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보혜사 성령님은 나의 위대한 도우심이라오!
본문
보혜사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바로 우리의 믿음을 도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그가 오셔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날동안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최선의 삶이됩니다. 최선의 삶이 바로 형통한 삶이요,축복의 삶이요,넉넉한 삶입니다. 이 삶이 바로 은총의 삶인 것입니다.
이같이 성령님께서 도우시는 축복된 삶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령님은 책망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천국에 가셔서 이 세상에 보냄을 확실하게 받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그분의 시대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입니다.
성경의 약속을 다함께 보십시다.
요 16:7-9절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예수님이 떠나셔야 오실분이라 하십니다.
오신 그분이 도우시는 일은
책망하시는 일입니다. 이 책망은 정죄나 징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교정하시고 인도하시는 책망입니다.
누구를 책망하십니까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죄,의,심판이라 하십니다.
왜 책망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죄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불의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심판자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책망하실 때 무조건 “예”라고 합시다. “아멘”이라고 합시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에게 돌아온 진정한 모습을 보여드립시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2.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인격적으로 우릴 도우십니다. 그분은 인격체이시기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릴 인격적으로 대하고 돌보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상처를 싸매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실로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하여 주시는 태도는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유방임형으로 돌보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1:20)
그러나 이 자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자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유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는 성령의 신선한 바람을 마음껏 마시게 되어 참으로 가슴부푼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을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이사야 61:1-7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사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되게 하시고
고난이 변하여 평안이 되게 하시고
병이 병하여 건강이 되게 하시고
가난이 변하여 부유함과 윤택함이 되게 하시고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게 하시고
무엇이라 더 말씀 드릴까요
그분이 우리를 “여호와의 제사장”이라고 인정하여 주신다하십니다. 더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정받는 삶에 무엇을 더 바랍니까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은 눈물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없으매 너무나 강팍하여졌습니다. 오늘날 감정이 매마른 시대에 우리는 삽니다. 각가지 슬픈 사연들이 우리 앞에 있어도 눈물이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함께 손잡고 누리는 즐거움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밖에서 우리의 감정을 표출할 곳을 찾습니다. 그것이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진실한 감정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승패만이 존재합니다. 목적만이 존재합니다. 이기든 지든 우리는 진정한 승자의 환호성에 개인이란 묻혀 존재하지 않음을 봅니다. 진정한 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우리도 없습니다. 공존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획일적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니 달라졌습니다.
진정한 중보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손잡고 어울려 적과 동지가 없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과 삶에 진실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눈물입니다. 웃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의 표현입니다. 사랑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인류의 삶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선물입니다. 진실한 도우심이십니다. 위대한 도우심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겔 11:19)
진실로 성령님은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발견하는 눈물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비천한 자까지도 품으사 밝은 미래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 7:6)
그러므로 우리는 선언합니다.
“성령님은 나의 위로자입니다. ”
성령님은 나의 위대한 도우심입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사 66:13)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위로하여 주시는 그분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보내주신 분이 누구입니까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그 분이 우리의 영원한 후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성령 안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혜사 성령님의 깊은 세계를 누리도록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4. 성령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오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오신 성령님이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도우십니다. 모든 면에 연약한 우리입니다. 그분이 우릴 강하게 하십니다. 두려움없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도록 부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우리의 기도가 유아적이었습니다. 나 밖에 몰랐습니다. 그저 가족정도이면 괜찮을 정도입니다. 기도의 감을 잡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방황하였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오신 성령님은 우리의 실상을 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진실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알지 못하였던 기도를 올리게 합니다. 탄식하시며 안타가운 마음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이 회복된 마음으로 용서와 이해와 관용의 마음으로 기도하여 주시기에 우리도 그렇게 기도가 시작됩니다. 기도할 바를 몰랐던 우리가 기도하게 되고, 기도의 내용에 궁색하여 중언부언하였던 기도의 줄이 잡히게 되고 육성으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적인 기도를 올리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끄시지 않고는 깊은 기도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인내의 기도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강청의 기도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혼자 기도하거나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리는 기도에 쉽게 지쳐 버리고 물러서게 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위대한 기도의 전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도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위대한 축복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요청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위대한 축복을 우리의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기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유산을 주장하고 청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은총인 것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5. 성령님은 영생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령님의 진정한 도우심은 바로 영원한 생명에 있습니다. 구원의 도우심입니다.
무엇이냐하면,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는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요3:3)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거듭난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진실로 주시는 가장 놀라운 은총입니다.
분명히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고백하고 시인할 때 주어집니다. ”(요1:12,롬10:9,10)그러나 성령님 없는 영접과 고백 그리고 시인은 무의미합니다.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요3;5)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천국간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야”(born again) 영생입니다. (요3:3)거듭나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커녕 영 틀린 일이 됩니다. 영생은 꿈 같은 일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임재 바로 그것입니다.
요컨데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믿는 자 가 영생하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요5:24)인데 이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입니다. 다시말씀드리자면 성령님이 아니면 이같은 일이 지금의 우리에게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인쳐주셔야,그 분이 임재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롬8:18)성령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위대하신 약속이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말씀을 마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주시는 위대한 은총의 사실을 오늘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 드린 것은 입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직접적으로 보혜사 성령님으로부터 임하시는 각가지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고 따르면 그분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고,그 말씀에 확신과 소망이 일어나고,그 말씀이 생명이 되어 우리를 살려주시며,그 위대한 약속과 축복을 오늘 지금 즉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생이 죽은 뒤의 축복만이 아니라 오늘 지금 누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 되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그리고 강건하여져 하늘의 축복을 지금 즉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최선의 삶이됩니다. 최선의 삶이 바로 형통한 삶이요,축복의 삶이요,넉넉한 삶입니다. 이 삶이 바로 은총의 삶인 것입니다.
이같이 성령님께서 도우시는 축복된 삶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령님은 책망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천국에 가셔서 이 세상에 보냄을 확실하게 받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그분의 시대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입니다.
성경의 약속을 다함께 보십시다.
요 16:7-9절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예수님이 떠나셔야 오실분이라 하십니다.
오신 그분이 도우시는 일은
책망하시는 일입니다. 이 책망은 정죄나 징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교정하시고 인도하시는 책망입니다.
누구를 책망하십니까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죄,의,심판이라 하십니다.
왜 책망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죄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불의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심판자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책망하실 때 무조건 “예”라고 합시다. “아멘”이라고 합시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에게 돌아온 진정한 모습을 보여드립시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2.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인격적으로 우릴 도우십니다. 그분은 인격체이시기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릴 인격적으로 대하고 돌보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상처를 싸매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실로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하여 주시는 태도는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유방임형으로 돌보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1:20)
그러나 이 자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자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유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는 성령의 신선한 바람을 마음껏 마시게 되어 참으로 가슴부푼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을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이사야 61:1-7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사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되게 하시고
고난이 변하여 평안이 되게 하시고
병이 병하여 건강이 되게 하시고
가난이 변하여 부유함과 윤택함이 되게 하시고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게 하시고
무엇이라 더 말씀 드릴까요
그분이 우리를 “여호와의 제사장”이라고 인정하여 주신다하십니다. 더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정받는 삶에 무엇을 더 바랍니까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은 눈물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없으매 너무나 강팍하여졌습니다. 오늘날 감정이 매마른 시대에 우리는 삽니다. 각가지 슬픈 사연들이 우리 앞에 있어도 눈물이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함께 손잡고 누리는 즐거움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밖에서 우리의 감정을 표출할 곳을 찾습니다. 그것이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진실한 감정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승패만이 존재합니다. 목적만이 존재합니다. 이기든 지든 우리는 진정한 승자의 환호성에 개인이란 묻혀 존재하지 않음을 봅니다. 진정한 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우리도 없습니다. 공존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획일적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니 달라졌습니다.
진정한 중보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손잡고 어울려 적과 동지가 없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과 삶에 진실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눈물입니다. 웃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의 표현입니다. 사랑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인류의 삶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선물입니다. 진실한 도우심이십니다. 위대한 도우심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겔 11:19)
진실로 성령님은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발견하는 눈물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비천한 자까지도 품으사 밝은 미래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 7:6)
그러므로 우리는 선언합니다.
“성령님은 나의 위로자입니다. ”
성령님은 나의 위대한 도우심입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사 66:13)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위로하여 주시는 그분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보내주신 분이 누구입니까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그 분이 우리의 영원한 후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성령 안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혜사 성령님의 깊은 세계를 누리도록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4. 성령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오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오신 성령님이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도우십니다. 모든 면에 연약한 우리입니다. 그분이 우릴 강하게 하십니다. 두려움없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도록 부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우리의 기도가 유아적이었습니다. 나 밖에 몰랐습니다. 그저 가족정도이면 괜찮을 정도입니다. 기도의 감을 잡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방황하였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오신 성령님은 우리의 실상을 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진실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알지 못하였던 기도를 올리게 합니다. 탄식하시며 안타가운 마음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이 회복된 마음으로 용서와 이해와 관용의 마음으로 기도하여 주시기에 우리도 그렇게 기도가 시작됩니다. 기도할 바를 몰랐던 우리가 기도하게 되고, 기도의 내용에 궁색하여 중언부언하였던 기도의 줄이 잡히게 되고 육성으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적인 기도를 올리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끄시지 않고는 깊은 기도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인내의 기도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강청의 기도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혼자 기도하거나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리는 기도에 쉽게 지쳐 버리고 물러서게 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위대한 기도의 전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도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위대한 축복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요청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위대한 축복을 우리의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기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유산을 주장하고 청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은총인 것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5. 성령님은 영생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령님의 진정한 도우심은 바로 영원한 생명에 있습니다. 구원의 도우심입니다.
무엇이냐하면,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는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요3:3)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거듭난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진실로 주시는 가장 놀라운 은총입니다.
분명히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고백하고 시인할 때 주어집니다. ”(요1:12,롬10:9,10)그러나 성령님 없는 영접과 고백 그리고 시인은 무의미합니다.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요3;5)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천국간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야”(born again) 영생입니다. (요3:3)거듭나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커녕 영 틀린 일이 됩니다. 영생은 꿈 같은 일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임재 바로 그것입니다.
요컨데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믿는 자 가 영생하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요5:24)인데 이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입니다. 다시말씀드리자면 성령님이 아니면 이같은 일이 지금의 우리에게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인쳐주셔야,그 분이 임재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롬8:18)성령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위대하신 약속이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말씀을 마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주시는 위대한 은총의 사실을 오늘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 드린 것은 입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직접적으로 보혜사 성령님으로부터 임하시는 각가지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고 따르면 그분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고,그 말씀에 확신과 소망이 일어나고,그 말씀이 생명이 되어 우리를 살려주시며,그 위대한 약속과 축복을 오늘 지금 즉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생이 죽은 뒤의 축복만이 아니라 오늘 지금 누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 되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그리고 강건하여져 하늘의 축복을 지금 즉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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