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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이 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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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는가 이발을 하라. 한 주일을 기쁘게 살려는가 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는가 결혼을 하라. 한 해를 기쁘게 살려는가 새 집을 지어라. 평생을 기쁘게 살려는가 정직하게 살아라. " 여기에 하나를 더해봅니다. 영원히 기쁘게 살려는가 “성령을 받으라. ”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종종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주일이 되면 이 땅에 있는 5만여개의 교회에 일천만명이 넘는 성도들이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 속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고민이 있다면 이것입니다. “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왜 그렇게 변화가 천천히 일어나는가” 매 주일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수 많은 말씀을 듣고, 자신을 쳐서 복종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너무나 무기력하게 넘어지고, 세상에 타협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정복하고, 빛과 소금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유명한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간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기독교인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의 것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것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를 업신여겨도 그는 세상을 이길 힘이 없으며, 깨끗하게 되기를 힘써도 그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 그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불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이 될 것이다. ”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 것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영광스런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비밀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정복할 힘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 성령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임하시도록 성령님을 환영하십시오. 성령님을 여러분 가슴 속으로 초청하십시오.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으로 치유와 회복이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비가 우리의 갈급한 심령 위에 임할 때 하늘문이 열리고, 닫혔던 인생의 모든 문이 활짝 열리는 역사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것임을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가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성취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더불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의 생일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800여년전인 BC 830년경, 당시 남쪽 유다 왕국은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다가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메뚜기 심판이었습니다. 엄청난 메뚜기 떼가 몰려와 유다 땅을 덮게 되었습니다. 모든 농작물을 해쳤습니다. 유다 땅은 완전히 황폐케 되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요엘은 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였고, 이들을 불쌍히 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메뚜기 떼를 바다로 몰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을 위한 새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풍요한 추수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엘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 즉 여호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17절에 오늘 본문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 가를 조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언제 성령님을 부어 주시나
오늘 본문에서 ‘그 후에’ 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말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어느 한 날을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세’라는 말은 영어로 ‘In the last days’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지막 날들’이라는 복수로서 ‘마지막 때‘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시는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사건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오순절 날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나 예언과 같은 역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성령의 내주하심,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의 임재는 강조했지만, 성령의 강력한 임재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표적이나 이적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무슨 이단들의 전유물인냥 잘못된 인식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19세기까지 성령론에 대한 책이 출판되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즉,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에 대한 연구나 역사하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많은 성도들이 성령님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잘못된 이해를 가지게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영입니다. 진래의 성령님이 오시면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영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영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회개케 하시는 영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됩니다. 통회하고 자복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성결의 영입니다. 통회함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성결한 주의 백성으로 변화시킵니다.
성령은 능력의 영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존재들일지라도 성령이 임하면 살아납니다. 큰 군대를 이룹니다.
이런 놀라운 성령님의 사역을 제한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더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미지역과 아프리카, 중국대륙에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계속됩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여러분! 지금이 성령께서 역사하는 시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누가 성령님을 받을 수 있나
요엘 선지자는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준다고 말씀합니다. ‘만민’과 ‘모든 육체’는 같은 말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세례, 성령충만은 누가 받을 수 있습니까 특별한 사람만 받습니까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셨습니다(창1:2). 그리고 택하신 일꾼들에게 임하셔서 감동시키시고, 예언케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구약시대에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임하셨습니다.
사울과 삼손, 다윗, 엘리사 등과 같이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과 같은 선택된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특정한 사람, 특정한 지역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족속에게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11:9~13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성령충만을 간절히 사모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저와 여러분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어떻게 성령님을 받을 수 있는가
1)회개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철저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력함과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록 성령님의 은혜는 강하게 역사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1907년 평양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원산과 평양을 중심으로 선교하던 하디 선교사를 중심으로한 회개운동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후 장대현 교회에 길선주 목사님이 설교할 때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전국에 대각성 운동과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2)겸손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성령이 임하지 않습니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교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최초의 왕이었지만 오히려 악신이 들어와 비참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선지자의 책망 앞에 눈물로 회개함으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다윗은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듣는 자가 되었습니다. 겸손함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
3)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가 마음을 같이하여 간절히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을 붙잡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주십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사모하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릴 때 불 같은 성령,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4)힘써 기도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 오순절 성령강림 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간절히 부르짖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찢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복하고 회개하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채우실 줄로 믿습니다.
넷째로, 성령님이 임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해외 토픽에 재미있는 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스웨덴의 칼스타트 대학교가 있는데, 어느 날 그 학교에 수천 마리의 새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새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학교 창문에 와서 자꾸 부딪히며 소동을 피우더랍니다. 결국 50여 마리의 새가 학교 창문과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학교 당국에서는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학교가 새들과 원수 진 적도 없는데, 무슨 이유로 학교 창문에 부딪혀 자살 소동을 일으키나하고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 새들이 학교 앞에 있는 나무로 날아들어 발효된 마가목이라는 열매를 먹은 뒤, 술에 취해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마가목 열매가 고갈되기 시작하면서 술 취해서 죽는 새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한 것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발효된 마가목 열매를 먹은 새들에게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면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변화가 나타납니다. 무슨 변화가 나타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 이 말씀을 보면 몇 가지 일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자녀들이 예언을 한다
성령이 부어지면 자녀들이 예언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언이라는 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언이라는 영어 단어는 Prediction과 Prophesy라는 두 단어가 대표적입니다. 이 두 단어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점집에 있는 점쟁이가 점을 치며 예언을 할 때를 Prediction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미래에 일어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것을 Prophesy한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언은 시중의 점쟁이들이 맞지도 않는 시시 컬렁한 미래를 말하는 Prediction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말하는 Prophesy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예언을 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스가랴 등과 같은 선지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이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 받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혼자 집에서 온갖 서적을 펼쳐놓고 성경공부를 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나이 어린 학생들이라도 말씀을 척척 깨닫고 그 말씀에 “아멘, 아멘”으로 반응합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시골의 할머니도 성령께서 역사하니까 말씀을 다 이해하고, 그 말씀을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젊은이들이 환상을 본다
성령이 부어지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초점 잃은 눈동자를 가지고 흘러가며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겨우 생각한다는 것이 어떻게 하면 좋은 스포츠카를 탈 수 있을까 어디에 물이 좋은 곳이 없을까 정신 잃고 하루 밤 즐길만한 곳이 없을까 이런 것만 생각하며 사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환상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환상’이란 술이나 마약 먹고 비몽사몽의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환상이란 Vision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찬란한 미래에 대한 Vision을 보게 됩니다. Vision이란 목적입니다. 나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 바로 Vision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Vision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 그 생애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Vision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도행전20:24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비전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 Vision을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19세기 미국에 영적 대각성을 일으켰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인생 좌우명은 “목숨이 살아있는 한, 전력을 다해 주님의 뜻을 위하여 살겠노라. ”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비전너리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환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목숨 걸고 달려갈 삶의 목적이 여러분들에게도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환상을 보고 비전을 세울 수 있습니다.
3)늙은이들이 꿈을 꾼다
또 성령이 부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임하면 꿈을 꾸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늙은이라는 말은 젊은이의 반대 개념으로, 나이 많으신 분들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나 같은 늙은이가 뭐한다고”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면 달라지는 줄로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생기가 있습니다. 늙는다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습니다.
여호수아서에서 멋있는 노인 한 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14:12에 보면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 고백한 말입니까 85세된 노인 갈렙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는 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 85세에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이 갈렙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연세 드신 분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꿈을 꾸기를 바랍니다. 봉사와 전도와 선교의 일선에 앞장서서 후배들에게 귀한 것들을 전수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미국과 카나다 경계에는 거대한 폭포 하나가 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입니다. 높이가 48m 폭이 900m 로서 60m의 물줄기가 급한 벼랑을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장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어느날 그곳을 찾은 한 에너지 연구원이 그 물줄기에 수력 발전소를 세운다면 엄청난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현실화되어 미국과 캐나다 양국은 이 폭포의 거대한 힘을 이용하여 웅대한 수력 발전소를 세웠고 거기서 나온 전력을 통해 큰 이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폭포 보다, 수력 발전소 보다도 더 위대한 힘으로 세계를 강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나이아가라 수력 발전소가 에너지 위기의 도움을 주었다면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권능은 폭포수처럼 인류 역사에 쏟아져 죄악의 위기, 영혼의 위기를 막아 주었습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는 인류역사의 물결을 전격적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비린내나 풍기던 어부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저들은 중국의 진시왕도, 로마의 시져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도 하지 못했던 역사의 대변혁을 몰고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새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는 더 이상 겁에 질리고 초라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여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생명을 염려하며 두려워 떨던 갈릴리 촌부들이 방문을 걷어차고 로마의 한길로 달려나왔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목이 터져라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예수 앞에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300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극복하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충만이 필요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세상의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있습니다. 마귀의 궤계를 멸할 수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슬픈 탄식을 새노래로 바꿀 수 있습니다. 멸망길로 달려가는 영혼을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황무한 이 땅에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에 사로잡힌 성령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 이시간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충만함을 간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으심을 통하여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며, 꿈을 꾸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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