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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의 공동체

본문

시편 133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 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일! 머리 위의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아론은 흰 수염이 많이 났다고 그럽니다.
아론에게 난 수염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수염만 잡아도 우리 백성이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론의 머리에서 메시아에게 주시던 축복의 기름을 부어 주시니 그 기름이 아론 지도자의 머리에만 있지 않고 아론의 수염을 타고 내려서 옷깃까지 젖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축복을 주시면 복은 메시아한테만 머물지 않고 메시아의 자손까지 흐르고 메시아와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내립니다.
오늘 비가 와서 머리와 옷이 젖습니다.
만약 이 비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기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능하면 비를 피하지 마시고 비를 많이 맞아서 옷을 많이 적시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하늘의 축복이라면 이 내리는 기름 속에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라 이름하는 축복입니다. 우산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맞는 인생의 비가 만약에 영생의 축복의 비라고 하면, 우리에게 주신 추위와 눈과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이 영생의 축복의 말씀이라고 하면, 그것이 때로는 슬픔의 눈물이고 기쁨의 눈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영생의 축복이라고 하면 그 눈물은 흘려야 합니다. 그 웃음은 크게 웃어야 합니다.
단 그 속에 영생이 없으면 눈물은 피해야 합니다.
이번 TV를 온통 장식한 이산 가족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까
그 눈물은 그 만남은 철조망도, 국경도, 체재도, 이념도 넘었습니다.
적어도 3박 4일 동안만은 그랬습니다.
돌아오면서 흘린 그 눈물 속에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영생이라는 축복의 약속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 반드시 주렁주렁 열매맺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눈물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론의 머리 위에 부어 주셨던 눈물. 그 눈물은 만난 이산 가족 당사자만의 눈물이 아닙니다.
그 분들의 가족과 후손과 같은 가정이라는 옷을 입은 모든 사람들을 흥건히 적시고도 남을 그런 눈물입니다. 이 눈물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한 생명의 축복의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물을 얼마나 흘리고 사셨습니까 그 눈물은 모여서 여러분이 상상도 못한 엄청난 일을 해 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을 무엇이라고 표현했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함께 모이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선을 이루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모든 일을 함께 협력하는 사람들, 선을 이루는 사람들, 부름 받고 협력하고 선을 이루는 모든 과정을 엮어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라 이름하는 분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은 부름 받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 부름 받은 사람은 함께 협력하여 일을 합니다.
선이라는 열매를 맺어 놉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은 상당히 심각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교회는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받은 1차적 공동체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1차적 수행자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이 교회와 한 가정으로 모이면, 성령은 또 한가지 역사를 하십니다. 제 2차 역사가 부름 받은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듭니다. 하나로 뭉치게 합니다.
어떻게 하던지 함께 부름 받은 사람들을 반드시 협력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2번째 역사입니다.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협력하면 반드시 모든 사람이 함께 가지고 싶어하는 선이라고 이름하는 아름다운 축복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성령의 3번째 역사입니다. 성령에 이르는 공동체는 3가지 모습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 모여서 하나로 뭉쳐서 협력하는 공동체, 반드시 선을 만들어 내는 열매의 공동체.
저는 사실 요번 이산 가족의 만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갈라진 백성들한테 오셔서 서로 만나게 불러 주셨습니다. 갈라 진 것을 만나게 했습니다. 성령은 갈라진 것을 뭉치게 합니다. 끊어진 것을 잇게 합니다. 성령의 1차적 능력입니다. 둘이 모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협력하게 하는 분, 성령의 평화의 역사입니다. 선을 이루게 하는 분,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게 합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우리는 요번 이산 가족의 만남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만나는 통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나서 화해 교류 협력을 하면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루어 질 선은 무엇이냐 하면 이 한반도에 이루어질 평화의 나라, 평화가 선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냥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만나자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좋은 일을 하십시다.
함께 평화를 이루어 가십시다.
그렇게 되는 날 성령께서는 평화의 영으로 우리에게 역사 하십니다.
제가 정교회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특수한 형태의 정교회가 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우크라이나 지방에 세워 놨는데 주변이 워낙에 다 오소독스라고 이름하는 정교회이기 때문에 카톨릭이 생존을 위해서 정책을 내놓은 것이 있습니다.
소유권은 교황청에 있으나 예배, 찬송 설교 모든 것은 정교회 식으로 하겠습니다.
그런 교회를 가리켜서 유니어트 교회라고 합니다.
 카톨릭에 속해 있지만 정교회식으로 드리는 교회, 이런 교회가 우크라이나 지방에 가면 2/3가 그런 교회입니다.
그런데 소련이라는 연방이 무너지고 소련 연방에 소속되었던 모든 나라가 분리 독립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크라이나도 독립을 했습니다.
독립하면서 당이 가졌던 모든 종교 재단의 재산을 각 종교 단체에 넘겨주기로 결정을 합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유니어트 교회로 재산권을 넘겨줍니다.
그 때 모스크바에서 반동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본래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소련 연방의 재산이므로 우리한테 넘겨주시오.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모스크바에 넘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우크라이나 유니어트 교회에 재산을 넘기겠습니다. 만남은 좋았는데 일단 헤어지고 독립을 하고 나니 재산권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싸움 때문에 정교회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성령은 어떻게 심판 하실까 우크라이나 주장입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우크라이나 교인들에게, 모스크바 정교회는 모스크바 교인들이게. 모스크바는 다릅니다. 그 둘다 모두 우리 러시아 정교회에게. 참 교회가 하염없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산 가족 만남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울었습니다. 둘이 완전히 만나서 우리 가졌던 재산과 고향의 선산과 집을 누구한테 주어야 하는 싸움이 우리한테 번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 때는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많이 가지려는 눈물입니까
드려야 하는 눈물입니까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남과 북이 모여서 지혜를 짜야 할 문제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둘이 서로 협력하여 남과 북의 흩어진 가족은 서로 협력하여 둘 모두에게 선을 이루는 방법으로 하십시오.
뺏기고 빼앗기는 일을 하면 다시 분열 분단됩니다. 서로 이해를 하십시오. 사도 바울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역사 하시면 여러분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지만, 여러분에게는 한가지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 하시는 공동체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합칠 수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 가장 가난한 사람,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힘없는 약자가 이 공동체에 와서 행복을 느낄 때에만 그 공동체에 은혜가 있습니다. 그 공동체가 선을 만들어 냅니다.
사실 가난한 자가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종이 와서 '나는 비록 종 된 모습이지만 나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만큼의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이 와서 부자와 바꿉시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됩시다. 재산은 뺏어서 가난한 사람을 주고 그 다음에 완전히 세상을 뒤집읍시다.
하늘을 가졌던 사람은 땅을 갖고 따 가졌던 사람은 하늘을 갖고. 사도 바울의 말씀은 그 뜻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가 와서 핍박받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정당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인격의 해방, 전인적 해방. 이 역사를 이룰 수 있으면 그 공동체는 건전합니다.
그 사회가 성령이 이루는 사회입니다. 조금은 부자라는 남과 아직은 가난하다는 북이 만나서 서로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북에 있을 지 언정, 북에 살아 있는 이산의 가정으로, 한 인간으로, 동족으로 진정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사회. 그 사회를 지금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둘이 합쳐야 선을 이루는 사회를 만듭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보배로운 기름은 우리한테 와서 흐르고 옷을 적십니다.
옷을 적셔서 풍만한 적심을 받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다시 선을 이룹니다.
오늘 우리가 이루는 선은 우리 외국인 노동자, 북에 있는 형제 자매들,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백성에게도 베풀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 모두가 협력하여 우리 모두가 기뻐하는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축복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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