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이 주시는 꿈과 환상"
본문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그 날에 내가 하늘과 땅에 징조를 나타내겠다. 피와 불과 연기 구름이 나타나고,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붉어질 것이다. 끔찍스럽고 크나큰 주의 날이 오기 전에, 그런 일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 아멘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 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아멘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14:23~2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아멘
오늘부터 성령강림절이 시작합니다. 성령강림절이 되면 성령을 풍성하게 받고 성령이 인도해 주심에 따라 방언도 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제가 오늘 작지만 의미 깊은 어느 분의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자 합니다. 때는 1942년 초겨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나치 게슈타포 경찰이 유대인을 체포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빅터 프랑클이라고 하는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 집에도 경찰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부인은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남편이 입고 갈 외투 옷에 뭔가 적은 쪽지들을 숨겨서 집어넣었습니다. 부부와 아들과 딸도 잡혀갔고 어머니 아버지도 잡혀갔습니다. 결과는 빅터 프랑클 혼자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온 가족들은 모두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외투에 넣어 주었던 종이쪽지가 무엇이었던지 모르나 얄궂게도 외투와 양복과 속옷까지 전부 빼앗겼기에 외투주머니에 들어있던 종이쪽지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빅터 프랑클이 감옥에 있는 동안 간수하고 합의를 해서 몇 장의 종이쪽지를 구해가지고 깨알 같은 글씨로 감옥에 있는 3년 동안 글을 섰습니다. 그러니까 아내 죽었지요, 애들 다 죽었지요, 부모도 다 죽었지요. 절망의 끝입니다.
오늘 요엘서에 보면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두워지고 피, 불, 연기 같은 구름이 온 땅을 뒤덮고, 달은 핏빛같이 붉어지고…. 세상의 종말, 바빌론한테 유대 땅이 망하기 직전의 상황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달도 핏빛같이 붉어지고 좌절 분노 모든 것이 엄습하던 감옥생활에서 빅터 프랑클이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다. 다 빼앗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 극적인 표현이지요. 그러면서결론이 내가 이 순간 행복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하고 사랑을 마음으로 나눌 수 있었을 때, 사랑의 말을 입으로 표출했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나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을 느꼈다. 사랑을 마셨다. 사랑을 먹었다. 내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에는 나는 그래도 살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내 인생에 대한 삶의 목적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무얼 먹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때마다 나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고 나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만들어 낸 학설 내지는 치료법 하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로고 세라피. 로고라는 말은 헬라어 로고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말씀. 언어. 무슨 언어냐 하면 당신은 분명히 인간의 삶에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담은 언어 이것이 로고스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무어라 표현하는가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로고스다. 어떤 뜻에 로고스냐 하면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 죄도 사함 받고 심판도 받지만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분이 바로 살아있는 말씀, 살아있는 세계, 살아있는 삶, 그것을 다 합해서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 글자 이게 로고스가 아니고요, 살아있는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생이 분명한, 방향이 분명한, 그런 삶의 현실을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빅터 프랑클이 로고스를 이야기하고 당신 삶이 분명합니다, 목적이 분명 합니다를 이야기하고 치료했더니 절망에 빠진 사람도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로고 쎄라피 요약입니다.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썼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살 건지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얼 먹고 무얼 입고 어디서 살 건지의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살 건지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에 수단들은 많으나 삶의 목적은 미미합니다. 그런데 목적이 분명해야 삶이 새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목적이 없는 수단은 새로 거듭난 삶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성령의 불길이 내려와서 어느 정도로 사람을 감동시켰냐 하면, 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혀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혀가 찢어지더니 찢어진 혀에서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전혀 우리가 발음하지 않던 말이 찢어진 혀를 통해서 막 나옵니다. 이것이 방언입니다. 무언가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알아듣지 못하는데 방언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성령에 충만하여 서로 기쁜 얼굴로 대하고 행복을 나누고 마음이 통했습니다. 이걸 방언이라고 합니다. 죄송한 이야기인데 저는 목사입니다만 방언을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그런데 방언하는 분들의 증언이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는 많이 했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까 진실로 행복한 방언자도 있었고요, 방언하는데 왜 그렇게 찡그리고 하는지 그런 사람도 봤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읽어봤더니 방언이 뭐냐 하면, 요한복음의 설명으로는, 살아있는 목표가 분명한 삶의 표현입니다. 그걸 로고스라 말하는데 삶의 목적이 분명했던 사람들은 방언하면서 얼굴이 밝았고요, 그게 아니라 언어란 수단, 은혜라는 수단만 받은 사람들은 얼굴 표정에 행복이 깃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오늘 빅터 프랑클의 말을 빌면,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방언을 하게 되는데, 그 방언은 행복이라 이름 하는, 사랑이라 이름 하는,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벽이 허물어지고, 우리 둘 사이에 아름다움을 최대한 나타냅니다.
진실로 방언은 못 알아듣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을 방언이라고 합니다.
어느 책을 읽어봤더니요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의 뇌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좌 뇌, 하나는 우뇌인데, 좌쪽 뇌는 몸의 오른쪽을, 우쪽 뇌는 왼쪽을 지배하는데, 대게 좌 뇌가 발달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른 손잡이가 90%, 왼손잡이가 10% 됩니다. 좌 뇌로는 이론적인 분석을 하고 우 뇌로는 통합을 하고, 좌 뇌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우 뇌로는 감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합니다. 좌 뇌가 발달하면 과학적 연구가 성행하고 우뇌가 발달하면 예술이 풍만합니다.
좌 쪽은 본문에 관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우 쪽은 본문의 전체적인 그림을 잘 그립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좌 뇌가 발달한 사람은 아이큐가 높고, 우 뇌가 발달한 사람은 이큐, 감성지수가 높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좌 뇌만 이야기하는 경우 과학자, 훌륭한 이론가 같을 수 있으나, 감성이 없어서 뜨거움이 없어서 사랑이 없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울리는 괭가리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건 방언이 아닙니다.
로고스의 현실에 의한 방언은 좌우가 합하여 이성적인 진술에 따뜻한 감성이 합하고, 정의 주장에 따뜻한 인간의 사랑이 가해져서, 정의와 사랑이 진실과 화해가 함께 뭉치면, 좌우뇌가 함께 합하여 위대한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좌로만 사는 사람 옳은 진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너무 우편의 사랑이 없어서 딱딱하고 지루합니다. 진실도 없이 사랑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살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요즘 말이 잘 살려고 하면 좌우뇌가 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이란 하늘에서 오는 음성을 충만히 받아서 내가 알 수도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보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가슴과 가슴이 통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하고 함께 말을 합니다. 내 가슴과 여호와 하나님의 가슴이 마주쳐서 함께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가슴으로는 통했습니다. 언어는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가 제 지혜와 만났습니다. 가슴으로 지혜로움을 깨우쳤습니다. 좌 뇌와 우 뇌가 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듯, 이 하늘과 땅이 합하면 하늘도 좋고 땅도 좋고, 남과 여가 합하면 사랑의 아름다운 부부가 되고, 자식과 부모가 합하면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해서 자식들은 아름다움을 꿈꾸고, 부모들은 환상을 보고, 부모와 자식이, 아내와 남편이 서로 서로, 그리고 우리 인간이 함께 서로 서로 누가 누구에게 있는지 모를 정도로 하나로 합쳐집니다. 하늘과 땅이 합했더니 사람의 입에서 너무 기뻐서 말이 나왔는데 가슴으로 통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방언입니다. 진실 된 방언은 이렇게 하늘과 땅을 합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는 진실로 하늘의 축복이 담겨있고 우리 인간의 행복이 담겨있습니다.
지난 오월 달에 선거를 치렀습니다. 누가 참패했고 누가 승리했는지 제가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 뇌에서 나오는 국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없는 어설픈 좌 뇌의 이야기에는 감동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분석한답시고 일일이 갈라놓고 합해서 행복을 만들어 주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보니까 사람들이 싫어한 것입니다. 차라리 오늘의 정치는 하늘과 땅을 민심과 지도층을 합한 이야기를 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신앙도 그래야 삽니다. 우리의 경제도 그래야 삽니다. 사람의 가슴과 과학적 진실이 서로 만나야 우린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회는 가슴 없는, 사랑 없는 이야기만 자꾸 내뱉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불행하게 만듭니다. 합하기보다는 갈라놓습니다.
성령 강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늘과 땅이 합한답니다. 하늘의 목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합해진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에 뜻을 품고 하늘과 우리가 합성어를 좀 만들어 보십시다. 하늘을 향하여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하늘에 있는 삶은 우리가 있는 데로 내려와서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답고 복된 삶을 우리를 통해서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 이야기를 기적적인 이상한 이야기로 듣지 마십시오. 우리 삶이 목적이 분명한, 하늘을 향하여 복되고 떳떳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은 우리 교회 안에서 필요합니다.
사랑이 시들은 가정마다 이런 성령이 있어야 합니다. 갈라서고 욕하고 철퇴를 내리고 찢고 부수는 우리사회 현실에 성령이 필요합니다. 합해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내는 이 성령의 역사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성령의 능력을 줄 것이고 그 성령의 역사가 만들어 낸 것을 세상에 평화. 마음에 평화. 가정의 평화. 그렇게 말하마. 그 평화는 세상 방법이 아니고 내가 오늘 십자가에서 죽고 피 흘리고 찢기는 방식으로 그대들의 수난을 다 끌어안고, 그 대신 회개한 그 속에서 부활의 영광을 그대들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하신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합니다. 그 속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한 가슴으로 좀 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나라와 하늘나라가 합하는 위대한 경험을, 행복한 경험을, 진실로 행복한 경험을 성만찬을 통해서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만찬이 복된 성만찬이며 그분의 말씀이 복된 말씀이 됩니다. 이건 꿈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환상이 아니고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이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 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아멘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14:23~2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아멘
오늘부터 성령강림절이 시작합니다. 성령강림절이 되면 성령을 풍성하게 받고 성령이 인도해 주심에 따라 방언도 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제가 오늘 작지만 의미 깊은 어느 분의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자 합니다. 때는 1942년 초겨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나치 게슈타포 경찰이 유대인을 체포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빅터 프랑클이라고 하는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 집에도 경찰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부인은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남편이 입고 갈 외투 옷에 뭔가 적은 쪽지들을 숨겨서 집어넣었습니다. 부부와 아들과 딸도 잡혀갔고 어머니 아버지도 잡혀갔습니다. 결과는 빅터 프랑클 혼자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온 가족들은 모두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외투에 넣어 주었던 종이쪽지가 무엇이었던지 모르나 얄궂게도 외투와 양복과 속옷까지 전부 빼앗겼기에 외투주머니에 들어있던 종이쪽지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빅터 프랑클이 감옥에 있는 동안 간수하고 합의를 해서 몇 장의 종이쪽지를 구해가지고 깨알 같은 글씨로 감옥에 있는 3년 동안 글을 섰습니다. 그러니까 아내 죽었지요, 애들 다 죽었지요, 부모도 다 죽었지요. 절망의 끝입니다.
오늘 요엘서에 보면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두워지고 피, 불, 연기 같은 구름이 온 땅을 뒤덮고, 달은 핏빛같이 붉어지고…. 세상의 종말, 바빌론한테 유대 땅이 망하기 직전의 상황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달도 핏빛같이 붉어지고 좌절 분노 모든 것이 엄습하던 감옥생활에서 빅터 프랑클이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다. 다 빼앗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 극적인 표현이지요. 그러면서결론이 내가 이 순간 행복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하고 사랑을 마음으로 나눌 수 있었을 때, 사랑의 말을 입으로 표출했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나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을 느꼈다. 사랑을 마셨다. 사랑을 먹었다. 내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에는 나는 그래도 살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내 인생에 대한 삶의 목적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무얼 먹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때마다 나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고 나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만들어 낸 학설 내지는 치료법 하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로고 세라피. 로고라는 말은 헬라어 로고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말씀. 언어. 무슨 언어냐 하면 당신은 분명히 인간의 삶에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담은 언어 이것이 로고스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무어라 표현하는가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로고스다. 어떤 뜻에 로고스냐 하면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 죄도 사함 받고 심판도 받지만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분이 바로 살아있는 말씀, 살아있는 세계, 살아있는 삶, 그것을 다 합해서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 글자 이게 로고스가 아니고요, 살아있는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생이 분명한, 방향이 분명한, 그런 삶의 현실을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빅터 프랑클이 로고스를 이야기하고 당신 삶이 분명합니다, 목적이 분명 합니다를 이야기하고 치료했더니 절망에 빠진 사람도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로고 쎄라피 요약입니다.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썼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살 건지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얼 먹고 무얼 입고 어디서 살 건지의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살 건지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에 수단들은 많으나 삶의 목적은 미미합니다. 그런데 목적이 분명해야 삶이 새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목적이 없는 수단은 새로 거듭난 삶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성령의 불길이 내려와서 어느 정도로 사람을 감동시켰냐 하면, 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혀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혀가 찢어지더니 찢어진 혀에서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전혀 우리가 발음하지 않던 말이 찢어진 혀를 통해서 막 나옵니다. 이것이 방언입니다. 무언가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알아듣지 못하는데 방언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성령에 충만하여 서로 기쁜 얼굴로 대하고 행복을 나누고 마음이 통했습니다. 이걸 방언이라고 합니다. 죄송한 이야기인데 저는 목사입니다만 방언을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그런데 방언하는 분들의 증언이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는 많이 했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까 진실로 행복한 방언자도 있었고요, 방언하는데 왜 그렇게 찡그리고 하는지 그런 사람도 봤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읽어봤더니 방언이 뭐냐 하면, 요한복음의 설명으로는, 살아있는 목표가 분명한 삶의 표현입니다. 그걸 로고스라 말하는데 삶의 목적이 분명했던 사람들은 방언하면서 얼굴이 밝았고요, 그게 아니라 언어란 수단, 은혜라는 수단만 받은 사람들은 얼굴 표정에 행복이 깃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오늘 빅터 프랑클의 말을 빌면,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방언을 하게 되는데, 그 방언은 행복이라 이름 하는, 사랑이라 이름 하는,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벽이 허물어지고, 우리 둘 사이에 아름다움을 최대한 나타냅니다.
진실로 방언은 못 알아듣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을 방언이라고 합니다.
어느 책을 읽어봤더니요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의 뇌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좌 뇌, 하나는 우뇌인데, 좌쪽 뇌는 몸의 오른쪽을, 우쪽 뇌는 왼쪽을 지배하는데, 대게 좌 뇌가 발달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른 손잡이가 90%, 왼손잡이가 10% 됩니다. 좌 뇌로는 이론적인 분석을 하고 우 뇌로는 통합을 하고, 좌 뇌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우 뇌로는 감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합니다. 좌 뇌가 발달하면 과학적 연구가 성행하고 우뇌가 발달하면 예술이 풍만합니다.
좌 쪽은 본문에 관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우 쪽은 본문의 전체적인 그림을 잘 그립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좌 뇌가 발달한 사람은 아이큐가 높고, 우 뇌가 발달한 사람은 이큐, 감성지수가 높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좌 뇌만 이야기하는 경우 과학자, 훌륭한 이론가 같을 수 있으나, 감성이 없어서 뜨거움이 없어서 사랑이 없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울리는 괭가리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건 방언이 아닙니다.
로고스의 현실에 의한 방언은 좌우가 합하여 이성적인 진술에 따뜻한 감성이 합하고, 정의 주장에 따뜻한 인간의 사랑이 가해져서, 정의와 사랑이 진실과 화해가 함께 뭉치면, 좌우뇌가 함께 합하여 위대한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좌로만 사는 사람 옳은 진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너무 우편의 사랑이 없어서 딱딱하고 지루합니다. 진실도 없이 사랑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살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요즘 말이 잘 살려고 하면 좌우뇌가 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이란 하늘에서 오는 음성을 충만히 받아서 내가 알 수도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보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가슴과 가슴이 통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하고 함께 말을 합니다. 내 가슴과 여호와 하나님의 가슴이 마주쳐서 함께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가슴으로는 통했습니다. 언어는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가 제 지혜와 만났습니다. 가슴으로 지혜로움을 깨우쳤습니다. 좌 뇌와 우 뇌가 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듯, 이 하늘과 땅이 합하면 하늘도 좋고 땅도 좋고, 남과 여가 합하면 사랑의 아름다운 부부가 되고, 자식과 부모가 합하면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해서 자식들은 아름다움을 꿈꾸고, 부모들은 환상을 보고, 부모와 자식이, 아내와 남편이 서로 서로, 그리고 우리 인간이 함께 서로 서로 누가 누구에게 있는지 모를 정도로 하나로 합쳐집니다. 하늘과 땅이 합했더니 사람의 입에서 너무 기뻐서 말이 나왔는데 가슴으로 통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방언입니다. 진실 된 방언은 이렇게 하늘과 땅을 합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는 진실로 하늘의 축복이 담겨있고 우리 인간의 행복이 담겨있습니다.
지난 오월 달에 선거를 치렀습니다. 누가 참패했고 누가 승리했는지 제가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 뇌에서 나오는 국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없는 어설픈 좌 뇌의 이야기에는 감동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분석한답시고 일일이 갈라놓고 합해서 행복을 만들어 주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보니까 사람들이 싫어한 것입니다. 차라리 오늘의 정치는 하늘과 땅을 민심과 지도층을 합한 이야기를 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신앙도 그래야 삽니다. 우리의 경제도 그래야 삽니다. 사람의 가슴과 과학적 진실이 서로 만나야 우린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회는 가슴 없는, 사랑 없는 이야기만 자꾸 내뱉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불행하게 만듭니다. 합하기보다는 갈라놓습니다.
성령 강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늘과 땅이 합한답니다. 하늘의 목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합해진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에 뜻을 품고 하늘과 우리가 합성어를 좀 만들어 보십시다. 하늘을 향하여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하늘에 있는 삶은 우리가 있는 데로 내려와서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답고 복된 삶을 우리를 통해서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 이야기를 기적적인 이상한 이야기로 듣지 마십시오. 우리 삶이 목적이 분명한, 하늘을 향하여 복되고 떳떳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은 우리 교회 안에서 필요합니다.
사랑이 시들은 가정마다 이런 성령이 있어야 합니다. 갈라서고 욕하고 철퇴를 내리고 찢고 부수는 우리사회 현실에 성령이 필요합니다. 합해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내는 이 성령의 역사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성령의 능력을 줄 것이고 그 성령의 역사가 만들어 낸 것을 세상에 평화. 마음에 평화. 가정의 평화. 그렇게 말하마. 그 평화는 세상 방법이 아니고 내가 오늘 십자가에서 죽고 피 흘리고 찢기는 방식으로 그대들의 수난을 다 끌어안고, 그 대신 회개한 그 속에서 부활의 영광을 그대들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하신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합니다. 그 속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한 가슴으로 좀 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나라와 하늘나라가 합하는 위대한 경험을, 행복한 경험을, 진실로 행복한 경험을 성만찬을 통해서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만찬이 복된 성만찬이며 그분의 말씀이 복된 말씀이 됩니다. 이건 꿈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환상이 아니고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이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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