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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꿈과 이상을 주시는 성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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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근 몇 주일, 성도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전하고 듣고 있습니다.
두 주일 전에는 기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전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그대로 본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그래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들도 "나는 전도하기 위해서 부름 받았다" 말하며 전도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살펴봅니다.
기도와 전도와 함께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자동차 운전에 비교해 보면 성령은 배터리입니다.
성령은 배터리, 기도는 휘발유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은 액셀레이터를 힘있게 밟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도입니다.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길이 둘 있는데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가거나 뒤에서 사람들이 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끌려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차가 견인되어 가는 광경 보기 좋은 것 아니지요. 억지로 끌려가는 신앙생활은 더욱 보기 싫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집니까 성령이 내 안에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뒤에서 밀어주는 자동차는 언덕을 만나면 올라가지 못합니다. 제 자리로 굴러 내려옵니다.
성령과 함께 하지 않은 신앙생활은 어려움을 만나면 제 자리에 서거나 원래 있던 자리보다 더 뒤쪽으로 굴러가서 멈추고 맙니다.
배터리가 다 떨어져 허덕이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중노동이요 고역입니다.
신앙생활을 중노동 하듯 하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을 고역으로 여기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성령을 받으셔야합니다.
성령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아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신비체험들이 있습니다. 방언, 입신, 진동, 예언, 환상, 신유, 영서(靈書), 그 밖의 여러 가지 형태의 신비체험들이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들이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내 안에 있으면 나에게 성령이 임하고 나는 성령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또 필요한 사람에게는 신비체험을 주십니다.
많은 경우에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강한 힘을 가진 성령의 열매를 주십니다.
성령 받은 가장 기초적인 증거는 꿈과 이상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의 강림에 대한 본격적인 최초의 말씀입니다.
성령강림이라고 하면 우리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한 성령을 생각합니다. 오순절 사건은 최초의, 그리고 강렬한 성령강림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을 기념해서 모든 교회는 그 사건이 일어난 주일을 성령강림절로 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성령강림절은 6월 30일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 사건은 요엘의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 신자가 됩니다. 이 설교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는 오늘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하고서 오늘의 본문을 읽었습니다.
요엘서의 이 말씀은 성령 강림에 대한 예언이요,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은 성취입니다. 공사에 비교해 보면 요엘의 말씀은 설계요,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은 착공입니다.
성령 강림에 대한 설계도가 되는 말씀에서 선지자 요엘이 제일 먼저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으면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증거로 꿈과 이상은 그리 강조되지 않는 편인데 성령강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요엘서는 이것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받기 원하는 우리는 장래 일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해야합니다. 꿈을 꾸어야합니다. 꿈은 생리적인 또는 심리적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의 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알리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꿈, 미래의 소망을 말하는 꿈, 세 가지가 있는데 요엘이 말하는 꿈은 장래 일에 대한 소망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고, 요약해서 꿈과 이상은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는 불씨입니다.
어떤 꿈과 이상을 가져야 합니까
많은 꿈과 이상들 가운데서 교회 성도들은 특별히 세 가지 꿈과 이상을 갖기 원합니다.
 첫째, 영적인 꿈입니다. 개인의 신앙이 새로워지고 바로 서고 뜨거워지는 꿈입니다.
 둘째, 땅 위에서의 꿈입니다. 각 자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는 꿈입니다.
 셋째, 교회에 대한 꿈입니다. 교회가 변화되고 부흥하는 꿈입니다.
 첫째, 개인의 신앙이 새로워지고 뜨거워지는 꿈과 이상을 가지셔야합니다.
신앙의 문제가 참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합니다.
어떤 신앙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그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그가 어떤 일생을 사느냐 하는 것을 결정합니다.
신앙은 그 사람의 일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의 인간관, 세계관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관은 전적으로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가서는 그 나라나 사회의 특징을 이루는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헌팅톤이라는 역사가가 있는데 이 분은 세계를 일곱 개 정도의 문명권으로 나눴습니다. 그런데 문명권을 나눌 때 기준을 종교로 삼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는데 그 사람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절반 이상을 놓친 것이 됩니다. 젊은이들이 배우자들을 선택하는데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집안이 어떠한가, 그 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그 사람의 외모가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를 살피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됩니다.
"나는 신앙이 없습니다" "나는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신앙 문제는 졸업했습니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5년 전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 인구의 49. 3%가 이런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신앙이 없는 것이지 정말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철저한 무신론자가 가장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원시적인 신앙, 수준이 낮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신앙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느끼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정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각기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온갖 힘을 쓰고 있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되기 어렵고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도 발언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신앙으로 사는 것은 무소속으로 출마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유교 신앙을 가진 분은 운명론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궁합이 안 맞어서…" "사주가 좋지 않아서…"합니다. 불행한 일을 만나면 "팔자소관인데…"하며 합리화 시킵니다.
불교 신앙을 가진 분은 소극적이 됩니다. "전생의 인연인데…"
이슬람 신앙을 가진 분들은 매우 호전적이 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은 높은 곳을 향한 강렬한 욕구를 가지고 삽니다. 교회당은 전통적으로 하늘로 치솟는 첨탑을 기본구조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땅의 세계를 부정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가능한 한 가까이 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뜨거워야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이 날로 진보해야 내 생활도 진보합니다.
신앙이 성숙해야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가 되고 각자의 신앙이 진보하고 성숙하는 꿈을 갖기 바랍니다.
경건 생활에 흠이 되는 요소를 가지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직도 교회 일보다 세상일을 우선시 하면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라고 하지요.
그런 분들, 언제인가는 흠이 없는 경건 생활을 하고 교회 일을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줍니다.
가정이 온전히 복음화 되지 않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방을 하면서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파악해 보면 가정복음화를 기도의 우선순위 일 번으로 하고 있는 가정들이 매우 많습니다.
전 가족이 손을 잡고 교회에 나오는 꿈을 갖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뤄주실 것입니다.
 둘째, 각 자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는 꿈을 가져야합니다.
먼저 알아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각 자가 원하는 꿈은 신앙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꿈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것들을 최종의 꿈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소망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많이 벌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많이 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상적인 꿈을 이루기 위한 통로나 방법으로 삼으면 그 신앙은 타락하고 교회는 힘을 잃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신앙적인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꿈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많은 사회가 변화됩니다. 맑아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이런 것이 민족복음화의 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꿈과 이상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올해 1월 첫 주일에 미국 뉴욕 시에서 병이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1,791명입니다. 이것은 재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40%,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51%가 많은 숫자입니다.
올해 첫 주간 사망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
사실은 작년 연말에 세상을 떠났어야 할 환자들이 "내가 죽더라도 새 천년을 맞이하고서 죽어야겠다" 하는 강한 의지로 버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렬한 소망은 죽음까지 이기게 합니다.
새 천년을 준비할 때 미국 밀레니엄 준비위원회는 새 천년의 주제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과거는 존중하고 미래는 꿈을 갖자",
구원의 역사를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 성자 예수님의 시대, 성령의 시대, 셋으로 나눕니다. 성령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꿈과 이상인데 저는 이 주제를 볼 때마다 새 천년이 성령의 역사가 완성되는 기간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게 됩니다.
꿈과 이상이 없는 것은 자동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동차의 기어를 후진에 놓는 것입니다.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동차의 기어를 전진에 놓는 것입니다.
성령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도와서 그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빠질수록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많은 선객들이 빠져 죽었습니다. 구조 받은 한 사람이 집으로 전보를 보냈습니다.
"나는 살았다!"
기쁨으로 가족을 만나고 그 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큰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다. 실망에 빠졌습니다. 의욕과 용기를 잃었습니다. 우울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서랍에서 쪽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자기가 예전에 난파선에서 구조되었을 때 집으로 보낸 전보였습니다.
"나는 살았다!"
이 사람은 그 전보를 벽에 붙이고 구조 받았을 때의 감격을 살리면서 어려움과 싸워 이겼습니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명이 지금까지 연장되고 있음을 감사하게 합니다.
성령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과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성령은 내가 처음 교회에 나올 때의 떨림을 기억나게 합니다. 세례 받을 때의 각오를 생각나게 합니다. 처음 직분 받을 때의 서원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려움을 이기며 꿈을 이뤄 나가게 합니다.
거지는 자살하는 일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목표는 거지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보다 더 분명하고 더 강렬하고 물론 더 차원이 높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저앉지 말고 멈추지 말고 멈칫거리지 말고 힘차게 일해야합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과거를 말하고. 현실의 어려운 점을 말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날마다 미래를 말합니다. 미래를 많이 말하는 목양의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교회가 변화되고 부흥하는 꿈과 이상을 가져야합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성숙해지고 정결해지고 공신력이 높아지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날을 그려야합니다.
특별히 목양교회가 부흥하는 꿈을 가져야합니다.
목양교회의 미래에 대한 꿈과 이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설교에서 실제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합당하지 않지만 우리는 오늘 목양교회의 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양교회는 큰 꿈을 품고 수지 땅을 찾아 왔습니다.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21세기를 선도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소망을 품고 여기 왔습니다.
새 시대 새 성전 새 역사를 이루겠다는 꿈과 이상을 품고 왔습니다.
전통적인 경건에 가장 충실한 교회가 되겠다는 다짐을 자주 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시대적 사명인 타문화권 선교와 통일과 북한복음화의 선두에 서겠다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활동, 24시간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도서실을 운영하고 소 출력의 FM 방송을 운영하고 복음은 항상 그 시대에서 가장 발달된 방법을 통해서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 원리인데 이 원리에 충실해서 컴퓨터 선교에 앞장서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창립 50년이 되는 2001년에는 장년 출석 2만 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최근 지역 사회 여건의 변화를 보면서 이것이 허황된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목양교회는 수지만을 위한 교회는 결코 아닙니다. 수지 중심의 교회도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와 지역사회의 관계는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지 인구가 작년 말 현재 102,068명입니다. 2002년에는 25만 여 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십분의 일은 저희가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슬비 전도학교라는 선교기구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저희 교회에서도 이슬비전도학교를 개최했습니다. 이슬비 전도학교를 시작한 장로님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이슬비 전도학교를 통해 700만 명을 전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700만 명입니까" 했더니 "남북한 인구가 통틀어서 7천 만인데 그 인구의 10분의 1은 감당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슬비 전도편지 나간 부수가 이미 700만 부가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꿈과 이상을 가지고 나가면 성령께서 도와 주셔서 이뤄 주십니다.
지난 월요일에 망우리에 있는 금란교회가 새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지하 6층, 지상 10층, 본당 수용인원 만 석, 연건평 12,400평의 큰 규모입니다. 무슨 특별한 뜻이 있는지 "성전성별예배"라고 했습니다.
금란교회는 사실은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박사님의 꿈과 이상이 맺은 열매입니다. 금란(金蘭)은 김활란 박사가 아호처럼 사용하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김활란 박사의 호가 공식으로는 우월(又月)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란이라는 이름을 많이 썼습니다. 이 분이 묻혀 있는 묘역의 이름도 금란동산입니다.
1957년 여름방학 때 김활란 박사가 금란 전도대를 이끌고 당시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에 가서 전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가을에 천막을 치고 십여 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금란교회의 시작입니다.
한 교회 지도자의 민족복음화의 꿈과 이상이 자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꿈과 이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꿈을 멀리서 바라볼 때는 선명한데 가까이 가면 흐려지는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라는 꿈이 아주 선명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이 가까워지면서는 배고프다는 현실, 목마르다는 현실, 반찬이 형편없다는 현실 때문에 그 꿈이 흐려졌습니다.
불평이 나오고 결국 거의 대부분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목양교회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곳으로 올 때의 꿈과 이상이 흐려지고 그저 평범한 교회 가운데 하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는 목표를 분명하게 정해야 성공합니다. 때가 되어서 하는 부흥회는 지나가고 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다음 주일 수요일부터 열리는 부흥회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기 위한 부흥회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성령성회라고 했습니다.
꿈과 이상을 풍성하게 나누어 갖기 위한 부흥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충만함으로 역사하시어 성도 개인의 영적인 꿈, 땅 위에서의 꿈, 그리고 목양교회 부흥하고 성장하는 꿈이 새로워지고 풍성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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