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본문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책 자체도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 책을 지은 사람들이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들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고, 또 하나는 미국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들은 목사가 쓴 신앙서적이면서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들을 읽고 공감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 목사님들이 목회하는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새들백교회나 레이크우드교회는 그 크기에 있어서도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지만, 영향력에 있어서도 손꼽히는 교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그 교회들을 방문해서 견학도 하고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은 그리스도인 개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보다 먼저 썼던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말하자면 ‘목적이 이끄는 교회'를 개인의 생활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기를, 모든 교회는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이는데, 어떤 교회는 전통에 따라 움직이고, 어떤 교회는 인물에 의해 움직이고, 또 어떤 교회는 재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퓜걀의해 움직이는 교회,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전도대상자에 이해 움직이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전도대상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란 교회가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교회를 맞추어서 교회의 모든 계획이 거기에 좌우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런 교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런 교회들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제안하는 것이,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는 다섯 가지 임무를 완수하는 일에 헌신하는데, 첫째 목적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 둘째 목적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 목적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 넷째 목적은 세례를 주라, 다섯째 목적은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서 조직도 바꾸고 프로그램도 거기 맞추어서 진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실제로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목적을 다시 세우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조직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또 다시 사람들의 전략과 프로그램으로 되돌아간다는 겁니다. 결국 목표가 이끄는 교회는, 그 의도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또 다시 사람의 계획과 프로그램이 이끄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한 권의 책인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라, 긍정적인 사고가 나의 삶을 이끌어가게 하라고 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되니까, 무조건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된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고, 또 일을 훨씬 잘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가 곧 신앙은 아닙니다.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신학은 이 부분에서 곧잘 혼란을 일으킵니다. 무조건 된다고 믿으면 된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도 신앙의 이름으로 들이대면 여호와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신다고 믿게 만들기 쉽고,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의 목차를 보면 그게 더욱 분명해집니다.
1.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2.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3.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4. 나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5.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 6. 베푸는 삶을 살라. 7.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이런 제목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으로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말들인데,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신앙과 결부될 때에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사람의 노력과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좋다고 생각되는 일을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 두 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하지만, 거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계획과 신념이라는 겁니다. 그 책을 쓴 목사님이 신앙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들 훌륭한 목사님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일꾼들임에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교회의 중심과 우리 삶의 중심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노력과 사람의 의지가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쁜 건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실천으로 그치고 말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너희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먼저 구해야 할 것들에 대한 것은 빠지고 다른 모든 것을 얻는 일에 집중해서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고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에 차서 밀고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 목사님이 젊었을 때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던 가수였다고 합니다. 그룹이 해체된 후 그분은 마약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두 번쯤 참석한 후에 교회 안내자에게 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그 일은 언제 하죠”
“그 일이라뇨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반문하는 안내자에게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거 있잖아요, 그 일.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 말이죠. 병자를 고쳐주고, 장님을 눈을 뜨게 해주는 그런 일 말이에요. ”
안내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 그런 거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
목적이 이끄는 교회는, 자칫 잘못하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운 목표와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무엇을 하기가 무척 힘들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이 이끄는 교회는 그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한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못하게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그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앞서 이야기했던 여러 교회들,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교회는 재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전도대상자에 이해 움직이는 교회, 그리고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전혀 다른 새로운 교회가 아닙니다. 다른 교회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교회를 만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가장 오래된 교회, 초대교회를 따라하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그렇게 되고 싶은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앞서 말했던 교회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인정하되, 그런 것들이 교회를 이끌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교회를 이끌게 하지 않는 것은, 그런 것들이 단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런 말 역시 적절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된다, 어떤 모습이 된다, 무엇을 하는 교회다 이런 생각조차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말 그대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또 어떤 교회가 아닌지 우리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8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인데요,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와 같다. ”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어디로 갈지 미리 정해놓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지도 미리 알기 힘듭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막연합니다. 그러나 막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나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운영해왔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올해의 목표는 뭐다, 구체적인 숫자로 정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모든 계획과 프로그램과 기도 제목과 노력을 그 목표에 맞춰서 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막연하고 불안하고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혹시 우리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건 확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계획을 세워서 하면 안심이 되는데, 성령께서 계획하셔서 우리를 이끄시는 건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아이가, 아버지가 운전하는 게 영 불안하고 미덥지 않아서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이제 곧 내가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게 될 텐데,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나서 그들이 묵고 있던 곳으로 가서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임하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이 모여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시작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교회가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셨기 때문에 조금의 차질도 없이 완벽하게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셔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갈 길을 이끄시고 우리가 할 일을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사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얼핏 보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되는 것보다 더 많은 훈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해야 하니까, 더 필요한 게 많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령께서 이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지금까지 한 번도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내 생각과 내 경험과 내 지식과 내 판단으로 결정해서 해왔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서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성령이 이끄시도록 하려면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게 필요합니다. 내 고집과 내 지혜를 내려놓고, 내 결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도록,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일이 맨 먼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아무 것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이끄시게 하려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합니다. 알아야 따라가든지 말든지 하지, 모르면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따라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성령의 이끄심을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회가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시작할지, 어떤 교회를 세울지, 교회 이름은 뭘로 할지, 그런 궁리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라는 게 생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이끄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성령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령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무술영화를 보면, 가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상대방이 너무나 빨라서 움직임을 보기도 힘들 정도여서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가, 오히려 눈을 감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마음으로 느껴서 반격을 해서 이기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사람에게 눈이 필요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눈을 감아야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떠서 세상을 보고 우리의 머리를 사용해서 지혜를 짜내고 하는 게 필요 없는 게 아닙니다. 성꼈우리의 일상 중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지혜를 멈추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멈추고, 성령께만 집중하고 성령께서 어디로 우리를 이끄시는지 깨닫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께 집중하지 않으면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가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같은 문제를 놓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다 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로 모이게 됩니다. 누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하지 않아도 모임 가운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기도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각자 개인적으로도 기도해야 하지만, 함께 모여서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이끄심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이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기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실 때,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와 함께 할 일은 성경을 열심히, 부지런히, 집중해서 읽는 것입니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 말씀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도록 성경에 집중해서 읽고, 또 성령께서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백번 천 번 읽어서 안 보고도 줄줄 외우는 사람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번을 읽었어도 그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서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말씀대로 실천하며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그 말씀대로 살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만 번 천 번 읽어도 그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한번 읽었어도 그 말씀대로 사는 사림이 정말로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알아야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는 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뜻은 성경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이 하신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시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성령의 이끄심인지 아닌지 알기 힘들 때, 성경에 비추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사랑하는 일인지,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일인지, 이것이 선한 일인지 성경에 비추어서 살펴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겁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하고 없애는 건 아닙니다. 전통이나 제도나 조직이나 그런 것들 다 없애고 성령의 이끄심으로만 교회가 운영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의 조직이나 직제도 필요하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우리보다 앞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신앙 유산입니다. 그런 것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교회의 재산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들도 성령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성령을 제한하거나 제외시킬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성령의 이끄심이 가장 먼저이어야 하고 가장 중심이어야 합니다. 성령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이끄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잘 따르기 위해 조직도 필요하고 직제도 필요하고 전통도 유익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된다든지, 성령의 이끄심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거부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도, 교회의 전통도, 교회의 지도자도, 그 무엇이라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한 해 동안 설교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여러 기회를 통해서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 위한 훈련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르겠다는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계속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보다, 남들 다 그렇게 하고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가겠다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갈 때 교회가 부흥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때 우리 가정과 일터가 부흥합니다. 꼭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출세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 삶이 주님이 주시는 복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물론 예수 잘 믿으면 돈도 벌 수 있고 출세도 할 수 있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정도도 못하시는 분은 아니시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면 돈이 문제가 아니고 출세가 문제가 아니고 하늘의 귀한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늘나라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맛보고,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 이 행복 누리며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들을 읽고 공감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 목사님들이 목회하는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새들백교회나 레이크우드교회는 그 크기에 있어서도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지만, 영향력에 있어서도 손꼽히는 교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그 교회들을 방문해서 견학도 하고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은 그리스도인 개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보다 먼저 썼던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말하자면 ‘목적이 이끄는 교회'를 개인의 생활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기를, 모든 교회는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이는데, 어떤 교회는 전통에 따라 움직이고, 어떤 교회는 인물에 의해 움직이고, 또 어떤 교회는 재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퓜걀의해 움직이는 교회,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전도대상자에 이해 움직이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전도대상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란 교회가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교회를 맞추어서 교회의 모든 계획이 거기에 좌우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런 교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런 교회들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제안하는 것이,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는 다섯 가지 임무를 완수하는 일에 헌신하는데, 첫째 목적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 둘째 목적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 목적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 넷째 목적은 세례를 주라, 다섯째 목적은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서 조직도 바꾸고 프로그램도 거기 맞추어서 진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실제로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목적을 다시 세우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조직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또 다시 사람들의 전략과 프로그램으로 되돌아간다는 겁니다. 결국 목표가 이끄는 교회는, 그 의도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또 다시 사람의 계획과 프로그램이 이끄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한 권의 책인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라, 긍정적인 사고가 나의 삶을 이끌어가게 하라고 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되니까, 무조건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된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고, 또 일을 훨씬 잘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가 곧 신앙은 아닙니다.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신학은 이 부분에서 곧잘 혼란을 일으킵니다. 무조건 된다고 믿으면 된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도 신앙의 이름으로 들이대면 여호와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신다고 믿게 만들기 쉽고,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의 목차를 보면 그게 더욱 분명해집니다.
1.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2.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3.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4. 나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5.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 6. 베푸는 삶을 살라. 7.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이런 제목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으로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말들인데,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신앙과 결부될 때에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사람의 노력과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좋다고 생각되는 일을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 두 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하지만, 거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계획과 신념이라는 겁니다. 그 책을 쓴 목사님이 신앙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들 훌륭한 목사님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일꾼들임에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교회의 중심과 우리 삶의 중심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노력과 사람의 의지가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쁜 건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실천으로 그치고 말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너희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먼저 구해야 할 것들에 대한 것은 빠지고 다른 모든 것을 얻는 일에 집중해서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고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에 차서 밀고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 목사님이 젊었을 때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던 가수였다고 합니다. 그룹이 해체된 후 그분은 마약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두 번쯤 참석한 후에 교회 안내자에게 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그 일은 언제 하죠”
“그 일이라뇨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반문하는 안내자에게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거 있잖아요, 그 일.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 말이죠. 병자를 고쳐주고, 장님을 눈을 뜨게 해주는 그런 일 말이에요. ”
안내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 그런 거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
목적이 이끄는 교회는, 자칫 잘못하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운 목표와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무엇을 하기가 무척 힘들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이 이끄는 교회는 그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한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못하게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그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앞서 이야기했던 여러 교회들,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교회는 재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전도대상자에 이해 움직이는 교회, 그리고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전혀 다른 새로운 교회가 아닙니다. 다른 교회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교회를 만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가장 오래된 교회, 초대교회를 따라하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그렇게 되고 싶은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앞서 말했던 교회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인정하되, 그런 것들이 교회를 이끌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교회를 이끌게 하지 않는 것은, 그런 것들이 단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런 말 역시 적절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된다, 어떤 모습이 된다, 무엇을 하는 교회다 이런 생각조차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말 그대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또 어떤 교회가 아닌지 우리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8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인데요,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와 같다. ”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어디로 갈지 미리 정해놓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지도 미리 알기 힘듭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막연합니다. 그러나 막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나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운영해왔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올해의 목표는 뭐다, 구체적인 숫자로 정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모든 계획과 프로그램과 기도 제목과 노력을 그 목표에 맞춰서 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막연하고 불안하고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혹시 우리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건 확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계획을 세워서 하면 안심이 되는데, 성령께서 계획하셔서 우리를 이끄시는 건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아이가, 아버지가 운전하는 게 영 불안하고 미덥지 않아서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이제 곧 내가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게 될 텐데,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나서 그들이 묵고 있던 곳으로 가서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임하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이 모여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시작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교회가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셨기 때문에 조금의 차질도 없이 완벽하게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셔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갈 길을 이끄시고 우리가 할 일을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사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얼핏 보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되는 것보다 더 많은 훈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해야 하니까, 더 필요한 게 많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령께서 이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지금까지 한 번도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내 생각과 내 경험과 내 지식과 내 판단으로 결정해서 해왔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서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성령이 이끄시도록 하려면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게 필요합니다. 내 고집과 내 지혜를 내려놓고, 내 결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도록,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일이 맨 먼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아무 것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이끄시게 하려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합니다. 알아야 따라가든지 말든지 하지, 모르면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따라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성령의 이끄심을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회가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시작할지, 어떤 교회를 세울지, 교회 이름은 뭘로 할지, 그런 궁리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라는 게 생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이끄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성령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령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무술영화를 보면, 가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상대방이 너무나 빨라서 움직임을 보기도 힘들 정도여서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가, 오히려 눈을 감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마음으로 느껴서 반격을 해서 이기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사람에게 눈이 필요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눈을 감아야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떠서 세상을 보고 우리의 머리를 사용해서 지혜를 짜내고 하는 게 필요 없는 게 아닙니다. 성꼈우리의 일상 중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지혜를 멈추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멈추고, 성령께만 집중하고 성령께서 어디로 우리를 이끄시는지 깨닫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께 집중하지 않으면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가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같은 문제를 놓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다 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로 모이게 됩니다. 누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하지 않아도 모임 가운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기도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각자 개인적으로도 기도해야 하지만, 함께 모여서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이끄심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이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기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실 때,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와 함께 할 일은 성경을 열심히, 부지런히, 집중해서 읽는 것입니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 말씀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도록 성경에 집중해서 읽고, 또 성령께서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백번 천 번 읽어서 안 보고도 줄줄 외우는 사람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번을 읽었어도 그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서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말씀대로 실천하며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그 말씀대로 살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만 번 천 번 읽어도 그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한번 읽었어도 그 말씀대로 사는 사림이 정말로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알아야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는 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뜻은 성경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이 하신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시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성령의 이끄심인지 아닌지 알기 힘들 때, 성경에 비추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사랑하는 일인지,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일인지, 이것이 선한 일인지 성경에 비추어서 살펴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겁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하고 없애는 건 아닙니다. 전통이나 제도나 조직이나 그런 것들 다 없애고 성령의 이끄심으로만 교회가 운영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의 조직이나 직제도 필요하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우리보다 앞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신앙 유산입니다. 그런 것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교회의 재산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들도 성령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성령을 제한하거나 제외시킬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성령의 이끄심이 가장 먼저이어야 하고 가장 중심이어야 합니다. 성령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이끄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잘 따르기 위해 조직도 필요하고 직제도 필요하고 전통도 유익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된다든지, 성령의 이끄심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거부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도, 교회의 전통도, 교회의 지도자도, 그 무엇이라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한 해 동안 설교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여러 기회를 통해서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 위한 훈련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르겠다는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계속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보다, 남들 다 그렇게 하고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가겠다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갈 때 교회가 부흥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때 우리 가정과 일터가 부흥합니다. 꼭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출세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 삶이 주님이 주시는 복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물론 예수 잘 믿으면 돈도 벌 수 있고 출세도 할 수 있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정도도 못하시는 분은 아니시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면 돈이 문제가 아니고 출세가 문제가 아니고 하늘의 귀한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늘나라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맛보고,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 이 행복 누리며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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