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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을 따라 행하라

본문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 열흘만에 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강림을 전후하여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순절 이전에는 문이 닫힌 교회라고 한다면 오순절 이후에는 열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도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일 때마다 비밀리에 모였고, 모이면 문을 안으로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이후에 제자들은 잠긴 문을 열고 뛰어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온 세상,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거 되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야말로 하늘 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문이 열린 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오순절의 역사가 오늘 여기 우
리 교회에도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고전2:-3:에 보면 대체로 사람을 3가지로 구분합니다.
(1)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태어난 그대로, 이럴 테면 본능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이 여기에 속합니다.
(2)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비록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여전히 육신의 욕심대로 살고 정욕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3) 성령에 속한 사람입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통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부류에 속해야 합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따라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삼종지도(從之道) 란 것이 여기서 생긴 말입니다. 여인들이 어려서는 부모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나중에는 자녀를 따라 살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그래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다른 무엇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엡5:18에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장 보러 갈 때 우리 지갑에 돈이 조금 있는 것하고 가득 있는 것하고 어느 것이 좋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가득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연료가 바닥에 있는 것과 가득 찬 것, 어느 것이 좋습니까 가득 찬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더 좋습니다.
성령님은 오늘 믿는 우리 속에 임재 해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충만하고 어떤 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동차가 최신형이라고 할지라도 연료 탱크가 텅 비어 있다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원동력이 바로 성령 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할 때 우리 신앙은 만족하게 되고 우리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난 변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저 오순절 날 제자들처럼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 각 사람도, 우리 각 가정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가 넘치고, 주께 영광 돌리게 되고, 더 귀하게 쓰임 받게 되고 더욱 부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개인도 겉 사람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도 좋은 가구보다 성령이 임재하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건물보다 우선 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성령 님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 3:16에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속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 성령께서 임재해 계십니다. 그런데 엡4:30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기뻐하기도 하시고, 근심하기도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 속에 계신 성령께서 기뻐하시면 나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 속에 계신 성령께서 근심하시면 나도 역시 근심 걱정과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때 성령께서 근심하시게 됩니까
(1) 내가 죄를 지을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시게 됩니다. (2) 내가 주님께 불순종할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십니다. (3) 내가 미워하고 다툴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십니다. (4) 내가 맡은 사명을 다하지 않을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십니다. (5) 내가 올바르게 살지 못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기뻐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배할 때 기뻐하십니다. 찬양할 때 기뻐하십니다. 기도할 때 기뻐하고, 전도할 때 기뻐하고, 섬기고 봉사할 때 기뻐하십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실 때 우리 마음이 기쁘고 우리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제부터는 성령님을 근심하시게 하지 말고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더욱 열심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성령님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전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감화 감동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뜻대로 살도록 감동하시고, 선한 일을 하도록 감동하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감동할 때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아멘'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 놀랍게 역사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선한 감동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행하게 되면 이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요, 두 번째 생각은 마귀의 생각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 기도할 마음이 생기거든 지체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상상을 초월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성령님의 감동입니다. 그때 전도하십시오. 그러면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억눌러 버리면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이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내 속에 선을 행할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성령의 감동인줄 알고 즉시 그 일을 순종하십시오. 내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 그것이 성령의 감동인줄 알고 실천하십시오. 그때 성령께서 역사 하시고 그것이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성령님을 소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역사하실 때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이 될 것입니다.
4.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갈5:16에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면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1) 성령을 따라 살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속에는 영의 욕심이 있고 육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의 욕심대로 살 때 온갖 잘못된 일이 생기게 됩니다. 본문 19-21을 보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왜 세상에 이런 일들이 생깁니까 심지어 믿는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도 이런 왜 생깁니까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욕심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면 22-23에 있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는 열매입니다. 우리 주님은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가장 소중한 것이 성령의 9가지 열매인데 이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 때, 즉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고 살 때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우리 인격과 삶에 맺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령을 따라 살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본문 25-26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육의 욕심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 이 땅은 이렇게 혼란하고 교회마저도 어지럽습니다.
전쟁이 그칠 날이 없고, 다툼이 생기고 시기와 질투가 생깁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살면 이런 헛된 영광을 분토같이 여기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세상의 영광이 아닌 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게 됩니다. 사람의 제 일되는 목적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알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령을 따라 살면 안전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 길은 광야길입니다. 여기 높은 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낭떠러지도 있습니다. 가시나무도 있고 돌부리도 있습니다. 참으로 위험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인생 길에서 우리는 한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5분 후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장래 일도 알 수 없습니다. 낭떠러지를 걸어가는 어린아이와 같고,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누군가의 보호와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세상에서 성령을 따라 살 때 우리는 가장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14;26에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는 바로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저와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보호해 주십니다. 인도해 주십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도움 어디서 오나 / 천지 지은 주 여호와 너를 도와주시네" 저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안전한 것처럼 성령을 따라 살면 여러분의 삶이 가장 안전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오직 성령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 "성령 충만 주옵소서,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을 소멸치 않고 성령 따라 살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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