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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 안에서 헤엄치는 사람

본문

오늘은 교회 절기 상 오순절(5旬節 Pentecost/Whitsunday) 즉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 날은 구약 시대부터 내려오는 오순절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성령 여호와 하나님 혹은 성령님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성령님은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영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여러 가지 비유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다, 불과 같다, 이슬과 같다, 비둘기와 같다는 식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은 물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을 물로 비유할까요 성령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이라 그렇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인류 문명사를 보면, 모든 문명이 물을 중심으로 발달되었습니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 인더스 문명은 갠지스 강 등입니다. 도시들도 거의 강을 끼고 발달되어 왔습니다. 런던의 템즈 강, 파리의 센느 강, 베를린의 하펠 강, 서울의 한강 등. 그리고 인간의 신체도 물이 7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물과 같은 성령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성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심으로 성령의 생명과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47장은 에스겔서 가운데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뤄질 성령의 역사를 환상에 나타난 물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1 물의 근원 : 성전, 여호와 하나님
물이 흘러나오는데, 어디로부터 나오죠 성전 문지방 밑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물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물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겁니다.
 본문 1절~2절을 보시죠. “그(천사)가 나(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이것은 에스겔이 본 환상입니다.
환상 가운데 천사가 그를 데리고 갑니다. 성전 문에 이르렀는데,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옵니다. 물이 성전을 돌아 흐릅니다. 성전 바같 문에 이르러 보니까 그 오른 쪽에서 스며 나옵니다. 여기서 ‘스며 나오다’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히브리 원어로 ‘파카’(hkP)인데, 그냥 스며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마치 쏟아 붓듯이 강력한 힘으로 세차게 흘러나오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면 이 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에는 강이 없습니다. 물이 그렇게 흘러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현상입니다. 신령한 생수입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성령’을 가리킵니다. 강물의 발원지가 성전이라는 것은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영입니다. 그 성령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여러 가지 사역을 행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을 통해서 생명과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2 물의 창일 : 성령충만
그런데 이 물이 흐르고 흘러 시내를 이루고, 또 흐르고 흘러 강을 이루고, 나중에는 바다가 됩니다. 물이 흐르고 흘러넘치는 창일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성령의 충만을 가리킵니다. 본문 3절~5절을 보시죠.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천사가 에스겔을 이끌고 갑니다. 천사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져 있습니다. 1천 척을 측량하더니, 에스겔에게 물을 건너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발목까지 닿습니다. 또 1천 척을 측량한 후 건너봅니다. 무릎까지 ... 또 1천척을 측량한 후 건너봅니다. 허리까지 ... 또 1천척을 측량한 후 건너봅니다. 스스로 걸어서 건너지 못할 정도로 물이 창일 ... 헤엄쳐야 합니다.
여기서 헤엄칠 정도로 물이 창일하다는 것은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을 상징합니다. 물이 깊고 넓어져서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성령 충만은 마치 그런 겁니다.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성령께 맡기고 그 의지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능력이 흐르고 넘쳐서 나를 지배하는 상태입니다. 수영할 때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이 얕을 때는 걸어서 갑니다. 물의 힘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물이 점점 더 깊어지면 물이 힘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집니다. 수영할 때 어떻게 하죠 물에 내 몸을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물 위에 뜰 수 있고 그 상태에서 헤엄칠 수 있습니다. 물의 힘에 몸을 맡기지 않고 내가 움직이려고 하면 오히려 자꾸 빠집니다.
다른 예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 새 들 가운데 특별히 갈매기를 보면 정말 멋집니다. 바람의 흐름에 자기 몸을 맡깁니다. 거의 날개 짓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힘들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람의 힘에 얹혀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욕심이나 죄성의 발로일 때가 많습니다. 갈5:16 보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 보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이 “live by the Spirit”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힘의 근원이 인간 자신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겁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성령의 내주(內住)! 영속적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인간이 의지를 고집함으로 성령의 이끄심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발목, 무릎, 허리에 물이 찰 때 느끼는 저항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런데 아예 인간의 의지를 포기하고 물에 맡기면 물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이끌어갑니다. 주도합니다. 이게 성령 충만이고, 이것은 간헐적입니다. 그랬다 안 그랬다 합니다.
엡5:18 보면, 성령 충만을 술 취함에 비유합니다. 이것을 참고해도 좋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이 그 사람의 의지를 통치하고 지배합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 ... 무슨 뜻인지 아시죠. 지정의 인격이 술의 힘에 통치를 받는 겁니다. 술이 사람을 이끕니다. ‘술 충만’입니다. 이런 것처럼 성령 충만은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전 인격이 성령의 이끄심과 통치를 따라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인간적인 욕심(죄성)을 깨끗이 비우고, 그 빈 마음을 성령으로 채웁니다. 말씀과 기도로 ... 사람이 술 먹고 ...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듯이 ... 사람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합니다. 나중에는 말씀과 기도가 성령을 통해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3 물의 효력 : 성령의 충만한 역사
이와 같이 성령 충만해지면 어떤 역사가 나타날까요 본문에 나타난 물의 효력입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가서 헤엄칠 정도가 될 때 다시 강가로 올라오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 광경을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그 광경을 보면 성령 충만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 가지로 정리해 드립니다.
① 구원과 생명 :
성령 충만해지면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7절,10절.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 바다(사해)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장 좌우편에 나무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강이 바다처럼 넓고 깊어지는 가운데 그물 칠 정도로 고기가 많아집니다. 이게 뭔가요 물이 흘러가니까 사막이 옥토가 됩니다. 과일나무가 무성해집니다. 바다가 생명의 바다가 됩니다. 그 바디는 본래 사해 바다입니다. 보통 바다는 염분이 4~5%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해는 염분이 6배인 25% 정도라고 합니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그런 바다가 이제 생명의 바다로 변화됩니다.
마치 이와 같이 예수 십자가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이 역사함으로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거역합니다. 천국을 불신합니다. 그런데 그 영혼에 성령이 임하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거듭남(중생)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영생!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게 천국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요7:38~39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혼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영생! 성령이 임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성령이 부어주시는 영생은 이 세상에서 저 천국까지 이어집니다. 계22:1~2 천국의 광경이 나오죠.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여호와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 ” 창세기 2장을 보면, 에덴동산에 네 줄기의 강이 있습니다. 생명수가 흐릅니다. 영생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에덴의 상실, 그리고 생명수 강의 상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성령 강림이후 성령의 역사로 생명수 강이 다시 흐릅니다. 그것이 천국에서 완성됩니다.
수년 전에 중앙아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넓은 평원 너머 계속 펼쳐진 산맥이 있었습니다. 만년설리 뒤덮여 있는 산들이 이어집니다. 톈산 산맥(천산 산맥)이죠. 중국,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데 누이 녹아 물이 흘러 넓은 평원을 적셔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원이 형성되고 목축이 가능하게 됩니다.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에, 삶 가운데 성령의 강물이 흐르면 이와 같은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생기가 넘치는 인생이 됩니다. 성령 안에서 헤엄침으로 날마다 이런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② 회복과 치유 :
성령 충만하면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8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아라바는 광야 즉 사막입니다. 성전에서 나온 물이 흐르고 흘러 땅을 살리고 바다를 살립니다. ‘되살아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파’(aPr)인데,
‘고치다’ ‘치유하다’라는 뜻입니다.
또 12절 보시면,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열매가 먹을 만하다는 것은 새 힘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회복의 역사입니다. 잎사귀가 약 재료가 된다는 것은 치유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회복의 영’입니다.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무너졌던 것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또한 성령은 ‘치유의 영’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상처입고 병든 것을 고쳐주십니다. 개인과 가정, 교회와 민족을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십니다.
소프라노 김영미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동양의 마리아 칼라스’라 불리는 분입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우울증과 극도의 신경 쇠약으로 노래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슬픔도 슬픔이지만, 그로 인해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가 생긴 겁니다.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이라는 생각이 자신의 화려한 모습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겁니다. 그 분 자신의 표현을 빌면 ‘영혼의 뇌사 상태’였습니다. 매일 밤마다 악몽으로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다 정말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마음에 아픈 몸을 질질 끌고 교회에 갔습니다. 마침 기도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이 우울증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성령님이 그녀를 만져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속에 작은 평안이 솟아나는 것 같았는데, 그 평안이 온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한 겁니다. 모태 신앙인이지만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다가 그 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겁니다. 그 후 온전히 치유되어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큰 무대만 섰지만, 작은 교회도 찾아가는 간증과 찬양을 하면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헤엄침으로 상한 것과 병든 것들을 치유 받고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③ 변화와 새창조 :
성령 충만하면 변화와 새창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12절.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 ”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하여 강 좌우에 나무들이 무성해지는데, 달마다 새 열매를 맺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역사, 새 창조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이십니다. 태초에 창조하신 영, 지금도 인생 가운데 새 창조의 역사를 일으켜주시는 영이십니다.
천지창조를 작곡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하이든의 이야기입니다. 오라토리오천지창조발표회 무대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청중이 일제히 일어나 하이든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하며 경의를 표시했습니다. 그러자 하이든이 청종의 환호를 중지시키며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작품은 나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겁니다. 모든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립니다!” 예술은 창조의 행위인데, 성령의 영감을 받을 때 놀라운 작품이 탄생하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계속 새로운 것이 요구됩니다. 각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 못하면 버티기 힘든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더욱더 성령의 영감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절실한 변화는 나 자신의 변화, 인격의 변화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창조의 성령께서 성도에게 임함으로 새창조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갈5:22~23 말씀 보면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을 닮은 인격입니다. 이와 같은 인격으로 변화되면, 그로 인해 주변으로 변화의 물결이 퍼져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날로 새로워지고 새창조의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겨우 발목, 무릎, 허리에 차는 강물을 지나가느라 힘들어하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창일한 물을 헤엄치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성령 안에서 헤엄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앙생황이 얼마나 쉽고 활력있고 복된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위해 간구하십시오! 그래서 풍성한 은혜 속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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