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충만으로 산 사람
본문
6월 달은 성령 충만의 달입니다. 세재주일을 맞아 “성령 충만으로 산 요셉”이라는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많은 은혜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제 3위신이신 성령 충만함을 말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신들린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당도 신이 들려야 무당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처럼 신앙인들도 신이 들려야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신들리지 않고는 성경이 요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숭고한 뜻을 지켜 나갈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충만한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성령 충만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생 전체를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같은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요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셉은 성령 충만함으로 일생을 산 사람입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생애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본문 말씀
오늘 창세기 39장 1절에서 6절까지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보디발 가정에서 "요셉의 형통"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통하게 된 이유를 성경은 말합니다.
본문이 1절에서 6절까지인데 요셉이라고 하는 말이 8번이 나옵니다. "그"라고 하는 말도 6번이 나옵니다. 요셉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면 이렇게 거듭 강조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요셉이 어떤 사람이기에 형통했는가를 본문의 말씀에 따라 상고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였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형통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셩령충만한 삶으로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형통하게 하였다는 말로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충만함으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형통의 복을 허락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충만한 삶은 요셉에 가는 길에 형통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합니다. 바로까지도 요셉을 평하기를 41:3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신에 이끌려 사는 삶
창 39:1-2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신앙생활은 신에 이끌려 사는 생활 이다. 이 같이 요셉은 신에 이끌려 애급으로 내려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저항하지 않고 신에 이끌려 순종하는 사람으로 보디발 장관 집에 종으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이끌려 사는 생활에 종착역은 애급 총리요 세계민족을 구원하는데 있다.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고궁이나 서울 랜드 같은 곳으로 구경하는 일
아장 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고궁 구경을 대공원에 갈 때가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좋은 곳 놀이터가 많고 사자도 있고 호랑이도 있고 먹을 것도 많은 곳으로 이끌고 가려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끌고 가려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들은 좋은 볼거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사주려 하지만 아이들은 유해식품을 요구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이끌려 사는 삶은 여호와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우리들에게 주시려 한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고 세상으로 나간다면 안 된다.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렸다.
누가복음 4장에 보게 되면 예수님도 세례 받을 때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도 성령의 이끌렸다.
갈릴리로 돌아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공생애에 나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렸다.
요셉이 성령의 이끌리는 과정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요셉이라고 하는 17살 난 소년은 자기 형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형들이 더 이상 그의 꼴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단이라고 하는 들에서 형들이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떡을 한 보따리 지워지고는 "가서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너라. "고 말씀하셔서 땀 흘리며 고생하며 찾아갔습니다.
형들은 이 동생이 반갑지가 않습니다. 동생의 옷을 다 벗기고 그 옷을 갈기갈기 찢은 후에 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발라 아버지에게 보내면서 "동생의 옷이 아닙니까 분명히 악한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 같습니다" 아들 요셉의 옷을 보고 야곱은 꼼짝없이 속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이 도망을 가지 못하게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두었다가 애굽을 왕래하는 이스마엘 장사꾼에게 은 20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은 사람을 사서 팔면 수지가 맞습니다. 이스마엘 사람이 요셉을 사 가지고 요셉을 이끌고 애굽에 갔습니다. 애굽에 갔더니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이 보자마자 바로 요셉을 사서 자기의 종을 삼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분명히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이끌려갔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시편 105편 17절을 보면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 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이끌렸지만 성령께 이끌려 갔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팔려 갈 때 죽어도 안가겠다 합니다. 한번만 살려 달라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겠습니까 압지를 떠나는 것이 죽는 길 같았기 때문에 안가겠다고 발버둥친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요셉을 꼭 애굽에 보내야겠는데 죽어도 안가겠다고 하는지라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는 방법이 형들을 시켜서 장사꾼에게 파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 요셉을 놓칠 수 있겠습니까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누가 팔아먹지도 못하고 이끌고 가지도 못합니다. 분명히 그렇게 끌고 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종이 된 것도 보디발장관의 종이 되게하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비록 이스마엘 사람들이 끌고 갔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려 간 사람입니다. 요셉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뜻과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 자기 집에서 사랑 받고 응석부리며 성장한다면 나중에 큰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애굽이라고 하는 그 때 당시 세계적으로 문명이 최고로 발달한 나라 그 넓은 천지로 보내어 거기서 훈련시키고 키워야만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계획과 목적을 요셉이 알겠습니까 죽어도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요셉은 이렇듯 여호와 하나님께 애굽까지 이끌려 간 사람입니다. 애굽으로 이끌려가서 종살이를 하면서 큰 집 살림을 배웠고 나중에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정치범들에게서 정치를 배웠습니다. 이끌려 간지 13년 만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이상 더 형통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죽기보다 싫은 길이었고 가보면 종살이라는 고생이 기다려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키우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 이끌려 가는 사람이 형통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웨덴에 휴 애런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스웨덴에 태어나서 18살까지 얼마나 집이 가난한지 도무지 거기에서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여비를 마련해 줄테니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희망과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라. 죽든지 살든지 거기 가서 결판을 내라"고 하면서 여비를 마련해 주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 땅에 간들 어디에 발을 붙이며 어디에 등을 붙이고 살겠습니까 몇 달 동안 온갖 고생하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서부개척시대인지라 태평양 연안 서부 쪽으로 가면 뭔가 그래도 일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부개척시대의 이야기니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몬타나주에 들어서면서 콜롬버스 시를 지날 때 차장이 표 검사를 합니다. 돈이 없어 공짜로 기차를 탄 무임승객이라는 사실이 들통이 납니다. 그래서 강제 하차를 당했습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정없이 내동댕이쳐 버림을 받았습니다. 단 일 달러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몬타나 주에는 유명한 옐로우스톤이라는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먹으며 굶으며 강가로 갔습니다. 죽고 싶어서 찾아 간 것입니다. 강가에 멍하니 앉아서 고향을 생각해 보고 앞날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 일 저 일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다가 기도 해 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머리 속에 번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데 자살해 죽을 수 없지는 않나 자살해 죽으려고 여기까지 왔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가난 속에 집어넣고 이곳으로 오도록 이끌어 주셨는데 여기서 이렇게 인생을 끝내라고 인도해 주셨겠는가 그것은 아니지 않는가
요셉도 죽기보다 가기 싫은 길, 끌려가서 보니 더 비참한 종살이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는가 거기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성실하게 살았더니 형통하지 않았는가 나도 이제 죽을 결심까지 했었으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보리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얻어먹기도 하고 벌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었고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몬타나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역대 주지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 지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난이 여러분을 내 몰고 몰아서 더 이상 못 버티겠다. 결국 갈 곳은 한강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지경으로 내 몰린 적은 없습니까 요셉처럼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고 죽어도 가기 싫은데 가야만 되었고 종살이와 감옥살이가 기다리던 요셉처럼 죽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는 고난을 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고난을 당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주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이끌어 갔었고 고난을 통해서 그를 연단하사 키워주시니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에 유학을 한들 그가 13년 만에 어떻게 총리가 되겠습니까 정치계에 투신한들 13년 만에 어떻게 총리가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그런 계획 하에 이끌어 가셨고 그 자리에서 충실하고 성실했더니 이렇게 형통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때로는 여러분들의 고난을 주어서 성령께서 이끌고 가시고자 하는 곳까지 끌고 가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거기에는 뜻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면 요셉처럼 형통이 거기에 있습니다.
2 종으로 섬기는 생활입니다.
창 39:3-4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요셉은 성령의 이끌려 애급의 보디발 장관집에 들어가 종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종은 보디발 장관집의 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본문으로 3-4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이라고 하는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땅까지 이끌어다가 종으로 팔아넘기시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 않게 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과 그의 자녀들은 자기의 가정에만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자기의 사는 가나안 땅에만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떠나면 큰 변이 나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애굽 땅 자기가 종으로 팔려 고생하는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는 거기에 가서 오히려 더 잘 믿었다는 말입니다. 보디발 장군이 요셉이 하는 일을 보니 얼마나 잘하는지 주인 보다 더 잘합니다. 이유로 성경에는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보디발장관이 요셉에게 은혜로 대했다는 것이다. 은혜로 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 3위신인 성령 신에 의하여 은혜를 입히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란 높은 사람에게는 아부하고 낮은 사람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가 인간입니다. 주인에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신적인 일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본문에서 은혜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관심 혹은 특별한 은총을 의미합니다. 왕이 자기 신하들에게 특별히 사랑해 주는 그 사랑을 은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은총을 받는 신하는 왕을 위해서 죽을지 살지 모르고 충성을 합니다. 그 은총을 입지 못하면 절대 신하가 왕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이같이 요셉은 주인에게 은총을 입었지만 그 은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신 보디발 장관으로 하여금 요셉에게 은혜를 입도록 하신 것입니다. 보디발 장관을 위해 충성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신앙인들도 동일합니다. 사라에게 은혜를 입어 그 사람에게 충성하기도 하지만 신앙적인 면에서는 은혜의 근원인 성령님인 것을 알아 여호와 하나님에게 충성하듯이 주인에게도 충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충성하는 과정
1) 예수 믿는 사람들의 처음 자세는 내가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나 외에 너는 모른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내가 알바 아니라고 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면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내게 혹시 손해가 된다면 교회나 교인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냉정해집니다. 그래서 자기만 꼭 위하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2) 조금 은혜를 받으면 자기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가령, '내가 백만원을 헌금했으니 천만 원은 주셔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나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헌금을 하고 나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만 원 헌금했으니 천만 원의 축복을 의당 받아야 하겠다고 합니다. 그 반대로 천만 원을 벌게 해 주면 백만 원을 헌금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계산하고 흥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흥정의 대상입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장사하는 것입니까 '내가 이 만큼 봉사하고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갑절이나 주실거다'라고 꼭 계산을 하고 봉사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래도 조금 은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봉사 한다는 사람들입니다.
3) 은혜를 크게 받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까닭에 나의 유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는 상관이 없습니다. "너 왜 그 땅을 파고 있느냐 너에게 득 될 것도 없겠는데"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파라고 하시니 팝니다. " "거기에는 뭐하러 가느냐"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갑니다. " "뭐하러 매일 철야하고 전도하느냐 돈이 나오냐 밥이 생기느냐"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니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아도 크게 은혜를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내 놓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요셉이 성령의 은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으로 목숨을 바칠 만큼 충성을 한 것입니다.
은혜 받고 섬길 때 성령님이 그 요셉이 하는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만약 요셉까닭에 복을 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요셉에게 큰 어려움이 생겼을 겁니다. 은혜 받고 섬기는 요셉에게 여호와 하나님도 복을 주시고 은혜를 또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은혜 많이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하고 높이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주인의 재물을 위임 받으리만치 충성하는 요셉
본문으로 5- 6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종에게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그러면 종에게는 재산을 관리할 관리권도 없습니다. 청지기에게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관리하는 관리권만 있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이 종으로 그 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일을 잘하니까 '이 집의 엄청난 재산들을 네가 관리하라'고 하면서 종들 중에서 그를 청지기로 세웠습니다. 그 집 재산을 전부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청지기에게는 소유권은 없어도 관리권은 있습니다. 청지기가 그 집 재산을 관리하면서 축을 내면 큰 변이 납니다. 청지기로 맡겼는데 그 집 재산을 제 멋대로 하다가 축을 낸다면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요셉이 청지기가 노릇을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집의 구석구석에까지 복을 내리니 밭의 끝까지 복이 미치고 번영했습니다.
청지기 노릇을 잘 하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복을 내려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나중에는 13년 만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종노릇을 11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감옥살이 2년을 했습니다. 그 끝에 나이 30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나라 살림은 큰 집 살림보다 조금 더 큰 것뿐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살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감옥에서는 정치범들이 갇히는 곳이었는지라 그들에게서 정치를 배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계획이 있으셔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시키신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청지기 노릇을 잘 했고 감옥에서도 청지기 노릇을 잘 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온갖 복을 다 내려 주시고 나중에는 국무총리로 세우지 않습니까 청지기에게 소유권은 없지만 관리권은 있다고 하여 제 마음대로 재산을 처분했다가는 큰 변이 납니다. 반드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써야 되고 주인의 뜻대로 써야 됩니다. 주인을 무시하고 물 쓰듯 쓰면서 제 멋대로 살았다가는 주인의 진노를 면치 못합니다.
나의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맡겨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목숨이든지 재산이든지 나의 재능, 언어, 학문과 지식, 명예등은 모두가 다 나의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위미 받은 것입니다.
긂으로 주인의 의중에 맞도록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임의대로 사용하였다가는 튼코 닥칩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주일 성수나 소득의 십일조를 바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청지기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맺는 말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1) 성령의 이끌려 산 사람입니다. 죽기보다 싫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려 가고 보니 그 곳에 일터가 있었고 그 곳에 장가갈 아내도 있었고 그 곳에 성공할 수 있는 형통의 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려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종으로서 섬긴 사람입니다. 성령의 이끌려 사는 사람은 봉사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의 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3) 청지기 노릇을 잘 한 사람입니다.
성령의 이끌리지 않는다면 청지기 생활을 잘못합니다.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성하였다.
성령 충만함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제 3위신이신 성령 충만함을 말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신들린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당도 신이 들려야 무당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처럼 신앙인들도 신이 들려야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신들리지 않고는 성경이 요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숭고한 뜻을 지켜 나갈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충만한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성령 충만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생 전체를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같은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요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셉은 성령 충만함으로 일생을 산 사람입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생애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본문 말씀
오늘 창세기 39장 1절에서 6절까지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보디발 가정에서 "요셉의 형통"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통하게 된 이유를 성경은 말합니다.
본문이 1절에서 6절까지인데 요셉이라고 하는 말이 8번이 나옵니다. "그"라고 하는 말도 6번이 나옵니다. 요셉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면 이렇게 거듭 강조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요셉이 어떤 사람이기에 형통했는가를 본문의 말씀에 따라 상고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였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형통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셩령충만한 삶으로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형통하게 하였다는 말로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충만함으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형통의 복을 허락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충만한 삶은 요셉에 가는 길에 형통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합니다. 바로까지도 요셉을 평하기를 41:3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신에 이끌려 사는 삶
창 39:1-2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신앙생활은 신에 이끌려 사는 생활 이다. 이 같이 요셉은 신에 이끌려 애급으로 내려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저항하지 않고 신에 이끌려 순종하는 사람으로 보디발 장관 집에 종으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이끌려 사는 생활에 종착역은 애급 총리요 세계민족을 구원하는데 있다.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고궁이나 서울 랜드 같은 곳으로 구경하는 일
아장 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고궁 구경을 대공원에 갈 때가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좋은 곳 놀이터가 많고 사자도 있고 호랑이도 있고 먹을 것도 많은 곳으로 이끌고 가려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끌고 가려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들은 좋은 볼거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사주려 하지만 아이들은 유해식품을 요구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이끌려 사는 삶은 여호와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우리들에게 주시려 한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고 세상으로 나간다면 안 된다.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렸다.
누가복음 4장에 보게 되면 예수님도 세례 받을 때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도 성령의 이끌렸다.
갈릴리로 돌아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공생애에 나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렸다.
요셉이 성령의 이끌리는 과정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요셉이라고 하는 17살 난 소년은 자기 형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형들이 더 이상 그의 꼴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단이라고 하는 들에서 형들이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떡을 한 보따리 지워지고는 "가서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너라. "고 말씀하셔서 땀 흘리며 고생하며 찾아갔습니다.
형들은 이 동생이 반갑지가 않습니다. 동생의 옷을 다 벗기고 그 옷을 갈기갈기 찢은 후에 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발라 아버지에게 보내면서 "동생의 옷이 아닙니까 분명히 악한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 같습니다" 아들 요셉의 옷을 보고 야곱은 꼼짝없이 속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이 도망을 가지 못하게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두었다가 애굽을 왕래하는 이스마엘 장사꾼에게 은 20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은 사람을 사서 팔면 수지가 맞습니다. 이스마엘 사람이 요셉을 사 가지고 요셉을 이끌고 애굽에 갔습니다. 애굽에 갔더니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이 보자마자 바로 요셉을 사서 자기의 종을 삼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분명히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이끌려갔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시편 105편 17절을 보면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 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이끌렸지만 성령께 이끌려 갔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팔려 갈 때 죽어도 안가겠다 합니다. 한번만 살려 달라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겠습니까 압지를 떠나는 것이 죽는 길 같았기 때문에 안가겠다고 발버둥친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요셉을 꼭 애굽에 보내야겠는데 죽어도 안가겠다고 하는지라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는 방법이 형들을 시켜서 장사꾼에게 파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 요셉을 놓칠 수 있겠습니까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누가 팔아먹지도 못하고 이끌고 가지도 못합니다. 분명히 그렇게 끌고 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종이 된 것도 보디발장관의 종이 되게하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비록 이스마엘 사람들이 끌고 갔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려 간 사람입니다. 요셉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뜻과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 자기 집에서 사랑 받고 응석부리며 성장한다면 나중에 큰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애굽이라고 하는 그 때 당시 세계적으로 문명이 최고로 발달한 나라 그 넓은 천지로 보내어 거기서 훈련시키고 키워야만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계획과 목적을 요셉이 알겠습니까 죽어도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요셉은 이렇듯 여호와 하나님께 애굽까지 이끌려 간 사람입니다. 애굽으로 이끌려가서 종살이를 하면서 큰 집 살림을 배웠고 나중에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정치범들에게서 정치를 배웠습니다. 이끌려 간지 13년 만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이상 더 형통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죽기보다 싫은 길이었고 가보면 종살이라는 고생이 기다려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키우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 이끌려 가는 사람이 형통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웨덴에 휴 애런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스웨덴에 태어나서 18살까지 얼마나 집이 가난한지 도무지 거기에서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여비를 마련해 줄테니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희망과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라. 죽든지 살든지 거기 가서 결판을 내라"고 하면서 여비를 마련해 주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 땅에 간들 어디에 발을 붙이며 어디에 등을 붙이고 살겠습니까 몇 달 동안 온갖 고생하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서부개척시대인지라 태평양 연안 서부 쪽으로 가면 뭔가 그래도 일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부개척시대의 이야기니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몬타나주에 들어서면서 콜롬버스 시를 지날 때 차장이 표 검사를 합니다. 돈이 없어 공짜로 기차를 탄 무임승객이라는 사실이 들통이 납니다. 그래서 강제 하차를 당했습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정없이 내동댕이쳐 버림을 받았습니다. 단 일 달러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몬타나 주에는 유명한 옐로우스톤이라는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먹으며 굶으며 강가로 갔습니다. 죽고 싶어서 찾아 간 것입니다. 강가에 멍하니 앉아서 고향을 생각해 보고 앞날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 일 저 일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다가 기도 해 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머리 속에 번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데 자살해 죽을 수 없지는 않나 자살해 죽으려고 여기까지 왔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가난 속에 집어넣고 이곳으로 오도록 이끌어 주셨는데 여기서 이렇게 인생을 끝내라고 인도해 주셨겠는가 그것은 아니지 않는가
요셉도 죽기보다 가기 싫은 길, 끌려가서 보니 더 비참한 종살이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는가 거기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성실하게 살았더니 형통하지 않았는가 나도 이제 죽을 결심까지 했었으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보리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얻어먹기도 하고 벌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었고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몬타나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역대 주지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 지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난이 여러분을 내 몰고 몰아서 더 이상 못 버티겠다. 결국 갈 곳은 한강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지경으로 내 몰린 적은 없습니까 요셉처럼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고 죽어도 가기 싫은데 가야만 되었고 종살이와 감옥살이가 기다리던 요셉처럼 죽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는 고난을 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고난을 당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주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이끌어 갔었고 고난을 통해서 그를 연단하사 키워주시니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에 유학을 한들 그가 13년 만에 어떻게 총리가 되겠습니까 정치계에 투신한들 13년 만에 어떻게 총리가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그런 계획 하에 이끌어 가셨고 그 자리에서 충실하고 성실했더니 이렇게 형통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때로는 여러분들의 고난을 주어서 성령께서 이끌고 가시고자 하는 곳까지 끌고 가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거기에는 뜻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면 요셉처럼 형통이 거기에 있습니다.
2 종으로 섬기는 생활입니다.
창 39:3-4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요셉은 성령의 이끌려 애급의 보디발 장관집에 들어가 종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종은 보디발 장관집의 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본문으로 3-4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이라고 하는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땅까지 이끌어다가 종으로 팔아넘기시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 않게 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과 그의 자녀들은 자기의 가정에만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자기의 사는 가나안 땅에만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떠나면 큰 변이 나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애굽 땅 자기가 종으로 팔려 고생하는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는 거기에 가서 오히려 더 잘 믿었다는 말입니다. 보디발 장군이 요셉이 하는 일을 보니 얼마나 잘하는지 주인 보다 더 잘합니다. 이유로 성경에는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보디발장관이 요셉에게 은혜로 대했다는 것이다. 은혜로 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 3위신인 성령 신에 의하여 은혜를 입히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란 높은 사람에게는 아부하고 낮은 사람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가 인간입니다. 주인에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신적인 일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본문에서 은혜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관심 혹은 특별한 은총을 의미합니다. 왕이 자기 신하들에게 특별히 사랑해 주는 그 사랑을 은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은총을 받는 신하는 왕을 위해서 죽을지 살지 모르고 충성을 합니다. 그 은총을 입지 못하면 절대 신하가 왕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이같이 요셉은 주인에게 은총을 입었지만 그 은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신 보디발 장관으로 하여금 요셉에게 은혜를 입도록 하신 것입니다. 보디발 장관을 위해 충성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신앙인들도 동일합니다. 사라에게 은혜를 입어 그 사람에게 충성하기도 하지만 신앙적인 면에서는 은혜의 근원인 성령님인 것을 알아 여호와 하나님에게 충성하듯이 주인에게도 충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충성하는 과정
1) 예수 믿는 사람들의 처음 자세는 내가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나 외에 너는 모른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내가 알바 아니라고 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면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내게 혹시 손해가 된다면 교회나 교인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냉정해집니다. 그래서 자기만 꼭 위하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2) 조금 은혜를 받으면 자기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가령, '내가 백만원을 헌금했으니 천만 원은 주셔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나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헌금을 하고 나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만 원 헌금했으니 천만 원의 축복을 의당 받아야 하겠다고 합니다. 그 반대로 천만 원을 벌게 해 주면 백만 원을 헌금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계산하고 흥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흥정의 대상입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장사하는 것입니까 '내가 이 만큼 봉사하고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갑절이나 주실거다'라고 꼭 계산을 하고 봉사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래도 조금 은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봉사 한다는 사람들입니다.
3) 은혜를 크게 받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까닭에 나의 유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는 상관이 없습니다. "너 왜 그 땅을 파고 있느냐 너에게 득 될 것도 없겠는데"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파라고 하시니 팝니다. " "거기에는 뭐하러 가느냐"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갑니다. " "뭐하러 매일 철야하고 전도하느냐 돈이 나오냐 밥이 생기느냐"라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니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아도 크게 은혜를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내 놓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요셉이 성령의 은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으로 목숨을 바칠 만큼 충성을 한 것입니다.
은혜 받고 섬길 때 성령님이 그 요셉이 하는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만약 요셉까닭에 복을 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요셉에게 큰 어려움이 생겼을 겁니다. 은혜 받고 섬기는 요셉에게 여호와 하나님도 복을 주시고 은혜를 또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은혜 많이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하고 높이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주인의 재물을 위임 받으리만치 충성하는 요셉
본문으로 5- 6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종에게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그러면 종에게는 재산을 관리할 관리권도 없습니다. 청지기에게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관리하는 관리권만 있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이 종으로 그 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일을 잘하니까 '이 집의 엄청난 재산들을 네가 관리하라'고 하면서 종들 중에서 그를 청지기로 세웠습니다. 그 집 재산을 전부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청지기에게는 소유권은 없어도 관리권은 있습니다. 청지기가 그 집 재산을 관리하면서 축을 내면 큰 변이 납니다. 청지기로 맡겼는데 그 집 재산을 제 멋대로 하다가 축을 낸다면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요셉이 청지기가 노릇을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집의 구석구석에까지 복을 내리니 밭의 끝까지 복이 미치고 번영했습니다.
청지기 노릇을 잘 하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복을 내려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나중에는 13년 만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종노릇을 11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감옥살이 2년을 했습니다. 그 끝에 나이 30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나라 살림은 큰 집 살림보다 조금 더 큰 것뿐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살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감옥에서는 정치범들이 갇히는 곳이었는지라 그들에게서 정치를 배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계획이 있으셔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시키신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청지기 노릇을 잘 했고 감옥에서도 청지기 노릇을 잘 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온갖 복을 다 내려 주시고 나중에는 국무총리로 세우지 않습니까 청지기에게 소유권은 없지만 관리권은 있다고 하여 제 마음대로 재산을 처분했다가는 큰 변이 납니다. 반드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써야 되고 주인의 뜻대로 써야 됩니다. 주인을 무시하고 물 쓰듯 쓰면서 제 멋대로 살았다가는 주인의 진노를 면치 못합니다.
나의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맡겨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목숨이든지 재산이든지 나의 재능, 언어, 학문과 지식, 명예등은 모두가 다 나의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위미 받은 것입니다.
긂으로 주인의 의중에 맞도록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임의대로 사용하였다가는 튼코 닥칩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주일 성수나 소득의 십일조를 바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청지기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맺는 말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1) 성령의 이끌려 산 사람입니다. 죽기보다 싫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려 가고 보니 그 곳에 일터가 있었고 그 곳에 장가갈 아내도 있었고 그 곳에 성공할 수 있는 형통의 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려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종으로서 섬긴 사람입니다. 성령의 이끌려 사는 사람은 봉사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의 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3) 청지기 노릇을 잘 한 사람입니다.
성령의 이끌리지 않는다면 청지기 생활을 잘못합니다.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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