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에베소교회의 성령강림
본문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크게 두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입니다. 저들은 모두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새 이스라엘입니다. 저들은 모두 예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롭게 택하신 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새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구원 받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어 새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고 새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새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성령이 강림하셨는지 그리고 성령 강림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합니다. 요엘 2:28의 예언말씀 그대로 모든 육체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인과 종을 불문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우선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2)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마리아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8) 구약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렸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10) 구원 받을 수 없었던 로마인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에베소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19) 구원 받을 수 없었던 이방 땅에 성령이 강림한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에베소 성령 강림 사건은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 세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곧 새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바울 이전에 이곳에 와서 예수에 관한 진리를 가르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볼로입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성경에 능통했고 예수에 관한 말씀을 배워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컸는지 이 먼 곳 에베소에까지 와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1절을 보면 또 고린도에까지 갔다고 했습니다. 이 아볼로의 전도 사역으로 에베소에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저들을 만나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니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성령 강림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이 보입니다. 18:2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가 열심히 전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2를 보면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아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자에 음료시장을 강타한 최고의 히트 상품이 등장해서 화제를 모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롯데칠성의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입니다. 기존의 탄산음료나 이온음료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 그리고 다이어트 때문에 생수를 마시지만 맛이 없어 심심하게 느낀 사람들 그들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개념의 음료를 개발했습니다. “나를 물로 보지마”, “나는 노는 물이 달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광고 마케팅에도 성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2%가 부족할 때”입니다. 이 이름에 대한 호기심도 매출을 크게 올리는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답니다. 이 이름은 인체가 수분이 2% 모자랄 때 본격적으로 갈증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서 지어졌습니다. 이 이름도 유행어가 돼서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할 때 2%가 부족하다는 말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65%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우리 몸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탈수증이 와서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이 듭니다. 면역력도 떨어져 각종 질병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물이 부족하면 물을 보충해 달라고 갖가지 사인을 보내게 됩니다. 그것이 갈증입니다. 2%가 부족할 때부터 이 사인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의 아볼로가 그랬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바로 2%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예수에 관해서도 많이 압니다. 나름대로 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이 부족합니다.
오늘도 무엇인가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그냥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경우 부모님이 믿어서 자동적으로 나면서부터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니며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습관이 되었고 아주 익숙하게 나름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때론 열심도 있어서 적극적으로 교회 봉사도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 일에 앞장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당황스럽습니다. “당신 예수를 만났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기 힘이 듭니다. “당신 성령 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냥 교회생활을 해 왔지 구원의 확신이나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 그리고 성령 체험과 같은 신앙적 사건을 체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적인 2% 부족 현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2%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 몇 가지 신앙생활에 병리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선 신앙생활에 감동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습니다. 기도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교회 봉사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관행대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신앙생활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일을 추진해 가지도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종교생활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은데 복음을 전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간혹 전도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을 때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녀도 단 한명도 주께로 인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한명에게도 예수 믿으라고 권하지도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부족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강림
본문의 영적 부족 현상을 보이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5-6을 보면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바울을 보내시고 그에게 세례를 주고 안수케 하심으로 성령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례를 받으니”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성령 세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이미 행 1:5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곧 새 이스라엘은 다 세례를 받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예수님의 예언이 마가의 다락방 사건만 이 아니고 에베소 교회에도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강림은 새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필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성령이 강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선교사나 열심있는 전도자나 이런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이 일어나게 되면 너무 열심히 신앙생활에 빠져들까봐서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광신자가 되는 것 아닌가 해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은 내가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중심입니다. 인간중심인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내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생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힘을 주십니다. 성령이 중심입니다. 성령중심인 신본주의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인본주의적인 종교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받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 세례를 받고 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순복음 교리처럼 성령이 강림하시면 모든 사람이 방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후 12:30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 곧 새 이스라엘은 누구나 다 방언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예언도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강림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가시적인 현상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언과 예언을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한 은사입니다. 성령 강림시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인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런 은사를 받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은사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방언과 예언 모두 말입니다. 말은 커뮤니케이션을 말합니다. 의사소통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고 나면 새 이스라엘로서 의사소통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선 방언은 영적인 언어입니다. 이 방언은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언어입니다. 무슨 뜻인지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방언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통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고 또한 우리의 영적인 간구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언어입니다. 물론 이 예언은 일반 다른 사람들 사이의 언어와는 다릅니다. 그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그러니까 예언은 우리의 언어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언어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화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습니다. 세상 염려 근심 걱정 털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미움 다툼 시기 다 털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 강림을 체험하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의 에베소 교인들은 선생을 잘못 만났습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가르쳤고, 예수의 도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정작 성령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바울을 통해서 성령에 대해 듣고 깨달으면서 성령 강림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예수 전도단 화요 모임에 참석했었습니다. 처음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방언 찬송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나는 정말 이방인 같았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있었는데 나는 저들과 너무도 달라 보였습니다.
데이비드 로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도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진심으로 믿으시면 여러분 안에 이미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단 여러분이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제한하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여러분을 맏기십시오”
저는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듣고 많은 신앙서적도 읽었지만 이런 말씀은 처음 들었습니다. 성령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제게도 서서히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저도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예수를 내 구주라고 고백하신다면 이미 여러분 안에 성령이 거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거하심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여러분을 맡겨보십시오. 그분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행 1:14을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 세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저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다릴 때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던 저들에게 약속대로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눅 11:3을 보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본문의 에베소 교인들처럼 아직 성령 강림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2%가 부족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에게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실 많은 분들 안에 이미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인정해 드리시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또 성령이 임하지 않은 분들은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그래서 성령이 이끄시는 신앙생활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영적인 삶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입니다. 저들은 모두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새 이스라엘입니다. 저들은 모두 예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롭게 택하신 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새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구원 받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어 새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고 새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새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성령이 강림하셨는지 그리고 성령 강림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합니다. 요엘 2:28의 예언말씀 그대로 모든 육체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인과 종을 불문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우선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2)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마리아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8) 구약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렸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10) 구원 받을 수 없었던 로마인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에베소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19) 구원 받을 수 없었던 이방 땅에 성령이 강림한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에베소 성령 강림 사건은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 세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곧 새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바울 이전에 이곳에 와서 예수에 관한 진리를 가르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볼로입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성경에 능통했고 예수에 관한 말씀을 배워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컸는지 이 먼 곳 에베소에까지 와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1절을 보면 또 고린도에까지 갔다고 했습니다. 이 아볼로의 전도 사역으로 에베소에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저들을 만나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니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성령 강림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이 보입니다. 18:2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가 열심히 전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2를 보면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아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자에 음료시장을 강타한 최고의 히트 상품이 등장해서 화제를 모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롯데칠성의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입니다. 기존의 탄산음료나 이온음료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 그리고 다이어트 때문에 생수를 마시지만 맛이 없어 심심하게 느낀 사람들 그들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개념의 음료를 개발했습니다. “나를 물로 보지마”, “나는 노는 물이 달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광고 마케팅에도 성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2%가 부족할 때”입니다. 이 이름에 대한 호기심도 매출을 크게 올리는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답니다. 이 이름은 인체가 수분이 2% 모자랄 때 본격적으로 갈증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서 지어졌습니다. 이 이름도 유행어가 돼서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할 때 2%가 부족하다는 말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65%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우리 몸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탈수증이 와서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이 듭니다. 면역력도 떨어져 각종 질병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물이 부족하면 물을 보충해 달라고 갖가지 사인을 보내게 됩니다. 그것이 갈증입니다. 2%가 부족할 때부터 이 사인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의 아볼로가 그랬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바로 2%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예수에 관해서도 많이 압니다. 나름대로 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이 부족합니다.
오늘도 무엇인가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그냥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경우 부모님이 믿어서 자동적으로 나면서부터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니며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습관이 되었고 아주 익숙하게 나름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때론 열심도 있어서 적극적으로 교회 봉사도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 일에 앞장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당황스럽습니다. “당신 예수를 만났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기 힘이 듭니다. “당신 성령 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냥 교회생활을 해 왔지 구원의 확신이나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 그리고 성령 체험과 같은 신앙적 사건을 체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적인 2% 부족 현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2%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 몇 가지 신앙생활에 병리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선 신앙생활에 감동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습니다. 기도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교회 봉사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관행대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신앙생활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일을 추진해 가지도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종교생활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은데 복음을 전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간혹 전도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을 때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녀도 단 한명도 주께로 인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한명에게도 예수 믿으라고 권하지도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부족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강림
본문의 영적 부족 현상을 보이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5-6을 보면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바울을 보내시고 그에게 세례를 주고 안수케 하심으로 성령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례를 받으니”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성령 세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이미 행 1:5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곧 새 이스라엘은 다 세례를 받을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예수님의 예언이 마가의 다락방 사건만 이 아니고 에베소 교회에도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강림은 새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필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성령이 강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선교사나 열심있는 전도자나 이런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이 일어나게 되면 너무 열심히 신앙생활에 빠져들까봐서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광신자가 되는 것 아닌가 해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은 내가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중심입니다. 인간중심인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내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생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힘을 주십니다. 성령이 중심입니다. 성령중심인 신본주의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인본주의적인 종교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받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 세례를 받고 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순복음 교리처럼 성령이 강림하시면 모든 사람이 방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후 12:30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 곧 새 이스라엘은 누구나 다 방언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예언도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강림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가시적인 현상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언과 예언을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한 은사입니다. 성령 강림시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인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런 은사를 받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은사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방언과 예언 모두 말입니다. 말은 커뮤니케이션을 말합니다. 의사소통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고 나면 새 이스라엘로서 의사소통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선 방언은 영적인 언어입니다. 이 방언은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언어입니다. 무슨 뜻인지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방언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통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고 또한 우리의 영적인 간구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언어입니다. 물론 이 예언은 일반 다른 사람들 사이의 언어와는 다릅니다. 그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그러니까 예언은 우리의 언어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언어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화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습니다. 세상 염려 근심 걱정 털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미움 다툼 시기 다 털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 강림을 체험하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의 에베소 교인들은 선생을 잘못 만났습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가르쳤고, 예수의 도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정작 성령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바울을 통해서 성령에 대해 듣고 깨달으면서 성령 강림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예수 전도단 화요 모임에 참석했었습니다. 처음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방언 찬송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나는 정말 이방인 같았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있었는데 나는 저들과 너무도 달라 보였습니다.
데이비드 로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도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진심으로 믿으시면 여러분 안에 이미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단 여러분이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제한하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여러분을 맏기십시오”
저는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듣고 많은 신앙서적도 읽었지만 이런 말씀은 처음 들었습니다. 성령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제게도 서서히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저도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예수를 내 구주라고 고백하신다면 이미 여러분 안에 성령이 거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거하심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여러분을 맡겨보십시오. 그분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행 1:14을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 세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저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다릴 때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던 저들에게 약속대로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눅 11:3을 보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본문의 에베소 교인들처럼 아직 성령 강림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2%가 부족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에게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실 많은 분들 안에 이미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인정해 드리시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또 성령이 임하지 않은 분들은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그래서 성령이 이끄시는 신앙생활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영적인 삶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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