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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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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존재이면서 독자적인 존재 설명 - 우리는 각각 개별적인 존재입니다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는 개인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합니다. 집안에서 나 혼자 개인으로 무엇을 하든지 안 하든지 이는 나의 자유로 나 혼자 결정하며 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지켜야 할 법이 있어서 그 법안에서 행동을 해야지 자유라고 나 혼자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삶은 나중엔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흥망성쇠와 깊은 연관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의 삶은 어쩌면 개인적인 삶이라기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민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국민으로서의 받는 영향력 / 치안보호, 정치적 영향, 문화 환경의 영향
우리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사실상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정치인들의 정치에 영향을 받으며, 경제인들의 기업활동에 따라 내 생활의 질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가 보다 높은 가치를 창조할 때 나의 삶은 그만큼 향상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외 여행을 해보면 우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냐에 따라 행동이 다르고 품위가 달라서 어떤 나라 사람들은 우대 받는가 하면 어떤 나라 사람들은 천대를 받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나라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1.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게 되면서 또 다른 나라인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대한민국보다 더 큰 나라, 더 중요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보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더 우선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매일 생활하면서 별로 느끼지 않고 있지만,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보호받고 있으며, 그 통치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대한민국의 법을 존중하듯이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법과 통치를 의식하며 존중하고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집니다.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신문을 통해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얻는 것처럼 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정보를 얻고, 기도를 하면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신을 바르게 세워 가는 것입니다.
매주일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석하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 의식을 함양시켜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 의식이 고양될수록 개인의식은 점차 약화되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나 개인의 뜻이나 이념은 사라지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가 지향하는 목표를 따르게 되며,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들은 절대적 주권을 인정받지 못하여 많은 혼란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대통령들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이어서 우리가 안심하고 그의 뜻을 받아드릴 수 있고, 그 통치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그 나라를 더욱 든든하게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는 아닙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주권자로 선출한 것이 아니며, 그가 정하신 정책을 우리가 비판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독재자이시고 그 나라는 전제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나라를 세우는 독재자와 여호와 하나님과는 전혀 달라서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독재 지도자는 전능하지도 않고 사랑도 없을 뿐 아니라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와 달리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 지혜가 뛰어나시며, 사랑과 공의가 충만하시기에 그의 뜻은 분명하며, 그의 통치는 완전합니다. 그 나라의 시민이 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완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받아드리고 거기에 따르며 순종하는 일입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그 뜻을 실현하여 가는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이 지상의 교회는 하나의 작은 공동체입니다. 나의 삶은 바로 이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되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닌 공동체적 존재가 되었기에 그 공동체를 올바로 세우는 일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밝혀서 변화하는 시대와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면서 그 시대마다 주어진 책임을 다해 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삶을 공동체적 삶으로 변화시켰기에 내가 속한 공동체를 올바로 세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끈 구름기둥
오늘 읽어 드린 출애굽기 말씀에 보면,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의 집단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집단의 지도자는 모세였지만, 모세가 그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이 멈추어 서면, 그들은 거기에 멈추어 천막을 쳤고, 그 기둥이 움직이면 그들은 모든 천막을 거두어 앞으로 전진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그 광야 생활이 고달파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개인적인 뜻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 이르러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저들에게 주신 것으로 그것을 사람들이 함부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대적 명령과 규례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그들은 거기에 이의를 달 수 없었습니다.
이 율법은 대단히 높은 도덕성과 영성을 요구하는 법으로, 노예로 있었던 히브리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이끌어 올리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성을 함양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거룩한 백성 되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로 오늘의 교회이며, 구름기둥은 성령이며,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해야 했듯이 오늘날의 교회도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전진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율법을 따라 제사를 드리며 그들의 모든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 갔듯이 오늘날의 교회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든 삶을 재정비하고 바른 예배의 생활을 이룩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 생활에서 개인적 욕구는 용납될 수 없으며, 내가 원치 않아도 구름기둥이 이끄는 대로 따라야 하며, 내가 이루기에는 너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하여도 율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교회의 영성을 따라 행하라
오늘의 본문인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길과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길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번역된 희랍어는 '프뉴마'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뜻합니다.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영을 뜻하기도 합니다(롬 8: 9-11). '프뉴마'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그들을 위해 아들을 보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가장 은밀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를 하면서 거기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을 지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몸에 영이 존재하듯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도 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영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 보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가도록 이끄는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을 좇아 행하라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구름기둥을 따라 행진하듯이 이 교회를 이끄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단순한 사람의 집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몸으로 거기에 영이 있고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보다 영적인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그 뜻을 따라 바른 삶을 이루어감을 뜻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처음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서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유대인 크리스찬들이 등장하여 예수를 믿어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많은 교인들이 현혹되어 흔들렸습니다. 교회가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편지를 써 보내면서 영을 좇으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일깨우시는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받아드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교회의 영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영성이고, 그 영성이 자랄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처럼 교회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다 넓게 보다 깊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 그 교회의 영성이 충만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개인의 영성과 교회의 영성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행동할 때와 집단적으로 행동할 때 완전히 다른 형태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개인적인 영성과 그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룰 때 영성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공동체 경험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였을 때 거기에 사랑과 기쁨과 인내가 같은 열매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바로 공동체의 영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 역시 영성(靈性)을 지닌 교회입니다. 영이란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기풍이 있다고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그 기풍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풍(氣風)이란 한자가 바람의 기운을 뜻하는데 '프뉴마'도 그 원래의 뜻은 바람입니다.
기풍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 같은 어떤 흐름으로 집단이나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힘을 말합니다. 가문에는 가풍(家風)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그것을 따르게 됩니다. 가풍은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우리영문은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세월을 거쳐오면서 형성된 영성이 있습니다. 그 영성은 경망하거나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온건하고 바른 신앙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반듯하면서도 개혁적이며, 진취적인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나가는 영성을 우리가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깨우치신 대로 복음을 바르게 받아서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더욱 결속시켜 왔고, 앞으로 더욱 그 영성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런 교회의 영성을 따라서 공동체를 더욱 강하게 결속시킴을 뜻합니다. 가장 영적인 사람은 가장 공동체적인 신앙의 사람을 뜻합니다.
즉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교회의 영성을 좇아 그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 가는 사람입니다. 나 자신을 한 개인으로 인식하기보다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바로 영적인 사람이며,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나 개인의 영적인 능력은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영성이 교회의 영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을 죽이고 교회 공동체에 통합시키는 능력으로 작용할 때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여도 교회공동체 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는 순간 나는 죽고, 공동체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므로 믿음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그 구원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것이며, 그 나라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세계입니다. 교회는 그 나라를 지향하는 작은 공동체이므로, 구체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져 갑니다. 나를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기보다 공동체적 존재로 인식할 때 우리의 믿음은 바로 서는 것이며, 그때부터 그 믿음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 교회 안에 들어온 여러분이 모래알처럼 따로따로 있어서는 안되고 모두가 공동체의 영성을 따라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를 풍성하게 거두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육체의 행실을 버리라
영을 좇아 행하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육체의 정욕을 좇아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였을 때 교회에도 육체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육적인 요소가 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공동체가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육체의 행위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행실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 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교회가 잘못하면 이런 악행에 말려들어 싸우고 분열하며 온갖 추태를 다 부리게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바로 그런 위기에 처하여 있음을 보고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그들을 격렬하게 책망하고 다시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육체의 행실들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 됨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욕심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결국 자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잡는 교만과 이기심의 발로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공동체에 소속될 수 없고 오히려 그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일조를 할뿐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교회의 영성을 추구하여 공동체를 세우는 대신에 그 공동체를 통하여 자기의 안락과 평안과 사랑만을 구하기 때문에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악한 존재로 남게 마련입니다.
우리 영문의 역사 속에도 이런 육적 요소가 있어서 한 때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초기부터 있었던 영성을 상실하여 육적인 욕망이 이 교회를 지배하였었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다시 세워주시고 잃었던 영성을 다시 회복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다시는 이 영성을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힘써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영을 좇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전진을 계속해 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군우 여러분, 예배당에 나와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일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그런 사람은 끝까지 공동체적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공동체에 자신을 통합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적극적으로 교회의 영성을 세우고 그 영성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행진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평화를 원하시면 여러분이 먼저 사랑을 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이 교회의 영성에 사랑과 평화가 더해 질 것입니다.
이제 육체의 욕망을 따른 이기심과 아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에 자신을 통합시켜 이 교회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를 예배하며 그 복음을 널리 전하면서 성령님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남은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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