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개척자의 삶
본문
오늘은 정월명절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당신이 걸어왔던 삶이 얼마나 만족합니까 사람들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더 많은 것에 대한 욕구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불평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삶이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정신적, 영적인 유산에 대한 만족함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불만족하여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개척하는 사람이 되어 한 해를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함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큰 민족에 대한 약속, 창대한 이름, 복의 근원이 될 것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창 12:1~3).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의지하여 75세의 나이에 어려운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그 약속을 누리지 못하고 수많은 세월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때에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미 정착해 있는 원주민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들은 불완전한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차지한 땅을 분배하는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분을 분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셉 지파가 지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여호수아에게 와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파에게 분명히 큰 축복을 주셔서 어느 지파보다 큰 지파가 되었는데 왜 땅을 분배하는데 있어서는 불공평하게 작은 비분은 주냐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당한 항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땅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누구도 땅의 지분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지파에게 주어진 축복의 나머지 분복은 개척을 통한 소유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에게 “스스로 개척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들이 개척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출발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요셉지파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넉넉하지도 못하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철병거를 갖추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요셉지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불신앙”이었습니다.
믿음의 개척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조건들을 많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부모님들에게서 좋은 유산들을 많이 물려받지 않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물줄기가 풍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혹시 근시안적인 눈으로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평하고 있는 한 우리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평하려고 하는 우리들을 향해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씀합니다. 보무님을 탓할 것이 아닙니다. 물려받은 유산이 적다고 탓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최선의 것을 주셨습니다. 대신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개척자로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개척자로 출발하려고 하는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싸우고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할 때 인간적인 계산을 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변 땅이 넉넉해 보이지 않아도, 주변 국가들이 철제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불평하기보다는 찬송하면서 자신 있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커다란 장애물들이 놓여 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출발하는 개척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함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큰 민족에 대한 약속, 창대한 이름, 복의 근원이 될 것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창 12:1~3).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의지하여 75세의 나이에 어려운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그 약속을 누리지 못하고 수많은 세월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때에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미 정착해 있는 원주민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들은 불완전한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차지한 땅을 분배하는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분을 분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셉 지파가 지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여호수아에게 와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파에게 분명히 큰 축복을 주셔서 어느 지파보다 큰 지파가 되었는데 왜 땅을 분배하는데 있어서는 불공평하게 작은 비분은 주냐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당한 항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땅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누구도 땅의 지분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지파에게 주어진 축복의 나머지 분복은 개척을 통한 소유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에게 “스스로 개척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들이 개척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출발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요셉지파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넉넉하지도 못하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철병거를 갖추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요셉지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불신앙”이었습니다.
믿음의 개척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조건들을 많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부모님들에게서 좋은 유산들을 많이 물려받지 않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물줄기가 풍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혹시 근시안적인 눈으로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평하고 있는 한 우리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평하려고 하는 우리들을 향해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씀합니다. 보무님을 탓할 것이 아닙니다. 물려받은 유산이 적다고 탓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최선의 것을 주셨습니다. 대신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개척자로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개척자로 출발하려고 하는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싸우고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할 때 인간적인 계산을 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변 땅이 넉넉해 보이지 않아도, 주변 국가들이 철제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불평하기보다는 찬송하면서 자신 있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커다란 장애물들이 놓여 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출발하는 개척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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