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 충만과 성도의 삶
본문
성령은 인간들의 사고에 의해 지배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은 때로 성령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온당한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성령은 교리나 지식처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함으로써만이 느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믿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라고 하였고,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聖靈)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放言)으로 말하기를 시작(始作) 하니라. "(행2:4절)고 했습니다. 성령(聖靈) 충만(充滿)을 받은 성도(聖徒)는 어떻게 행하는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눅24:49절에 “볼 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1)은사를 활용합니다. 주님이 언급한 달란트의 비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재능을 부여하셨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25:14-30). 그 재능은 단일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맞게 다양하게 주어진 것입니다.
은사는 장식품도 지식욕의 충족도 아닙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활용해야만 합니다. 자기 혼자만이 누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가 아닙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의 활용은 그리스도의인의 당연한
권리와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갈5:16,1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활용함으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열매를 맺습니다. 욕심과 투기에 의한 부요와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육신의 만족과 의도를 좇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것입니다.
롬8: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한 것은 바울입니다. (롬14:17). 진실로 성령이 충만하면 그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7:16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나무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갈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인 것입니다.
2.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빌3:3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1)은밀하게 봉사합니다. 주님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지적하시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마6:2-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남을 의식하여 명예나 부를 위하여 또는 자신의 충족감을 위하여 구제나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지적은 그러한 자세가 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봉사는 당연한 의무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결단으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긍심을 갖거나 자신의 공적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선한 청지기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하는 것입니다.
벧전4:10,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2)봉사하는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입니다. 봉사를 의미하는 “디아코니아”는 종을 연상하게 마련인 식사 시중을 의미했습니다. 상전은 긴 옷을 차려입고 식탁에 기대어 있고 하인은 띠를 두르고 시중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디아코니아가 식사 시중만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생계 부양이나, 다른 잡다한 일을 돕는다 하더라도 시중드는 의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눅22:25,26)고 하셨습니다. 예수 제자의 요건은 권력, 학식, 위엄, 부요가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 제자의 요건으로 우리의 봉사를 요구하셨습니다. 마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代贖)물(物)로 주려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요한 관심사는 “남을 위한 존재”에 있었습니다. 막9:35절에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했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奉事)할 때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며 진실(眞實)로 성령(聖靈) 충만(充滿)한 성도(聖徒)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벧전1:12절에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1)장소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교는 의무입니다. 주님은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어떠한 인위적인 조건도 선교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성령을 제한시키는 것도 불가한 것입니다. 사안의 완급(緩急)은 있을지라도 선교(宣敎)를 포기(泡起)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선교(宣敎)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人間)의 구속(救贖) 사역(使役)을 수행(修行)하시고 인도(引導)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聖靈)은 선교(宣敎)를 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2)제자를 삼아 가르치십니다. 복음은 선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28:19,20절에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무슨 일에나 그렇듯이 선교도 열매를 요구합니다. 무지한 자에게서 효과적인 대응을 기대할 수 없듯이 배움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도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가르치는 곳에 희망(希望)이 있습니다. 가르침으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되고 제자(弟子)의 의미(意味)를 알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救援)을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성령(聖靈)이 충만(充滿)한 성도(聖徒)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자신(自身)의 관점(觀點)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성령(聖靈) 충만(充滿)한 생활(生活)을 유지할 때 우리는 진실(眞實)로 참된 제자(弟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聖靈)을 거스르지 않고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忠實)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성령 충만 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화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만이 힘들어하지 않고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르짖어 하늘의 권능을 받아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믿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라고 하였고,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聖靈)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放言)으로 말하기를 시작(始作) 하니라. "(행2:4절)고 했습니다. 성령(聖靈) 충만(充滿)을 받은 성도(聖徒)는 어떻게 행하는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눅24:49절에 “볼 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1)은사를 활용합니다. 주님이 언급한 달란트의 비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재능을 부여하셨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25:14-30). 그 재능은 단일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맞게 다양하게 주어진 것입니다.
은사는 장식품도 지식욕의 충족도 아닙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활용해야만 합니다. 자기 혼자만이 누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가 아닙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의 활용은 그리스도의인의 당연한
권리와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갈5:16,1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활용함으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열매를 맺습니다. 욕심과 투기에 의한 부요와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육신의 만족과 의도를 좇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것입니다.
롬8: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한 것은 바울입니다. (롬14:17). 진실로 성령이 충만하면 그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7:16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나무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갈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인 것입니다.
2.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빌3:3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1)은밀하게 봉사합니다. 주님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지적하시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마6:2-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남을 의식하여 명예나 부를 위하여 또는 자신의 충족감을 위하여 구제나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지적은 그러한 자세가 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봉사는 당연한 의무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결단으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긍심을 갖거나 자신의 공적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선한 청지기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하는 것입니다.
벧전4:10,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2)봉사하는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입니다. 봉사를 의미하는 “디아코니아”는 종을 연상하게 마련인 식사 시중을 의미했습니다. 상전은 긴 옷을 차려입고 식탁에 기대어 있고 하인은 띠를 두르고 시중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디아코니아가 식사 시중만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생계 부양이나, 다른 잡다한 일을 돕는다 하더라도 시중드는 의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눅22:25,26)고 하셨습니다. 예수 제자의 요건은 권력, 학식, 위엄, 부요가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 제자의 요건으로 우리의 봉사를 요구하셨습니다. 마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代贖)물(物)로 주려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요한 관심사는 “남을 위한 존재”에 있었습니다. 막9:35절에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했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奉事)할 때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며 진실(眞實)로 성령(聖靈) 충만(充滿)한 성도(聖徒)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벧전1:12절에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1)장소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교는 의무입니다. 주님은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어떠한 인위적인 조건도 선교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성령을 제한시키는 것도 불가한 것입니다. 사안의 완급(緩急)은 있을지라도 선교(宣敎)를 포기(泡起)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선교(宣敎)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人間)의 구속(救贖) 사역(使役)을 수행(修行)하시고 인도(引導)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聖靈)은 선교(宣敎)를 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2)제자를 삼아 가르치십니다. 복음은 선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28:19,20절에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무슨 일에나 그렇듯이 선교도 열매를 요구합니다. 무지한 자에게서 효과적인 대응을 기대할 수 없듯이 배움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도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가르치는 곳에 희망(希望)이 있습니다. 가르침으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되고 제자(弟子)의 의미(意味)를 알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救援)을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성령(聖靈)이 충만(充滿)한 성도(聖徒)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자신(自身)의 관점(觀點)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성령(聖靈) 충만(充滿)한 생활(生活)을 유지할 때 우리는 진실(眞實)로 참된 제자(弟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聖靈)을 거스르지 않고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忠實)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성령 충만 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화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만이 힘들어하지 않고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르짖어 하늘의 권능을 받아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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