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성령강림]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

본문

지난 한 주간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슬픔과 충격이 국민들을 사로잡은 위대한 한 주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7일 동안 500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떠나는 노 전 대통령을 기렸다. 국민장 기간 동안 노 전 대통령을 추도한 이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잊고 있었던 인권, 민주주의, 탈권위,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노무현적 가치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부끄러워했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미안한 마음에 국화를 바치며 고인의 원칙과 용기를 되살려냈다. 그래서 위대한 7일이었다.
무엇이 이런 노무현 신드롬을 일으켰는가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기득권 중심의 국정운영과 대비되고, 권위보다는 ‘탈권위’로 추억되는 ‘노무현의 정치’가 그들을 거리로, 광장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난맥에 대한 응축되고 잠복된 반감이 근본적 배경이란 의미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많은 국민들이 애도한 것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했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에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한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자신의 소신을 위해 험로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출마를 마다하고 다시 부산에 출마해 낙마한 그의 '무모한 도전'을 두고 지지자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헌사했다. 언제나 든든한 우군이었던 노사모도 이 때 결성됐다.
다변과 거침없는 표현(대통령 못 해 먹겠다) 등으로 늘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역대 대통령 중 어느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줬다는 평가에 거론의 여지가 없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퇴임 후 '낙향'의 길을 선택한 점도 후한 점수를 받는다. 직접 농사일을 거들고,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피우는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에서는 '권위의 상징' 대신 '인간 노무현'으로서의 면모가 돋보였다. 그러다보니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죽음처럼 느낀 것이다.
우리는 늘 함께 있을 때 그 가치를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후회하고, 건강을 잃은 뒤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사막을 여행해 봐야 물의 소중함을 알고, 히말라야 처럼 높은 산을 올라가면, 응급실에 입원하면 맑은 산소의 소중함을 안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돈과 명예에 얽매어 정의와 인권,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며 살지 않았는지 바보가 되기보다 똑똑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는 않았는지 보통사람이 되기보다 내가 가진 기득권과 권세를 꼭 붙잡고 계속 높아지려고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따라 이사야 53장 3절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카터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떠난 후에 더욱 존경받았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예수님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고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전에 예언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님은 흔들림없이 그 길을걸어가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내가 죽는 것이,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보다 우리를 떠나는 것이 유익한 이유를 살펴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한다.
오늘은 교회의 중요한 절기인 성령강림주일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첫째는 예수님이고 둘째는 성령님이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날이 성탄절이라고 한다면 성령님이 오신 날은 성령강림주일인 오늘이다. 성탄절에 버금가는 중요한 날이라는 말이다. 성탄절은 사람들이 정한 절기이지만 성령강림주일은 성경(사도행전 2장)에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령강림주일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이다.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이므로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또 유월절 이후 50일이 되는 날이기에 오순절(5旬節)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0일 정도 있다가 성령님이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모여 있을때 성령께서 오셨다.
강한 바람 같이, 불의 혀 같이 임하셨다. 그 순간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다른 나라말로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기러기 수 십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다가 갑자기 수직으로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것을 무슨 현상이라고 할까요"
하늘에서 비행기와 새가 부딪히면 무슨 현상이라 하는가
보기 드문 현상..
성령강림 사건은 1회적인 사건, 즉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120명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은 출발에 불과했다. 오순절 날 베드로가 일어나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3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
얼마 후에는 고넬료 집에 모였던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고, 얼마 후에는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고, 얼마 후에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오랜 후, 1907년 한국의 평양 장대현 교회에 모였던 1,500여명 성도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와 동일하게 함께 하신다. 성령의 충만을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역사를 바꾸는 인생을 살았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1738년 5월 24일 저녁에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벅찬 감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밤 9시 15분경에 이르자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마음속의 모든 정욕과 죄가 물러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온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웨슬리는 성령운동을 시작하여 마침내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영국을 건져내게 되었다.
디엘 무디가 34살 때(11월) 뉴욕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걸으며 무디는 “성령이여 나를 강하게 붙잡으소서”하고 기도했다. 그러자 그 입에서 방언이 터지면서 성령의 능력을 입게 되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무디는 그 능력에 힘입어 전무후무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찰스 피니라는 전도자는 성령을 체험하고 난 후 19세기 2차 대전 때 미국에서 대각성운동을 펼쳤다. 그때 찰스 피니가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가 설교할 때 사람들이 구르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가 하늘에 오르시어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계속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떠나가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다. 7절에 보면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함이다.
그럼 성령은 누가 받을 수 있을까 오순절날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도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오셨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들만 찾아오셨다. 예언자들,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충만하게 기름을 붓듯이 부어주셨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절 이후 달라졌다. 요엘이 약속한대로 누구에게나 부어주기로 하셨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요엘2:28~29)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9)
성령은 선물로 받는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모두 성령을 받았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려면 성령님이 믿어지게 도와주시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까
내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6~27)
모세가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도 그들은 금방 원망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새 영(새 마음)을 주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신 것이다.
Christian은 누구인가 Christ+ian(I am nothing) 즉,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가 노력하고, 애쓰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도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담배도, 술도, 마약도, 세상의 욕심도, 죄악도 내가 끊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이 할 수 있는 힘과 능력,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몇 일 전 박영석대장이 에베레스산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만들었다는 감동적인 뉴스를 들었다. 대단하다. 그런데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높은 산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산이나 세계의 최고의 높은 산들을 올라갈 때는 등반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셰르파의 도움을 받는다. 셰르파는 짐꾼만이 아니라 끝까지 짐을 져주고 길을 안내해 주며, 못 올라 갈 때는 밀어주고 붙잡아주어 마지막 정상까지 올라가게 한다. 세르파족 중에는 에베르트산을 19번이나 오른 사람도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셰르파가 있다.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은 보혜사(保惠師)이다. 보혜사란 원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곁에서 변호하고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상담자(Counsellor), 돕는 분(Helper), 위로자(Comforter)라는 뜻이다. 바울은 누구보다 이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유대교를 믿을 때는 내 힘으로 율법대로 살려고 무척 몸부림쳤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내 속사람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절망한다. 절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다. 하지만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생명의 성령님이 오셔서 해방이 이루어졌다.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선포된 말씀을 믿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 때 우리의 인생은 달라진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일본군 퇴역 소위 오노다 히로오는 일본의 패전이후 1974년까지 무려 29년 동안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 루뱅에서 숨어 지냈다. 그의 나이 당시 52세였다. 그는 1944년 12월에 루뱅섬으로 파견되었다. 250여명의 오합지졸에 불과한 풋내기 부대 지휘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곧 미군의 공격으로 207명이 죽고 43명이 남았다.
이때부터 전쟁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생쥐처럼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1945년 10월에 "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났으니 일본군은 투항하라"는 전단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를 미군의 속임수로 생각하고 투항을 거절했다. 그해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전단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때 43명중 대부분이 패전 사실을 받아들이고 투항하여 일본으로 돌아갔고 오노다를 비롯한 4명만이 투항을 거절했다.
1946년 4월에는 이미 투항했던 부하들이 섬 전체를 다니며 "오노다, 어디있나 나와라. 전쟁이 끝났다. 어서 나와라 하루라도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 라고 부르며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것도 미군의 흉계로 믿고 거절했다. 이번에는 오노다의 가족이 가족사진과 가족들이 보낸 편지 전단을 뿌리면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 오노다는 이것도 가족들이 살기 위해 당국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거부했다.
오노다는 이러한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루뱅 섬 원주민들을 수없이 죽이며 심지어는 원주민 가옥 전체를 불질러 몽땅 태우는가하면 원주민들을 토막 살해하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가족들과 고등학교 동창생들까지 동원되었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런데 옛 상관이 전해준 '패전했으니 귀국하라'는 특별명령서를 받고서야 투항했다.
믿으라! 당신은 생명의 성령이 오심으로 죄와 사망과 저주와 질병과 고통에 해방되었다.
성령충만은 쿠데타와 같다. 정권 교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를 다스렸는데 성령님이 오시면 나를 다스리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면 먼저 방송국을 지배하고 언론을 장악하듯이 성령님이 내게 오시면 부정적인 언어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지게 되고,
세상노래로 찌든 우리 입술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바뀌어지게 되고, 남을 비난하고 비판으로 평생을 살아가던 우리 입술들이 칭찬과 용서와 이해로 바뀐다.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의 방송국을 장악해 믿음의 말, 소망의 말, 사랑의 말만 방송되게 하자. 이게 성령충만의 증거이다.
어떻게 하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마귀는 폭력을 쓰는 깡패와 같아서 허락 없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만 성령님은 신사적이어서 사모하고 환영해야 우리 안에 찾아오신다.
우리가 손님이 오시면 먼저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처럼, 귀한 선물을 받으려면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좋은 것을 담기 전에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듯이 우리 죄를 생각나게 하시는대로 고백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깨끗하게 용서해 주시기에 우린 그곳에 팻말을 꼽아 놓아야 한다. “낚시금지!”사탄은 계속 끄집어내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 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 우리 한주간 살아갈때에 이런 고백을 자주 드리자. 절망, 걱정, 두려움, 미움, 죄악이 나를 찾아올때 성령님을 구하자.
“이 시간 정권을 교체합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나를 통치해 주세요. 성령님. 환영합니다. 성령님. 경배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내게 오소서. 나를 충만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
내가 아는 어떤 집사님은 운전면허 따고 10년동안 접촉사고 한번도 안나고 위반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 비결은 한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장롱속에 넣어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장롱속에 넣어둔 사람이 많다. 성령충만이 뭔지, 성령의 열매가 뭔지, 은사가 뭔지, 방언이 뭔지, 뜨끈뜨끈이 뭔지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장롱 신앙인들이 참 많이 있다.
마음을 열자.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은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인데 그 성령님을 알기 원합니다. 체험하기 원합니다. 나를 충만케 하옵소서. 내게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소서. 네 입을 넓게 열라 채우리라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 내게 성령님! 오시옵소서.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내 힘으로 살지 않고 성령의 위로와 상담과 도움으로 살아가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