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 받으라
본문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 이 열등의식. 반항. 원망.. 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는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 강대상에서 존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남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에게는“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문을 열어 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목회공부를 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 539(새찬488)장으로 지금도 널리 불리어지게 되었습니다.
모토를 이렇게 놀랍도록 변화 시킨 것은 누구입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의 하시는 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일하시는 것을 체험한 사람마다 비유로 많이 말씀하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시는데 그 중요한 비유 중에 불입니다.
오늘 강단의 꽃은 빠알간 색이 많습니다. 불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불같이 뜨겁게도 하시고 불로 태우듯 우리의 죄를 태우고 병균을 태워서 건강하고 믿음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신앙의 열심히 있는 사람도 되게 하십니다. 꽃 속에 비둘기가 있기도 한데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신앙으로 더욱 순결하게 하십니다.
기독교역사에 성령님의 역사는 대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르는데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제 3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는 성부여호와 하나님의 시대로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는 성자 예수님 시대로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로 분류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닭 쫓던 개처럼 하늘만 쳐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 허탈한 제자들에게 활력을 주고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120여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시면서 제자들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으로 불이 붙었습니다. 교회가 힘들 때 마다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교회에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복음서의 맨 마지막 부분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이고 둘째는 성령을 받으라 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성령을 받아야 할 강력한 필요성을 아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에는 두 가지의 의미를 기억하여 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도 성령을 받는 것이고,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도 성령을 받는다고 표현합니다.
성령의 내주는 물로 비유하면 바닷물에 발목만 잠긴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것은 바닷물에 온 몸을 잠근 것입니다. 오늘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이미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충만히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을 성령 강림절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교회역사상 최초로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신 날입니다. 맨 처음 성령충만 받을 때 의 제자들의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령충만 받는 법을 말씀 드리며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시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맨 처음 성령충만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데 2장의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은 1장에 나옵니다. 1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4절에"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은 성령충만 받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하십니다. 성령충만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그 약속을 신뢰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을 구약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둘 다 약은 약속입니다. 옛 약속이고 새 약속입니다. 믿음은 그 약속을 이루실 줄 믿고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큰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기다리는 아브라함은 가끔 흔들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국 25년만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조급하여서 그렇지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말씀은 성령충만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500여명 정도였는데 성령충만의 현장에는 120여 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380명 정도는 약속을 믿지 못하고 흩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약속을 기다린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충만은 결코 변덕스럽지 않으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그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을 기다리며 성령을 기다릴 때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2)제자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성경에 그 제자들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고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한마음일 때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에 가셨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 소경의 손을 붙들고 밖으로 나가셔서 눈에 침을 바르며 안수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 하시니 그가 살펴 보면서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니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밝히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시면 어렴풋이나마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만 사람만 많이 보입니다. 성가대 찬양하는 노래 소리만 들립니다. 설교는 잔소리로만 들립니다. 저는 청년 때 교회 다니면서 제가 좋아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그 자매와 특별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 자매가 왔는가에 관심이 많고 그 자매의 행동에 늘 신경이 쓰입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에서 계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하여도 그렇게 계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계돈 받을 사람이 왔는가 찾아보고 왔으면 예배 마치자마자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계돈 받을 궁리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친한 사람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 사람을 누가 나쁘게 말하면 화를 냅니다. 예배시간에도 그 사람이 왔는가 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밝히 보이지 않습니다.
소경의 눈에 예수님이 밝히 보이듯이 예수님이 밝이 보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을 섬기면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오순절교회에 제자들이 함께 한마음이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에 예수님을 향하여 한마음이 되어 사랑하고 섬기며 오순절의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느 부모님은 자녀들의 울음소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생겼다고 합니다. 크게 가짜울음과 진짜울음으로 분별하는데 밤에 자다가 소리가 크지도 않고 칭얼대는 울음은 곧 잠이 든답니다. 그러나 진짜울음은 울음소리가 간절하고 소리도 크고 그치지도 않아서 가서 도와 주어야 한답니다. 주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간절하지 않은 형식만 갖춘 기도를 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의미는 끊임없이 기도하였다는 것이고 힘써서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힘써 기도하였다는 의미는 어느 목사님이 태국에 여행을 갔다가 산호섬을 배를 타고 돌아보는 코스에서 그만 배가 기관이 고장이 나서 2시간동안 표류하는데 아무런 배도 없고 연락도 안되는 배에서 기다리는데 불평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낙심하는 사람, 우는 사람이 있는데 목사님들은 함께 함께 통성기도를 하였답니다. 통성기도를 하고 나니 멀리 고기잡이 배가 지나가서 합창으로 소리를 질러 구조를 요청하여 살아났답니다. 그 때 기도가 너무 간절 하였다고 합니다.
예비역 장군 중에 박창근 장로님은 6,25때 공산당에 포위되어 3일간 먹지 못하고 죽게 되었는데 죽음을 앞에 두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를 하는데 밤 11시에 탈출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밤 11시를 기다리는데 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 도망 나와도 바람 소리인 줄 알고 보초들이 알아차리지 못하여 살아났다고 기도의 위력을 말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전에 제자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것은 그렇게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바라는 겸손한 기도에 충만히 임합니다. 전혀 힘쓰는 기도로 응답과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면 지금도 오순절의 그 성령님의 역사가 동일하게 임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는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 강대상에서 존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남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에게는“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문을 열어 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목회공부를 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 539(새찬488)장으로 지금도 널리 불리어지게 되었습니다.
모토를 이렇게 놀랍도록 변화 시킨 것은 누구입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의 하시는 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일하시는 것을 체험한 사람마다 비유로 많이 말씀하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시는데 그 중요한 비유 중에 불입니다.
오늘 강단의 꽃은 빠알간 색이 많습니다. 불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불같이 뜨겁게도 하시고 불로 태우듯 우리의 죄를 태우고 병균을 태워서 건강하고 믿음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신앙의 열심히 있는 사람도 되게 하십니다. 꽃 속에 비둘기가 있기도 한데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신앙으로 더욱 순결하게 하십니다.
기독교역사에 성령님의 역사는 대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르는데 성령 여호와 하나님은 제 3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는 성부여호와 하나님의 시대로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는 성자 예수님 시대로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로 분류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닭 쫓던 개처럼 하늘만 쳐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 허탈한 제자들에게 활력을 주고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120여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시면서 제자들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으로 불이 붙었습니다. 교회가 힘들 때 마다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교회에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복음서의 맨 마지막 부분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이고 둘째는 성령을 받으라 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성령을 받아야 할 강력한 필요성을 아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에는 두 가지의 의미를 기억하여 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도 성령을 받는 것이고,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도 성령을 받는다고 표현합니다.
성령의 내주는 물로 비유하면 바닷물에 발목만 잠긴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것은 바닷물에 온 몸을 잠근 것입니다. 오늘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이미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충만히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을 성령 강림절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교회역사상 최초로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신 날입니다. 맨 처음 성령충만 받을 때 의 제자들의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령충만 받는 법을 말씀 드리며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시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맨 처음 성령충만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데 2장의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은 1장에 나옵니다. 1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4절에"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은 성령충만 받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하십니다. 성령충만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그 약속을 신뢰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을 구약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둘 다 약은 약속입니다. 옛 약속이고 새 약속입니다. 믿음은 그 약속을 이루실 줄 믿고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큰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기다리는 아브라함은 가끔 흔들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국 25년만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조급하여서 그렇지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말씀은 성령충만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500여명 정도였는데 성령충만의 현장에는 120여 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380명 정도는 약속을 믿지 못하고 흩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약속을 기다린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충만은 결코 변덕스럽지 않으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그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을 기다리며 성령을 기다릴 때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2)제자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성경에 그 제자들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고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한마음일 때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에 가셨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 소경의 손을 붙들고 밖으로 나가셔서 눈에 침을 바르며 안수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 하시니 그가 살펴 보면서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니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밝히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시면 어렴풋이나마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만 사람만 많이 보입니다. 성가대 찬양하는 노래 소리만 들립니다. 설교는 잔소리로만 들립니다. 저는 청년 때 교회 다니면서 제가 좋아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그 자매와 특별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 자매가 왔는가에 관심이 많고 그 자매의 행동에 늘 신경이 쓰입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에서 계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하여도 그렇게 계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계돈 받을 사람이 왔는가 찾아보고 왔으면 예배 마치자마자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계돈 받을 궁리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친한 사람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 사람을 누가 나쁘게 말하면 화를 냅니다. 예배시간에도 그 사람이 왔는가 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밝히 보이지 않습니다.
소경의 눈에 예수님이 밝히 보이듯이 예수님이 밝이 보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을 섬기면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오순절교회에 제자들이 함께 한마음이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에 예수님을 향하여 한마음이 되어 사랑하고 섬기며 오순절의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느 부모님은 자녀들의 울음소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생겼다고 합니다. 크게 가짜울음과 진짜울음으로 분별하는데 밤에 자다가 소리가 크지도 않고 칭얼대는 울음은 곧 잠이 든답니다. 그러나 진짜울음은 울음소리가 간절하고 소리도 크고 그치지도 않아서 가서 도와 주어야 한답니다. 주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간절하지 않은 형식만 갖춘 기도를 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의미는 끊임없이 기도하였다는 것이고 힘써서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힘써 기도하였다는 의미는 어느 목사님이 태국에 여행을 갔다가 산호섬을 배를 타고 돌아보는 코스에서 그만 배가 기관이 고장이 나서 2시간동안 표류하는데 아무런 배도 없고 연락도 안되는 배에서 기다리는데 불평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낙심하는 사람, 우는 사람이 있는데 목사님들은 함께 함께 통성기도를 하였답니다. 통성기도를 하고 나니 멀리 고기잡이 배가 지나가서 합창으로 소리를 질러 구조를 요청하여 살아났답니다. 그 때 기도가 너무 간절 하였다고 합니다.
예비역 장군 중에 박창근 장로님은 6,25때 공산당에 포위되어 3일간 먹지 못하고 죽게 되었는데 죽음을 앞에 두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를 하는데 밤 11시에 탈출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밤 11시를 기다리는데 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 도망 나와도 바람 소리인 줄 알고 보초들이 알아차리지 못하여 살아났다고 기도의 위력을 말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전에 제자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것은 그렇게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바라는 겸손한 기도에 충만히 임합니다. 전혀 힘쓰는 기도로 응답과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면 지금도 오순절의 그 성령님의 역사가 동일하게 임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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