머니가 버려놓았다고 봅니다. 유지태가 키운사람은 허준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꾸짖으심에 민감했던 사람들이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령님의 권면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꾸지람은 절망하게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꾸지람은 격려이며 희망이며 용기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기만 하면 내가 도와 줄태니다시 시작해 보아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1) 죄에 대하여서라면 무슨 뜻입니까
죄를 성경에서는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화살을 쏘는 곳에는 반드시 과녁이 있습니다. 그 화살이 과녁을 맟춘 것이 아니라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과녁을 맟추기 못한 화살을 아무련 의미가 없습니다. 헛수고 할 뿐입니다.
화살을 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집중력이라고 합니다. 과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흩어지면 표적을 맞출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갖어야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표적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인생의 화살을 쏘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9절에는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신앙이 죄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의 마음이 주님을 겨냥하고 있지않는한 나의 삶은 무의미하며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야 한다.
2) 의라고 함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정직함으로 성실함으로 법과 율례를 지킴으로 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도 인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착하면 착한 것으로 죄인이며 나쁜 짓을 하면 그 하는 것으로 죄인 것입니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진리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비난했고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였습니다만 그러나 나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의의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3) 심판에 대하여라하면
이 세상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했다.
2, 인도자 이십니다.
13절이 주는 말씀은
1)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만남은 곧 진리와 생명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입산할 것도 없고 신학교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할 것도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만나면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감정의 영이 아니라 진리의 영이십니다. 흥분의 영이아니라 지극히 차분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인격의 영이십니다. 고상한 영이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 오시면 나의 생각을 사상을 마음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생각을 완전히 전환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듭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2) 자의로 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했습니다. 주님도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말만을 한다고 했습니다.
15절에 "그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도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듣는대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는대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것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것입니다. 자기것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 잘 들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태어날때부터 모태에 계셨던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40일 동안 금식할 때도 함께 했습니다. 주님의 전생을 통하여 함께 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잘알고 계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해야 합니다.
말에 진실성이 없는 거짓된 말은 도적질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자신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가 무섭게 후회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3)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인도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생각뿐만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과정까지도 실재적으로 간섭하고 인도하십니다
초대 교회의 모든 일을 성령님이 간섭하시다. 일곱집사 선택도, 아나니아 삽비라의 문제도 제비뽑지 않고 성령께서 직접 베드로에 말씀하신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보낼 때도 제비를 뽑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지시한 대로 했습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가는것도 성령님의 인도함이였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걸음마다 성령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여기 인도한다는 말은
"아고나이"라고 한다. 강제로 끌고 간다는 말입니다. 말 안들으면 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는 것이며 그래도 안들으면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4)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을 모릅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5분의 일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을 다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자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부탁한 말이 사랑도 믿음도 아니라 두려워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오늘이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 있어서 오늘을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을 가진 자만이 오늘을 가치 있게 살수 있습니다.
우리 월광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앞으로 10년을 내다 볼수 있도록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즐겁게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한 눈을 팔지 않습니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그냥 따라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신 일만을 하려고 합니다. 좀 고달프고 힘들어도 말입니다.
3,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14절에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중요한 임무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주님의 영광과 이름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이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모신 성도의 삶입니다.
성령님이 하신 일이 너무 많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오직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였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깊이 만큼 믿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살아왔는가가 오늘의 나를 판단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지라도 신앙의 어떤 변화가 없다면 그는 신앙의 깊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깊이를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내 인생의 영광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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