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님과 함께 춤을
본문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저는 춤을 잘 추지는 못합니다만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즐겁습니다. 더욱이 춤을 함께 춘다는 것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분명히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춤을 추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성령님과 함께하면 그 어떤 수줍음도 없이 어린아이 같은 평화로움으로 추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춤을 추시는데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나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흥성회가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과 함께 춤을 추는 성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이 말씀은 “뜻이 같지 않으면 두 사람은 동행할 수 없다.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어떤 지점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즉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그들이 동행하기를 원해야 하며 또한 동행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동행하려면 그들이 어떤 점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날마다 시간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즐겁게 포옹하며 또 춤을 출 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우리 자신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성령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성령님과 춤을 추고 싶습니다! 라는 사모하는 마음과 거기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첫째는 자신의 무언가를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무언가를 먼저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야 여호와 하나님의 풍성한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작은 어떤 것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큰 것을 전부를 잃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죄송하지만 세상적인 것들은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좀 더 거룩한 방향으로 궤도 수정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춤을 출 수 있도록 준비가 된 사람은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에 대하여 점점 흥미를 잃게 됩니다.
새 옷을 산 사람은 헌 옷(구습)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구습이 있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성령을 받기 위하여 어떠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성령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 여호와 하나님 가운데 제3위에 계신 분입니다. 성령은 분명한 인격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과 교제할 수 있고 또한 그 교제는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인격이라는 말은 함께 사랑하고 깊은 생각과 능력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실재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만나 주시는 분, 만날 수 있는 분)
둘째로 우리가 성령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점점 몰두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몰두하라는 것은 그 분을 높이고 그 영광을 노래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 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님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에게 결코 충만하게 임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없이 성령님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은 그 분의 말씀대로 따르고,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며, 그 분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높여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우리는 성령을 받음으로서만 존귀하여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분이 우리 안에 내주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우리가 의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의한 길, 더럽고 잘못된 길을 걸으면서 성령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하게, 사람들 앞에서는 의롭고 선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同床異夢은 없다)
넷째로 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항상 관심이 많으십니다. 생각은 곧 인격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님과 친해져서 가까이 지내시기를 원하신다면 자신의 생각을 깨끗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라는 것은 깨끗한 성소라야 성령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깨끗하고 거룩한 영혼의 푸른 풀밭에 온갖 더러운 짐승들이 배회하거나 머물지 않도록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계속 허락한다면 여러분의 아름다운 영혼의 풀밭은 곧 황무지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잘 지켜야 합니다.
다섯째로 성경이 성령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연구해야 합니다.
연구하라는 말은 성령의 속성에 대하여 가급적이면 많이 알기를 원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전부 성령의 계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령님 자신을 잘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무슨 학위를 따기 위해서 하는 연구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묵상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지속적으로 읽으면 성경이 자신의 앞에서 열릴 것이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하시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여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경을 알고 성령님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게 되면 성령님은 여러분 자신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나타내실 것입니다.
끝으로 어디에서나 성령의 임재를 느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이 부분에 대하여 소홀하고 또 약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일간신문을 탐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성경을 읽는 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만약에 이렇게 사는 것이 생활화, 습관화 된다면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임재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성령의 임재를 느껴보려는, 체험하려는 노력이나 시도가 필요하고 또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당장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훈련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가까이 하고 그 임재를 항상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느 때인가 반드시 우리는 그 임재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설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과의 사귐은 어떤 특정인만의 독점적 사항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믿고 행한다면 세상은 온통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변할 것이며 천하고 세속적인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을 성령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여러분 자신의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하는 그 일이 곧 선교가 되고, 주의 일이 되고, 성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성령을 받고,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과 춤을 추는 실존적 경험이 있기 위해서는
1)성령님이 분명한 인격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인격이기 때문에 만나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실제적으로 치료해 주십니다.
2)예수님에게 몰두해야합니다. 몰두하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높여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3)의를 행해야 합니다. 죄 짓는 것을 계속하면 성령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일,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4)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살펴보십니다.
5)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면 성령의 임재와 그 기름 부으심의 통로가 열립니다.
끝으로 어디에서나 성령의 임재를 느끼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에게서 너무나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면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히브리인들은 어떻게(헬라적) 를 묻지 않습니다. 다만 왜(히브리적) 를 물을 뿐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영성의 차이
이제 심령 대 부흥회성가 오늘 저녁으로 다가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대할만한 특별한 성회입니다. 저도 금번 부흥성회를 통하여 성령님과 함께 마음껏 춤을 추고 싶습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도 기대가 되십니까 우리 모두 인격적인 성령님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특별한 성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춤을 잘 추지는 못합니다만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즐겁습니다. 더욱이 춤을 함께 춘다는 것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분명히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춤을 추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성령님과 함께하면 그 어떤 수줍음도 없이 어린아이 같은 평화로움으로 추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춤을 추시는데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나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흥성회가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과 함께 춤을 추는 성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이 말씀은 “뜻이 같지 않으면 두 사람은 동행할 수 없다.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어떤 지점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즉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그들이 동행하기를 원해야 하며 또한 동행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동행하려면 그들이 어떤 점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날마다 시간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즐겁게 포옹하며 또 춤을 출 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우리 자신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성령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성령님과 춤을 추고 싶습니다! 라는 사모하는 마음과 거기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첫째는 자신의 무언가를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무언가를 먼저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야 여호와 하나님의 풍성한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작은 어떤 것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큰 것을 전부를 잃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죄송하지만 세상적인 것들은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좀 더 거룩한 방향으로 궤도 수정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춤을 출 수 있도록 준비가 된 사람은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에 대하여 점점 흥미를 잃게 됩니다.
새 옷을 산 사람은 헌 옷(구습)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구습이 있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성령을 받기 위하여 어떠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성령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 여호와 하나님 가운데 제3위에 계신 분입니다. 성령은 분명한 인격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과 교제할 수 있고 또한 그 교제는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인격이라는 말은 함께 사랑하고 깊은 생각과 능력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실재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만나 주시는 분, 만날 수 있는 분)
둘째로 우리가 성령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점점 몰두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몰두하라는 것은 그 분을 높이고 그 영광을 노래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 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님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에게 결코 충만하게 임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없이 성령님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은 그 분의 말씀대로 따르고,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며, 그 분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높여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우리는 성령을 받음으로서만 존귀하여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분이 우리 안에 내주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우리가 의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의한 길, 더럽고 잘못된 길을 걸으면서 성령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하게, 사람들 앞에서는 의롭고 선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同床異夢은 없다)
넷째로 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항상 관심이 많으십니다. 생각은 곧 인격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님과 친해져서 가까이 지내시기를 원하신다면 자신의 생각을 깨끗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라는 것은 깨끗한 성소라야 성령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깨끗하고 거룩한 영혼의 푸른 풀밭에 온갖 더러운 짐승들이 배회하거나 머물지 않도록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계속 허락한다면 여러분의 아름다운 영혼의 풀밭은 곧 황무지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잘 지켜야 합니다.
다섯째로 성경이 성령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연구해야 합니다.
연구하라는 말은 성령의 속성에 대하여 가급적이면 많이 알기를 원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전부 성령의 계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령님 자신을 잘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무슨 학위를 따기 위해서 하는 연구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묵상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지속적으로 읽으면 성경이 자신의 앞에서 열릴 것이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하시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여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경을 알고 성령님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게 되면 성령님은 여러분 자신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나타내실 것입니다.
끝으로 어디에서나 성령의 임재를 느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이 부분에 대하여 소홀하고 또 약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일간신문을 탐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성경을 읽는 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만약에 이렇게 사는 것이 생활화, 습관화 된다면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임재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성령의 임재를 느껴보려는, 체험하려는 노력이나 시도가 필요하고 또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당장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훈련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가까이 하고 그 임재를 항상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느 때인가 반드시 우리는 그 임재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설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과의 사귐은 어떤 특정인만의 독점적 사항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믿고 행한다면 세상은 온통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변할 것이며 천하고 세속적인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을 성령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여러분 자신의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하는 그 일이 곧 선교가 되고, 주의 일이 되고, 성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성령을 받고,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과 춤을 추는 실존적 경험이 있기 위해서는
1)성령님이 분명한 인격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인격이기 때문에 만나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실제적으로 치료해 주십니다.
2)예수님에게 몰두해야합니다. 몰두하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높여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3)의를 행해야 합니다. 죄 짓는 것을 계속하면 성령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일,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4)자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살펴보십니다.
5)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면 성령의 임재와 그 기름 부으심의 통로가 열립니다.
끝으로 어디에서나 성령의 임재를 느끼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에게서 너무나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면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히브리인들은 어떻게(헬라적) 를 묻지 않습니다. 다만 왜(히브리적) 를 물을 뿐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영성의 차이
이제 심령 대 부흥회성가 오늘 저녁으로 다가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대할만한 특별한 성회입니다. 저도 금번 부흥성회를 통하여 성령님과 함께 마음껏 춤을 추고 싶습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도 기대가 되십니까 우리 모두 인격적인 성령님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특별한 성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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