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님의 열매 3
본문
성령 열매의 세 번째 구조는 자신의 내면적 인격에서 이루어지는 성품(character)이다.
6. 충 성(Faith)
충성은 원래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을 말하는데, 믿음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칭의의 믿음이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의미하지 않고,진실성를 의미한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본성이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분의 약속대로 이 땅에 승리자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을 "아멘이요 충성이시라"고 소개한다(계 3:14).
헬라어로도 Pistis라고 하는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맡길 수 있고, 항상 변함이 없으며 일정한 사람에게 붙여지는 단어이다.
믿을만한 사람은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잠 25:13).
1)충성이란 성실성(Fidelity)을 함축한다
바울은 여기서 정직과 진실함과 신용의 개념에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성경(ASV)에서는 "성령님의 열매는 …… 신실함(faithfulness)"이라고 번역한다. 또 다른 번역에서는 성실(Fidelity)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이것은 곧 "신뢰할만한(trustworthiness) 품성"을 뜻한다. 순수하고, 의심할바 없이 정직하고, 순은같이 신뢰할만한 주님의 사람을 말한다. 보디발의 마음을 꽉 사로잡은 요셉의 투명하고 강직한 성품이 그렇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다 위임(trust)하였다(창 39:6).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청렴함을 허리띠와 같다고 비유한다(사 11:5).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매력을 주고 있으며, 또 그들을 꽉 사로잡고 있는지요
이러한 진실함은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종의 성품이요(마 25:21. 고전 4:2),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신을 주는 품성이다(딛 2:9-10).
2)충성이란 믿음(Faith)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은 곧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실한 사람은 모두 다 믿음이 충만했다(행 6:3).
이런 관점에서 믿음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신실함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형성됨을 뜻한다. 이것이 곧 신뢰하는 사랑이다. 모든 것을 믿기에 더 믿고 싶어하고, 또 최선을 다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성(fame)이 아닌 진실함(fidelity)으로 사는 자요, 성공(success)만이 아닌 성실함(sincererity)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성경적 충성의 원리
작은 일에 충성(마 25:23. 눅 16:10)
맡은 일에 충성(고전 4:2)
초지일관 충성(다니엘 / 단 6:1-4. 갈렙 / 수 14:7-10)
죽기까지 충성(모세 / 민 12:7. 바울 / 행 20:24. 예수님 / 계 2:10. 히 3:1-6)
7. 온 유(Meekness)
의심할바 없이 온유란 마음의 미덕으로써, "머리를 숙이는 사랑이다. " 또 온유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일에 습관적으로 복종하는 은혜로운 영혼이라 할 수 있다. 즉 온유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들에 대하여 적극적이고도 기꺼이 묵종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온유란 자기 과시, 자기 주장, 자기 자랑, 자기 의지, 그리고 오늘날 보편화된 고고한 마음 자세와 정 반대의 마음이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겸손이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하는 것(realized nothingness)"이다.
그렇다고 온유함이 약함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Meekness is not weakness). 온유한 사람은 마치 개성도 없고, 맥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온유한 사람은 비둘기처럼 순진할(harmless) 뿐만 아니라, 사자처럼 용감한 것이 융화된 사람이다. 이것은 곧 인내하면서도 자족할 수 있는 위력있는 덕망이요, 그야말로 외유내강(meek yet mighty)인 것이다.
그래서 모세야말로 온유함이 뛰어난 사람으로 높이 존경받고 있다(민 12:3).
다윗 역시 용감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내면은 한없이 부드러운 심성의 사람이었고, 바울도 겉으로는 강철같은 사람이었으나, 속으로는 연철같은 심성을 가진 자였다. 즉 그는 언제나 강함과 약함(firmness & meekness) 사이의 친화력을 잘 유지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온유함의 완전한 표본이신 예수님을 살펴 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마음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가장 완벽하면서도 사랑스럽게 완성시키는 모범을 보여주신다(마 11:29). 우리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이나 빌라도, 헤롯 앞에 서계신 모습이 얼마나 위풍당당하시면서도 아름다우신가! 그는 "위엄과 온유(majesty and meekness)"를 가장 멋있게 공유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개성이 없는 듯 하시면서도 분명한 개성을 갖고 계신다. 이것은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처럼 임하신 성령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성품인 것이다. 즉 전혀 자기 주장이 없으시면서도, 진정으로 겸손한 자아상을 유지하셨다. 알렉산더 맥클라렌이 말하듯, 온유함이란 폭풍 앞의 갈대처럼 어떤 반대 앞에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순응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곧 당신에게 요구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위한 자격요건이 것이다(마 11:29,30. 고전 4:21. 갈 6:1. 엡 4:2). 예수님은 이미 그의 제자도에서 이런 복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을 즈지시켜 주셨다(마 5:5).
우리가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을수록 자기를 억누르면서도 다른 사람도 진정시킬 수 있는 감화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딤후 2:25. 딛 3:2).
1)감싸주는 사랑이다
어떤 현인은 "온유란 상대방의 거친 말과 행동을 후회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달걀 껍질을 깨는 법에 있어서, 충격을 주어 깨든지(생명을 죽임), 따뜻한 온도로 부화시켜 스스로 깨고 나오게도 할 수 있음(생명을 살림)을 생각해 보자.
2)이해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 모든 것을 덮어 줄 수 있다. 이것이 곧 어머니의 유순한 사랑이다(살전 2:7). 이런 마음의 온유란 은혜가 충만할 때 더욱 가능한 것이다.
3)존중하는 사랑이다
온유란 "기분좋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Meekness is the ability to disagree agreeably)"
즉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거절형 인생을 살았으나, 예수님은 항상 수용적 인생을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거부하지(reject) 말고, 서로 존중하자(respect). 이런 마음의 온유 야말로 예수님의 대표적 성품으로서(마 11:29), 땅의 복을 누리게 하고(마 5:5. 시 37:11),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값진 성품이다(벧전 3:3-4. 민 12:3).
Ⅴ. 성령님의 열매(4)(The Fruit of the Spirit) (벧후 1:5-11)
성령 열매의 세 번째 구조는 자신의 내면적 인격에서 이루어지는 성품(character)이다.
3. 절 제(Temperance)
여기서 말하는 절제라는 단어는 자신의 내면적 모든 감정을 이겨내는 "극기(克己)"를 말한다. 즉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인간 내면적인 마지막 열매로써 자기 감정을 다스리고 이기는 능력을 뜻한다. 그래서 "자제(self-control)"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자기를 이기는 힘이다(잠 16:3
2. 29:11)또 어떤 분은 "절제란 자기 영혼을 다스리는 능력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지식 위에 절제를 더하라고 권고한다(벧후 1:6).
그렇다. 절제란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의 우월함이요,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우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1)절대적인 다스림이다(absolutely control)
자제력이란 모든 분야에서 실천되어야 하는데(롬 15:1,2), 제어하기 힘든 욕망과 억제되지 않는 감정이나 충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희랍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아무도 자기를 정복하기 전에는 참으로 자유로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절제란 자기를 이기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2)기뻐하는 다스림이다(joyful control)
절제란 기쁨과 결혼관계이다. 참된 절제는 결코 속으로 비통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령님의 요구에 기쁨으로 항복한다. 즉 우리의 몸까지도 주님께 기꺼이 복종시켜드린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한다(고전 9:27).
3)성령님의 다스림이다(divine control)
알렉산더 대제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아! 나는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했으며, 신민들을 계몽시켰으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나 자신을 정복하거나 계몽시길 수는 없었단 말인가"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성령님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가 성령으로 다스려지도록 더욱 기도하고 사모해야 한다. 성령님만이 거 룩한 자제력의 원천이시다.
이제부터 우리의 취향이나 습관, 감각적 매력이나 정열같은 것들을 사랑하시는 성령님의 견고 한 통제력 밑에 두도록 하자. 나 자신의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 위임해야 한다.
세상과 육신의 압박이 아무리 커도, 우리는 능력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제가 얼마든지 가능 하다(빌 4:13). 더욱이 이러한 거룩한 절제는 우리의 고상함을 빼앗아가는 대신, 우리의 목표를 더욱 증대시켜 준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희망찬 결론으로 고결한 성숙의 지평을 바라보게 한다.
이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즉 율법은 억제를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성령님은 아무것도 억제하지 않을뿐더러 오 히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신다.
절제의 비결 어떻게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까
사람이 절제를 할 수 있게 될 때에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즉 자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에 자신감과 안정감이 온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십시오(약 1:4)
절제를 개발하는 첫 단계는 내가 절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십시오(엡 4:26-27)
모든 절제의 출발은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변화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빌 4:13. 막 9:23)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후 5:17).
당신을 격려해주고 책임져줄 좋은 동반자를 선택하십시오(전 4:12)
나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함께 기도해주고 절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분야에 나를 격려해 주고 책임져줄 사람을 발견하십시오.
성령님의 힘을 의지하십시오(갈 5:16)
신자는 성령충만할수록 자제력이 우세하게 된다.
성경은 우리 속 사람이 강해야 절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고후 4:16).
Max Lucado의 고백적인 설교 문을 그대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어떤 경우도 증오심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불의도 분노를 일으키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오늘 저는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기쁨을 선택합니다. 저는 저의 여호와 하나님을 저의 환경에 초청할 것입니다. 저는 유혹이 제 안에서 저를 냉소적인 사람이 되지 않게 하도록, 게으른 사색가의 도구가 도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사람들을 멸시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문제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저는 평화를 선택합니다. 저는 용서받음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것입니다.
저는 인내를 선택합니다. 저는 세상을 불편함들을 간과할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그를 저의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겠습니다. 저는 기다림이 길어지는 것을 불평하는 대신 차라리 그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 잠깐 동안이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저는 친절을 선택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외롭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자들에게도 친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부자들을 선대하신 것처럼 그들도 불친절한 자들에게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양선함을 선택합니다. 오늘 저는 부정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보다는 차라리 한 푼도 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정죄하기 이전에 저의 죄를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신실함을 선택합니다. 오늘 저는 약속을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빚쟁이가 그들이 저에게 가졌던 신뢰를 후회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저의 비서가 저의 말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아내가 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절제를 선택합니다. 저는 저의 거친 마음이 영원한 것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저는 오직 기쁨에 취할 것입니다. 저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감동을 입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만 영향을 입을 것입니다.
6. 충 성(Faith)
충성은 원래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을 말하는데, 믿음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칭의의 믿음이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의미하지 않고,진실성를 의미한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본성이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분의 약속대로 이 땅에 승리자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을 "아멘이요 충성이시라"고 소개한다(계 3:14).
헬라어로도 Pistis라고 하는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맡길 수 있고, 항상 변함이 없으며 일정한 사람에게 붙여지는 단어이다.
믿을만한 사람은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잠 25:13).
1)충성이란 성실성(Fidelity)을 함축한다
바울은 여기서 정직과 진실함과 신용의 개념에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성경(ASV)에서는 "성령님의 열매는 …… 신실함(faithfulness)"이라고 번역한다. 또 다른 번역에서는 성실(Fidelity)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이것은 곧 "신뢰할만한(trustworthiness) 품성"을 뜻한다. 순수하고, 의심할바 없이 정직하고, 순은같이 신뢰할만한 주님의 사람을 말한다. 보디발의 마음을 꽉 사로잡은 요셉의 투명하고 강직한 성품이 그렇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다 위임(trust)하였다(창 39:6).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청렴함을 허리띠와 같다고 비유한다(사 11:5).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매력을 주고 있으며, 또 그들을 꽉 사로잡고 있는지요
이러한 진실함은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종의 성품이요(마 25:21. 고전 4:2),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신을 주는 품성이다(딛 2:9-10).
2)충성이란 믿음(Faith)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은 곧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실한 사람은 모두 다 믿음이 충만했다(행 6:3).
이런 관점에서 믿음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신실함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형성됨을 뜻한다. 이것이 곧 신뢰하는 사랑이다. 모든 것을 믿기에 더 믿고 싶어하고, 또 최선을 다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성(fame)이 아닌 진실함(fidelity)으로 사는 자요, 성공(success)만이 아닌 성실함(sincererity)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성경적 충성의 원리
작은 일에 충성(마 25:23. 눅 16:10)
맡은 일에 충성(고전 4:2)
초지일관 충성(다니엘 / 단 6:1-4. 갈렙 / 수 14:7-10)
죽기까지 충성(모세 / 민 12:7. 바울 / 행 20:24. 예수님 / 계 2:10. 히 3:1-6)
7. 온 유(Meekness)
의심할바 없이 온유란 마음의 미덕으로써, "머리를 숙이는 사랑이다. " 또 온유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일에 습관적으로 복종하는 은혜로운 영혼이라 할 수 있다. 즉 온유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들에 대하여 적극적이고도 기꺼이 묵종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온유란 자기 과시, 자기 주장, 자기 자랑, 자기 의지, 그리고 오늘날 보편화된 고고한 마음 자세와 정 반대의 마음이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겸손이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하는 것(realized nothingness)"이다.
그렇다고 온유함이 약함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Meekness is not weakness). 온유한 사람은 마치 개성도 없고, 맥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온유한 사람은 비둘기처럼 순진할(harmless) 뿐만 아니라, 사자처럼 용감한 것이 융화된 사람이다. 이것은 곧 인내하면서도 자족할 수 있는 위력있는 덕망이요, 그야말로 외유내강(meek yet mighty)인 것이다.
그래서 모세야말로 온유함이 뛰어난 사람으로 높이 존경받고 있다(민 12:3).
다윗 역시 용감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내면은 한없이 부드러운 심성의 사람이었고, 바울도 겉으로는 강철같은 사람이었으나, 속으로는 연철같은 심성을 가진 자였다. 즉 그는 언제나 강함과 약함(firmness & meekness) 사이의 친화력을 잘 유지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온유함의 완전한 표본이신 예수님을 살펴 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마음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가장 완벽하면서도 사랑스럽게 완성시키는 모범을 보여주신다(마 11:29). 우리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이나 빌라도, 헤롯 앞에 서계신 모습이 얼마나 위풍당당하시면서도 아름다우신가! 그는 "위엄과 온유(majesty and meekness)"를 가장 멋있게 공유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개성이 없는 듯 하시면서도 분명한 개성을 갖고 계신다. 이것은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처럼 임하신 성령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성품인 것이다. 즉 전혀 자기 주장이 없으시면서도, 진정으로 겸손한 자아상을 유지하셨다. 알렉산더 맥클라렌이 말하듯, 온유함이란 폭풍 앞의 갈대처럼 어떤 반대 앞에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순응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곧 당신에게 요구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위한 자격요건이 것이다(마 11:29,30. 고전 4:21. 갈 6:1. 엡 4:2). 예수님은 이미 그의 제자도에서 이런 복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을 즈지시켜 주셨다(마 5:5).
우리가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을수록 자기를 억누르면서도 다른 사람도 진정시킬 수 있는 감화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딤후 2:25. 딛 3:2).
1)감싸주는 사랑이다
어떤 현인은 "온유란 상대방의 거친 말과 행동을 후회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달걀 껍질을 깨는 법에 있어서, 충격을 주어 깨든지(생명을 죽임), 따뜻한 온도로 부화시켜 스스로 깨고 나오게도 할 수 있음(생명을 살림)을 생각해 보자.
2)이해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 모든 것을 덮어 줄 수 있다. 이것이 곧 어머니의 유순한 사랑이다(살전 2:7). 이런 마음의 온유란 은혜가 충만할 때 더욱 가능한 것이다.
3)존중하는 사랑이다
온유란 "기분좋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Meekness is the ability to disagree agreeably)"
즉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거절형 인생을 살았으나, 예수님은 항상 수용적 인생을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거부하지(reject) 말고, 서로 존중하자(respect). 이런 마음의 온유 야말로 예수님의 대표적 성품으로서(마 11:29), 땅의 복을 누리게 하고(마 5:5. 시 37:11),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값진 성품이다(벧전 3:3-4. 민 12:3).
Ⅴ. 성령님의 열매(4)(The Fruit of the Spirit) (벧후 1:5-11)
성령 열매의 세 번째 구조는 자신의 내면적 인격에서 이루어지는 성품(character)이다.
3. 절 제(Temperance)
여기서 말하는 절제라는 단어는 자신의 내면적 모든 감정을 이겨내는 "극기(克己)"를 말한다. 즉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인간 내면적인 마지막 열매로써 자기 감정을 다스리고 이기는 능력을 뜻한다. 그래서 "자제(self-control)"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자기를 이기는 힘이다(잠 16:3
2. 29:11)또 어떤 분은 "절제란 자기 영혼을 다스리는 능력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지식 위에 절제를 더하라고 권고한다(벧후 1:6).
그렇다. 절제란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의 우월함이요,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우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1)절대적인 다스림이다(absolutely control)
자제력이란 모든 분야에서 실천되어야 하는데(롬 15:1,2), 제어하기 힘든 욕망과 억제되지 않는 감정이나 충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희랍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아무도 자기를 정복하기 전에는 참으로 자유로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절제란 자기를 이기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2)기뻐하는 다스림이다(joyful control)
절제란 기쁨과 결혼관계이다. 참된 절제는 결코 속으로 비통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령님의 요구에 기쁨으로 항복한다. 즉 우리의 몸까지도 주님께 기꺼이 복종시켜드린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한다(고전 9:27).
3)성령님의 다스림이다(divine control)
알렉산더 대제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아! 나는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했으며, 신민들을 계몽시켰으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나 자신을 정복하거나 계몽시길 수는 없었단 말인가"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성령님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가 성령으로 다스려지도록 더욱 기도하고 사모해야 한다. 성령님만이 거 룩한 자제력의 원천이시다.
이제부터 우리의 취향이나 습관, 감각적 매력이나 정열같은 것들을 사랑하시는 성령님의 견고 한 통제력 밑에 두도록 하자. 나 자신의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 위임해야 한다.
세상과 육신의 압박이 아무리 커도, 우리는 능력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제가 얼마든지 가능 하다(빌 4:13). 더욱이 이러한 거룩한 절제는 우리의 고상함을 빼앗아가는 대신, 우리의 목표를 더욱 증대시켜 준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희망찬 결론으로 고결한 성숙의 지평을 바라보게 한다.
이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즉 율법은 억제를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성령님은 아무것도 억제하지 않을뿐더러 오 히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신다.
절제의 비결 어떻게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까
사람이 절제를 할 수 있게 될 때에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즉 자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에 자신감과 안정감이 온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십시오(약 1:4)
절제를 개발하는 첫 단계는 내가 절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십시오(엡 4:26-27)
모든 절제의 출발은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변화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빌 4:13. 막 9:23)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후 5:17).
당신을 격려해주고 책임져줄 좋은 동반자를 선택하십시오(전 4:12)
나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함께 기도해주고 절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분야에 나를 격려해 주고 책임져줄 사람을 발견하십시오.
성령님의 힘을 의지하십시오(갈 5:16)
신자는 성령충만할수록 자제력이 우세하게 된다.
성경은 우리 속 사람이 강해야 절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고후 4:16).
Max Lucado의 고백적인 설교 문을 그대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어떤 경우도 증오심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불의도 분노를 일으키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오늘 저는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기쁨을 선택합니다. 저는 저의 여호와 하나님을 저의 환경에 초청할 것입니다. 저는 유혹이 제 안에서 저를 냉소적인 사람이 되지 않게 하도록, 게으른 사색가의 도구가 도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사람들을 멸시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문제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저는 평화를 선택합니다. 저는 용서받음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것입니다.
저는 인내를 선택합니다. 저는 세상을 불편함들을 간과할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그를 저의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겠습니다. 저는 기다림이 길어지는 것을 불평하는 대신 차라리 그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 잠깐 동안이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저는 친절을 선택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외롭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자들에게도 친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부자들을 선대하신 것처럼 그들도 불친절한 자들에게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양선함을 선택합니다. 오늘 저는 부정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보다는 차라리 한 푼도 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정죄하기 이전에 저의 죄를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신실함을 선택합니다. 오늘 저는 약속을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빚쟁이가 그들이 저에게 가졌던 신뢰를 후회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저의 비서가 저의 말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아내가 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절제를 선택합니다. 저는 저의 거친 마음이 영원한 것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저는 오직 기쁨에 취할 것입니다. 저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감동을 입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만 영향을 입을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