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악행을 깨뜨려라
본문
여대생을 납치해서 몸값 1억원을 받아 챙기고도 그 학생의 목을 졸라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지난 10일에 서울 압구정동에서 발 생했습니다. 살해당한 김 모 양은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마치고 밤 늦게 귀가하다가 그런 참변을 당했습니다. 납치살해범 두 사람 중 하나는 이혼위자료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애 인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김 모 양을 범행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그 여학 생이 부유층 자녀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 학생은 금반지와 팔찌를 끼고 있는데다가 명품 핸드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지역이 우리나라에서는 부자가 가장 많기로 소문난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범인들은 그 여학생을 강제로 차에 태워서 납치했고, 내과의사인 그 여학생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1억원 의 돈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범인들은 5천만 원씩 나누어가졌습니다. 그런데, 납치된 여학생 이 그만 ‘당신들의 얼굴과 차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들 은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어기고서 그 여학생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말았습니다. 범인들은 여행용 가방에다가 사체를 넣어두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던 중에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아주 검소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들고 있었던 독일제 가방은 휴대폰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고, 그가 끼고 있던 금반지는 평범한 18k로 친구가 준 것이 었으며, 팔찌와 시계도 길거리에서 산 것이었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의사였으나, 그 학생의 핸드백에는 신용카드가 한 장도 없었고, 휴 대전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3000원짜리 공중전화 카드만 두장 들 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김 양은 비교적 건전한 정신을 가진 학생이었습 니다. 그런데도, 범인들이 볼 때에 부잣집 딸로 보이게끔 치장한 것 이 화근이었고, 또 하나는 참을성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자신을 납치해서 1억원을 받아 챙긴 범인들이 정말 미웠더라 도, 그녀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범인들에게 ‘당신들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말 한마디 한 것 이, 결국은 그 자신의 목숨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죽은 김 양과 비슷한 대학생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저의 마음은 심히 착잡하고 괴로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나 하는 비참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와 비슷한 납치사건이 올해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만 해도 수백 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언제 어디서 무슨 봉변 을 어떻게 당할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아주 위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김포에서는,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집사님이 낯선 청 년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젊은 여자도 아니고 80이 넘은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를 겁탈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하지만, 그런 황당하 고 어이없는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비록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습니다 만, 어째서 이런 일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 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 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갈 때 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롬8:13)’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 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보다 돈이나 세상 즐거움을 더 귀하게 여기는 풍 조가 더욱 날로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에 관한 욕심 이나 성적(性的)인 욕구를 달성하고 싶은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가볍게 여기는 사 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종교가 육신의 욕망을 이겨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가르 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욕심을 극복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조국사’라는 스님은 ‘욕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심(無心) 무념(無念) 무사(無思)를 말했습니다. 즉,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워야 욕심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비 우지 못하거나 욕심을 이겨내지 못할 경우, 인간은 갖가지 욕심으 로 인해서 108가지나 되는 번뇌와 고민을 하게 된다고, 불교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유교의 공자는 ‘사람의 욕심은 그릇에 들어있는 물 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릇에 물이 적당히 들어있으면, 그 그릇은 안정감이 있듯이, 사람도 욕심을 적절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인생을 파멸의 길로 빠지게 하는 아주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지나친 욕심을 극복하고 예의범절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克己復禮)’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욕심에 대해서 어떻게 교훈하고 있을까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다(약1:15)’고 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하기를 ‘인간은 자기의 악 한 생각이나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게 되거니와, 그 악한 생각 이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들어서, 결국 나중에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죽 음의 형벌을 받게 된다(약1:14-15)’고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종교는 ‘지나친 욕심을 품지 말라’고 엄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 어서 그와 같은 교훈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째서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만 가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 를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 워져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마치 불(火)과도 같습니다. 불은 꼭 필요한 것이로 되, 잘못 다루면 아주 큰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욕심이 없다면 죽은 시체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적절 하게 조절하지 못하면, 인간은 그 욕심 때문에 파멸을 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그 욕심을 적 절히 관리하지 못하고, 그만 그 욕심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빠져 들게 되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요
바울이 이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 마음에는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 었다(롬1:21)’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여겨야 하는데, 그만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고 사는 까닭 에, 그만 욕심이 그 마음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좀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좀 황당한 이야기 를 말씀드려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카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사 우디 사람으로서 돈벌이의 천재입니다. 우리나라 안면도 개발에 10 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해서 더욱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루에 쓰는 용돈만 해도 약 2억원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부자인 것입니다.
하건만, 그렇게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딸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대통령에게 팔아먹었습니다. 형식적 으로는 결혼이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딸을 팔아먹은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리비아는 카쇼기에게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를 배럴당 싯가보다 3달러 싼 값으로 파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계산해도, 카쇼기는 하루에 약 2 억의 이익을 보게 되는 셈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카쇼기는 하루에 2억씩 받기로 하고 딸을 카다피에게 팔았다는 애기가 되는 것입니 다. 정작 그의 딸은 카다피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쇼기라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겨집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참으로 웃기는 사람입니 다. 하지만, 카쇼기만 웃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카쇼기처 럼 웃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몇 푼 안 되는 돈과 자신의 양심을 바꿔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대생을 납치해서 1억원의 돈을 받아 챙기고서도 그 여학생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만 비정한 두 청년의 이야기, 또는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자기 딸을 팔아먹은 카쇼기라는 사람의 이야 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냉정하 게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런 사람들과 비교한다는 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과연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 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인 이사야서 6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높은 보좌 에 앉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사야 선지자가 뵙게 된 장면이 나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그 성전에는 그분의 영광으 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론,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그 성전은 환 상 속에서 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의 몸을 가리켜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 몸이 곧 주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와 같 은 예배당도 꼭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바울이 말했던 그 성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몸은 주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과 마음은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마음 이 깨끗해야 그 행실도 깨끗하게 된다. ’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그런고로, 우리 마음에 더러운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욕심을 우리 스스로의 힘 으로 물리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 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성령 의 능력으로 육신의 악한 행동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롬8:13)’고 했 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도우 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세력을 물리칠 때에 우리의 심령이 거 룩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간단치 않습니다. 아무에게나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만, 초대교회 때 에 성령이 강림했던 것은, 그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모여서 열심히 기 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했던 것이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사 실을 깊이 깨닫고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철저히 회 개한 후, 주께서 일러주신 말씀에 따라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결심 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뿐이지, 그렇 게 살 용기와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함 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고, 그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욕심과 허영으로 인하여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1. 우리의 심령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 신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러니까, 우리는 물을 가지고 우리 몸을 항상 깨끗하게 해야 할 뿐 만 아니라, 성령의 불로써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와 욕심을 불태워 없애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육신을 따라가면 길을 잃게 되거니와 종래에는 멸망하게 된다(롬8:1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극 적인 멸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서 육신의 악한 행 동을 깨뜨려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더러운 욕심과 육신의 악한 행동을 이겨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2.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자 녀 된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1738년 5월24일 아침, 감리교회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루터의 로 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습니다. 9시 15분경에,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의 일기에서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죄를 다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 일생에 처음으로 경험한 뜨 거움이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 게 되고, 내 마음 속의 모든 정욕과 죄악이 물러가면서 주님만을 모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고 밝혔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 기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가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나가서 간증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운동이 크게 번져서 감리교를 이루게 되었고,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멸 망 직전에 놓여있던 영국을 건져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리 라는 소문은 그치지 않고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 고 말합니다. 하루에 부도로 망하는 회사가 수백에 이른다고 합니 다. 언제 어느 순간에, 우리도 러시아나 브라질처럼 파산선고를 하 게 될지 모를,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정 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과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구하는 길은, 예수 를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씀과 기도로 거듭나서 새롭게 살아가 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세상의 악한 죄를 물리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 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다음, 성령의 불 로 우리 속에 있는 죄를 불살라 없애고, 세상 사람들이 본받고 따 라올 수 있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김 모 양을 범행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그 여학 생이 부유층 자녀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 학생은 금반지와 팔찌를 끼고 있는데다가 명품 핸드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지역이 우리나라에서는 부자가 가장 많기로 소문난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범인들은 그 여학생을 강제로 차에 태워서 납치했고, 내과의사인 그 여학생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1억원 의 돈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범인들은 5천만 원씩 나누어가졌습니다. 그런데, 납치된 여학생 이 그만 ‘당신들의 얼굴과 차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들 은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어기고서 그 여학생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말았습니다. 범인들은 여행용 가방에다가 사체를 넣어두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던 중에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아주 검소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들고 있었던 독일제 가방은 휴대폰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고, 그가 끼고 있던 금반지는 평범한 18k로 친구가 준 것이 었으며, 팔찌와 시계도 길거리에서 산 것이었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의사였으나, 그 학생의 핸드백에는 신용카드가 한 장도 없었고, 휴 대전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3000원짜리 공중전화 카드만 두장 들 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김 양은 비교적 건전한 정신을 가진 학생이었습 니다. 그런데도, 범인들이 볼 때에 부잣집 딸로 보이게끔 치장한 것 이 화근이었고, 또 하나는 참을성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자신을 납치해서 1억원을 받아 챙긴 범인들이 정말 미웠더라 도, 그녀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범인들에게 ‘당신들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말 한마디 한 것 이, 결국은 그 자신의 목숨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죽은 김 양과 비슷한 대학생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저의 마음은 심히 착잡하고 괴로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나 하는 비참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와 비슷한 납치사건이 올해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만 해도 수백 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언제 어디서 무슨 봉변 을 어떻게 당할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아주 위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김포에서는,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집사님이 낯선 청 년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젊은 여자도 아니고 80이 넘은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를 겁탈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하지만, 그런 황당하 고 어이없는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비록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습니다 만, 어째서 이런 일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 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 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갈 때 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롬8:13)’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 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보다 돈이나 세상 즐거움을 더 귀하게 여기는 풍 조가 더욱 날로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에 관한 욕심 이나 성적(性的)인 욕구를 달성하고 싶은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가볍게 여기는 사 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종교가 육신의 욕망을 이겨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가르 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욕심을 극복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조국사’라는 스님은 ‘욕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심(無心) 무념(無念) 무사(無思)를 말했습니다. 즉,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워야 욕심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비 우지 못하거나 욕심을 이겨내지 못할 경우, 인간은 갖가지 욕심으 로 인해서 108가지나 되는 번뇌와 고민을 하게 된다고, 불교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유교의 공자는 ‘사람의 욕심은 그릇에 들어있는 물 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릇에 물이 적당히 들어있으면, 그 그릇은 안정감이 있듯이, 사람도 욕심을 적절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인생을 파멸의 길로 빠지게 하는 아주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지나친 욕심을 극복하고 예의범절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克己復禮)’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욕심에 대해서 어떻게 교훈하고 있을까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다(약1:15)’고 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하기를 ‘인간은 자기의 악 한 생각이나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게 되거니와, 그 악한 생각 이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들어서, 결국 나중에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죽 음의 형벌을 받게 된다(약1:14-15)’고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종교는 ‘지나친 욕심을 품지 말라’고 엄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 어서 그와 같은 교훈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째서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만 가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 를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 워져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마치 불(火)과도 같습니다. 불은 꼭 필요한 것이로 되, 잘못 다루면 아주 큰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욕심이 없다면 죽은 시체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적절 하게 조절하지 못하면, 인간은 그 욕심 때문에 파멸을 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그 욕심을 적 절히 관리하지 못하고, 그만 그 욕심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빠져 들게 되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요
바울이 이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 마음에는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 었다(롬1:21)’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여겨야 하는데, 그만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고 사는 까닭 에, 그만 욕심이 그 마음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좀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좀 황당한 이야기 를 말씀드려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카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사 우디 사람으로서 돈벌이의 천재입니다. 우리나라 안면도 개발에 10 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해서 더욱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루에 쓰는 용돈만 해도 약 2억원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부자인 것입니다.
하건만, 그렇게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딸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대통령에게 팔아먹었습니다. 형식적 으로는 결혼이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딸을 팔아먹은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리비아는 카쇼기에게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를 배럴당 싯가보다 3달러 싼 값으로 파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계산해도, 카쇼기는 하루에 약 2 억의 이익을 보게 되는 셈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카쇼기는 하루에 2억씩 받기로 하고 딸을 카다피에게 팔았다는 애기가 되는 것입니 다. 정작 그의 딸은 카다피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쇼기라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겨집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참으로 웃기는 사람입니 다. 하지만, 카쇼기만 웃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카쇼기처 럼 웃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몇 푼 안 되는 돈과 자신의 양심을 바꿔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대생을 납치해서 1억원의 돈을 받아 챙기고서도 그 여학생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만 비정한 두 청년의 이야기, 또는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자기 딸을 팔아먹은 카쇼기라는 사람의 이야 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냉정하 게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런 사람들과 비교한다는 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과연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 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인 이사야서 6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높은 보좌 에 앉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사야 선지자가 뵙게 된 장면이 나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그 성전에는 그분의 영광으 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론,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그 성전은 환 상 속에서 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의 몸을 가리켜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 몸이 곧 주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와 같 은 예배당도 꼭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바울이 말했던 그 성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몸은 주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과 마음은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마음 이 깨끗해야 그 행실도 깨끗하게 된다. ’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그런고로, 우리 마음에 더러운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욕심을 우리 스스로의 힘 으로 물리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 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성령 의 능력으로 육신의 악한 행동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롬8:13)’고 했 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도우 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세력을 물리칠 때에 우리의 심령이 거 룩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간단치 않습니다. 아무에게나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만, 초대교회 때 에 성령이 강림했던 것은, 그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모여서 열심히 기 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했던 것이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사 실을 깊이 깨닫고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철저히 회 개한 후, 주께서 일러주신 말씀에 따라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결심 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뿐이지, 그렇 게 살 용기와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함 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고, 그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욕심과 허영으로 인하여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1. 우리의 심령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 신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러니까, 우리는 물을 가지고 우리 몸을 항상 깨끗하게 해야 할 뿐 만 아니라, 성령의 불로써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와 욕심을 불태워 없애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육신을 따라가면 길을 잃게 되거니와 종래에는 멸망하게 된다(롬8:1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극 적인 멸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서 육신의 악한 행 동을 깨뜨려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더러운 욕심과 육신의 악한 행동을 이겨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2.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자 녀 된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1738년 5월24일 아침, 감리교회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루터의 로 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습니다. 9시 15분경에,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의 일기에서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죄를 다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 일생에 처음으로 경험한 뜨 거움이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 게 되고, 내 마음 속의 모든 정욕과 죄악이 물러가면서 주님만을 모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고 밝혔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 기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가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나가서 간증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운동이 크게 번져서 감리교를 이루게 되었고,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멸 망 직전에 놓여있던 영국을 건져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리 라는 소문은 그치지 않고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 고 말합니다. 하루에 부도로 망하는 회사가 수백에 이른다고 합니 다. 언제 어느 순간에, 우리도 러시아나 브라질처럼 파산선고를 하 게 될지 모를,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정 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과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구하는 길은, 예수 를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씀과 기도로 거듭나서 새롭게 살아가 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세상의 악한 죄를 물리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 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다음, 성령의 불 로 우리 속에 있는 죄를 불살라 없애고, 세상 사람들이 본받고 따 라올 수 있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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