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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신앙인과 성령의 역사

본문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예배생활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고 예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예배의 성공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종교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믿는 자가 자기의 신앙을 표현하는 어떤 행위도 아닙니다. 예배는 그 예배 속에 존재하시고 역사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만나며 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능력을 받아 예배자가 영 육간에 되살아나는 실로 인생최고의 축복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예배 자는 여전히 낙심가운데 있거나 영적인 죽음에 처하여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기운에 사로잡혀 있지 못한 인생이나 삶은 노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신앙도 생명의 능력도 빠져버린 상태라면 그것은 종교의 노예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 분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를 창시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늘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당신을 믿고 따른 모든 사람들에게 외쳐댔습니다. "생명을 받으라,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외침, 그 요구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요구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빠져버린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2:7절로 여호와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흙으로만 지어진 인생은 누어있어야 했습니다 활동이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흙으로 지어놓은 인생을 살리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어"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기운을 받아 생령으로 살아나는 일입니다
주여, 이 시간 영 육간에 사망 당한 자에게 생명의 기운을 채워 주시옵소서.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 이 사망 당한 자를 살게 하라는 에스겔의 외침의 역사가 이 시간 여러분들의 심령과 영혼 속에 역사 되길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는 사건은 바로 하늘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의 신에 이끌려 에스겔 골짜기로 갔습니다. 그 골짜기 속에는 참으로 놀랍고 비참한 현상이 보여졌습니다. 그 깊고 넓은 골짜기에 사람이 죽어 썩어진 뼈다귀들로 가득히 채워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가슴 아픈 일은 그 죽어 말라비틀어진 뼈다귀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아, 이 뼈들이 살겠느냐"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여, 어찌 죽어 썩어버린 사람들이 그리고 이 뼈다귀들만 즐비한 이곳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사오리까"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4절 말씀으로,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잃고 사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육체로만이 사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그 소유한 것이 결코 우리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시되,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모든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며,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반면 요6:63절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살림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 생기가 들어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살리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마른 뼈다귀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 와서 이 사망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하니 생기가 사방에서부터 와서 그들에게 들어가니 놀랍게도 생명으로 살아나기 시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진정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산다는 것은 삶의 보람을 느끼고 기쁨으로 살고 가치 있고 능력 있게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요 살아있다는 것은 느낄 줄 알고 볼 줄 알고 깨달으며 욕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런 삶이 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살았다하나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린애가 배가 고프면 소리를 내어 울며 엄마를 찾습니다. 살아있는 아이의 표식은 엄마를 찾는 부르짖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살고자 하는 영혼은 여호와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의 참 맛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 성령의 역사가 내게 임하여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생기와 함께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육체 속에 역사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운이 없다면 그 인생은 내 놓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정말 살았다는 명목만의 인생이지 삶의 능력과 보람과 참 맛을 느끼지 못하는 마지못해 살거나 그저 살아있으니까 살기 위해서 사는 것뿐입니다. 그런 삶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자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내 삶에 생기가 넘쳐 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살 맛나게 살아가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인 생기를 받는 것입니다.
주여, 이 시간 시들고 메말라 버린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지쳐버린 내게 생기의 바람이 불어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보십시오.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언하여 외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니 죽어 썩어버린 마른 뼈들이 일어나 살아나는데 강력한 군대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어찌 이것이 사람의 외치는 말로 되어질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결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가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능력은 수평적인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오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이는 세상이 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인 능력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거나 신앙 속에 살지 못하고 항상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힘만 있었으면 될 텐데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안타까워 한 일들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사람에게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 돈을 모읍니다. 이 돈의 힘은 실로 막강합니다. 또한 권력의 힘도 지식의 힘도 자신이 개발한 지혜와 재능 그리고 육체의 힘도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적인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한계가 오면 사람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한계에 부딪치면 좌절하고 힘없이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힘은 권력의 힘도 돈의 힘도 재능이나 육체적인 힘도 아니라 이런 세상 적인 힘을 초월하는 능력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다귀들 소망이 없고 죽어 썩어 자빠져 있는 것들을 살려낼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는가 말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기운 능력의 생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이런 힘을 소유하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익히 경험들을 해오셨을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오면서 남에게 뒤지거나 패하지 않고 살아보려고 얼마나 힘써왔습니까 그러나 힘의 한계에 부딪쳐 좌절해버린 일이 한 두 번입니까 믿음으로 기도로, 말씀으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쳐 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힘에 부쳐 꺾이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가장 강력한 힘은 에스겔을 대언하여 죽어버린 뼈다귀를 살려낸 생기입니다. 사람은 기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기죽은 인생은 쓸모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기를 살려 능력 있는 자, 힘있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생기를 부어주십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생기가 내게 임하기만 하면 내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떻습니까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입니다. 내게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여 있고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내게서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말씀하십니다. 요14:12절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리라. " 할렐루야!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을 통하여 당신의 가지신 능력의 기운을 선포하십니다 말씀 속에 역사 하시는 생기가 여러분들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그 생명의 기운을 받으십시오 그 생명의 기운으로 살아나십시오 그 생명의 능력을 덧입는 시간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가득하게 채워지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10절 말씀으로 보면,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은 힘을 내야 할 능력이 채워지지 못하고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뼈다귀들이 생기로 채워지지 못했을 때 그 골짜기의 상황은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말라비틀어진 뼈다귀들만 널려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삶의 의욕과 보람과 기쁨의 요소들이 하나도 없는 공허와 허전함과 비탄함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성령이 임하니 죽어 널려 있는 뼈다귀들이 생기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말라비틀어진 뼈다귀들에게 힘줄이 생기고 살이 통통하게 오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토록 소망이 없던 골짜기가 강력한 군대로 가득 채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는 이와 같이 위에서부터 충만케 하시는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성령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이 늘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왜 그렇게 힘들고 갈급 합니까 소유해야 할 것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내 삶 속에 채워져야 할 것들이 채워지지 안고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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