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치료하시는 성령
본문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창립된 날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성령이 오시므로 저들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깨닫게 되고 이를 전파하기 시작하므로 유대교와 다른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오시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들 속에 있었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확신과 용기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가졌던 헛된 욕망과 꿈 대신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하는 열의에 불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전에 없었던 놀라운 능력까지 받게 되어 언어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을 변화시켰으며, 더 나아가 병든 자들까지도 치료하여 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므로 어려운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공동체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본격적인 활동에 의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고 새로워졌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성령이 오셔서 병든 사람, 병든 사회를 어떻게 치료하시는지를 주목하면서 그런 관점에서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치유"(治癒)라는 관점에서 보면서 오늘도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어 상처받은 우리의 삶과 이 사회를 치유하고 계심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바로 죄로 인하여 병든 인간을 치유하여 새롭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야훼-로페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즉 치료하시는 야훼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노예 근성에 젖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한 치유의 역사가 광야 40년 동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치유의 구체적인 처방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 처방을 바탕으로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본격적으로 치유의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병든 세상
우리가 먼저 살필 것은 우리는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사도행전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고쳐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구걸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병든 우리 인간들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그 병을 운명으로 받아 드렸을 것입니다. 물론 부모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여러 모양으로 그를 고쳐주려 노력하였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기에 결국 그는 구걸하여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의 지배를 받아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 드리면서 거기에 적응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병을 치료하려 하지 않고 그 병든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병들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4백년간 노예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극심한 고통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심성은 비뚤어지고 비굴해졌으며, 인간의 삶을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 도덕성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은 메말라 버리고 압제로 인하여 받은 상처는 아주 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런 생활에 젖다 보니 그 생활을 운명으로 받아드렸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경우나 노예 생활을 한 이스라엘의 경우 그들의 삶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데 더욱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병 역시 자기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찾아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자기가 병든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병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당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우리가 병들어 있었지만 알지 못한 채 지내 온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이 사회의 불의와 죄악을 지적해 왔습니다. 물론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 불의에 대항하지 못한데 그 책임을 다 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욕망을 따라 치닫는 이 사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철저하게 우리의 병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한 진단을 바로 하지 못한 채 헛된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위기를 만났다고 그 경제 회생을 위해 여러 가지 처방을 내리지만, 본질적인 병의 원인과 그 치료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런 처방들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면서 물이 없을 때는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달라고 소동을 피웠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반석에서 물이 나게도 하시고, 메추라기 떼를 몰아다가 실컷 고기를 맛보게도 하셨으며, 만나를 내려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물 없을 때 물을 마시게 하고, 고기 먹고 싶을 때 먹게 해 주었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심성은 여전히 비뚤어져 있었고,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 산으로 이끄시어 거기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고, 계약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하여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인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은 그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 문제가 다 해결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아니 경제가 다시 회생될 때 우리는 어쩌면 더욱 욕망에 불타 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서 더 큰 죄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만이 아닙니다. 빵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자리잡게 만들 때 비로소 우리는 바른 삶의 길을 향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치유되는 교회와 세계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면서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하였을 때, 그는 무엇을 얻을까하고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몇 푼의 돈을 얻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인 이 걸인은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얼마의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그가 경험한 세계는 돈을 구걸하는 길만이 그가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가 누구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은 돈 말고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하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걸인이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던 돈 이상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그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생각해 왔던 것이 잘못임을 곧 깨달았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한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내어본 적이 없었던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의 생애였던 그의 생애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믿음이 그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변화된 사도들이 행한 첫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성령은 이와 같이 먼저 좌절과 절망으로 위축되어 있던 제자들을 치료하시어 담대한 복음의 증거자가 되게 하셨고, 이제는 그들을 통하여 병든 종교와 사회를 치료하시고자 그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처방과 경제적 해결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만이 우리가 만난 모든 병에서 우리를 자유케하실 수 있습니다.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을 때 먼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먼저 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최후 처방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여호와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 출 15:26
온갖 욕망으로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을 고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근본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변화된 교회를 통하여
성령은 먼저 제자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변화된 제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먼저 교회가 성령 충만함을 입어 우리의 병을 치료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속에 간직하였던 두려움과 좌절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성령에 의하여 치료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처럼 이 병든 사회를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비겁하게 도망갔던 제자들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과 확신을 얻은 제자들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계와 사회를 향하여 두려울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우리를 보라고 외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낙담하여 있는 이 사회를 향하여 치료의 손길을 뻗쳐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오늘 노숙하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나누어 줄 때입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배고플 때 밥 한 그릇 대접함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으로 치유된 사도들은 담대함으로 병든 사회를 향하여 걸어 나가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도전하여 해결하여 나갔습니다. 이제 교회도 낙담하여 숨어 있을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사랑을 들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여러분에게 강림하시면, 여러분이 안고 있었던 문제가 해결되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때에 성령을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성령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 주변에 널려 있는 앉은뱅이들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일어나 걸어라"고 외치면서 저들을 일으키십시오. 오늘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정신적인 불구, 영적인 앉은뱅이들을 여러분이 고쳐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초대 교회가 가졌던 확신과 체험을 가지고 오늘 절망한 이 세대에 희망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에 주어진 선교적 사명입니다. 오늘도 이 사명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시므로 새로운 치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본격적인 활동에 의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고 새로워졌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성령이 오셔서 병든 사람, 병든 사회를 어떻게 치료하시는지를 주목하면서 그런 관점에서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치유"(治癒)라는 관점에서 보면서 오늘도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어 상처받은 우리의 삶과 이 사회를 치유하고 계심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바로 죄로 인하여 병든 인간을 치유하여 새롭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야훼-로페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즉 치료하시는 야훼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노예 근성에 젖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한 치유의 역사가 광야 40년 동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치유의 구체적인 처방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 처방을 바탕으로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본격적으로 치유의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병든 세상
우리가 먼저 살필 것은 우리는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사도행전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고쳐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구걸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병든 우리 인간들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그 병을 운명으로 받아 드렸을 것입니다. 물론 부모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여러 모양으로 그를 고쳐주려 노력하였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기에 결국 그는 구걸하여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의 지배를 받아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 드리면서 거기에 적응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병을 치료하려 하지 않고 그 병든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병들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4백년간 노예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극심한 고통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심성은 비뚤어지고 비굴해졌으며, 인간의 삶을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 도덕성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은 메말라 버리고 압제로 인하여 받은 상처는 아주 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런 생활에 젖다 보니 그 생활을 운명으로 받아드렸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경우나 노예 생활을 한 이스라엘의 경우 그들의 삶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데 더욱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병 역시 자기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찾아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자기가 병든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병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당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우리가 병들어 있었지만 알지 못한 채 지내 온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이 사회의 불의와 죄악을 지적해 왔습니다. 물론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 불의에 대항하지 못한데 그 책임을 다 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욕망을 따라 치닫는 이 사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철저하게 우리의 병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한 진단을 바로 하지 못한 채 헛된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위기를 만났다고 그 경제 회생을 위해 여러 가지 처방을 내리지만, 본질적인 병의 원인과 그 치료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런 처방들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면서 물이 없을 때는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달라고 소동을 피웠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반석에서 물이 나게도 하시고, 메추라기 떼를 몰아다가 실컷 고기를 맛보게도 하셨으며, 만나를 내려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물 없을 때 물을 마시게 하고, 고기 먹고 싶을 때 먹게 해 주었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심성은 여전히 비뚤어져 있었고,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 산으로 이끄시어 거기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고, 계약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하여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인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은 그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 문제가 다 해결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아니 경제가 다시 회생될 때 우리는 어쩌면 더욱 욕망에 불타 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서 더 큰 죄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만이 아닙니다. 빵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자리잡게 만들 때 비로소 우리는 바른 삶의 길을 향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치유되는 교회와 세계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면서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하였을 때, 그는 무엇을 얻을까하고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몇 푼의 돈을 얻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인 이 걸인은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얼마의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그가 경험한 세계는 돈을 구걸하는 길만이 그가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가 누구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은 돈 말고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하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걸인이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던 돈 이상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그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생각해 왔던 것이 잘못임을 곧 깨달았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한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내어본 적이 없었던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의 생애였던 그의 생애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믿음이 그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변화된 사도들이 행한 첫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성령은 이와 같이 먼저 좌절과 절망으로 위축되어 있던 제자들을 치료하시어 담대한 복음의 증거자가 되게 하셨고, 이제는 그들을 통하여 병든 종교와 사회를 치료하시고자 그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처방과 경제적 해결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만이 우리가 만난 모든 병에서 우리를 자유케하실 수 있습니다.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을 때 먼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먼저 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최후 처방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여호와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 출 15:26
온갖 욕망으로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을 고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근본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변화된 교회를 통하여
성령은 먼저 제자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변화된 제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먼저 교회가 성령 충만함을 입어 우리의 병을 치료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속에 간직하였던 두려움과 좌절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성령에 의하여 치료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처럼 이 병든 사회를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비겁하게 도망갔던 제자들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과 확신을 얻은 제자들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계와 사회를 향하여 두려울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우리를 보라고 외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낙담하여 있는 이 사회를 향하여 치료의 손길을 뻗쳐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오늘 노숙하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나누어 줄 때입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배고플 때 밥 한 그릇 대접함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으로 치유된 사도들은 담대함으로 병든 사회를 향하여 걸어 나가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도전하여 해결하여 나갔습니다. 이제 교회도 낙담하여 숨어 있을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사랑을 들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여러분에게 강림하시면, 여러분이 안고 있었던 문제가 해결되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때에 성령을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성령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 주변에 널려 있는 앉은뱅이들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일어나 걸어라"고 외치면서 저들을 일으키십시오. 오늘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정신적인 불구, 영적인 앉은뱅이들을 여러분이 고쳐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초대 교회가 가졌던 확신과 체험을 가지고 오늘 절망한 이 세대에 희망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에 주어진 선교적 사명입니다. 오늘도 이 사명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시므로 새로운 치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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