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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의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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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로 소문났던 ‘김익두’가 변화되어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높은 산길을 오른 후에 잠시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술 취한 어떤 사람이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그를 때렸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때리는 대로 아무 저항 없이 한참 맞다가, 그가 지쳐 잠잠해지자 느닷없이 “예수님은 나 김익두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뜻을 알지 못한 술주정꾼은 김익두란 말에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며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는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다했다면, 자넨 여기서 끝장이었을 텐데 내가 예수님을 믿은 덕에 자네가 살지 않았는가 그러니 내가 예수님을 믿고 복은 자네가 받은 셈이지”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가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김 목사는 그에게 부흥집회에 참석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김익두란 깡패를 변화시키어 목사로 만들었고 술주정꾼을 변화시키어 장로가 되게 하였습니다. 예쑤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나세렛에서 배척을 받자, 가버나움으로 옮겨서 선교활동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선교본부라고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회장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당시 종교자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는 권세가 있어 사람들에게 놀라운 감동과 생명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사람의 나쁜 성품도 변화시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세란 말은 영어로 ‘authority’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강력한 힘’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것을 잘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시 74: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고 권세를 가지고 있고,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권세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런 권세를 주시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당은 오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회당은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평일에는 교육, 토론, 재판 등의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영적, 정신적, 도덕적, 요람이며 자주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런 회당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가리치실 때, 권세가 있었습니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22)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진리 자체로서 말씀을 가르치시니, 그 말씀에 권세가 있었고 영적 기갈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주었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분명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제공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실현될 소망을 주었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해 주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며 모든 슬픈자를 위로하는(사 61:1~2)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권세 있는 말씀을 줍니다. 그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의 심령, 곧 골수를 쪼개는 능력으로 임하고(히 4:12)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여 영생의 문에 들어가도록 인도합니다(요 6:68).
그러면 회당에서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가르치셨을까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장 15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말씀을 가르치셨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생활하였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생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복음을 올바로 믿고, 생활화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처럼 말씀을 자기 입장에서 가르치지 않았고, 솔직하고 명백하게 성경 말씀 자체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회당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첫째, 예수님이 인간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발전시키지만, 특별히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롭게 살도록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그자체가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이며(요 4:10) 우리의 골수를 윤택하게 하는 생명력(잠 3:8)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정의를 실현하도록 용기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불의와 죄악이 가득 찬 사회에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도록 능력을 주기고, 미움과 분노가 가득 찬 사회를 사랑이 가득 찬 사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은 정치적, 경제적, 조직적 힘으로 지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힘으로는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악을 정복하시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말씀이 있고, 말씀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영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모든 유익한 생활을 탈취해 갈 뿐만 아니라 탐욕에 눈이 어두워 악을 범하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사악한 마음을 갖고 질서를 파괴하는 악한 사람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들어와 소리 질러 회당의 분위기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마귀가 회당에 들어왔던 것처럼,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일을 방해하고 말씀을 비판하고 거부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마귀는 정신적으로 불안전한 사람에게는 강하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본문 23~24절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마귀도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자기를 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사람들은 왜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가”(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환자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고 건강한 사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중생의 경험을 하기 전에 마귀의 유혹에 넘어져서,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였고, 교회를 볼 때마다 알레르기 거부반응을 보였으며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영성을 개발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만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마귀는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입니다. 이 시간 우리 안에 있는 마귀를 예수님의 권세로 몰아내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권세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마귀를 쫓아낸 예수님의 권세를 보면서 깜짝 놀랐고,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다 놀라고 예수님의 권세 있는 새 교훈과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 즉 순종하는 권세를 온 갈릴리 사방에 전파하였다(27~2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갈릴리 사방’이란 말은 ‘그 근처 사방’(눅 4:37)이란 말과 동일하며, 갈릴리 지역보다 더 넓은 범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귀를 쫓아낸 예수님의 권세가 세계만방에 전파되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권세는 어느 한 곳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성령이 임재하는 곳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있는 곳의 마귀는 쫓겨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세를 믿는 사람은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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