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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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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논제를 써 붙이므로 시작된 교회 개혁의 물결은 전 유럽을 휩쓸었고, 마침내 새로운 교회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금년은 4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므로 이를 개혁하고자 한 운동이었으나 결국 루터는 파문을 당하여 쫓겨나게 되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하여 새로운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개혁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루터 이후 칼빈을 비롯한 많은 개혁신학자들이 나타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교회를 새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된 교회를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개혁교회에는 여러 교파들이 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고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교회들은 모두 개혁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는 크게 세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방정교회이고, 둘째는 로마카톨릭교회이고, 셋째는 개혁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혁교회 가운데 하나인 장로교에 속하여 있습니다. 칼빈과 쯔빙글리라는 신학자에 의해 시작된 개혁교회 운동이 바로 장로교의 출발이 되었고, 장로교는 영국과 스콧트랜드에서 정착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서 미국장로교회가 활발하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미국장로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건너와 한국 장로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장로교회는 개혁교회로서 카톨릭교회나 정교회와는 구별된 교회입니다.
개혁교회란 이름이 처음에는 로마카톨릭교회를 개혁하였다는 의미에서 붙여졌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개혁해 가는 교회라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새롭게 개혁되지 않으면 교회의 참된 모습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늘 또다시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는 과연 개혁교회 다운 모습을 지녔는지 그래서 나 자신과 교회를 새롭게 하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굳어진 마음
오늘 읽어 드린 에스겔서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포로 되어 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을 부어 주어 율법을 제대로 지키게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을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여도 저들은 계속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고, 아무리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여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웃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저들은 점점 더 큰 죄를 지었고, 마침내 나라는 망하고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것입니다. 포로가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새롭게 되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새로운 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에스겔의 예언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여러 예언자들이 나타나 저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저들은 끝내 예언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지만,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그 백성의 죄는 표범의 반점처럼 지워지지 않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흑인의 검은 피부색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그 백성의 죄악은 씻을 길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사실상 헛된 수고를 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한 그 백성을 향하여 계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던 예언자들의 심정은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였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뻔 하였다고 탄식할 정도였습니다. 낡아진 것을 새롭게 하고 개혁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죄악으로 물들여진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치개혁, 교육개혁, 사회개혁을 여러 모양으로 시도하고 노력하지만 안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죄악에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제도를 바꾸고, 방법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어도 우리의 개혁 노력은 물거품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정치ㅗ교육ㅗ사회를 개혁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고 이것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계속 선포되어야 할 예언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이 불가능한 일을 계속하라고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은 백성들이 듣지 않을 줄 알지만 그래도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로 예언자의 사명입니다. 정치가 개혁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육 개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개혁을 향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개혁된다는 일도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개혁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매 주일 설교를 하여도 나나 여러분이 별로 달라지는 것 없다 할지라도 설교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아도 예언자의 소리가 들릴 때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지만, 그 예언자의 소리마저 잠잠하게 될 때에는 그 사회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하여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마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실패는 하였지만 김영삼 정권도 개혁을 시도하였고, 아직도 멀었지만 교육 개혁도 여러 모양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예언자의 사명은 끊임없이 개혁을 외쳐야 하는 데 있습니다. 정치가 혼돈에 혼돈을 거듭할 때일수록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요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육현실이 여러 모양으로 암담하고 불투명할 때일수록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개혁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그 역사적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지 못할 때일수록 이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펼쳐져야 할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예언활동은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예언을 하지 못하도록 예언자를 핍박하고 가두고 죽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향한 개혁의 외침은 늘 고독하고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향하여 달걀을 던지는 것과 같았고, 깜깜한 밤중에 작은 촛불을 하나 켜는 것과 같아서 그 거대한 어둠의 세력에 압도당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성공은, 그 이전에 나타난 요한 후스 같은 개혁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교황청에 항거하여 개혁을 부르짖던 후스는 결국 화형을 당하고 말았고, 영국의 개혁자였던 위크리프(John Wycliffe)의 경우 그 무덤을 파헤치고 뼈를 꺼내어 다시 불살라 버렸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도 숱한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것입니다. 거대한 로마 교황청에 항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지만, 개혁의 목소리는 마침내 유럽 전체를 진동시켰고, 오늘도 이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민주개혁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숱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 정치가 개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아니라 역사의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원치 아니하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보수성입니다. 두 대통령이 단죄되어 감옥에 갔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개혁과 변화보다는 안정과 현상유지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보수성이 이 시대의 예언의 소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악의 세력입니다. 오늘의 교회개혁이 어려운 것도 끊임없이 앞으로 부르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오늘에 만족하며 안주하려는 교인들의 보수성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무지와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 엡 4:18
이와 같은 보수 세력 때문에 예언의 소리는 항상 가냘프게 들릴 수밖에 없고, 외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통한 개혁
결국 예언자들과 같이 우리의 영이 새로워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예민하게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개혁의 역사는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엡 4:22-24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 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고장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구속의 은총으로 내 속의 모든 죄는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나를 새롭게 하시며 그 동안 죄로 인하여 더러워졌던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편견, 내 사상을 모두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생각이 바뀌어지면 그것은 사람이 달라진 것을 뜻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 사람이 되고 새 마음 새 영을 받았다 할지라도 옛 사람의 잔재가 우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 마음을 가지고 옛 것들을 씻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 들여 옛 생각들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내 속에 자리잡았던 편견들을 버리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성경을 보는 까닭은 그것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옛 생각이나 생활습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통해 내 속에 쌓인 것이기에 이것을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습으로 바꾼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능히 옛 것들을 벗어버릴 수 있고,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이 세계와 이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주일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들을 때 모두가 아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설교는 마음에 들고 어떤 설교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고 안드는 기준이 무엇이냐 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준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내 편견이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념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계속하여 기도하면서 성경을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오늘의 삶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찬들이 대체로 성경 연구를 등한시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오늘의 역사를 바라볼 때 거기서 올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개혁을 향한 의지를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려는 의지 없이 교회당에 나오게 되면, 매주일 똑같이 반복되는 예배에 실증을 느끼게 될 것이며, 흥미 있고 자극적인 것이 없는 교회 활동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교인들이 모인 교회를 통하여서는 어떤 개혁의 역사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개혁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이요, 따라서 개혁의지도 없을 것이기에 교회는 그저 무기력하게 그 시대의 조류를 따라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만나는 일이며,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이 시대의 예언자인데, 그 예언자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하여는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새롭게 되지 않고서는 이 사회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교회가 어떻게 그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잃었기 때문에 타락하여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로마 카톨릭 교회가 오늘에 와서는 이 시대에 선포되어야 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개혁교회들은 오히려 교회확장에만 열을 올릴 뿐 이 사회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오늘의 한국 개혁교회들이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시대에 들려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로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의 개혁교회들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군사정권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므로 계속 거짓 선지자처럼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정신을 차립시다. 안이하게 예수를 믿는 자리에서 더 적극적인 자세로 예수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정치개혁이나 교육개혁이나 교회개혁 모두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다만 여호와 하나님이 이룩하시는 개혁의 역사를 미리 알고 그 뜻을 선포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혁 운동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발벗고 나서서 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마음을 새롭게 하며, 내 생각을 바꾸고, 내가 깊숙이 간직하였던 내 이념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 편견 없는 생각으로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여 그것을 가지고 내 삶을 바꾸며, 가정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새롭게 하며, 사회 개혁을 위하여 노력해 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종교개혁 480주년을 맞이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 주신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을 받아 날마다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이 역사를 올바로 통찰하시므로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깨어 기도할 때 이 교회가 새로워지고 개혁될 것입니다. 이제 열심을 내어 항상 새로운 미래를 추구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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