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 받은 사람들
본문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일년에 4차례의 절기를 지킨다.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그러나 4번의 절기 못지 않게 중요한 절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강림절이다.
지난 5월12일은 어버이 주일겸 성령강림절이었다. 5월이 가정의 달이어서 그 주일날 “행복한 가정”이란 제목으로 설교 했었다. 비록 절기는 지났지만 5월이 가지 전에 성령강림절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말씀을 증거하고자 한다.
오순절은 유대교의 3대 명절 중의 하나. 그 때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하면 당시에 보통 50만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예루살렘을 방문한 유대인들을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해 놓았다.
(행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BC 587년,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가 그 이후 전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들을 ‘디아스포라’라 한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지역만 15개다. 가깝게는 유대 지역과 멀리는 이집트, 터키, 이란 이락, 사우디 아라비아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다. (지역 지도)
오늘 본문은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객들이 뜻밖의 충격적 사건을 목격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오순절날 아침에 예루살렘 도성을 흔드는 강력한 바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 바람소리로 인해 온 도성이 소란의 도가니로 빠지고 말았다.
(행 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행 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큰 바람소리를 들은 순례객들이 소리나는 곳을 찾아 몰려 들었다. 그곳에 와보니 사도들을 포함해서 120명의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그들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보였다.
“아니 저게 뭐지!”
그 자리에 온 유대인들이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바람소리와 함께 이상한 불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모습이었다. 제자들이 성령의 기름부으심, 곧 성령의 충만을 받는 장면이었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이어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방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외국어를 말하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신 것이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나서 사는 곳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제자들을 보고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저들은 갈릴리 촌 사람들인데 언제 우리 말을 배웠지”
이것이 성령강림 사건 직후에 나타난 변화의 첫 번째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외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유대말이 아닌 그들의 방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직접 이 과정을 지켜본 유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행 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 2: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놀라서 의심하며 근심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부류는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이 방언사건은 예수님의 약속의 첫 성취라 할 수 있다.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은 복음을 가르키는 것인데 그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울타리를 넘어서 전 세계에까지 이르게 될 것에 대한 증표인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 사도들 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은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신분이 어떠한지 아셨기 때문에 먼저 나가기 전에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나가서 시작하는 첫 번째 사역은 그 나라 말을 배우는 것이다.
이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겁 없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용기가 생겼다. 제자들 중의 수장인 베드로가 백성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모인 많은 무리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당일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자가 3천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의 달라진 모습에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선생인 예수를 부인하고 배신하여 도망쳤던 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그들은 불신과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숨어지냈던 사람들이 아닌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는가
그것은 오순절날 아침 성령의 충만을 받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제자들 가운데 찾아오셨을 때 그들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담대하게 되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 성령 받은 사람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 명이 회개하였고, 그 일을 통해 신약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교회인 것이다. 행 2:42-47의 말씀은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을 모델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5가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 (42절)
2)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 치유와 응답과 문제가 해결(43)
3)서로 나눠주는 교회(44-45절).
4)모이기를 힘쓰는 교회(46절) - 구역예배도 잘 드리는 교회
5)백성들로부터 칭찬 받는 교회(47절)- 부흥은 저절로...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역동성과 뜨거움은 오늘날 이 시대에도 모델이 되고 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의 고민은 2천년 전에 역사하셨던 성령님은 오늘날도 동일하신데 오늘날의 교회는 왜 옛날 초기 예루살렘교회와 같지 못한가 항상 고민하면서 산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데교회가 생각난다.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지난, 4월29-5월2일, 3박4일 동안의 일본 요한동경교회 방문은 나의 목회 사역을 전반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반성과 도전의 기회였다. 물론 요한 동경교회가 모델은 아니지만 나는 그 교회를 통해서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종종 다른 교인들로부터, 목회자들로부터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마다 사실 나의 마음은 부끄럽고 귀를 막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칭찬을 칭찬으로 들으면 되지 왜 겸손을 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교회가 안좋은 교회라고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주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려고 제직들과 온 성도들이 노력하고 몸부림치는 교회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담임목사로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칭찬의 말은 거북스러울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요한동경교회의 모습을 보고난 후의 충격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회에서 초기 예루살렘 교회, 또 이방인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교회의 그 역동성, 좀 실감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거룩한 야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교회를 돌아보면서 과연 우리 교회의 거룩한 ‘야성’이 있는가 그것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과 헌신, 정말 모이기를 힘쓰며, 기도하기를 힘쓰며, 자신의 삶을 드리려는 열심이 있는가 조심스럽게 점검해 보았다. 애석하게도 2% 부족함을 느낀다.
요한 동경교회에서 두 번의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다. 이른 아침에 교회당 앞에 길게 늘어선 자전거 행렬과 밤 늦게까지도 돌아갈 생각 않고 모여서 기도하고 교제하고 성경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방문기간이 연휴였는데 휴일날 개척하는 교회 건물를 리모델링을 위해 자비를 들여 공사에 참여하는 집사님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20년 전, 한 사람의 평신도, 김규동집사의 헌신을 통해 요한 동경교회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3천여명이 회집하는 글로벌교회가 되었다. 지금 현재 신간선을 중심으로 26개 도시에 교회가 개척되었다.
“일본 선교 어렵다!”는 말을 계속 듣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 본 결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 성령 받은 헌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김규동선교사는 지금도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전도하고 제자삼아서 보내고 또 제자 삼아서 보내고 이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 일본말 배워서 어디서 쓰려고 하는가” 자네들의 삶을 일본선교에 바쳐보지 않겠나!” 그렇게 도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그곳에서 정착해서 10평, 18평 아파트에 비싼 임대료 물어가며 불편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선교를 위해서...
그들의 제 1소망은 교회 가까이 이사오는 것이다. 신주꾸는 동경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이라고 한다. 교회 주변에 300가정이 이사와서 임대료가 올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오려 하는 이유는 자주 모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모일 때 뜨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
사모님의 말씀, 새신자 면담할 때, “우리 교회는 편안하지 못합니다. 편안히 신앙생활하려면 다른 교회로 가도 괜찮아요”라고 말해 준다고 한다. 편안한 신앙생활이 세상으로 빠져 드는 지름길이요 타락의 온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강하게 훈련시킨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았다. 느꼈다.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수시로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도 거룩한 야성,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일굴 수 있을까
그 답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의 모습은 무기력한 패잔병과 같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모였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다.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첫 번째는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미 성령은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하심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주의 명령을 수행하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이 필요했기 때문에 약속하시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는 더욱 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구든지 받아야 한다. 주실 것을 믿고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것이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그들은 약속의 말씀을 듣고 10일 동안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는가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며 부르짖어야 한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큰 수영장에 가면 어린이용 풀이 따로 있다. 청년이나 어른들이 어린이용 풀에서 놀면 정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신앙적인 면에서 어린이 풀장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그곳에서 나오라. 그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 결단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실 줄로 믿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하여 우리를 쓰시길 원하신다. 거룩한 야성을 키우고 이 시대에 무너져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와 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을 위해 무릎 꿇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지난 5월12일은 어버이 주일겸 성령강림절이었다. 5월이 가정의 달이어서 그 주일날 “행복한 가정”이란 제목으로 설교 했었다. 비록 절기는 지났지만 5월이 가지 전에 성령강림절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말씀을 증거하고자 한다.
오순절은 유대교의 3대 명절 중의 하나. 그 때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하면 당시에 보통 50만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예루살렘을 방문한 유대인들을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해 놓았다.
(행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BC 587년,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가 그 이후 전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들을 ‘디아스포라’라 한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지역만 15개다. 가깝게는 유대 지역과 멀리는 이집트, 터키, 이란 이락, 사우디 아라비아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다. (지역 지도)
오늘 본문은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객들이 뜻밖의 충격적 사건을 목격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오순절날 아침에 예루살렘 도성을 흔드는 강력한 바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 바람소리로 인해 온 도성이 소란의 도가니로 빠지고 말았다.
(행 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행 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큰 바람소리를 들은 순례객들이 소리나는 곳을 찾아 몰려 들었다. 그곳에 와보니 사도들을 포함해서 120명의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그들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보였다.
“아니 저게 뭐지!”
그 자리에 온 유대인들이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바람소리와 함께 이상한 불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모습이었다. 제자들이 성령의 기름부으심, 곧 성령의 충만을 받는 장면이었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이어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방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외국어를 말하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신 것이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나서 사는 곳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제자들을 보고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저들은 갈릴리 촌 사람들인데 언제 우리 말을 배웠지”
이것이 성령강림 사건 직후에 나타난 변화의 첫 번째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외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유대말이 아닌 그들의 방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직접 이 과정을 지켜본 유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행 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 2: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놀라서 의심하며 근심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부류는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이 방언사건은 예수님의 약속의 첫 성취라 할 수 있다.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은 복음을 가르키는 것인데 그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울타리를 넘어서 전 세계에까지 이르게 될 것에 대한 증표인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 사도들 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은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신분이 어떠한지 아셨기 때문에 먼저 나가기 전에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나가서 시작하는 첫 번째 사역은 그 나라 말을 배우는 것이다.
이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겁 없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용기가 생겼다. 제자들 중의 수장인 베드로가 백성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모인 많은 무리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당일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자가 3천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의 달라진 모습에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선생인 예수를 부인하고 배신하여 도망쳤던 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그들은 불신과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숨어지냈던 사람들이 아닌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는가
그것은 오순절날 아침 성령의 충만을 받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제자들 가운데 찾아오셨을 때 그들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담대하게 되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 성령 받은 사람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 명이 회개하였고, 그 일을 통해 신약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교회인 것이다. 행 2:42-47의 말씀은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을 모델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5가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 (42절)
2)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 치유와 응답과 문제가 해결(43)
3)서로 나눠주는 교회(44-45절).
4)모이기를 힘쓰는 교회(46절) - 구역예배도 잘 드리는 교회
5)백성들로부터 칭찬 받는 교회(47절)- 부흥은 저절로...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역동성과 뜨거움은 오늘날 이 시대에도 모델이 되고 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의 고민은 2천년 전에 역사하셨던 성령님은 오늘날도 동일하신데 오늘날의 교회는 왜 옛날 초기 예루살렘교회와 같지 못한가 항상 고민하면서 산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데교회가 생각난다.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지난, 4월29-5월2일, 3박4일 동안의 일본 요한동경교회 방문은 나의 목회 사역을 전반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반성과 도전의 기회였다. 물론 요한 동경교회가 모델은 아니지만 나는 그 교회를 통해서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종종 다른 교인들로부터, 목회자들로부터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마다 사실 나의 마음은 부끄럽고 귀를 막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칭찬을 칭찬으로 들으면 되지 왜 겸손을 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교회가 안좋은 교회라고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주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려고 제직들과 온 성도들이 노력하고 몸부림치는 교회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담임목사로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칭찬의 말은 거북스러울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요한동경교회의 모습을 보고난 후의 충격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회에서 초기 예루살렘 교회, 또 이방인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교회의 그 역동성, 좀 실감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거룩한 야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교회를 돌아보면서 과연 우리 교회의 거룩한 ‘야성’이 있는가 그것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과 헌신, 정말 모이기를 힘쓰며, 기도하기를 힘쓰며, 자신의 삶을 드리려는 열심이 있는가 조심스럽게 점검해 보았다. 애석하게도 2% 부족함을 느낀다.
요한 동경교회에서 두 번의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다. 이른 아침에 교회당 앞에 길게 늘어선 자전거 행렬과 밤 늦게까지도 돌아갈 생각 않고 모여서 기도하고 교제하고 성경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방문기간이 연휴였는데 휴일날 개척하는 교회 건물를 리모델링을 위해 자비를 들여 공사에 참여하는 집사님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20년 전, 한 사람의 평신도, 김규동집사의 헌신을 통해 요한 동경교회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3천여명이 회집하는 글로벌교회가 되었다. 지금 현재 신간선을 중심으로 26개 도시에 교회가 개척되었다.
“일본 선교 어렵다!”는 말을 계속 듣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 본 결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 성령 받은 헌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김규동선교사는 지금도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전도하고 제자삼아서 보내고 또 제자 삼아서 보내고 이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 일본말 배워서 어디서 쓰려고 하는가” 자네들의 삶을 일본선교에 바쳐보지 않겠나!” 그렇게 도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그곳에서 정착해서 10평, 18평 아파트에 비싼 임대료 물어가며 불편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선교를 위해서...
그들의 제 1소망은 교회 가까이 이사오는 것이다. 신주꾸는 동경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이라고 한다. 교회 주변에 300가정이 이사와서 임대료가 올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오려 하는 이유는 자주 모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모일 때 뜨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
사모님의 말씀, 새신자 면담할 때, “우리 교회는 편안하지 못합니다. 편안히 신앙생활하려면 다른 교회로 가도 괜찮아요”라고 말해 준다고 한다. 편안한 신앙생활이 세상으로 빠져 드는 지름길이요 타락의 온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강하게 훈련시킨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았다. 느꼈다.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수시로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도 거룩한 야성,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일굴 수 있을까
그 답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의 모습은 무기력한 패잔병과 같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모였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다.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첫 번째는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미 성령은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하심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주의 명령을 수행하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이 필요했기 때문에 약속하시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는 더욱 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구든지 받아야 한다. 주실 것을 믿고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것이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그들은 약속의 말씀을 듣고 10일 동안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는가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며 부르짖어야 한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큰 수영장에 가면 어린이용 풀이 따로 있다. 청년이나 어른들이 어린이용 풀에서 놀면 정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신앙적인 면에서 어린이 풀장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그곳에서 나오라. 그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 결단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실 줄로 믿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하여 우리를 쓰시길 원하신다. 거룩한 야성을 키우고 이 시대에 무너져 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와 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을 위해 무릎 꿇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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