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의 열매
본문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하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나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 우주가 조물주에 의해서 창조가 되었는데 그 조물주 안에 있는 기운을 곧 천기(天氣)라고 합니다. 그 조물주의 천기는 창조의 일뿐 아니라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몸의 오장육부를 살리고 또 거기서 조물주와 교감을 하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하늘의 천기가 들어오는데 만약에 이 경혈이 막히면 그 몸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막힌 경혈이 열려야만 비로소 천기가 작용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그 경혈이 열려서 오장육부에 갔다는 말은 조물주인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양철학이나 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지만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령에 관한 말과도 많은 부분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창조한 우주만물에 가장 중심에 이것을 관리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다른 피조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여호와 하나님의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것,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 즉 '경혈'을 막아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악의 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에 유혹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다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하고 사이가 막혀버렸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인간에게 들어오지 못한 것은 앞서 말한 경우를 예로 들면 경혈이 막혀버렸다는 말인 것입니다.
단절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인간은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죄로부터 시작하여 카인의 후손으로 엮어지는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였던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게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회당과 성전에 가고 율법을 지키고 열심히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보시기에는 죽은 송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른뼈와 같아서 다신 살아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다시 살릴 것을 통고하십니다. 곧 에스겔에게 명령하시기를 "너는 이 뼈들 앞에 서서 외쳐라. 숨이 막혀버린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들의 속에 들어가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라고 외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의 궁극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님의 탄생이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악마와 싸운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해골들만 있는 곳이라는 골고다에서 죽었지만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고 거기서 부활함으로써 막혀버린 세상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막힌 담의 해결이 바로 예수의 부활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이 지배한다는 보여주셨고 그리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내가 너희 곁을 떠나가지만 가는 대로 나의 영을 너희가운데 보내겠다.
이 진리의 영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주고 그리고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예수님의 승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는 것은 말하자면 하늘과 땅이 막혀버린 것, 인간과 여호와 하나님사이가 막혀버린, 앞서의 말을 인용하면 경혈이 막혀버린 것 그것을 뚫고 올라간 것이 승천이란 말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막은 힘을 물리쳐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절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성령에 대한 신학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이 바로 이 사실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또한 오늘 이 자리에 성령께서 여기 와 계시고 내가 살아가는 삶속에 성령께서 와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가를 묻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예배시간에 나와서 내가 낙제생 크리스찬인가 아니면 정말 신앙으로 사는 사람인가 먼저 각자가 살펴보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시고 그 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분이 내 눈을 밝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한가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열심히 믿는 다고 하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진짜 성경에서 말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믿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탐욕에서 나오는 그런 어떤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자신의 심리상태에서 나온 조작된 성령의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이들이여, 영이라고 해서 모두 다 믿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창조의 영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거의 관심도 안 가지고 그것으로 설교도 안하는 교회도 문제지만 잘못되게 얘기해서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성령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든지 말하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에 자기의 탐욕을 성령이 와서 채워준다는 도구로서의 성령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짜 성령을 찾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영을 '악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악의 영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 12장 본문에 나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 영을 받은 표지는 병고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주술적인 힘으로 병고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엑소시스트라고 불렀습니다. 한마디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그를 엑소시스트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엑소시스트의 두목인 바알세블쯤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악의 영의 특징은 자기들끼리 자꾸 싸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제 이러한 세상 속에 왔는데 내가 귀신을 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힘, 성령으로 바로 이런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와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결국 이 자리에서 하는 얘기는 어떤 기적을 베푸느냐, 어떤 징조가 나타나느냐가 아니라 서로 싸우고 하는 것이 악의 영의 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여서 그곳에 악의 영을 쫓는 때에 그곳에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는 제 스승인 폴틸리히가 아주 짧은 말로 간단하게 정의했습니다. 성령은 화해의 힘(power of reconciliation)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힘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힘, 우리 동양식으로 말하면 '하늘의 기'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반면에 악의 영은 분열의 힘(power of separation)인 것입니다.
자꾸 갈라놓고 대립시키고 미워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갈라디아 5장의 말씀은 이것을 명백하게 밝혀 놓고 있습니다. 악의 영이 나오는 열매는 탐욕, 질투, 원수를 맺는 일, 이러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는 사랑과 평화와 친절, 인내 기쁨 등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아침에 들은 얘기로 바꾸면 경혈이 열리면 조물주안에 있는 기운이 내 오장 육부안에까지 들어오는 것이지만 막혀버리면 악의 영이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와 있다는 것은 막힌 경혈이 뚫려서 사랑하게 되고 인내하게 되며, 평화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증거인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과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악의 영의 열매를 받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교회, 내가정,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이 지구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전반으로 우리의 성령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넓어질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참신앙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성령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의 천기가 들어오는데 만약에 이 경혈이 막히면 그 몸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막힌 경혈이 열려야만 비로소 천기가 작용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그 경혈이 열려서 오장육부에 갔다는 말은 조물주인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양철학이나 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지만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령에 관한 말과도 많은 부분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창조한 우주만물에 가장 중심에 이것을 관리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다른 피조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여호와 하나님의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것,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 즉 '경혈'을 막아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악의 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에 유혹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다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하고 사이가 막혀버렸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인간에게 들어오지 못한 것은 앞서 말한 경우를 예로 들면 경혈이 막혀버렸다는 말인 것입니다.
단절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인간은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죄로부터 시작하여 카인의 후손으로 엮어지는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였던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게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회당과 성전에 가고 율법을 지키고 열심히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보시기에는 죽은 송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른뼈와 같아서 다신 살아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다시 살릴 것을 통고하십니다. 곧 에스겔에게 명령하시기를 "너는 이 뼈들 앞에 서서 외쳐라. 숨이 막혀버린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들의 속에 들어가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라고 외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의 궁극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님의 탄생이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악마와 싸운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해골들만 있는 곳이라는 골고다에서 죽었지만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고 거기서 부활함으로써 막혀버린 세상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막힌 담의 해결이 바로 예수의 부활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이 지배한다는 보여주셨고 그리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내가 너희 곁을 떠나가지만 가는 대로 나의 영을 너희가운데 보내겠다.
이 진리의 영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주고 그리고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예수님의 승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는 것은 말하자면 하늘과 땅이 막혀버린 것, 인간과 여호와 하나님사이가 막혀버린, 앞서의 말을 인용하면 경혈이 막혀버린 것 그것을 뚫고 올라간 것이 승천이란 말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막은 힘을 물리쳐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절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성령에 대한 신학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이 바로 이 사실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또한 오늘 이 자리에 성령께서 여기 와 계시고 내가 살아가는 삶속에 성령께서 와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가를 묻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예배시간에 나와서 내가 낙제생 크리스찬인가 아니면 정말 신앙으로 사는 사람인가 먼저 각자가 살펴보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시고 그 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분이 내 눈을 밝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한가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열심히 믿는 다고 하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진짜 성경에서 말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믿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탐욕에서 나오는 그런 어떤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자신의 심리상태에서 나온 조작된 성령의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이들이여, 영이라고 해서 모두 다 믿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창조의 영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거의 관심도 안 가지고 그것으로 설교도 안하는 교회도 문제지만 잘못되게 얘기해서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성령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든지 말하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에 자기의 탐욕을 성령이 와서 채워준다는 도구로서의 성령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짜 성령을 찾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영을 '악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악의 영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 12장 본문에 나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 영을 받은 표지는 병고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주술적인 힘으로 병고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엑소시스트라고 불렀습니다. 한마디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그를 엑소시스트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엑소시스트의 두목인 바알세블쯤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악의 영의 특징은 자기들끼리 자꾸 싸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제 이러한 세상 속에 왔는데 내가 귀신을 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힘, 성령으로 바로 이런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와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결국 이 자리에서 하는 얘기는 어떤 기적을 베푸느냐, 어떤 징조가 나타나느냐가 아니라 서로 싸우고 하는 것이 악의 영의 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여서 그곳에 악의 영을 쫓는 때에 그곳에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는 제 스승인 폴틸리히가 아주 짧은 말로 간단하게 정의했습니다. 성령은 화해의 힘(power of reconciliation)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힘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힘, 우리 동양식으로 말하면 '하늘의 기'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반면에 악의 영은 분열의 힘(power of separation)인 것입니다.
자꾸 갈라놓고 대립시키고 미워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갈라디아 5장의 말씀은 이것을 명백하게 밝혀 놓고 있습니다. 악의 영이 나오는 열매는 탐욕, 질투, 원수를 맺는 일, 이러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는 사랑과 평화와 친절, 인내 기쁨 등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아침에 들은 얘기로 바꾸면 경혈이 열리면 조물주안에 있는 기운이 내 오장 육부안에까지 들어오는 것이지만 막혀버리면 악의 영이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와 있다는 것은 막힌 경혈이 뚫려서 사랑하게 되고 인내하게 되며, 평화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증거인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과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악의 영의 열매를 받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교회, 내가정,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이 지구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전반으로 우리의 성령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넓어질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참신앙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성령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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