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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이 임하시면

본문

계획은 아니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강림주일을 준비해오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요일 밤에 계속 성령에 대해서 공부한 가운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같은 인격을 가지신 완전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또 우리의 신앙은 그분들 중심으로 되어져야 되기 때문에 바로 알아야 됩니다.
다른 것 다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 바로 알고, 예수님 바로 알고, 성령님 바로 알면 우리의 신앙이 온전해질 수가 있습니다.
성부여호와 하나님 곧 아버지여호와 하나님 오늘 삼위일체송을 부르면서 정확하게 말씀해주시는 바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여호와 하나님, 성령여호와 하나님 그렇게 말합니다.
똑같이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대부분 생각할 때 어떤 분들은 성부여호와 하나님 성자예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고 성령은 인격하고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도 똑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온전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되면 성령이 아닙니다.
더 인격적으로 되어지게 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무엇으로도 이 성령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좀더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 태양을 비유로 들어보겠습니다.
태양은 하나지만 태양은 열로 나타내기도 하고 빛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태양의 열, 빛을 설명할 때 태양을 제외하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태양의 열과 태양의 빛을 태양 이것은 다른 세가집니다.
그러나 구별할 수는 일지만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태양 없이 태양의 빛과 열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태양의 빛과 태양의 열이 있는 곳에 반드시 태양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 없이 성령과 성자를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또 성자와 성령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은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령이 강림하면 성령이 임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이 곧 꿈을 갖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당시에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중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하여 중심을 잃어 버렸습니다.
혼란이 왔습니다. 왜냐면 다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없으면 언제나 내 생각의 옳은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 결과 항상 혼란이옵니다.
혼란의 악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꿈과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후에 곧 때가 이르면 내가 성령을 보내주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사도행전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 약속은 계속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해주시는 분이고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사도행정 2장 17절 이하에 베드로는 오늘 읽은 본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곧 초대교회 때 암담한 가운데 소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성령의 역사가 저절로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수 천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사실이라는 것들을 백성들에게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성령은 말씀에 내가 내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남녀노소할 것없이 누구에게든지 다 부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만 그릇이 준비된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풍성해질 것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연령이나 성별이나 어떤 계급이나 신분의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값없이 넘치도록 채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되어지는가
본문에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맏이든 막내할 것 없이 성령을 받으면 예언할 것이다.
이 말씀은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 성령을 받게 되면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하시고자하는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말할 것이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에 대해 염려합니다.
이유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게 되어집니다.
성령을 받아서 성령 안에 살게 될 때 내일이 어떻게 되어지는지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또한 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인생이 다 되었다고 절망하던 노인들도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꿈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노인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늙으면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늙었다고 포기하는 자체가 끝입니다. 인생의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포기가 끝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는 노인들과 믿지 않는 노인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노인은 꿈이 있습니다.
하늘을 이 땅에 심기 위한 큰 소망을 갖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만민에게 큰 비전을 갖고 소망가운데 살아갈 것이다 라고 말씀해줍니다.
곧 앞으로 펼쳐질 은혜의 날을 통찰하면서 은혜의 생활 곧 꿈이 있는 생활을 할 것이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성령을 받은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얼마나 소망이 있는 말씀입니다.
왜 그러면 성령을 받으면 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가
구약 창세기 1장에서 성령이 나타납니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을 히브리어로 무아흐라는 단어를 씁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뜻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입기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숨결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훅 부는 바람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입기운입니다. 시편 33편6절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창조되었고 그 만상이 입기운으로 이루어졌도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성령으로 이 안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입기운을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생명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창조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파괴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환경을 창조하고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 성령강림주일은 어느 해보다 중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성령은 생명의 바람입니다. 성령은 창조의 바람입니다.
그러기에 꿈을 잃은 사람, 사망의 그늘에 있는 사람도 성령을 받으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절대로 절망이 없습니다. 포로되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사야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말씀을 인용하면 성령이 임하면 포된 자가 자유케 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되리라 앞을 보지 못하는 자가 다시 보게 될 것이고 듣지 못하는 자가 듣게 될 것이고 말하지 못하는 자의 혀가 풀려서 말하게 될 것이다 인생을 절면서 다니는 자가 건강하게 걸어다닐 것이라.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암담한 그늘이 있다 할 지라도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새로운 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창조의 힘을 얻고 생명의 힘을 얻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능을 얻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사는 것보다 더 큰 꿈이 어디있겠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며 복음 위에서 사는 삶보다 더 큰 일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이 성령이 임하면 그런 권능을 얻게 되어집니다.
창조의 능력 생명의 능력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을 갖고 이 능력을 갖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곧 꿈이 펼쳐질 것이라고 요엘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약에는 성령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라틴어로 빠라끌레또, 헬라어로 파라클레토로 씁니다. 이 뜻은 협조자입니다.
사람은 무언가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은 도움이 필요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변호자입니다.
또한 위로자란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실 때는 도와주시기 위해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실 것이다 그럴 때 그 보혜사는 너희들의 옆에서 변호사처럼 협조자로서 너희를 도와줄 것이다.
내가 전할 말씀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내 말씀을 이해하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알지 못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에 연약한 우리를 도우신다.
심지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때 바르게 기도하게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망할 때 어떤 사람이 조금만 도와주어도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완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는 어떤 절망가운데서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비전을 갖게 됩니다.
왜냐면 그는 창조의 입기운, 생명의 입기운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지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돕는 자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성령으로 나타내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것이 있습니다.
성령은 물과 함께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다.
성령은 비둘기의 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우리에게 임하심을 바라고 믿고 받으라는 것입니다. 비둘기의 특징은 온유입니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성령을 받으면 온유해집니다.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도 성령을 받으면 온유해집니다. 예수님의 성격을 두 가지로 표현하면 온유와 겸손입니다.
그가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꿈을 갖게 해줍니다. 노아의 방주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감남나무 새잎을 물고 왔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길이 열렸구나 꿈을 가져다 줍니다.
그 외에도 초대교회 사람들이 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물의 의미는 성령입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게 해줍니다. 정결하게 해줍니다. 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오늘날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내게 임함을 체험해야 합니다.
 또 성경에 보면 성령은 구름과 빛으로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갈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성령의 임하심이 불같이 임하셨습니다.
그 말은 성령이 구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셨습니다. 밤에는 빛으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불의 혀같이 나타나서 모든 더러운 것들을 태워 없애주기도 합니다. 그 의미로 성령을 붉게 나타냅니다.
그러나 꼭 성령이 불로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체험한 성령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주의 꽉 차신 분인 성령을 체험해도 아주 작은 일부분을 체험할 뿐입니다. 잘못체험하면 오만해집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구름이 끼어도 성령이 임함을 느끼고 태양이 비춰도 성령이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임하면 구름이 낀 인생에 있어서도 때로는 밝은 인생에 있어서도 성령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주에 어떤 새 신자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자기 아들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인데 너무 믿음이 좋답니다.
대예배에 오기를 즐겨한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예배드리는 것이 좋아서랍니다.
저녁에 어떤 바쁜 일이 있어서 잠자기 전 성경을 꼭 읽고 기도를 오랫동안하고 잔답니다. 항상 교회 가는 것을 최고의 우선으로 둡니다.
그의 목적은 엄마가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교회에 나오게 되니 이제는 엄마의 신앙이 자라는 것이랍니다. 그 다음 목적은 아버지가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얼마나 강요를 했는지 몇 번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 아이는 힘들고 어려울 때 이렇게 이야기한답니다. 감기가 걸리거나 몸이 아프면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한답니다. “살아가면서 힘들 때가 더 좋아요 내 믿음이 자랄 수 있으니까”라고 받아들인답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살아간다면 때로는 구름낀 인생이 있어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때론 밝은 태양이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구름이 끼어도 감사하고 태양이 비춰도 감사합니다.
예수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이름으로 성령이 충만할 때 범사에 감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늘 기뻐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만 충만하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성령이 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주의 종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습니다. 주의 종들이 축복함으로 성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돕는 자다 우리는 때로는 사람의 손으로 인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성령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손으로 나타날 때 말입니다.
성령이 일상 삶 속에서 우리는 계속 체험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준비만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임하시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실 그렇게 되어져 왔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사용할 수 있을까
첫 번째 기도할 때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기도합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또한 성경을 읽습니다.
성령없이 기도할 수 없고 기도없이 성령이 임할 수 없고 성령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없이 성령이 있을 수 없습니다. 태양이 없이 태양의 열과 빛을 이야기할 수 없음과 마찬가집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성령이 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시면 기도하십니오.
기도하면 성령이 임합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교통하게 해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예수님은 은혜주시고, 성령님이 교통하시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길이 막혀져 있어섭니다. 예수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을 도와주시고 이 속에서 교통케 하시는 분이 곧 성령이십니다. 지금 알게 모르게 성령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질 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꿈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어질 때 너희 자녀들이 예언하게 될 것이며 늙은이들이 꿈을 꾸게 될 것이며 청년들이 비전을 보게 될 것이며 바로 그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자가 꿈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자가 비전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자가 장래 일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너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꿈이 없던 우리가 꿈을 갖게 되고 내일을 걱정하던 우리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갑니다. 왜냐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이 얼마나 큰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관대한 꿈을 주십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도와주시고 교통하게 하십니다.
그럴 때 곧 여호와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됩니다.
기도는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값없이 우리에 주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직분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다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기도는 시간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일하면서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꿈을 가져다 주십니다.
꿈이 아닌 헛된 것 때문에 가려져서 여호와 하나님의 꿈을 보지 못하는 것을 성령님이 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를 잃었던 사람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함으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용기 백배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큰 권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큰 꿈을 갖고 복음을 갖고 땅 끝까지 전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기도하게 되고 성령이 임하면 성경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임합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은 좋은 것에선 항상 도와주고 역사합니다.
그럴 때 생각이 바뀌어집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 생각이 바뀌어집니다.
절망의 상태에서 희망의 상태로 내게 붙들린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내 중심에서 여호와 하나님중심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각하고 바라고 말는대로 되어지게 됩니다. 미군인 제임스레슨이란 장교가 포로로 잡혀가서 7년동안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생활을 다른 사람보다 너무 즐겁했습니다.
7년이후에 나왔는데 얼마나 건강하게 나왔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매일매일 골프장에 가서 운동을 했답니다. 어떤 특권으로 그렇게 했냐니 생각으로 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생각으로 골프장에 간답니다. 생각으로 골프를 칩니다. 이분이 7년후에 나왔는데 실재로 골프실력이 훨씬 늘었더랍니다. 가능한 일들입니다. 우리가 약하다고 자꾸 생각해 보십시오. 약해집니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강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약하다는 암시를 주었더니 평균 101파운드를 드는데 약하다고 암시를 주었더니 72파운드밖에 들지를 못했답니다. 1/3의 힘이 감소해졌습니다. 그런데 강하다는 암시를 주었더니 149파운드를 들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시진 않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나쁜 생각입니다.
그것을 악한 영이 하는 일입니다. 나쁜 생각을 조금만 하게 되면 그때 악한 영이 역사해서 나쁘게 생각했던 것을 계속 도웁니다.
그리고 나쁘게 말하게 돕고 나쁘게 행동하게 돕습니다. 뜻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영인 성령이 오십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더욱더 하게 하고 좋은 것을 말하게 하고 좋은 것을 행동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행복한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는 가난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늘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그 사람은 가난에 비전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되어져야 하냐고 물어보니 예수님이 가난하게 살아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가난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부요한 자입니다. 농촌교회 교인들이, 목회자들이 가난하게 살기 때문에 당신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가난을 말하면 가난하게 됩니다. 생각대로 되어지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제자들과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믿게 하고 교통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의 교통은 사고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고 생각대로 되어지게 합니다.
12정탐꾼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나머지 10명은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부정적인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꿈의 사람 요셉도 위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대로 되었습니다. 결코 그는 자신을 부유하게 자신의 높아짐을 위해 하지 않았다는 것을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어머니, 형제를 위하여 그는 그 큰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성령 안에서 승리하십시오. 그리고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꿈을 실현시켜 주실 성령님과 동행하십시오.
 성령 충만하여 하늘의 꿈을 꾸며 그 꿈을 실현시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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