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고향(故鄕) 가는 길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이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날입니다. 이 명절에는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그동안 헤어져서 살던 부모님들과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이번 설날에도 우리나라의 인구가 약 3분지2에 해당되는 3천만 명 이상이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고향을 찾아야만 합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고 기다려 주는 부모님이 있고 어릴 때 뛰어 놀든 향수와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올해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북한에다가 고향을 두고 남하한 사람들은 고향을 가지 못한 설음에 북녘 땅이 바라보이는 임진강변에서 고향을 향하여 눈물짓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경에는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구약에서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① 창세기 31장에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만에 자기 집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②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나와서 모세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③ 룻기 1장에서는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나오미만이 살아서 며느리 룻을 데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을 찾아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④ 에스라서 1-3장에서는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유다 민족이 70년 만에 해방이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풀려나 해방이 되어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였습니다.
둘째로, 신약에서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① 눅2;1-7절 말씀에는 예수님의 부친 요셉과 모친 마리아가 당시의 총독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호적을 하러 고향 베들레헴에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② 오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말씀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가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탕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③ 누가복음 24장13절 이하의 말씀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 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순종을 잘하고 집안일을 잘 하는가 하면 둘째아들은 형과는 반대로 일도 잘 하지 않고 아버지의 속을 썩이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나눠달라고 합니다. 즉 아버지가 죽은 후에 받을 수 있는 유산을 미리 달라는 것입니다.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오든 목축업이나 농사일보다는 멀리 도시로 가서 대대적으로 사업을 하여 돈을 벌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퍽 진보적이며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은 재산을 처분하여 돈을 가지고 외지로 나갔습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집을 떠나 왔지만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돈은 자꾸만 줄어들어서 마침내는 바닥이 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전국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뒤늦게 후회를 해 보아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탕자에게 훌륭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고향 아버지 집에는 풍성한 생활 속에서 아무 걱정도 없이 풍요함을 누리는 아버지의 집을 생각한 것입니다. 늦었다고 하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전한 것이 그에게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을 때에 그는 자기의 기대치 보다 몇 십배 몇 백배의 축복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탕자의 비유는 환상을 좇아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실패하고 돌아오는 패배자의 귀향을 보여줍니다. 실패를 하였던 성공을 하였던 고향은 아버지의 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해 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오늘의 성경 말씀과 같이 고향을 떠났다가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 고향이란 무엇입니까
(창47:29-30)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이 말씀을 보면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을 따라 애굽에 가서 살다가 죽을 때에 그 아들 요셉에게 유언하기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고향 가나안 땅 선영에 장사하라 하였습니다. 야곱의 일생 147년 동안에 애급에 가서 사는 17년 동안의 생활이 가장 영화로운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서는 고향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또 요셉도 그가 죽을 때에 유언하기를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갈 텐데 그때에 나의 해골을 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창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래서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가지고 나갔습니다.
(출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주전597년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그들은 고향을 그리면서 버드나무 가지에 거문고를 걸어놓고 망향가를 부르면서 슬피 노래한 역사를 시편137편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왜 이렇게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까
고향에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이 계시고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향은 자랄 때에 뛰어 놀든 정든 산천이 있고 자신의 탯줄을 묻은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향에서는 모든 여건과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히 고향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고향은 아버지의 집과 같은 곳입니다.
(1) 아버지의 집은 항상 먹을 것이 풍성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는 “다시는 아버지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라고 결심을 굳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떨어지고 기근이 들어서 굶주리니까 비로소 아버지 집의 풍성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떡 한 쪽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탕자가 배고픔의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진가를 모릅니다.
(2) 아버지의 집은 항상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나간 아들은 항상 불안과 초조와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에 돌아오니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즐거워하였고 아버지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3) 아버지의 집은 항상 용서가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아버지가 자기를 용서해 준다거나 아니면 아들로서 받아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배고파 죽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집에서 배불리 먹는 품꾼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와서도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저 아들이 돌아온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명하여 새 옷을 입히라고 하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는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하여서 아들의 명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탕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온갖 죄를 짓다가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3. 고향을 떠난 아들은 얼마 가지 못하여 곧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목자를 떠난 양이 길을 잃어버리고 온 밤을 헤매는 것처럼 집을 나간 아들은 곧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곧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약4:8절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4. 집을 나간 아들은 배고픔의 고통 중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이 탕자가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아들은 영영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있었기에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시119:67절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시119: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 라고 하였습니다.
5.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나간 날부터 아버지는 날마다 문 열어 놓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아무리 효도를 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부모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밤마다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 나갑니다. 아무도 그 거지가 이집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어도 아버지는 알아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다른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아버지는 달려가서 목을 끌어 않고 입을 맞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
여호와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돌아올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영접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여 영원하신 우리의 고향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6.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여 주고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만약에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집 나간 자식”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식”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지 못하고 굶어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살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염체 불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니까 지난날의 모든 죄와 허물은 용서를 받고 또 아들의 명분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본래 죄의 종들이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로마서 6:17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고 하였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설날 명절을 맞이하여 영원한 우리의 고향인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야할 고향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본향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세상이요 우리는 나그네와 같이 잠시만 머물다가 가야할 인생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생의 구원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 하늘나라가 없다면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에 반드시 본대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날을 맞이하여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대 이동을 하는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가야 할 영원한 본향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충성을 다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칭찬 듣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이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날입니다. 이 명절에는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그동안 헤어져서 살던 부모님들과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이번 설날에도 우리나라의 인구가 약 3분지2에 해당되는 3천만 명 이상이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고향을 찾아야만 합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고 기다려 주는 부모님이 있고 어릴 때 뛰어 놀든 향수와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올해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북한에다가 고향을 두고 남하한 사람들은 고향을 가지 못한 설음에 북녘 땅이 바라보이는 임진강변에서 고향을 향하여 눈물짓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경에는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구약에서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① 창세기 31장에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만에 자기 집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②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나와서 모세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③ 룻기 1장에서는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나오미만이 살아서 며느리 룻을 데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을 찾아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④ 에스라서 1-3장에서는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유다 민족이 70년 만에 해방이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풀려나 해방이 되어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였습니다.
둘째로, 신약에서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① 눅2;1-7절 말씀에는 예수님의 부친 요셉과 모친 마리아가 당시의 총독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호적을 하러 고향 베들레헴에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② 오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말씀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가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탕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③ 누가복음 24장13절 이하의 말씀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 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순종을 잘하고 집안일을 잘 하는가 하면 둘째아들은 형과는 반대로 일도 잘 하지 않고 아버지의 속을 썩이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나눠달라고 합니다. 즉 아버지가 죽은 후에 받을 수 있는 유산을 미리 달라는 것입니다.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오든 목축업이나 농사일보다는 멀리 도시로 가서 대대적으로 사업을 하여 돈을 벌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퍽 진보적이며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은 재산을 처분하여 돈을 가지고 외지로 나갔습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집을 떠나 왔지만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돈은 자꾸만 줄어들어서 마침내는 바닥이 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전국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뒤늦게 후회를 해 보아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탕자에게 훌륭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고향 아버지 집에는 풍성한 생활 속에서 아무 걱정도 없이 풍요함을 누리는 아버지의 집을 생각한 것입니다. 늦었다고 하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전한 것이 그에게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을 때에 그는 자기의 기대치 보다 몇 십배 몇 백배의 축복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탕자의 비유는 환상을 좇아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실패하고 돌아오는 패배자의 귀향을 보여줍니다. 실패를 하였던 성공을 하였던 고향은 아버지의 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해 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오늘의 성경 말씀과 같이 고향을 떠났다가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 고향이란 무엇입니까
(창47:29-30)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이 말씀을 보면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을 따라 애굽에 가서 살다가 죽을 때에 그 아들 요셉에게 유언하기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고향 가나안 땅 선영에 장사하라 하였습니다. 야곱의 일생 147년 동안에 애급에 가서 사는 17년 동안의 생활이 가장 영화로운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서는 고향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또 요셉도 그가 죽을 때에 유언하기를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갈 텐데 그때에 나의 해골을 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창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래서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가지고 나갔습니다.
(출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주전597년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그들은 고향을 그리면서 버드나무 가지에 거문고를 걸어놓고 망향가를 부르면서 슬피 노래한 역사를 시편137편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왜 이렇게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까
고향에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이 계시고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향은 자랄 때에 뛰어 놀든 정든 산천이 있고 자신의 탯줄을 묻은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향에서는 모든 여건과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히 고향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고향은 아버지의 집과 같은 곳입니다.
(1) 아버지의 집은 항상 먹을 것이 풍성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는 “다시는 아버지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라고 결심을 굳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떨어지고 기근이 들어서 굶주리니까 비로소 아버지 집의 풍성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떡 한 쪽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탕자가 배고픔의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진가를 모릅니다.
(2) 아버지의 집은 항상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나간 아들은 항상 불안과 초조와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에 돌아오니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즐거워하였고 아버지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3) 아버지의 집은 항상 용서가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아버지가 자기를 용서해 준다거나 아니면 아들로서 받아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배고파 죽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집에서 배불리 먹는 품꾼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와서도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저 아들이 돌아온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명하여 새 옷을 입히라고 하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는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하여서 아들의 명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탕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온갖 죄를 짓다가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3. 고향을 떠난 아들은 얼마 가지 못하여 곧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목자를 떠난 양이 길을 잃어버리고 온 밤을 헤매는 것처럼 집을 나간 아들은 곧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곧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약4:8절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4. 집을 나간 아들은 배고픔의 고통 중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이 탕자가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아들은 영영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있었기에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시119:67절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시119: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 라고 하였습니다.
5.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나간 날부터 아버지는 날마다 문 열어 놓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아무리 효도를 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부모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밤마다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 나갑니다. 아무도 그 거지가 이집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어도 아버지는 알아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다른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아버지는 달려가서 목을 끌어 않고 입을 맞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
여호와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돌아올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영접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여 영원하신 우리의 고향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6.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여 주고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만약에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집 나간 자식”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식”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지 못하고 굶어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살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염체 불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니까 지난날의 모든 죄와 허물은 용서를 받고 또 아들의 명분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본래 죄의 종들이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로마서 6:17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고 하였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설날 명절을 맞이하여 영원한 우리의 고향인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야할 고향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본향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세상이요 우리는 나그네와 같이 잠시만 머물다가 가야할 인생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생의 구원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 하늘나라가 없다면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에 반드시 본대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날을 맞이하여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대 이동을 하는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가야 할 영원한 본향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충성을 다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칭찬 듣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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