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 강림
본문
오늘이 교회력으로 오순절입니다. 맥추절, 칠칠절 이라고도 하는 이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50일 째 되는 날이며 성령님께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문도들에게 강림하셨던 성령강림절이기도 합니다.
이 날 이후로 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부흥과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이 아니었다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교회와 수십 억의 성도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님은 오늘도 그 사모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방송을 청취하시는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성령 강림절을 통하여 초대교회에 임하였던 성령충만함을 받으시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므로 교회가 급성장한 것같이 오늘날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이 섬기시는 교회가 이처럼 성장 발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이 성령충만 받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님의 오심과 오신 후의 역사,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는 순서로 말씀을 증거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세례는 예언된 말씀이었다.
오순절 성령세례는 어느 날 갑자기 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구약 전체가 예언하였듯이 바로 성령강림도 예언되었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구약의 요엘 선지자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2:28-29)라고 예언한 대로 성령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도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님께서는 고난 받으실 때가 가까워 오시자 그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며(요14:16),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셨으며,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하신 말씀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제자들이 믿고 사모하며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약속이 성취되어 성령강림이 이루어졌고 교회는 이것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성령강림의 목적
1) 주님께서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주시려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이와 같이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실체로서가 아니라 영으로써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지만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주님의 진리로 충만케 하시려고
성도 여러분, 제자들은 진리에 대하여 잘 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진리로 충만하지 못하면 교회를 바로 세워나갈 수 없으며 성도들을 인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케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3) 능력을 받게 하시려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 신유의 능력, 영분별의 능력,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는 능력 등 많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만 가지고는 온전히 성도들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온전히 이루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님께서 오늘도 살아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효과가 바로 지금 살아 계신 이적과 표적과 기사로 나타났을 때 예수님이 진리요, 생명이요, 능력이 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른 십자가입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 십자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자마다 죄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복음은 사장(死藏)되어서는 안되며 땅 끝까지 전파되어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놓으시고 부활 승천 하셨는데 그럼 누가 이 놀라운 복음을 이 땅에 전합니까 주님께서는 이 사역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시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어부들로 지식도 없고 능력도 없었던 제자들이 무엇을 가지고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위임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두 가지 방법을 택하셨는데, 첫 번째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말씀처럼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의 영을 충만하게 주시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셨는데, 성령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의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제자들에게 부어짐으로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그 제자들도 그대로 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이 어떠한 일을 행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 하셨습니다. 성령강림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시기 전까지는 예수님 한 분만이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지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들이 성령충만을 받아 주님과 같이 능력있는 자들로 변화되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이 처소 처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는 사도들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과 빌립 같은 평신도들에게도 임하여서 그들로 능력을 행함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3천명, 5천명씩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결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5) 기쁨을 충만케 하시려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은 기쁨으로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충만 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실 때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3)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기쁨으로도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도 기쁘고,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며 능욕을 받아도 찬송이 나오며, 순교의 자리에 있어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표적
1)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소리를 짐작해 본다면, 초음속 제트기가 날아갈 때 나는 굉음 이상의 소리일 것이라고 상상하시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실 것입니다. 이러한 소리가 2천년 전에 120명이 모여 앉은 방안에서 들렸으니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이 소리가 나매”(6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이 소리가 마가 다락방 안에서만 들린 것이 아니라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에게 다 들렸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마가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 소리가 들렸다면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 근처로 모여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엄청난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그 소리의 근원지인 마가 다락방으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2)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였다.
불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에도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강림하실 때도 시내산 불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큰 불덩이가 마가 다락방에 떨어져서 그 불덩이가 갈라져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덩이는 마가 다락방 전체를 휩쌌을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가 불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타지 않으니까 이상하게 여겨 다가갔던 것처럼, 예루살렘 사람들도 급하고 강한 소리와 함께 타지 않는 커다란 불덩이가 그곳에 임한 것을 보고 놀라서 마가 다락방 근처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제로 충남 부여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한창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통성 기도를 드리는데 동네사람들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서 언덕 위에 있는 교회로 올라왔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동네에서 보니까 교회에 불이 나서 불을 끄러 왔다고 대답하더랍니다. 교회는 실제로 불이 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온 교회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교회에 불이 난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부흥회를 하는 교회에 성령의 불이 임하자 동네사람들이 불이 난 줄 알고 불을 끄러 좇아 올라왔는데 하물며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외부사람들이 보기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개인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도 이러한 뜨거운 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결핵성 종양에 걸린 34세 된 형제가 우리교회에 나왔습니다. 한창 나이에 온 몸이 썩어 들어가 곧 죽을 것 같은 이 형제가 철야예배에 참석하여 통성기도를 할 때 제가 안수를 해 주었는데 안수할 때 그 형제가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불이 임한 것을 안수하던 저도 느낄 수 있었고 기도하던 그 형제는 앞으로 폭 고꾸라져서 밤새도록 울며불며 회개하였고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결핵성 종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셔서 건강을 회복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대전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 세례를 받고 결핵성 종양을 치료받은 형제가 얼마 후에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공장장을 전도하였습니다. 그 공장장은 학벌도 좋고 세상지식도 풍부한 분이었는데 병명을 알 수 없는 무릎의 통증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공장장이 베들레헴 성전에서 부흥회를 할 때 참석하여 김상애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는 중에 성령의 불이 임하자 체격이 큰 형제가 어쩔 줄을 몰라 콩당콩당 뛰고 뒹굴며 엄청난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령세례를 받은 후 무릎의 통증을 치료받고 믿음이 충만해진 공장장은 그 후에 신학교에 들어가 지금은 목사가 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이 개인에게 임할 때에도 이렇게 엄청난 뜨거움을 체험하고 회개한 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3)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구약시대에 집단적으로 성령이 임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후 70인의 장로를 세웠는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언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민11:25). 그러나 70인의 장로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는 단 한번으로 끝났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그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의 방언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15개국 이상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가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여러 나라의 말로 방언하고 찬양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2:7-8)라고 하였습니다. 120명이 한꺼번에 방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끄러운 소리로 들린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올라온 유대인들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들렸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여러 나라말로 방언한 것에는 온 인류를 구원하셔서 세계 여러 나라의 방언으로 찬양 받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4. 성령세례 후의 제자들의 변화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에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보고 기이히 여겼지만,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22-33)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8-39)고 설교를 하여 이 날 3천 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충만해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성도들 마음 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 서로 교제하며 물질로 헌신하고 봉사하며 예배에 힘쓰고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이러한 생활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많아져 초대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를 가진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범이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범이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모든 교회들을 살펴볼 때 과연 초대교회같이 생동감이 있고 구원받는 백성들이 날마다 많아지며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보입니까 초대교회가 모든 교회의 모범이지만 오늘날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는 극히 드뭅니다. 이것이 우리의 슬픔입니다. 현대의 교회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성경을 잘못 가르친 결과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현대의 교회들이 성령충만을 받지 못할까요
첫째, 초대교회의 성령세례는 그 당시 단 한번 일어났던 일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현대의 성도들은 아예 성령세례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만 성령이 임하여 그들만 충만함을 받았다면 그 이후 사도들의 행적에서는 성령충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아야 하는데, 성경에는 박해당하는 사도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세례가 일회적인 것이라면 이방인 고넬료가 받은 성령세례는 무엇이며,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성령세례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하였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충만은 결코 일회적인 아니라 이후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세례를 일회적인 것으로 못박아 가르쳤기 때문에 요즘의 성도들은 아예 성령충만 받을 생각도 안하고 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거듭남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면 거듭나는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는데 성도 여러분, 성령세례와 거듭남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거듭남은 내적인 변화이지만 성령세례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거듭남과 성령세례가 고넬료와 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고 대부분 거듭남과 성령세례는 따로 따로 일어납니다.
오순절 성령세례 받기 전의 제자들은 거듭난 자들이었습니다. 만약에 거듭남과 성령세례가 같은 것이라면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겠습니까 우리가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보아도 오순절 성령세례 받기 전의 제자들의 모습과 성령세례 받은 후의 제자들의 모습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거듭나지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까 그 속에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충만을 받은 후 베드로는 대제사장들 앞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성령충만은 전혀 다른 체험입니다.
셋째, 겸손과 온유를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겸손하고 온유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님 앞에서 낮아지고 온유해야 함을 말합니다. 겸손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지 능력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비굴함이나 약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충만을 받은 사도들과 성도들은 얼마나 당당했습니까
넷째, 인본주의적이며 자기 중심적으로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적인 경건함만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을 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하늘로부터 오는 것인데 사람들이 구해도 오지 않고 자신이 체험해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과거에 있었던 일로 단정해 버리고 오히려 성령충만한 자들을 이단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도록 교회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선한 방향으로만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 중심적이며 선한 것, 윤리적인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선한 일도 해야 하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은 한 단계 더 올라간 신앙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도 없으면서 경건의 모습만 있으면 무엇합니까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는 것이 분명한데 왜 살아 계시는 역사를 나타내지 못합니까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이 땅에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교회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에 나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도하기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성도의 수(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양과 질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것입니다. 질이 좋으면 성도의 수도 많아지고, 성도의 수가 많으면 믿음의 질도 같이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온 세상에 전하여 그들을 다 구원하겠다는 거룩한 야망과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셨는데 우리들만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 구원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을 향해 복음의 나팔을 불 때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아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신앙생활 잘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으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 능력을 우리가 소유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능력을 행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부흥, 성장의 역사가 오늘날 모든 교회에 일어나야 하며, 우리 교회에서도 계속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내가 구원받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나가서 전도하면 그 사람이 구원받고 또 능력 받아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 성령강림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고자 하심임을 깨닫고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날 이후로 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부흥과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이 아니었다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교회와 수십 억의 성도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님은 오늘도 그 사모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방송을 청취하시는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성령 강림절을 통하여 초대교회에 임하였던 성령충만함을 받으시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므로 교회가 급성장한 것같이 오늘날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이 섬기시는 교회가 이처럼 성장 발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이 성령충만 받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님의 오심과 오신 후의 역사,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는 순서로 말씀을 증거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세례는 예언된 말씀이었다.
오순절 성령세례는 어느 날 갑자기 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구약 전체가 예언하였듯이 바로 성령강림도 예언되었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구약의 요엘 선지자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2:28-29)라고 예언한 대로 성령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도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님께서는 고난 받으실 때가 가까워 오시자 그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며(요14:16),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셨으며,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하신 말씀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제자들이 믿고 사모하며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약속이 성취되어 성령강림이 이루어졌고 교회는 이것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성령강림의 목적
1) 주님께서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주시려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이와 같이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실체로서가 아니라 영으로써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지만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주님의 진리로 충만케 하시려고
성도 여러분, 제자들은 진리에 대하여 잘 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진리로 충만하지 못하면 교회를 바로 세워나갈 수 없으며 성도들을 인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케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3) 능력을 받게 하시려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 신유의 능력, 영분별의 능력,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는 능력 등 많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만 가지고는 온전히 성도들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온전히 이루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님께서 오늘도 살아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효과가 바로 지금 살아 계신 이적과 표적과 기사로 나타났을 때 예수님이 진리요, 생명이요, 능력이 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른 십자가입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 십자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자마다 죄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복음은 사장(死藏)되어서는 안되며 땅 끝까지 전파되어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놓으시고 부활 승천 하셨는데 그럼 누가 이 놀라운 복음을 이 땅에 전합니까 주님께서는 이 사역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시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어부들로 지식도 없고 능력도 없었던 제자들이 무엇을 가지고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위임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두 가지 방법을 택하셨는데, 첫 번째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말씀처럼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의 영을 충만하게 주시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셨는데, 성령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의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제자들에게 부어짐으로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그 제자들도 그대로 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이 어떠한 일을 행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 하셨습니다. 성령강림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시기 전까지는 예수님 한 분만이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지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들이 성령충만을 받아 주님과 같이 능력있는 자들로 변화되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이 처소 처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는 사도들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과 빌립 같은 평신도들에게도 임하여서 그들로 능력을 행함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3천명, 5천명씩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결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5) 기쁨을 충만케 하시려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은 기쁨으로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충만 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실 때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3)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기쁨으로도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도 기쁘고,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며 능욕을 받아도 찬송이 나오며, 순교의 자리에 있어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표적
1)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소리를 짐작해 본다면, 초음속 제트기가 날아갈 때 나는 굉음 이상의 소리일 것이라고 상상하시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실 것입니다. 이러한 소리가 2천년 전에 120명이 모여 앉은 방안에서 들렸으니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이 소리가 나매”(6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이 소리가 마가 다락방 안에서만 들린 것이 아니라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에게 다 들렸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마가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 소리가 들렸다면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 근처로 모여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엄청난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그 소리의 근원지인 마가 다락방으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2)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였다.
불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에도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강림하실 때도 시내산 불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큰 불덩이가 마가 다락방에 떨어져서 그 불덩이가 갈라져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덩이는 마가 다락방 전체를 휩쌌을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가 불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타지 않으니까 이상하게 여겨 다가갔던 것처럼, 예루살렘 사람들도 급하고 강한 소리와 함께 타지 않는 커다란 불덩이가 그곳에 임한 것을 보고 놀라서 마가 다락방 근처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제로 충남 부여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한창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통성 기도를 드리는데 동네사람들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서 언덕 위에 있는 교회로 올라왔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동네에서 보니까 교회에 불이 나서 불을 끄러 왔다고 대답하더랍니다. 교회는 실제로 불이 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온 교회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교회에 불이 난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부흥회를 하는 교회에 성령의 불이 임하자 동네사람들이 불이 난 줄 알고 불을 끄러 좇아 올라왔는데 하물며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외부사람들이 보기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개인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도 이러한 뜨거운 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결핵성 종양에 걸린 34세 된 형제가 우리교회에 나왔습니다. 한창 나이에 온 몸이 썩어 들어가 곧 죽을 것 같은 이 형제가 철야예배에 참석하여 통성기도를 할 때 제가 안수를 해 주었는데 안수할 때 그 형제가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불이 임한 것을 안수하던 저도 느낄 수 있었고 기도하던 그 형제는 앞으로 폭 고꾸라져서 밤새도록 울며불며 회개하였고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결핵성 종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셔서 건강을 회복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대전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 세례를 받고 결핵성 종양을 치료받은 형제가 얼마 후에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공장장을 전도하였습니다. 그 공장장은 학벌도 좋고 세상지식도 풍부한 분이었는데 병명을 알 수 없는 무릎의 통증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공장장이 베들레헴 성전에서 부흥회를 할 때 참석하여 김상애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는 중에 성령의 불이 임하자 체격이 큰 형제가 어쩔 줄을 몰라 콩당콩당 뛰고 뒹굴며 엄청난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령세례를 받은 후 무릎의 통증을 치료받고 믿음이 충만해진 공장장은 그 후에 신학교에 들어가 지금은 목사가 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이 개인에게 임할 때에도 이렇게 엄청난 뜨거움을 체험하고 회개한 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3)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구약시대에 집단적으로 성령이 임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후 70인의 장로를 세웠는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언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민11:25). 그러나 70인의 장로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는 단 한번으로 끝났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그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의 방언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15개국 이상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가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여러 나라의 말로 방언하고 찬양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2:7-8)라고 하였습니다. 120명이 한꺼번에 방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끄러운 소리로 들린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올라온 유대인들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들렸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여러 나라말로 방언한 것에는 온 인류를 구원하셔서 세계 여러 나라의 방언으로 찬양 받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4. 성령세례 후의 제자들의 변화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에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보고 기이히 여겼지만,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22-33)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8-39)고 설교를 하여 이 날 3천 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충만해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성도들 마음 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 서로 교제하며 물질로 헌신하고 봉사하며 예배에 힘쓰고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이러한 생활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많아져 초대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를 가진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범이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범이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모든 교회들을 살펴볼 때 과연 초대교회같이 생동감이 있고 구원받는 백성들이 날마다 많아지며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보입니까 초대교회가 모든 교회의 모범이지만 오늘날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는 극히 드뭅니다. 이것이 우리의 슬픔입니다. 현대의 교회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성경을 잘못 가르친 결과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현대의 교회들이 성령충만을 받지 못할까요
첫째, 초대교회의 성령세례는 그 당시 단 한번 일어났던 일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현대의 성도들은 아예 성령세례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만 성령이 임하여 그들만 충만함을 받았다면 그 이후 사도들의 행적에서는 성령충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아야 하는데, 성경에는 박해당하는 사도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세례가 일회적인 것이라면 이방인 고넬료가 받은 성령세례는 무엇이며,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성령세례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하였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충만은 결코 일회적인 아니라 이후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세례를 일회적인 것으로 못박아 가르쳤기 때문에 요즘의 성도들은 아예 성령충만 받을 생각도 안하고 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거듭남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면 거듭나는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는데 성도 여러분, 성령세례와 거듭남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거듭남은 내적인 변화이지만 성령세례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거듭남과 성령세례가 고넬료와 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고 대부분 거듭남과 성령세례는 따로 따로 일어납니다.
오순절 성령세례 받기 전의 제자들은 거듭난 자들이었습니다. 만약에 거듭남과 성령세례가 같은 것이라면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겠습니까 우리가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보아도 오순절 성령세례 받기 전의 제자들의 모습과 성령세례 받은 후의 제자들의 모습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거듭나지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까 그 속에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충만을 받은 후 베드로는 대제사장들 앞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성령충만은 전혀 다른 체험입니다.
셋째, 겸손과 온유를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겸손하고 온유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님 앞에서 낮아지고 온유해야 함을 말합니다. 겸손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지 능력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비굴함이나 약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충만을 받은 사도들과 성도들은 얼마나 당당했습니까
넷째, 인본주의적이며 자기 중심적으로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적인 경건함만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을 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하늘로부터 오는 것인데 사람들이 구해도 오지 않고 자신이 체험해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과거에 있었던 일로 단정해 버리고 오히려 성령충만한 자들을 이단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도록 교회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선한 방향으로만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 중심적이며 선한 것, 윤리적인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선한 일도 해야 하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은 한 단계 더 올라간 신앙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도 없으면서 경건의 모습만 있으면 무엇합니까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는 것이 분명한데 왜 살아 계시는 역사를 나타내지 못합니까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이 땅에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교회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에 나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도하기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성도의 수(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양과 질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것입니다. 질이 좋으면 성도의 수도 많아지고, 성도의 수가 많으면 믿음의 질도 같이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온 세상에 전하여 그들을 다 구원하겠다는 거룩한 야망과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셨는데 우리들만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 구원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을 향해 복음의 나팔을 불 때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아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신앙생활 잘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으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 능력을 우리가 소유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능력을 행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부흥, 성장의 역사가 오늘날 모든 교회에 일어나야 하며, 우리 교회에서도 계속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내가 구원받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나가서 전도하면 그 사람이 구원받고 또 능력 받아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 성령강림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고자 하심임을 깨닫고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