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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은 평안이시다

본문

선지자 이사야는 앞장(사 30­3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 살아가야 할 유다 백성과 그 지도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세, 곧 애굽의 병력과 전차를 의지하는 죄악에 대해 엄히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이제 본문 3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다면 유다 왕국은 과연 어떤 처참한 지경에 빠질 것인지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성령 충만이 부어지는 때, 곧 메시야 시대가 올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사 32:1­8, 15­20). 그리하여 그릇된 삶을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참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는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본문의 예언은 역사적으로 아하스(BC 735­716년)에 뒤이어 유다를 회복시켜 나라를 더욱 견고히 할 히스기야의 통치(BC 728­687년)를 예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예언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영원한 왕이신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영광과 행복을 누리게 될 역사적 사건을 예고하여 준 것입니다.
1. 평안의 출처는 성령으로부터 주어집니다(15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복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본문 15-17절에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고 하였습니다. 위의 말씀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고 하시면서 불과 몇 시간 후에 십자가를 지실 예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안과 동일한 평안입니다.
사실 이 평안은 소극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작은 어려움이 온다 해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불변하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안이 이루어지면 모든 걱정과 근심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주어진 평안의 이치와 그 신비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 평안이 너무나 큰 평안과 기쁨이므로 실패하고 고난당하는 일들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는 참 평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계셨습니다(창 1:2). 그러나 신자들의 심령에 구체적으로 임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후였습니다.
요엘 선지자도 이사야와 동일하게 예언했던 그 성령이 오순절에 비로소 모든 육체 가운데 부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평안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기도할 때(행 2:1­4), 둘째 죄를 고백할 때(행 2:37­40), 셋째 믿음의 삶을 소유할 때(요 3:5), 넷째 여호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행 5:29­32)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며 이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2.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하늘로부터 주시는 평안입니다(16­17절).
요한복음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위로하며, “하늘로부터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평안과 다르다. ”고 하셨습니다. 웨슬리(John Wesley)가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도중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살려 달라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중 웨슬리만은 조용히 있었습니다. 선장이 웨슬리에게 “죽을 지경이니 당신도 기도하세요.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소” 하였더니 그때 웨슬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갈 것입니다.
천당에 가든 미국에 가든 둘 중에 한 곳을 갈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풍랑으로 인하여 바다에 떨어지면 천당에 갈 것이요, 떨어지지 않으면 미국에 상륙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 즉 천국을 알고 천국에 대하여 확신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현재 주어진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평안을 소유에서 찾으려 합니다. 재력이나 지위를 얼마나, 어떻게 소유하였는지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와 같은 것들은 대개 순간적인 것이며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은 항상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많이 소유하였을 때보다 가난할 때에 더 평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참 평안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 평안은 정도를 걸어가는 성도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사악한 유혹에 빠져 평안을 상실하고 인간성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정도(正道)를 따라감으로써 약속하신 하늘로부터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로 성도들은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18­20절).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요한복음 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위로자요, 변호자요, 나를 돕는 분으로서 보혜사입니다. 또한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성령은 신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해줍니다.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끌어 가심을 깨닫게 해줍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 신비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시는 삶을 따라 현존할 때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령은 가난과 질병과 불안과 고통과 죽음에서부터 인간을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인간에게 주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평화입니다(갈 5:22).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성령은 땅 위에 생명과 사랑과 평화를 만드는 영이십니다.
이사야 11:6-7의 말씀은 성령의 역사는 인간에게 해방과 평안을 주실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창조세계의 종말론적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고백론에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는 무엇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없으며……세상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률을 지닌 달콤한 노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참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롬 8:9).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영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의 사역의 목표는 모든 피조물과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는 것을 계시하면서, 성령 안에서 참된 평화를 소유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행 1:8)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 무신론적 차원에서 살면서도 부유하게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무기력함을 하소연하는 연약한 모습이라면 성도의 바른 모습을 상실한 성도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이처럼 무기력하여서는 안 될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의 삶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까지도 성도들의 종교적 실존을 흔들리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영적인 자부심과 지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거하시며, 역사를 이끄시고 다스리심을 확신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참 평안을 소유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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