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능력으로 너희가 살리라
본문
오늘은 성령강림절이자 청년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그 약속을 믿고 120명의 성도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10일 후에 약속대로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초대교회 탄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해 보면 성령님은 천지창조 이전 영원부터 계셨고 구약에도 역사 하셨고, 신약에도 보면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역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구약 에스겔서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주전597년경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을 때 그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골짜기의 마른 해골 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에스겔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생기를 받은 마른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른 뼈 같이 절망적인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구원해 주신다는 비전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생명을 주시며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십니다.
1. 마른 뼈다귀의 모습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의 모습입니다
1) 이스라엘 민족은 생기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생기가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양대로 인간을 만들었어도 아직 인형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되어 산 영을 가진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생명이십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없기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나오는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 민족은 바싹 마른 뼈와 같았습니다
뼈에 기름기와 물기가 없으면 바싹 마른 뼈가 됩니다. 사람이 병이 들면 가죽과 뼈만 남게 되는데 참으로 보기에 흉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면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전부 바싹 말라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을 보아도 인정이나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윤활유가 있어야 부드럽게 잘 돌아갑니다. 그러나 윤활유가 부족하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열이 나다가 망가지게 됩니다.
3) 뼈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결하지 못하고 전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분파주의로 가득 차 있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고 아무리 성경을 통달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속에 욕심이 있고 분열이 있으면 그것은 에스겔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뼈와 같은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생기 없이 흩어진 마른 뼈와 같은 상태의 이스라엘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살리라”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뼈들을 향하여 대언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고 뼈만 가득한 골짜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마치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을 향해 설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흩어지고 분산되었던 모든 뼈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대언 할 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생기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살아났습니다. 묶여 있던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말씀하시니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운동력이 있습니다.
첫째, 말씀과 성령을 받아야 살아납니다.
기독교는 살리는 종교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개인도 국가도 새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다귀의 모습은 허물과 죄로 죽은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살아납니다. 죽은 심령. 죽은 양심이 살아납니다..
오늘 본문에 "신 혹은 생기"라는 말이 일곱 번 기록됐습니다. 그 뜻은 바람, 여호와 하나님의 영, 생명의 기운을 뜻합니다.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슥4:6에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수 없으나 오직 성령의 역사는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것이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죽고 말라빠진 심령들은 성령으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로 하나가 됩니다.
본문 7절에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 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고 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는 운동을 가리킵니다. 악령은 분열하게 합니다. 불화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12:14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특징은 하나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민족도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은 권능을 주십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전부 일어나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본문 10절 하반절에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큰 군대더라"고 했습니다. 뼈들이 살았고 일어났고 섰고 큰 군대가 된 것은 전부 능력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뒤 소망을 잃어버린 백성이 됐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됐다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절망에 처한 자기 백성들에게 희망의 계시를 보였습니다. 그들도 살수 있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 군대처럼 생기의 성령을 받으면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행1:8). 오늘도 성령 충만으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찬송390장
1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굳세게 싸워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늘 이김 주시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 충만을 받아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모든 일에 실패했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 기도에서 기도하실 때 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는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다시 갈릴리 어부의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 열흘동안 합심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불같은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죄를 책망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3천명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로마에서 순교 당하기까지 생명 바쳐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늘의 면류관을 예비한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인간 생각이 앞서고, 혈기가 앞서고, 육신의 생각과 정욕을 이기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아서 온갖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바울은 세상 적으로 탁월한 존재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는 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멀리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소망 중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니 어떤 형편에서도 심령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감사했습니다.
가난해도, 헐벗어도 그 일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이 원수 되고, 훼방하는 사람이 많아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는 그 순간까지 그를 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가는 길에 풍랑이 일어나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심령도 마른 뼈와 같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한번 말씀을 증거할 때 3000명이 살아났습니다. 요나도 니느웨 성에서 회개를 외칠 때 그 성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말씀을 외칠 때 독일이 깨어났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말씀을 외칠 때 영국이 소성 했습니다. 무디가 말씀을 외칠 때 미국의 죽은 영혼들이 깨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습니다. 사도들은 불같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변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시대이지만 말씀 부자가 됩시다.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성령이 임하면 불안도 염려도 물러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의 상처도, 육신의 질병도 물러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귀도 물러갑니다. 육신의 정욕도 떠나가 버립니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기도로 시작합시다.
♬찬송가 172장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아멘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1-13)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심령에 불평과 원망의 바람이 그쳐야 합니다. 성도들의 심령에 불안과 염려의 바람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생기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생기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기를 소원합니다.
저 해골 골짜기의 뼈들이 큰 군대가 된 것처럼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군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해 보면 성령님은 천지창조 이전 영원부터 계셨고 구약에도 역사 하셨고, 신약에도 보면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역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구약 에스겔서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주전597년경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을 때 그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골짜기의 마른 해골 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에스겔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생기를 받은 마른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른 뼈 같이 절망적인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구원해 주신다는 비전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생명을 주시며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십니다.
1. 마른 뼈다귀의 모습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의 모습입니다
1) 이스라엘 민족은 생기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생기가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양대로 인간을 만들었어도 아직 인형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되어 산 영을 가진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생명이십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없기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나오는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 민족은 바싹 마른 뼈와 같았습니다
뼈에 기름기와 물기가 없으면 바싹 마른 뼈가 됩니다. 사람이 병이 들면 가죽과 뼈만 남게 되는데 참으로 보기에 흉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면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전부 바싹 말라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을 보아도 인정이나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윤활유가 있어야 부드럽게 잘 돌아갑니다. 그러나 윤활유가 부족하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열이 나다가 망가지게 됩니다.
3) 뼈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결하지 못하고 전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분파주의로 가득 차 있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고 아무리 성경을 통달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속에 욕심이 있고 분열이 있으면 그것은 에스겔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뼈와 같은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생기 없이 흩어진 마른 뼈와 같은 상태의 이스라엘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살리라”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뼈들을 향하여 대언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고 뼈만 가득한 골짜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마치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을 향해 설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흩어지고 분산되었던 모든 뼈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대언 할 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생기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살아났습니다. 묶여 있던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말씀하시니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운동력이 있습니다.
첫째, 말씀과 성령을 받아야 살아납니다.
기독교는 살리는 종교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개인도 국가도 새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다귀의 모습은 허물과 죄로 죽은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살아납니다. 죽은 심령. 죽은 양심이 살아납니다..
오늘 본문에 "신 혹은 생기"라는 말이 일곱 번 기록됐습니다. 그 뜻은 바람, 여호와 하나님의 영, 생명의 기운을 뜻합니다.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슥4:6에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수 없으나 오직 성령의 역사는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것이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죽고 말라빠진 심령들은 성령으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로 하나가 됩니다.
본문 7절에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 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고 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는 운동을 가리킵니다. 악령은 분열하게 합니다. 불화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12:14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특징은 하나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민족도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은 권능을 주십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전부 일어나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본문 10절 하반절에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큰 군대더라"고 했습니다. 뼈들이 살았고 일어났고 섰고 큰 군대가 된 것은 전부 능력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뒤 소망을 잃어버린 백성이 됐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됐다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절망에 처한 자기 백성들에게 희망의 계시를 보였습니다. 그들도 살수 있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 군대처럼 생기의 성령을 받으면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행1:8). 오늘도 성령 충만으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찬송390장
1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굳세게 싸워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늘 이김 주시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 충만을 받아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모든 일에 실패했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 기도에서 기도하실 때 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는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다시 갈릴리 어부의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 열흘동안 합심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불같은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죄를 책망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3천명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로마에서 순교 당하기까지 생명 바쳐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늘의 면류관을 예비한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인간 생각이 앞서고, 혈기가 앞서고, 육신의 생각과 정욕을 이기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아서 온갖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바울은 세상 적으로 탁월한 존재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는 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멀리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소망 중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니 어떤 형편에서도 심령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감사했습니다.
가난해도, 헐벗어도 그 일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이 원수 되고, 훼방하는 사람이 많아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는 그 순간까지 그를 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가는 길에 풍랑이 일어나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심령도 마른 뼈와 같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한번 말씀을 증거할 때 3000명이 살아났습니다. 요나도 니느웨 성에서 회개를 외칠 때 그 성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말씀을 외칠 때 독일이 깨어났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말씀을 외칠 때 영국이 소성 했습니다. 무디가 말씀을 외칠 때 미국의 죽은 영혼들이 깨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습니다. 사도들은 불같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변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시대이지만 말씀 부자가 됩시다.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성령이 임하면 불안도 염려도 물러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의 상처도, 육신의 질병도 물러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귀도 물러갑니다. 육신의 정욕도 떠나가 버립니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기도로 시작합시다.
♬찬송가 172장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아멘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1-13)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심령에 불평과 원망의 바람이 그쳐야 합니다. 성도들의 심령에 불안과 염려의 바람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생기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생기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기를 소원합니다.
저 해골 골짜기의 뼈들이 큰 군대가 된 것처럼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군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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