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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충만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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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주신 은총이 성령의 강림입니다. 인격적 여호와 하나님 이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일회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강림이 일회적인데 반해 성령 충만은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에서 "고독은 내적 공허이다. 홀로 있기는 내적 충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적 충만은 성령의 충만으로 가능합니다. 홀로 있기를 통하여 성령의 내재와 충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든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든지 아니면 세상의 잡동사니로 충만하든지 항상 충만합니다. 엘리오트(T. S. Eliot)는 "우리는 텅 빈 사람, 우리는 꽉 찬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비어야 차고 차야 비어집니다. 내적 충만은 내적 공허로만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적 공허로 끝나기 때문에 인생의 허무주의, 비관주의도 나타납니다.
제가 새벽기도 올 때 보면 그 시간까지 젊은이들이 돌아다닙니다. 몸을 비틀거리며 몰려 다닙니다. 사람은 생체적으로 밤에 잠을 자야 기운이 찹니다. 밤새 흔들고 마신다고 하더라도 아침이 되면 더 허전해집니다. 밤에는 위가 비어야 건강한데 밤새 먹고 마시면 위가 라면 충만, 술 충만이 되지요. 비어야 할 때 차고, 차야 할 때 비면 영육이 시드는 법입니다.
한국이 10대 흡연이 아시아에서 1위라고 합니다. 음주도 1위입니다. 여성 흡연도 놀라울속도로 빨라집니다. 안 좋은 것에 1위가 상당히 많습니다. 말보로라는 담배의 카우보이 복장을 한 오랜 모델이었던 맥러렌(Wayne McLaren)이란 배우는 51세에 폐암으로 죽었습니다. 유럽회의에서는 반흡연법이 통과되어 담배에 '마일드' '라이트' '저타아르'등을 못 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섭게 늘어만 갑니다.
일전 뉴스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20대 여성 10%가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하였습니다. 편하고, 쉽고, 재미있고, 돈도 많이 버는 일은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의 속에 무엇이 차 있는 것 같습니까 무엇으로 충만한 상태입니까 우리 속에 담배연기가 충만하고, 술이 충만하고, 욕심이 충만하고, 음란이 충만해 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돌아와 보니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습니다. 이 귀신은 나가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은 이전보다 더 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청소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씻어야 귀신이 안 들어옵니다.
바리새인은 그 입에 악독이 가득 했습니다. 외식과 불법이 가득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그들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처음 시험을 가져왔던 아나니아에게는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라고 베드로는 책망합니다. 충만하지 말아야 할 사단이 충만하면 충만해야 할 성령을 속입니다. 충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충만하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바울 서신 특히 옥중서신에는 충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납니다. 바울의 충만의 사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 "플레로오마"는 "채우다", "성취하다" 또는 "완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충만 또는 완성 또는 성취를 포함한 시간적 수적 전체를 의미를 말합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만물에 충만하신 자라고 합니다. 즉 충만은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는 구절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충만 그 자체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며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성령 충만도 가능할 것입니다.
 첫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혜도 충만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만 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안되고, 지혜가 충만하지만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령과 지혜는 동시적으로 충만해야 하고 동시적으로 충만해집니다.
지혜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살아가는 기술'이란 뜻이라고 켄 가이어는 '묵상하는 삶'에서 말했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죽어 가는 기술로 가득해집니다. 진정한 삶의 기술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으며, 참 지헤는 성경에서 성령을 통하여 공급됩니다.
어리석다(absurd)란 말은 귀머거리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 수르두스(surdus)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지혜에 귀가 밝습니다. 야고보서 3:17에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거짓에는 비고, 열매에는 차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지을 때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이 일을 맡깁니다. 출애굽기 31:3네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일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하였습니다. 성경은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로마서 1:29에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라고 합니다. 악독이 충만하면 지혜의 자리는 없습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성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라고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것은 칭찬 듣는 조건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칭찬의 대상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면서 칭찬 듣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칭찬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고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칭찬의 대상이었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았고 사도들을 쫓아냈습니다. 사도행전 13:52에는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합니다. 핍박을 받았지만 성령이 충만합니다. 성령 충만은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충만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칭찬 듣습니다. 안디옥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면 그 결과는 칭찬입니다.
사도행전 11:24에는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고 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며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또한 디모데도 형제들에게 칭찬 받은 자라고 합니다. 사울의 눈을 뜨게 하였던 아나니아도 다메섹의 유대인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리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 하지 못한 사람을 책망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서 4:8에서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칭찬 받을 만 해야 합니다.
동물의 왕 사자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이 모두 문병을 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여우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평소 여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늑대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우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다" 늑대는 사자에게 간언을 했습니다. "숲 속의 왕이시여 여우가 문병을 오지 않은 것은 필경 대왕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엄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마침 그때 여우가 도착했습니다. 사자는 크게 노하여 물었습니다. "네 이놈, 왜 이리 늦었느냐" 여우는 간언을 눈치채고 꾀를 냈습니다. "대왕님을 고칠 약을 알아보느라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래, 그 약이 무엇이냐". "늑대의 가죽을 벗겨 그것을 뒤집어쓰면 금방 병이 낫는답니다". 사자는 코앞의 늑대를 잡아 가죽을 뒤집어썼습니다. 칭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칭찬 듣는 것은 더 좋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칭찬을 듣게 합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성령과 지혜 충만하고 칭찬 듣는 것은 교회 일꾼의 자격입니다. 교회 일꾼에게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식도 필요하고, 재물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필수조건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필수 조건입니다. 없어서는 안될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공생애의 시작에 중요한 조건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에게 이끌립니다. 성령 충만해서 성령에게 이끌려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와 마귀의 시험은 같은 맥락입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다 성령 충만함 받고 성령 말하게 하심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전도의 조건이며 교회 설립의 조건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하고 전도하였습니다. 온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성경은 온통 성령의 충만을 교회의 일꾼의 자격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일꾼의 자격은 철저하게 영성과 도덕성입니다. 성령 충만과 칭찬 듣는 깨끗한 삶을 강조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절에는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인생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당신은 서브를(섬김을) 잘 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서브를 잘 해야 합니다. 인생은 잘 섬겨야 합니다. 서브하는 볼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서브하십시오. 성령으로 섬기십시오.
결론
프랑수아 드 살르는 "큰 덕행은 설탕 같고 작은 성실은 소금 같다. 설탕은 탁월한 맛을 내지만 사용 빈도는 적다. 소금은 탁월한 맛은 아니지만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큰 덕행은 드물게 발생하지만 작은 섬김은 날마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듯 나타나는 큰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탐욕과 방탕과 위선과 악독이 충만한 바리새인 시몬 집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았습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것으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온갖 악독이 충만한 세상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가면 성령의 냄새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충만하니 우리가 충만합니다. 우리가 충만하면 세상이 충만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성령의 잔이 충만하여 넘쳐서 세상을 적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은 성령의 내 속에와 온 세계에 충만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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