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선물로 받은 성령
본문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40일간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며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다가(행1:3) 떠나실 무렵 사도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리고 며칠 후 예수님이 하늘로 들리어 올라가시기 직전에는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바로 이 말을 남기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올리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당부를 받고 언약을 받은 사도들이 다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2-4)고 되어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며, 오늘 우리가 지키는 성령강림절의 시작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것은 ‘나는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좀 더 잘할 수 있을까’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좀 더 잘 믿어 보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의 열심만으로 잘되어지질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게 마음먹는다고 다 잘되어지질 않기에 걱정이 아니겠습니까. 영어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참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나름대로 비결을 좀 배우고 싶은데, 사실 돌아오는 대답은 다 한결같습니다. 공부하는데 특별한 비결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첫째도 노력 둘째도 노력 셋째도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방송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공부의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합니다.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만 하면 뭔가 되겠다 싶은 욕심에 아이들에게 억지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히 시청을 하는가 싶더니 하는 말이, ‘난 저런 애들이 정말 싫더라’ ‘나도 그래-’하는 말로 모든 기대는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인데,
자기 시간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계획성을 가지고 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가 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은 정말 눈물겹도록 숭고한 ‘노력’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우리 교회 성경암송대회에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을 시간 안에 해 내신 집사님이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암송을 하셨나요’했더니,
‘예 뭐 그저 열심히 했지요, 소리 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고요. 그 의미와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했고요. 일하면서도 수시로 암송하면서 확인했고요, 자꾸만 틀리는 부분 막히는 부분은 녹음을 해가면서 다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스스로 외워지도록 했어요’하시는데, 온 성도가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대단하다’는 말들은 쉽게 하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결과를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들 눈물겨운 자기와의 싸움과 노력이 있었는가 하는 점을 우리는 놓치면 안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기고 예수를 잘 믿을까하고 믿는 사람들은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답이 따로 없습니다. 신앙이 깊어지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로지 한 가지 “성령 충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와 감동과 역사와 은혜와 은사와 그 뜻에 복종하기만 하면, 신앙생활의 고민은 다 잊어버릴 수 있게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내가 잘 믿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그렇지 못하기에 늘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항상 부족하고 죄송스런 마음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잘 믿는 길로 나아갈 수 있고 능력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 베드로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따라 죽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이 가시는 길을 끝까지 따를 것입니다’ 이렇게 큰소리치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그런 소리 하지마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떠날 것입니다.
너 역시 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 대화가 오고가는 순간이 얼마나 안타까운 순간인가.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큰소리와 결단만으로 결코 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있습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 너희의 힘과 결심만으로는 너희가 날 따를 수도 없고, 순교자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너를 잡아주셔야지 너의 힘으론 나를 못 믿는다. ”는 점을 가르쳐 주시고 싶으셨다.
세례를 받을 때 성도는 얼마나 은혜에 감격해 하는가. 집사직을 받았을 때, 정말 교회에 충성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된 일군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사람들은 합니다.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될 때에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격에 겨워서 눈시울이 뜨겁고 정말 여호와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충성된 일군이 되고자 하는 결단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곧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한계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헌신도 믿음생활도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 선물은 ‘성령’을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힘을 돕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범사와 생활을 돕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일상의 삶을 돕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어야 하듯,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지금 시대는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성령의 역사,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려고 해도, 도장을 가지고 가든지 아니면 자기 싸인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성령을 ‘인친다’‘도장을 찍는다’고 표현합니다. 엡4:30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 인생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도장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성전,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않는 성전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성도와 교회의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릅니다.
적극적인 사람, 성질 급한 사람, 좋은 게 좋은 사람, 남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 주도적인 사람 등 다양한 인격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자기 성격대로 할 순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반드시 “성령 충만”해야만 합니다는 점입니다. 성령 충만 없이, 은혜체험없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꼬꾸라짐이 없이 자기 성격대로만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배운 사람, 가진 사람이 위세를 떨면 안 됩니다. 세상 적으로 부족하여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교회에 일군이 되어야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뜻을 받드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가 가정도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성도는 성령 충만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교회와 가정과 성도에게 도장을 찍으시고 함께 하시면, 우리 믿는 이들이 이 시대에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셨기에 오늘의 나 자신이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우리 교회가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수성교회에 부임해 온지 오늘로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의 역사만을 얘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역사는 이미 4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46년 동안 수성교회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들도 많았고, 교회가 어지럽고 위기를 만난 때도 없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교회와 함께 해 오신 여러분의 개인의 역사는 그동안 또 어떻게 진행되어 여기가지 오셨나. 가만히 돌아보면, 내 힘으로 우리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이 교회를 붙드시고 이끄시고 도우셔서 오늘의 수성교회가 여기 있는 것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우리의 역사, 우리의 미래도 다 성령의 인도에 달린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와 개인에게 한가지의 선물을 주셔서 그 한가지로 모든 일을 다 해내게 하였습니다. 그 한 가지가 “성령의 선물”입니다.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초대교회가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성령의 선물을 받은 교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더니 실제로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 그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 늘어나는 숫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부흥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부흥케 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42절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하였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즉, 다시 말하면,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억지로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노동인가. 그런데 성령을 통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땀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눈물을 쏟으면서 기도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기도는 힘만 듭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봉사는 힘만 들고 효과도 없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전도, 구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봉사 전도 구제 선교는 역사가 일어난다. 여러분 부디 힘을 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일하는 우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이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안되던 일이 되기 시작하고, 죄에서 해방을 받고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절) 이것은 봉사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과시하기 위한 봉사 구제 섬김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하는 구제 봉사 섬김은 진정 여호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힘입어 남을 돕고 사랑하게 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게 되려면 성령 충만으로 구제하여야 합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통한 또 하나의 현상은 ‘모이기를 힘쓴다’는 점입니다. 45절-46절은 보면,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교회에 예배당에 모이는 일에 소그룹에 참여하는 일에 힘을 썼다고 합니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나오기 싫으면 핑계대고 빠지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한 성도는 힘을 내서 모이는 자리에 나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6절) 이것은 친교도 되고 성례식도 됩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며’(47절) 이것은 찬송하는 모습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교회나 거기 있는 사람들의 영성이 살아있는가 아닌가를 보려면, 찬송이 살아있는가를 보면 안다고 합니다. 찬송을 한 옥타브 떨어뜨려서 쉽게 대충 부르고 지나가려고 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벌써 성령이 소멸되어 가는 증거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소록소라고 하는 섬에도 대교가 놓여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철저하게 격리된 섬이었다.
거기엔 한센병 환자들이 갇혀서 살아야 했는데, 격리 수용된 그 섬 안에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의 세월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섬 안의 환자들이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교회의 집회를 다녀오신 부흥사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들의 찬양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천사의 합창과 같습니다 라고 전합니다.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뜨거운지 그러한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은 그들의 외모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너무나 감격적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녹이고 뜨겁게 하며 감동적인 찬미의 소리가 나오게 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47절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오히려 칭송을 받고 대접을 받습니다. 존경도 받습니다. 우리 수성교회는 칭송을 듣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특별한 사회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것을 널리 홍보해서 듣는 칭송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될 때, 세상으로 부터도 칭송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 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영이 있습니다. 성령과 악령입니다. 악령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사람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악령이 역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사울왕은 처음에는 성령이 그 안에서 역사하다가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성령이 떠나자 곧바로 악령이 그를 지배하는 것을 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다가 떠나는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만하여 성령에 순복하고자 하지 않으면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겸손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은혜를 구하면서 ‘아멘’‘아멘’ 순종하면, 성령이 역사합니다 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을 원하시는가. 성령은 인격적인 영이시기에 우리가 거역합니다면 우리를 떠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모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성령의 임하심’을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어떤가 마귀는 도적과 같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도적은 우리가 문을 열어놓지 않아도 문을 따고서라도 들어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면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엡4:27에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성령의 도우심’과 ‘임재하심’을 항상 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이여 성령이여 연약한 나를 도우소서” 도와달라고 구하지 않으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힘으로 악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고 여기시는가 끊어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내 결심으로 결코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미 그것은 마귀를 통하여 내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구하면, 이 악한 권세를 물리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바람’입니다. 성령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날아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우리도 내게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시는구나’‘마귀가 역사하는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감사의 말, 은혜로운 찬양, 믿음과 순종의 말을 하는 걸 보면,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저주의 말, 거짓말, 험담하고 불평하는 말,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걸 보면, 마귀가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사시길 축원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바로 이 말을 남기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올리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당부를 받고 언약을 받은 사도들이 다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2-4)고 되어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며, 오늘 우리가 지키는 성령강림절의 시작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것은 ‘나는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좀 더 잘할 수 있을까’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좀 더 잘 믿어 보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의 열심만으로 잘되어지질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게 마음먹는다고 다 잘되어지질 않기에 걱정이 아니겠습니까. 영어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참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나름대로 비결을 좀 배우고 싶은데, 사실 돌아오는 대답은 다 한결같습니다. 공부하는데 특별한 비결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첫째도 노력 둘째도 노력 셋째도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방송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공부의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합니다.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만 하면 뭔가 되겠다 싶은 욕심에 아이들에게 억지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히 시청을 하는가 싶더니 하는 말이, ‘난 저런 애들이 정말 싫더라’ ‘나도 그래-’하는 말로 모든 기대는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인데,
자기 시간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계획성을 가지고 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가 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은 정말 눈물겹도록 숭고한 ‘노력’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우리 교회 성경암송대회에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을 시간 안에 해 내신 집사님이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암송을 하셨나요’했더니,
‘예 뭐 그저 열심히 했지요, 소리 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고요. 그 의미와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했고요. 일하면서도 수시로 암송하면서 확인했고요, 자꾸만 틀리는 부분 막히는 부분은 녹음을 해가면서 다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스스로 외워지도록 했어요’하시는데, 온 성도가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대단하다’는 말들은 쉽게 하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결과를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들 눈물겨운 자기와의 싸움과 노력이 있었는가 하는 점을 우리는 놓치면 안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기고 예수를 잘 믿을까하고 믿는 사람들은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답이 따로 없습니다. 신앙이 깊어지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로지 한 가지 “성령 충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와 감동과 역사와 은혜와 은사와 그 뜻에 복종하기만 하면, 신앙생활의 고민은 다 잊어버릴 수 있게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내가 잘 믿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그렇지 못하기에 늘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항상 부족하고 죄송스런 마음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잘 믿는 길로 나아갈 수 있고 능력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 베드로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따라 죽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이 가시는 길을 끝까지 따를 것입니다’ 이렇게 큰소리치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그런 소리 하지마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떠날 것입니다.
너 역시 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 대화가 오고가는 순간이 얼마나 안타까운 순간인가.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큰소리와 결단만으로 결코 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있습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 너희의 힘과 결심만으로는 너희가 날 따를 수도 없고, 순교자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너를 잡아주셔야지 너의 힘으론 나를 못 믿는다. ”는 점을 가르쳐 주시고 싶으셨다.
세례를 받을 때 성도는 얼마나 은혜에 감격해 하는가. 집사직을 받았을 때, 정말 교회에 충성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된 일군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사람들은 합니다.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될 때에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격에 겨워서 눈시울이 뜨겁고 정말 여호와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충성된 일군이 되고자 하는 결단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곧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한계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헌신도 믿음생활도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 선물은 ‘성령’을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힘을 돕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범사와 생활을 돕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일상의 삶을 돕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어야 하듯,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지금 시대는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성령의 역사,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려고 해도, 도장을 가지고 가든지 아니면 자기 싸인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성령을 ‘인친다’‘도장을 찍는다’고 표현합니다. 엡4:30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 인생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도장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성전,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않는 성전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성도와 교회의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릅니다.
적극적인 사람, 성질 급한 사람, 좋은 게 좋은 사람, 남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 주도적인 사람 등 다양한 인격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자기 성격대로 할 순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반드시 “성령 충만”해야만 합니다는 점입니다. 성령 충만 없이, 은혜체험없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꼬꾸라짐이 없이 자기 성격대로만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배운 사람, 가진 사람이 위세를 떨면 안 됩니다. 세상 적으로 부족하여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교회에 일군이 되어야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뜻을 받드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가 가정도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성도는 성령 충만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교회와 가정과 성도에게 도장을 찍으시고 함께 하시면, 우리 믿는 이들이 이 시대에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셨기에 오늘의 나 자신이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우리 교회가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수성교회에 부임해 온지 오늘로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의 역사만을 얘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역사는 이미 4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46년 동안 수성교회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들도 많았고, 교회가 어지럽고 위기를 만난 때도 없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교회와 함께 해 오신 여러분의 개인의 역사는 그동안 또 어떻게 진행되어 여기가지 오셨나. 가만히 돌아보면, 내 힘으로 우리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이 교회를 붙드시고 이끄시고 도우셔서 오늘의 수성교회가 여기 있는 것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우리의 역사, 우리의 미래도 다 성령의 인도에 달린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와 개인에게 한가지의 선물을 주셔서 그 한가지로 모든 일을 다 해내게 하였습니다. 그 한 가지가 “성령의 선물”입니다.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초대교회가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성령의 선물을 받은 교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더니 실제로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 그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 늘어나는 숫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부흥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부흥케 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42절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하였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즉, 다시 말하면,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억지로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노동인가. 그런데 성령을 통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땀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눈물을 쏟으면서 기도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기도는 힘만 듭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봉사는 힘만 들고 효과도 없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전도, 구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봉사 전도 구제 선교는 역사가 일어난다. 여러분 부디 힘을 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일하는 우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이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안되던 일이 되기 시작하고, 죄에서 해방을 받고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절) 이것은 봉사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과시하기 위한 봉사 구제 섬김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하는 구제 봉사 섬김은 진정 여호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힘입어 남을 돕고 사랑하게 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게 되려면 성령 충만으로 구제하여야 합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통한 또 하나의 현상은 ‘모이기를 힘쓴다’는 점입니다. 45절-46절은 보면,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교회에 예배당에 모이는 일에 소그룹에 참여하는 일에 힘을 썼다고 합니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나오기 싫으면 핑계대고 빠지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한 성도는 힘을 내서 모이는 자리에 나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6절) 이것은 친교도 되고 성례식도 됩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며’(47절) 이것은 찬송하는 모습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교회나 거기 있는 사람들의 영성이 살아있는가 아닌가를 보려면, 찬송이 살아있는가를 보면 안다고 합니다. 찬송을 한 옥타브 떨어뜨려서 쉽게 대충 부르고 지나가려고 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벌써 성령이 소멸되어 가는 증거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소록소라고 하는 섬에도 대교가 놓여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철저하게 격리된 섬이었다.
거기엔 한센병 환자들이 갇혀서 살아야 했는데, 격리 수용된 그 섬 안에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의 세월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섬 안의 환자들이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교회의 집회를 다녀오신 부흥사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들의 찬양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천사의 합창과 같습니다 라고 전합니다.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뜨거운지 그러한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은 그들의 외모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너무나 감격적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녹이고 뜨겁게 하며 감동적인 찬미의 소리가 나오게 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47절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오히려 칭송을 받고 대접을 받습니다. 존경도 받습니다. 우리 수성교회는 칭송을 듣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특별한 사회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것을 널리 홍보해서 듣는 칭송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될 때, 세상으로 부터도 칭송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 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영이 있습니다. 성령과 악령입니다. 악령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사람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악령이 역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사울왕은 처음에는 성령이 그 안에서 역사하다가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성령이 떠나자 곧바로 악령이 그를 지배하는 것을 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다가 떠나는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만하여 성령에 순복하고자 하지 않으면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겸손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은혜를 구하면서 ‘아멘’‘아멘’ 순종하면, 성령이 역사합니다 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을 원하시는가. 성령은 인격적인 영이시기에 우리가 거역합니다면 우리를 떠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모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성령의 임하심’을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어떤가 마귀는 도적과 같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도적은 우리가 문을 열어놓지 않아도 문을 따고서라도 들어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면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엡4:27에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성령의 도우심’과 ‘임재하심’을 항상 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이여 성령이여 연약한 나를 도우소서” 도와달라고 구하지 않으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힘으로 악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고 여기시는가 끊어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내 결심으로 결코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미 그것은 마귀를 통하여 내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구하면, 이 악한 권세를 물리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바람’입니다. 성령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날아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우리도 내게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시는구나’‘마귀가 역사하는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감사의 말, 은혜로운 찬양, 믿음과 순종의 말을 하는 걸 보면,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저주의 말, 거짓말, 험담하고 불평하는 말,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걸 보면, 마귀가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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