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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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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흔히 1884년 알렌 선교사가 들어 온 해를 그 기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기독교와의 접촉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살필 수 있는 대로는 1627년 화란 사람 벨트브레가 일본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경주에 상륙했는데 이 사람이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라고 알고 있다.
그 후 1816년에 영국 사람 맥스웰 대령과 바실 홀 대령이 서해안의 마량진에 올라가 그곳의 조 대복이라는 사람에게 성경을 한 권 전해 주었는데 이것이 한국사람이 성경에 접하게 된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1832년에는 화란 선교사 구츨라프가 서해안 어떤 곳에 올라와 우리말로 주기도문 번역을 시도했다는데 이 사람이 우리 땅을 밟은 최초의 선교사였고 또 그의 주기도문이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성경이었다고 말한다.
1886년에는 토마스 목사가 제네럴셔먼호라는 미국 상선을 타고 전도를 목적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왔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므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런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만주에서는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메켄타이어에 의하여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됨과 동시에 그 일에 참여했던 이 응찬 백 홍준 김 진기 이성하등이 1879년에 비록 만주 땅에서이기는 하지만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 민족으로서는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었고 최초로 기독교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1884년이 아니라 1879년이 그 기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런 전사(前史)를 거쳐서 1884년에 알렌 선교사가 들어오고 1885년 부활절 날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셀라가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에 첫 발을 내 디딤으로 공식적인 한국 선교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날 제물포에 내린 거 선교사들은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에 왔습니다. 이 날에 죽음의 철창을 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으시고 그들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03년 원산에 와 있던 감리교 선교사들과 장로교, 침례교 선교사들 및 일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중국에서 선교하던 화이트 선교사를 모시고 기도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감리교 선교사였던 하디가 큰 은혜를 받아 자기의 죄를 고백함과 함께 강렬한 성령 임재와 은사를 체험하였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부흥의 불길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는 이미 나라가 망한 때였다. 그래서 당시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는 1906년부터 길 선주 장로에 의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어 새벽에 500여명이 모일만큼 되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준비활동이 되었다. 그 이듬해 1907년 1월 6일부터 장대현 교회에서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열렸는데 바로 이 집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마침내 요원의 불길이 되어 전 한국을 휩쓸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결과를 보면 다른 것은 그만두고도 수적으로 장로교인이 1년 사이에 34%가 증가하였고, 감리교는 무려 11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나라 잃은 이 민족에게 이런 역사가 아니었다면 그 어두운 터널을 무슨 힘으로 극복해 나왔겠는가 그래서 1907년의 대 부흥운동을 한국 기독교의 오순절이라고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은 거기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을 살피기 전에 우리 한국 교회의 오순절 사건을 회고해 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2. 그러면 이제 성경에 있는 많은 사건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 극적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 현장을 살펴보자. 성탄절은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다. 그래서 이 날 온 세상 사람들이 축하하고 찬양하고 경배한다. 그렇다면 오순절은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땅에 태어나게 된 날이다. 성탄절에 조금도 못하지 않는 의미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
(1)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오늘 구약 말씀은 주전 8세기경에 활동했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다.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 "고 했다. 이 날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지만 동시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고 했다. 가장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광된 소망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런 예언의 말씀을 따라 구원의 그 날을 믿고 소망하여 왔다.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예고해 주셨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하면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거기 함께 모인 120명의 제자들은 이런 성경의 약속, 우리 주님의 약속과 명령을 믿고 순종하여 함께 모여 기도했다. 열흘동안을 오로지 기도에만 전력했다. 그랬더니 약속대로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여러분,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셨다. 그 때처럼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명령대로 순종하면 오늘 우리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했다.
(2) 이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 날이 언제인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라고 했다. 오순절 날 이루어 졌다. 오순절 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순절 후에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오순절에 이루어 졌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표가 있다. 어떨 때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매우 늦은 것처럼 여겨질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 그래서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이의 생각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우리교회 건축과 관계된 일을 보면서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계획도하고 일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다 때로는 낙심도 하고, 또 의심도 했다. 우리 기도의 효력을 의심하기도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그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불평과 비판도 했다. 그러나 때가 되니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하셨다가 우리에게 이루어 주셨다. 우리의 기도는 상달이 되었고 응답이 되되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여 우리의 일을 이루어 주실 줄 믿는다.
그러면 성령 강림이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추수 감사절로서 첫 열매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였다.
성경에 보면 "추수 때가 되면 낫을 댄다"고 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오순절 날 검보다도 더 예리한 성령의 낫이 내려 왔고,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의 낫을 휘둘러 3천명이라고 하는 첫 열매를 거두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추수하는 작업은 세상 끝 날까지 진행이 될 것이다.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고 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기쁨에 함께 참여한 자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출애굽 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기념한다.
그런데 에스겔서에 보면 "내 신을 너희 속에 두며"(36:27)라고 했고 예레미아서에는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31:33)고 했다. 바로 이 일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실 때 그 분이 하시는 일은 우리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힘도 주신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기도에 응답 없다고 그렇게 낙심 말아라 /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3) 이 놀라운 역사가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 졌는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현상이었다.
성경에 바람은 참 의미 깊은 것을 상징해 주고 있다. 먼저 창1:2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고 했는데 여기 나오는 "신"이라는 말은 바로 바람을 의미한다. 처음 창조하실 때 여호와 하나님의 바람의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헬라어의 "영"도 역시 바람의 뜻이 있다. 그래서 "바람이 임의로 불 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렇다"고 했다.
에스겔서에 보면 골짜기 사방에 흩어져 있던 해골들이 말씀에 의하여 이 뼈 저 뼈가 서로 연락하여 조직이 되더니 생기가 불어왔을 때 비로소 살아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었다. 바람은 창조의 역사, 새 생명의 역사를 말한다. 오늘 태초의 혼돈, 공허, 흑암 같은 우리의 이 현실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마치 시체 같은 우리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임할 때 그리스도의 군대가 되어질 줄 믿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다.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축원한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라"고 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었다.
구약 성경에서 불과 관계된 것으로 크게 2가지 현상을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보인 것이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가 타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기이한 현상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은 우리를 부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다. 사명자가 되라는 것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그것을 말한다.
성령의 불과 관계된 것으로 두 번째 것은 엘리야에게 있었던 일이다.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내기한 것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것이었다. 불을 내려주는 신이 참신이시라는 내기였다. 그런데 바알은 850명의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의 간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 제물에 불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엘리야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제단에 불을 내려 주셨다. 그러므로 불로 나타나신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케 해 주는 일이다. 그 불의 강림과 함께 우상의 선지자들을 깨끗이 청소했다. 성령의 불이 임할 때 우리 심령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적인 요소가 다 태워지고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정결케 되어진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만을 뜨겁게 사랑하게 될 줄 믿는다. 성령을 통한 이런 불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한다.
또 한가지 성령 강림과 함께 저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고 했다. 방언의 현상이 나타났다. 이 방언현상에 대하여는 나중에 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것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주인이 바뀐 것을 말한다. 이제까지는 내 마음 대로였으나 이후로는 "성령이 하게 하시는 대로" 행하는 존재로 변화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대로가 아니라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한다면 성령 충만한 것으로 아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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