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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하늘에서 누릴 큰 상을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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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성도 여러분과 그 가정 위에 가득히 임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올 일 년 간,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에 합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소원하는 모든 일들이 다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 가정들도 모두 건강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속한 이 사회와 국가도 더욱 건강하게 되어서 참으로 바람직하고 소망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제가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의 예화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는 행복도 함께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 행복을 자기들 멋대로 함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그 행복을 회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천사들은 회수한 그 행복을 어디에다 숨겨놓아야 할지에 대하여 함께 의논을 했습니다.
한 천사가 제안했습니다. “저 깊은 바다 밑에다가 숨겨놓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천사장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건 안 돼.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바다 속쯤은 금방 뒤져서 찾아낼 거야. ” 다른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 높은 산꼭대기에 숨겨놓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천사장은 다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인간들은 탐험정신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두어도 찾아내고 말거야!”
천사들은 한참 고민을 하면서 의논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다가 숨겨두기로 합시다. 아무리 저들의 두뇌가 비상하고 탐험심이 강해도 자기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좀처럼 찾아내기가 어려울 거요. 그래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거지요. ”
이 예화가 우리에게 말해주듯이, 어떤 사람들은 ‘우리 마음 속에 행복이 있다. ’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잠언서 기자도 ‘그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한다(4:23)’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마음보다 더 간사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 없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과 재앙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 누가 그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속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의 마음이 거룩하고 아름다워야 그 마음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지,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행복하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속담에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마음을 바르게 먹어야, 그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간사하거나 거짓된 마음을 지닌 채로 행복하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려는 것처럼,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인간의 생사화복이 여호와 하나님 손에 달려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창세기5:2 말씀을 보면,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는 것입니다. 출애굽기23:25에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러면, 너희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가운데 병을 없애겠다. ’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30:8-9에서, 모세는 다음과 말했습니다. ‘너희는 돌아 와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주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너희 몸의 소생과 땅의 소출을 풍성하게 하실 것이다. 주께서 너희 조상이 잘 되게 하신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너희도 잘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17:10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그 깊은 동기를 조사해서, 각 사람이 행한 그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결과에 따라 심판하시되, 그 마음의 깊은 동기를 먼저 살피시겠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무슨 일을 했을 때에, 그 겉에 나타난 결과만 보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마음의 동기를 먼저 살펴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마음의 동기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까요 다시 말해서,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지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엄밀하신 감찰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을 통치하며 섭리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17: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마치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서, 더위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잎이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며,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고, 항상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우리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여호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믿고 의지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법칙에 따라 살아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17:5 말씀을 보면 “여호와를 떠나 인간의 도움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사막에 있는 가시덤불과 같아서,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이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움을 의지하는 자란, 곧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것을 얻고자 불철주야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애쓰고 수고한다는 사실은 가상하게 여길 일이지만, 그 결과가 그들의 소망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살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자신의 유익과 행복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은 좀처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손해가 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 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갚고, 선을 행치 않는 자는 하늘이 화로써 갚는다. ’ 명심보감 맨 첫머리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문장을 우리 식대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하늘로부터 복을 받게 되거니와,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불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마16:24)”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를 제대로 믿고 따르기를 원한다면, 세상욕심과 이기적인 생각을 버린 후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누가복음 6:20이하에는, 행복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행복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크나큰 고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방식을 따르자니 여호와 하나님을 등져야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자니 세상을 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 세상방식대로 사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몸에 배어 있는 일들을 멀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살자니, 참으로 어색하고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킨다거나 십일조 생활하는 것, 그리고 술 담배를 금하는 것 정도는 마음만 잘 먹으면 지켜 살 수가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 좀 익숙해지게 될 경우, 새벽기도회 참석하는 것까지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가난하고 굶주리며 우는 사람이 행복하다니, 우리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수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거나 미움 받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 덕분에 세상 사람들보다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건강하게 살고자 함이 아니었던가요 솔직히 말해서, 주일성수도 잘하고 십일조 생활도 함으로써,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과 물질을 드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은총과 축복을 받고자 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과는 전혀 반대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러나 그 뜻대
로 살 때에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3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미워하고 따돌리고 모욕하며 너희 이름을 더럽힐 때, 너희는 행복하다. 이런 일을 당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행복하기 되기를 원한다면, 그 무엇보다 먼저 부활을 믿고 천국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너무나 짧은 인생이 우리 인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느라고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주께서도 부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만 생각하고 예수를 믿었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이다(고전15:12이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바라고 살 것이냐, 아니면,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고 살 것이냐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살 경우, 그 바라던 행복도 누릴 수 없거니와, 하늘나라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애쓰면, 이 세상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거니와, 영원한 하늘나라에도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세상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비참하게 되고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행복을 누리고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보 중의 바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세상적인 행복을 바라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기독교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세상에서 그 무엇을 많이 소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사는 것, 즉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 그 자체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 그 본래의 목적대로 올바르게 쓰임을 받으며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다운 행복인 것입니다.
이런 목적과 사상을 가지고 살 때에,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고,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덕을 기릴 수가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 형제와 화목하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서, 이 사회에 유익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세상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예수를 믿게되면, 그 자신도 결코 행복하게 살 수가 없게 되거니와, 그 형제와 이웃, 그리고 자녀한테도 결코 칭찬과 존경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바로 잘 믿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가난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욕심으로 차 있으면, 그 마음은 심히 슬프고 괴로우며 그 심령이 무척 외롭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그 이웃과 형제는 안 보이고, 자기 자신과 자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살면, 기쁨과 평화가 있고 참 안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이웃이 보이고, 그 형제를 기쁘게 도울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는 하늘에서 누릴 큰 상급을 바라보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슬프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하늘에 두고 살아감으로써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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