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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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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님께서 승천하신 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내주하시기 시작하신 것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이 사건 이후 오늘도 우리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이 강림하셔서 내주하십니다. 그래서 이 성령강림주일은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을 기리고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왜 주님의 제자들에게 임하셨을까요 왜 오늘 우리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임하실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10:10을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 곧 영생을 얻게 하고 또한 그 영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을 얻게 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 영생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왜 오셨을까요 우선 요 14:1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청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입니다. 보혜사란 말은 “돕기 위해 함께 있도록 부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시는 첫 번째 보혜사의 역할을 수행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 청해서 예수님 대신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두 번째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청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도들을 보혜사로 돕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어 생명을 얻고, 예수 안에 살면서 그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요 16:7을 보면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유익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이 오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던 것보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성령이 오셔서 저들 안에 임재해 계신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늘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자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사도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깨닫고 그 일을 위해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너무 좋아졌습니다. 예수님 대신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신 뒤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18세기 영국교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이 존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입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목사여서 철저하게 신앙훈련을 받고 자랐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 두 형제는 철저하게 헌신적인 크리스찬의 삶을 살기로 하고 결단하고 친구들과 holy club을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선교여행 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저들은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철저한 훈련과 자기들의 의지적 결단만으로 주를 위한 헌신적 삶을 살려 했으나 모든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때의 심경을 존 웨슬레가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미국 죠지아 주에 있는 인디언들을 회개시키려고 미국에 갔다. 그러나 아! 나는 누가 회개시켜 줄 것인가”
그러다 저들은 차례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합니다. 1738년 5월 21일 동생 찰스가 윗 선데이 교회 예배에 참석도중 강령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때의 경험을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믿지 못하던 나의 어두움을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몰아내었다. ”
3일 뒤 형 존은 런던의 올더스케이트에 있는 한 예배장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가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 때의 체험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올더스게이트에 있는 집회에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참석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구절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 ”
그렇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만 성령이 강림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강림하셔서 저들을 변화시킵니다. 새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그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 이렇게 그 기쁨과 감격을 노래합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무기력한 신앙생활이 변해서 활기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염려 근심 절망에 가위눌리듯 신음하고 있는 심령들이 참된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신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그 답은 분명합니다. 행 1:8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또한 눅 24:49를 보면 예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면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우리 안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거듭나게 하십니다.
요 3:5-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의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니고데모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사람이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다. 아니 변합니다.
오랜 만에 후배 목사님 부부가 인사차 들렀습니다. 이 부부는 대학생 시절 제가 신앙 지도를 했던 분들입니다.
이 목사님이 대학시절 습관적으로 교회는 다녔지만 여느 일반 대학생들처럼 살았습니다. 옆에만 가도 담배 냄새가 풀풀 나고, 가끔 교회 올 때도 술을 마셨는지 얼굴에 홍조를 띠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화 내용도 온통 이성교제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한 저녁 집회 도중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다 숙소로 돌아갔는데 혼자 남아서 통곡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울었던지 목소리가 쉬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자기의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새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삶을 살다가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변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를 바라십니까 여러분 혼자 애쓰지 마십시오. 불가능합니다. 성령께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그분의 도움을 힘입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2. 승리하게 하십니다.
롬 7:24-8:2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실존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데 이것도 우리 힘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합니다만 실제 육신으로는 욕망을 따라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성지순례 때 예루살렘의 겟세마네 동산엘 가보았습니다. 이미 몇 번 이곳을 왔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번 처음 가본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겟세마네 동산 2"입니다. 원래 겟세마네 동산은 지금 만국교회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만국교회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내려가 보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청동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자들이 졸고 있는 상입니다.
지금 주님은 피땀을 흘려가면서 기도에 사투를 벌이고 계신 시간입니다. 주님의 기도 부탁도 받았습니다. 자기들도 나름대로 기도한다고 애를 썼지만 자고 싶은 육신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졸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인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런 안타까운 상태를 사망의 몸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이렇게 마음의 소원대로 행하지 못하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롬 8:9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그리고 롬 8:11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마음의 소원대로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거듭난 후 주님 뜻대로 살려고 애써보지만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실패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우리는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3. 주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행 13:2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우리가 거듭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에게 소명을 깨닫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확신케 해 주십니다.
앞에서 살핀 대로 행 1:8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증인으로 주를 위해 일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증인의 사명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꾼에게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꾼을 뽑으실 때 능력 있는 사람을 택하시지는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린 충성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능력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헌신되고 충성된 사람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그 능력으로 주의 일을 감당케 되는 것입니다.
행 4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힌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모으고 베드로를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저들에게 자기 변호대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때 저들의 반응이 이랬습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들 앞에서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율법의 대가들 앞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저들은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그 답을 8절에 써놓았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령이 함께하셔서 능력을 베풀어주시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맡겨주신 주의 일을 성령의 능력으로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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