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 훼방죄
본문
주님이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무슨 병이든 다 고친다고 할 때 얼마나 많이 모이겠는가. 사람들은 주님을 찾기만 하면 모든 병을 다 고침을 받는다. 주님을 반드시 고쳐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당시에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에 한 명씩만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 주님은 영적인 분으로 모든 사람을 다 만나주실 수 있다.
그 분을 이런 열정으로 찾아오게 되면 다 고침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보다 열정이 뒤진다. 그 열정이 있으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겠는가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 주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라고 하신다.
1. 좋은 일에 꼭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22)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질투와 시기와 비난이 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내 마음은 어떻게 접근하는가 성품 자체가 긍정적이고 좋은 면을 보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메시야가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반면에 강한 귀신에 들렸다고 한다. 귀신의 왕자 강한 귀신에 붙들렸다고 한다.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야 한다. 이적을 통해서 희한하고 아름다운 선한 일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회개하고 주님앞에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이적을 행해도 극단적으로 바알 세붑을 힘입었다고 한다. 미쳐도 심하게 미쳤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좋은 일을 보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꼭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에 꼭 나쁜 면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밝아져야 한다. 마음이 어두워서 그렇다. 마음이 병들어서 꼭 부정적이다. 꼭 안되는 쪽으로만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가 있어서 그렇다. 또한 예수님의 친척들이 미쳤다고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예수를 가까이서 잘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2. 서로 협력하지 않는 나라를 망한다. (23-26)
"나라가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서로 협력하지 않고 불화하게 되면 그 나라는 설 수 없다. 마귀도 자기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불화하지 않고 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로 협력하지 않고 서로 헐뜯고 서로 깍아 내리게 될 때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설 수 없다는 말씀을 세번이나 계속하여 반복하신다.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한 집을 세우기 위하여 분쟁할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서 마귀들도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분쟁하는 것은 한 나라를 허무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고 분쟁하고 시기하고 헐뜯는 것은 그 나라를 허무는 것과 같은 죄라고 말씀하신다. 월남이 패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자국 내에서의 분쟁이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지원군이 대거 참여했지만 그 나라를 도와 주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분열과 분쟁은 월남을 망하게 한 것이다.
"가장 친근한 적"이라는 베트남 전을 주제로 쓴 책이 있다. 한 미군 병사가 죽었다. 적군이 쏜 총탄을 맞고 죽었다는 간단한 보고서가 있는데 이상한 것은 이 군인이 근무하던 곳은 적군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후에 그의 부모가 끝까지 파헤쳤는데 알고 보니 아군이 쏜 총알에 맞고 죽었다. 가장 친근한 적이 그리스도인일 때가 많다. 우리는 지금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서로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지금 아군에 의해 같은 그리스도인에 의해 상처입고 누워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이런 영적인 전쟁터에서 아군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있다.
하나되지 못하는 교회는 결코 서지 못한다. 사탄은 싸움을 붙이는 것이 목적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계 20:8 에 보면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말씀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하여 준비할 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의 장형 엘리압이었다. 다윗을 시기하여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한다. 다윗은 지금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이 형제이다. 이때 다윗은 형에게 대꾸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가서 싸워 이긴다. 이긴 후에 엘리압은 사라진다.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반대하는 사람이 형제다. 그러나 형제와 싸우고 대꾸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형제는 반대하지만 대꾸하지 않고 나가서 싸우면 엘리압은 사라지는 것이다.
3.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는다 (28)
복음의 핵심이다. 모든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어떤 죄라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사랑은 덥고도 남는다. 돈없이 값없이 죄로부터 해방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자비로우신 분이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한계를 긋지 마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죄는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제한을 두지 말라. 이것은 너무 큰 죄이다. 라고 할 것이 없다. 자신이 지은 죄를 알고 지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하여 달라고 할 때 용서받는다. 이 복음을 믿어야 한다. 어떤 죄도 용서함을 얻는다. 어떤 악도 깨끗해 질 수 있다. 어떤 허물도 용서함을 받는다. 눈과 같이 희어질 수 있다. 양털같이 희어 진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이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유로운 자가 될 수 있다. 아직 자기의 죄와 허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로 그 은혜의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와 그 은혜를 누리시라.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그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겠네"
4.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29)
여기서 훼방이라 함은 브라스페미아로서 '헤쳐서 말한다'란 의미이다. 성령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죽을 때가지 반항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임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자기의 완고함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대적하는 죄 이런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
성령 훼방죄는 인간의 완고함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강팍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리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일부러 끝까지 거절한다.
성령님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사역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고전 12:3)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지는 마음을 주신 것, 감동시키신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이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신앙 생활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몸 안에 거하는 성령이시다. 성령의 전이다.
그 분을 이런 열정으로 찾아오게 되면 다 고침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보다 열정이 뒤진다. 그 열정이 있으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겠는가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 주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라고 하신다.
1. 좋은 일에 꼭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22)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질투와 시기와 비난이 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내 마음은 어떻게 접근하는가 성품 자체가 긍정적이고 좋은 면을 보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메시야가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반면에 강한 귀신에 들렸다고 한다. 귀신의 왕자 강한 귀신에 붙들렸다고 한다.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야 한다. 이적을 통해서 희한하고 아름다운 선한 일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회개하고 주님앞에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이적을 행해도 극단적으로 바알 세붑을 힘입었다고 한다. 미쳐도 심하게 미쳤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좋은 일을 보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꼭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에 꼭 나쁜 면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밝아져야 한다. 마음이 어두워서 그렇다. 마음이 병들어서 꼭 부정적이다. 꼭 안되는 쪽으로만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가 있어서 그렇다. 또한 예수님의 친척들이 미쳤다고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예수를 가까이서 잘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2. 서로 협력하지 않는 나라를 망한다. (23-26)
"나라가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서로 협력하지 않고 불화하게 되면 그 나라는 설 수 없다. 마귀도 자기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불화하지 않고 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로 협력하지 않고 서로 헐뜯고 서로 깍아 내리게 될 때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설 수 없다는 말씀을 세번이나 계속하여 반복하신다.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한 집을 세우기 위하여 분쟁할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서 마귀들도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분쟁하는 것은 한 나라를 허무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고 분쟁하고 시기하고 헐뜯는 것은 그 나라를 허무는 것과 같은 죄라고 말씀하신다. 월남이 패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자국 내에서의 분쟁이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지원군이 대거 참여했지만 그 나라를 도와 주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분열과 분쟁은 월남을 망하게 한 것이다.
"가장 친근한 적"이라는 베트남 전을 주제로 쓴 책이 있다. 한 미군 병사가 죽었다. 적군이 쏜 총탄을 맞고 죽었다는 간단한 보고서가 있는데 이상한 것은 이 군인이 근무하던 곳은 적군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후에 그의 부모가 끝까지 파헤쳤는데 알고 보니 아군이 쏜 총알에 맞고 죽었다. 가장 친근한 적이 그리스도인일 때가 많다. 우리는 지금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서로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지금 아군에 의해 같은 그리스도인에 의해 상처입고 누워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이런 영적인 전쟁터에서 아군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있다.
하나되지 못하는 교회는 결코 서지 못한다. 사탄은 싸움을 붙이는 것이 목적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계 20:8 에 보면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말씀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하여 준비할 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의 장형 엘리압이었다. 다윗을 시기하여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한다. 다윗은 지금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이 형제이다. 이때 다윗은 형에게 대꾸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가서 싸워 이긴다. 이긴 후에 엘리압은 사라진다.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반대하는 사람이 형제다. 그러나 형제와 싸우고 대꾸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형제는 반대하지만 대꾸하지 않고 나가서 싸우면 엘리압은 사라지는 것이다.
3.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는다 (28)
복음의 핵심이다. 모든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어떤 죄라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사랑은 덥고도 남는다. 돈없이 값없이 죄로부터 해방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자비로우신 분이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한계를 긋지 마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죄는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제한을 두지 말라. 이것은 너무 큰 죄이다. 라고 할 것이 없다. 자신이 지은 죄를 알고 지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하여 달라고 할 때 용서받는다. 이 복음을 믿어야 한다. 어떤 죄도 용서함을 얻는다. 어떤 악도 깨끗해 질 수 있다. 어떤 허물도 용서함을 받는다. 눈과 같이 희어질 수 있다. 양털같이 희어 진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이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유로운 자가 될 수 있다. 아직 자기의 죄와 허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로 그 은혜의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와 그 은혜를 누리시라.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그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겠네"
4.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29)
여기서 훼방이라 함은 브라스페미아로서 '헤쳐서 말한다'란 의미이다. 성령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죽을 때가지 반항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임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자기의 완고함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대적하는 죄 이런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
성령 훼방죄는 인간의 완고함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강팍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리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일부러 끝까지 거절한다.
성령님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사역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고전 12:3)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지는 마음을 주신 것, 감동시키신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이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신앙 생활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몸 안에 거하는 성령이시다. 성령의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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